[주님 세례 축일] 성령과 불 세례(洗禮) (루카3,15-16.21-22)

2022. 1. 8. 오후 6: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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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9일 주일

[주님 세례 축일] 성령과 불 세례(洗禮) (루카3,15-16.21-22)


1독서<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이사42,1-4.6-7)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화답송 시편 29(28),12.3ㄱㄷ4.39-10(11)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2독서<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사도10,34-38)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루카3,15-16.21-22)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 (이사42,1-4.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1)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2~4)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6~7)

 

'위로의 책'(이사야서 40~55장)의 첫 대목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1)로 시작된다. 이 시작말은 히브리 예언 역사의 전환점을 알리는 말씀이다.

 

이전의 예언자들은 전쟁과 기아, 역병으로 대표되는 징벌의 신탁을 선포했으나, 이후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다.

 

바빌론 유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이사야서 40장 2절은 후반부에서 역사적 상황을 명시하는 유일한 곳이다.

 

'위로의 책'(40~55장)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 네 개의 노래로 되어있는 '야훼의 종'(Yawhe ebed; 야훼 에베드) 또는 '주님의 종' 관한 신탁이다(42,1-9; 49,1-7; 50,4-11; 52,13~53,12).

 

여기서 주님의 종이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비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배자들을 풀어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숱한 고난을 이겨낸 이상적 이스라엘 백성(이사41,8~10) 또는 소수의 경건한 남은 자들모세, 이사야, 예레미아와 같은 예언자, 요시아, 여호야킨, 즈루빠벨 같은 유다 왕족, 아니면 무명의 제2 이사야서 저자 등 다양한 대상이 제시되었지만, 본문 자체로는 확실하게 규명하기 힘들다.

 

또한 네 노래가 동일한 대상을 묘사하는지, 아니면 저마다 다른 대상을 묘사하는지도 판가름하기 어렵다.신약 성경 저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주님의 종'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일단,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다인들을 풀어 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로 '주님의 종'을 이해하고, 구약은 신약의 예표요 암시요 약속이므로, 이 '주님의 종' '예수님'께 적용하기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북방에서 새로운 정복자를 일으켰고, 이 좋은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할 사자(使者)를 파견하라고 이스라엘에 명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셨다(이사40,1~9).

 

그 다음에 하느님께서는 이 정복자를 당신의 종으로 소개하신다. 즉 당신의 천국 법정의 판결을 민족들에게 집행할 '주님의 종'이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40,1)

 

그는 이 일을 조용하고 은은하고 섬세하고 온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수행할 것이다. 그는 이 일이 '세상에' 이루어질 때까지, 지치거나 기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42,2~4)

 

하느님은 이 종을 불러 그를 '백성을 위한 계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임명하신다. 그는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줄' 것이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42,6~7),

 

이사야서 42장 1절 이하에서 천국 법정의 사자로 '주님의 종'이 소개되었다. 그는 천국 법정에서 내려진 판견들을 이방 민족들에게 통지하고, 세상에서 그 판결들을 이행할 자이다.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의 주장을 심의한 재판에서 드러난 이 공의는 이사야서 40장1~5절과 9~10절에서 예고된 공의다. 

 

이사야서 42장 1~4절에서 '공정'(mishipath;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3번 나오는데, 이 단어는 정관사가 없을 떄 '공의'(justice)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훨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 단어는 '증인들 앞에서 천국 법정에 의해(즉 주님에 의해) 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 이 판결은 정책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관심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키루스는 이 판결을 실행하기 위한 '주님의 종'(사자; 대행자)으로 선택받았다. 주님은 당신의 종(사자)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시고, 그를 '붙들어 주신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영을 그에게' 주셨다(이사40,1). 

 

이 '주님의 종'이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의 성실성은  이사야서 40장 2~3절에 잘 표현되고 있다. 이 판결(공정; 정의)은 민족들(40,1)과 세상과 섬들(40,4)에  반드시 알려지고, 확립되어야 한다.

