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일] 마음에서 넘치는 것 (루카6,39-45)

2022. 2. 27. 오후 3: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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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7일 주일

[연중 제8주일] 마음에서 넘치는 것 (루카6,39-45)

  

 

제1독서<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집회27,4-7)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5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6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92(91),2-3.13-14.15-16(◎ 2ㄱ 참조)

◎ 주님당신을 찬미하오니 좋기도 하옵니다.

○ 주님을 찬미하오니 좋기도 하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여,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아침에는 당신 자애를, 밤에는 당신 진실을 알리나이다. ◎

○ 의인은 야자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자라나리라. 주님의 집에 심겨, 우리 하느님의 앞뜰에서 우거지리라. ◎

○ 의인은 늙어서도 열매 맺고, 물이 올라 싱싱하리라. 불의가 없는 나의 반석, 주님이 올곧으심을 널리 알리리라. ◎

 

제2독서<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1코린15,54-58)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복음<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6,39-45)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연중 제8주일다해: 언행의 중요성

 

지난 주일에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그로 하여금 하느님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문화를 이룩해 나가는 것에 대해 들었다이제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우리가 사용하는 언행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자신을 열어 보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나누는 도구 중 하나가 언어라고 할 수 있다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한 마디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슬픔과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1독서집회 27,5-8: 열매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1독서에서 말이 인격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말은 내면적 인간의 외적 표현이다말은 사람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한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나 말씨야말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재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다하느님의 속뜻을 드러내신 것이 말씀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그 말씀은 창조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다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니 우리가 하는 말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즉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늘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독서: 1코린 15,54-58: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하라

사도 바오로께서는 부활의 희망이 주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 때문에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을 하라고 하신다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은 헛되지 않다고 하신다(58).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닮고 또 잘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행하지 않고 사탄의 말에 그 마음을 빼앗긴 결과 죄를 짓게 되었다잘못된 말과 거짓된 말을 받아들여 표현한 것이 죄가 되었고 죽게 되었다우리 마음의 창고가 악으로 가득 차 있어 거기에서 거짓된 말이나잘못된 말을 꺼내게 되면 그것은 죽음에로 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참된 좋은 말을 꺼내면 우리를 또 다른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사탄과 거짓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 주셨다이 거짓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우리의 마음에서 좋은 것을 꺼낼 수 있을 때그리고 그 말씀을 행할 때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다그러기에 주님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고 사도 바오로께서는 말씀하신다이제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이라는 창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재고조사를 해보자재고조사를 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더럽힐 수 있는 악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좋은 것들을 잘 정리하여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좋은 것을 꺼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정리해 보자항상 좋은 열매를 꺼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마음의 정리를 통하여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 있을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나는 지금 내 마음의 창고에서 무엇을 꺼낼 수 있을까?

 

복음루카 6,39-45: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온다.

오늘 복음은 평지설교의 결론 부분이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스승을 따라 행동하라고 가르치신다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며 올바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쳐주는 것도 힘들다그러기에 먼저 자신의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신다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되며자신이 스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자신은 큰 잘못을 범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남이 범하는 조그만 잘못도 참아주지 못하고 드러내려는 위선적인 면을 없애라고 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 8,7)고 하시지 않았는가그렇지 않으면 위선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비유도 마찬가지이다집에서 잘 기른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절대로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반대로 나쁜 나무는 즉 손질을 받지 못한 나무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열매를 맺는다(43). 나무가 어떤 지는 그 나무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가시나무에서 아주 맛있는 무화과를 거둘 수 없고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둘 수 없다(44). 이것은 우리가 판관 9,1-21에서 왕으로 선출된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은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70명을 죽이고 왕이 되었을 때에 왕의 선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거기서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 그리고 포도나무의 선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이 나무들은 자기의 소임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겠다고 하였다. “내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이 훌륭한 과일을 내지 않고이 술을 내지 않고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8-13)하고 왕의 자리를 사양했으나가시나무는 수락하여 왕이 되었고 그 가시나무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결국 아비멜렉을 선출하여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은 멸망하였다는 기사가 있다(참조판관 9.22-57).