 

여기서 섬들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리라는 주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예루살렘의 이웃들을 말한다.

 

'민족들'과 '세상'과 '섬들'이라는 말은 '주님의 종'의 권위가 다윗이 행사한 권위와 같이 더 넓은 팔레스티나에서 행사될 것임을 나타낸다. 

 

이사야서 40장 4절이 '그의 가르침'에서 '가르침'(교훈; torah; 토라)이라는 단어는 후에 모세오경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용어가 되었다. 

 

토라(모세오경)는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이전에 에즈라에 의해 바빌론에서 완성되고, 복사되고, 가르쳐지고, 권위가 주어졌다.

 

이사야서 42장 6~7절은 주님께서 키루스에게 직접하시는 말씀이다. '부르다, 붙잡다, 빚어 만들어 되게 하다(세우다)'라는 말은 주님의 종인 키루스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나타낸다. 주님은 궁극적 목표(구원)에 있어 키루스의 후원자이시다.

 

키루스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그는 '백성을 위한 계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백성들에게  통치와 공의와 질서를 베풀 책임이 있다.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주는 일'은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의 역할이다. 이스라엘은 해방을 받고, 복권되어야 하며, 그들의 성전이 있는 성(城)은 재건되어야 한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주님이 세례 받으셨을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이다.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 40장 1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의 말씀이 복음의 말씀안에서 예수님의 세례 사건에서 실현되고 성취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시작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공적 활동 (공생활)을 시작하신다.

 

죄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단순한 겸손의 모범도 아니고, 요르단 강(자연수)을 거룩하게 축성하시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요한14,6) 예수님께서는 세례가 인간 구원의 절대 필수 조건임을 계시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주님의 간택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례 때, 죄와 죄 짓게 하는 악의 세력(사탄)을 끊어 버리고, 신앙의 진리대로 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 다시 되찾은 '주님의 자녀'라는 품위와 지위와 신분의 소중함을 깨닫고,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이 '거룩한 은총의 품위'를 잘 지켜 나가자.



 

 

20220109일 일요일

주님 세례 축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교회는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성탄 시기를 마무리합니다.

이 축일은

세례자 요한에게 받으신 예수님의 세례(마태 3,13-17; 마르 1,9-11; 루카 3,21-22 참조)를 기념하고,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묵상하게 합니다.

세례의 표지인 의 중요한 역할은 정화(淨化)’입니다.

손이 더러워지면 물로 씻듯이,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참 하느님이신데,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도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인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려고,

곧 우리와 같아지시려는(필리 2,6-7 참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바로 다음 장면을 전합니다.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성령의 내리심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떠올립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요한의 세례가 죄의 회개를 위한 물의 세례였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성령과 불의 세례입니다.

 

오늘 제1독서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이 예수님의 세례에서도 울려 퍼집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약속된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보증입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기도성령의 힘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제2독서의 증언처럼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가장 큰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가 받은 세례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는 세례 받은 우리를 그분께서 걸으신 복음 선포의 길로 초대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있을 뿐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주님 세례 축일 (루카3,15-16. 21-22)

 

 다시 태어난 사람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시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것에 감사를 드리는 가운데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려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태중교우 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생활이 바쁘다 보니 하느님도 잊고 지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다시 시작한다고 하시니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사실 세례를 언제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세례의 의미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음이 큰 기쁨이요,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남은 영생의 초대이기에 더더욱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을 잘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깊은 산 속에서 산나물을 캐던 칠순 할머니가 산골짜기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먹고 어여쁜 아가씨로 변하였습니다. 집에 돌아 온 그는 늙은 영감에게 이 같은 사연을 이야기하니, 자기도 젊어지겠다고 일러준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너무 욕심을 부려 지나치게 퍼먹었는지 갓난아기로 변해버렸답니다.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면서도, 삶이 바뀌지 않고 자기 욕심만 차리고 산다면, 언제까지나 갓난아기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신앙이 조금도 성숙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이란 날로 짐스럽고 힘들어만 가며 신앙은 결코 달고 가벼워야 할 사랑의 짐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행세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웃이야 어찌되든 자기 욕심만 채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야말로 잘못된 기복신앙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남은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자유를 얻는 것이고 매일 매순간 거듭 태어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삶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하루끼니를 몽땅 거르고 지나는 분은 없습니다. 혹 그렇게 한다면 몸의 기운이 떨어져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신앙의 영양을 섭취하는 기도와 미사를 소홀히 한다면 신앙의 맛을 느낄 수 없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밥맛이 없어도 기운을 차리려면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듯이 기도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야말로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를 하여야 그 무미건조함을 극복할 수 있고 더 큰 은총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느님이시면서도 철저히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의 틈에 끼여서 세례를 받으셨고, 그것은 누구나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물로 씻는다, 물에 잠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에 잠긴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욕망에 죽는 것입니다. 포기와 버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이미 죽음입니다.

 

그러나 물에 잠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잠겼다가 씻고 다시 나옵니다. 물은 생명을 상징하고 다시 나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나의 과거를 깨끗이 정화해 주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새 삶을 시작하게 해 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것입니다.’ 따라서 매일 매일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삶을 살아서 세례의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날은 육신적으로 태어난 날 보다 더 은혜로운 날입니다. 하늘에 나의 이름이 기록된 날이요, 내 인생을 천상의 삶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징으로 새 이름,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상의 이름을 자주 불러 주어야 하고 새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쓰리고를 아십니까?

1. 불러주고(세례명)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 거기 서 있을께요. ‘당신은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확인 시켜 주는 것입니다. 세례명을 불러주십시오.

2. 보아주고, 불렀으면 그 사람을 봐줘야! 얼굴을 보면, 눈을 마주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요. 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3. 잡아주고,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등을 토닥여 주고, 손을 잡아주고 위로 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쓰리고”하니까 놀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육적인 것 에만 마음을 씁니다. 술 좋아 하는 사람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모이겠어요? 노름 좋아하고 화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유유상종입니다. 우리는 세상 것의 매력을 극복해야 할 소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도와 미사참례를 즐겨하고 전교를 기뻐하며 성경공부를 그리워하는 그룹이 되어야 합니다.

 

‘쓰레기통’의 동의어는 ‘성직자’랍니다.

‘정철’이라는 분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쓰레기통 같은 사람.

남들이 인상 찌푸리는 것을 껴안는다. 아무 불평 없이.

가운데 자리 마다하고 구석으로 간다. 아무 불만 없이.

화려한 것, 화려한 곳만 찾는 성직자가 있다면

그는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요?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어느새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이러저러한 환경이나 여건을 탓하거나 핑계 대는 일 없이 근본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으신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3,22) 이 말씀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너는 나의 귀염둥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사랑이다 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결코 예수님께만 국한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날 때 듣게 된 음성입니다.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그런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이 우리를 들어 높여 주시고 사랑해 주시며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의 모범을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사는 법을 철저히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거듭나야 합니다. 지속적인 회개생활 안에 하느님의 자녀로서 주님 안에 항상 거듭나야 합니다. 세례로 말미암아 얻은 은총을 새롭게 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고백했습니다. “마귀와 마귀의 모든 행실과 마귀의 모든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끊어버립니다.”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습니까?”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동정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습니까?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받기 이전의 삶과 이 후의 삶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정초를 맞이해서 해맞이를 간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해가 복을 주나요? 해를 주신 하느님이 복의 주체이십니다. ‘점집’에 드나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주팔자를 보러 소위 ‘용하다는 집’을 찾는답니다. 용하다는 사람이 왜 자기의 앞은 못보고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천지’에 기웃거리는 사람, 이미 발을 담그고 다른 사람을 한 번 와보라고 유혹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는 한입으로 두말 하는 사람이요,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고, 천상 것에 마음을 두는 기쁨을 회복하시길 기도합니다. 바닷물이 썩지 않고 늘 푸른 생명력으로 살아있는 것은 그 안에 3%의 소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든 소금역할을 하는 3%의 사람이 있다면 그 곳은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맑고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티토서의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 구세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인자와 사랑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올바른 일을 했다고 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이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서 다시 나게 하시고 새롭게 해 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티도3,4-5).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주님 세례축일 / 연중 제2주일

 


2022년 1월 9일 [주님 세례 축일]

 

세례(洗禮)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 그리스도로 다시 살아나는 것.

 

복음(루카3,15-16.21-22)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백성이 기대(期待)했던 메시아는 다윗 시절의 풍요(豊饒)를 누리게 해줄곧 로마의 압제(壓制)에서 해방시켜 이 땅에서 잘 먹고잘 살게해 줄 정치적(政治的메시아다.

우리 역시 내 소원(所願)을 들어줄 예수님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으로 이 땅(어둠)에서 우리를 구()해 내시기 위해 죽으러 오신 그 사랑의 능력자(能力者)’ 주님이시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물세례()의 고백(告白), 회개(悔改)를 위한 세례(洗禮).(마태3,6-) 곧 하늘()로 살아나기 위한 땅(어둠)의 것을 부인(否認)하는 버림그 죽음의 세례다.

성령(聖靈)세례그리스도를 입기 위한곧 그분과 한 몸이 되는 세례다(갈라3,27) 다른 말로 땅의 물()에 빠져 죽는 물(진리)세례로 다시 살 나는 것이 성령(聖靈)세례(洗禮).

 

(1베드3,20)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까지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방주(方舟)는 배(), 교회(敎會)물은 생명수인 말씀이다.(요한4,14)

 

(1베드3,21)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그러니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풍랑이 이는 시련과 고통의 바다곧 이 땅(세상)의 어둠의 물에서 방주(교회안에 물(말씀)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그 하느님의 뜻인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더러운 우리의 양심까지 깨끗하게 하신 그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계약약속인 그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이다바른 양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로 더러운 양심(良心)이 깨끗해진 그 바른 양심을 지키기 위해 성령(聖靈)께 의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우리 힘으로는 지킬 수 없다성령세례로 오신 그 성령께 맡겨야그분의 힘(인도)을 받아야 한다하느님께서 그 성령을 우리의 보호자(保護者)로 보내주신 것은 성령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다.(1코린2,10)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하늘이 열리며

예수님의 세례(洗禮), 기도(祈禱)로 하늘이 얼린다우리의 기도로 열리는 하늘이 아니라는 것이다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祈禱)할 때하늘이 열린다그런데 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물세례를 받으셨을까그것은 죄인인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이다그래서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고 하신 것이다.

 

(로마6,3-5)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골로2,12)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성령께서 왜 비둘기 형체(形體)로 오셨을까죽어있는 세상에 새 희망(希望), 새 생명(生命)의 소식(消息)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창세8,7.10-11) 홍수가 그친 뒤 노아는 배에서- 7 까마귀를 내보냈다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 ‘싱싱한 올리브 잎’- ‘싱싱한 올리브는 하느님을 뜻하며 그 잎은 죽음에서 다시 살려새 생명을 주시는 살아계신 말씀(씨앗)이다.(이사6,10-13 마르14장 참조곧 죽음에서 살리시고 새 생명을 주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성령께서 구원의 기쁜소식진리로 깨닫고 믿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 성령의 이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그분과 하나한 몸이 되었을 때하느님께서 예수께 하신 말씀이 된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보호자이신 진리의 성령님!

땅의 복()을 받으려고 세례를 받았습니다그러나 이제 하늘의 복(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죽이신 큰 능력의 사랑을 받았음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그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주님 세례축일 / 연중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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