 

이제 이 비유는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다어떤 사람이 착하다면 좋은 나무와 같이 자기 마음의 좋은 보물창고에서 선을 내어놓을 것이다반대로 악한 사람은 그의 마음의 악한 창고에서 오직 악만 흘러나올 것이다(45참조마태 12,34-35). 사실 인격을 나타내는 마음은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통하여 말하게 되는 것이며선이나 악을 말한다면 그것은 각자 안에 담겨져 있는 창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입은 인격의 도구이며행위에 있어서 전 인격을 가리킨다이것은 긍정적일 수 있거나 파괴적일 수 있다(45). 그러므로 좋은 나뭇가지에 시간에 맞추어 붙어있으면서 좋은 나무를 기르는 것이다그리고 당신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에 하느님 자신이 주시는 아주 귀한 보물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있어서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정순택베드로 주교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오늘 복음 대목은 루카 복음서의 ‘평지설교’의 뒷부분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오 복음의 ‘산상수훈’과 비교해 보면,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참된 행복을 포함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긴 담화문(마태 5-7장)인데 비해, 루카 복음에서는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어’ 특별히 제자들에게 주시는 상대적으로 짧은 가르침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가르침, 이렇게 크게 세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 중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기’에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빼낼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대목을 굳이 연결해 보자면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는 오늘 예수님 말씀과 연결해서 제1독서에서는 집회서의 한 구절을 들려줍니다.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과 집회서의 말씀은 단지 입조심, 말조심하라는 입단속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마음을 닦아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종종 선과 악이 충돌하기도 하고, 이기심과 박애의 마음이 갈등을 빚기도 하고, 좋은 의지가 게으름과 용기 없음에 눌려 씨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여기에 단초를 줍니다. 선과 악이 부딪히고, 이기심과 박애로 엉켜있는 우리의 마음을 ‘선한 곳간’으로 가꾸는 작업은 단순히 ‘굳은 결심’과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어야 가능함을 말해줍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몸소 받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기에, 우리의 삶이 예수님으로 덧입혀지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할 때, 우리의 마음도 ‘선한 것을 내놓는 선한 곳간’으로 변해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2022년 02월 27일 일요일

연중 제8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잔 부스러기 같은

‘티’와 일반 성인 크기의 배에 달하는 ‘들보’가 함께 비교되는 해학의 말씀 속에서,

우리네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 엿보입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얻는 자기만족과 뿌듯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상대보다 우위에 서서 그의 단점을 고쳐 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합니다.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말들을 얼마나 자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은 그 비판적인 시선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남을 지적할 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로 먼저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저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큰 묵상 거리로 다가옵니다.

신학생들을 지도하며 ‘진실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형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등

다양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잘못이나 단점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지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나 잣대가 나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럽게도 저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누군가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본’(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상대방의 눈 속에 박힌 티를 빼내 주겠다고 신나게 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다,

자기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내려는 노력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는 것이 훨씬 감동적입니다.

회개는 그렇게 쌍방에서 함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생명의 말씀

 

내 눈의 들보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오늘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이어 나오는 구절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심판합니다.

상대의 작은 허물과 미성숙함을 들추어내며 그의 단점을 짚어냅니다.

그러면서 상대방보다 내가 더 잘났다는 우월감에 우쭐함을 느끼며 만족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스스로를 판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런 상황을 남의 눈에서 티끌을 빼 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눈에 들보가 들어 있음을 깨닫지 못한 어떤 사람에 대한 비유로 표현하십니다.

사실 눈은 우리 신체 기관에서 매우 예민한 곳 중 하나입니다. 미세한 혈관과 신경이 모여 이루어져 있고, 작은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금방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에 비해 들보는 티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부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들보는 보통 집을 지을 때,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며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들보가 작은 눈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그만큼 자신의 눈 속에 거대한 들보가 들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성찰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눈에 작은 티끌만 들어 있어도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는데, 하물며 들보가 들어 있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내생각과 주장이 얼마나 완고해진 상황이라는 말 일 런지요.

그래서 우리가 완고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내 눈의 들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들보를 가지고 살면서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스스로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들보를 빼내야 앞이 밝아져 다른 형제의 티도 빼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상황을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합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니면 손해나는 일인지에 따라 분간하지요. 다른 어떤 사람은 내가 사람들 앞에 멋있게 드러나는지 그렇지 않은 지만 바라보기도합니다.

앞의 상황은 돈의 들보, 뒤의 상황은 자아라는 들보가 들어 있기에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눈에 들어 있는 들보를 바라보게 해줍니다. 미처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완고해진 내 눈의 들보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들보를 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말씀’이 우리 스스로를 깨닫게 해 줄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거울이 되어 우리 스스로 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도 말씀을 자주 읽고 접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 눈의 들보를 인식하고 용감하게 빼내어, 새로운 시선을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보도주간

 

 

 2022년 2월 27일 [연중 제8주일]

미사는 제사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대속그 새 계약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로 영광을 드리는 기쁨의 잔치다.

 

 

복음(루카6,39-45)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무엇에 대한 비유(比喩)를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앞 38절로 가보자.

 

38 “주어라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율법(律法), 그 옛 계약으로 주면 심판(審判)으로 죄()를 되받을 것이고그리스도의 대속그 새 계약으로 주면 죄의 용서자유(), 기룩으로 되받는다라고 공부했다그 말씀의 비유로 그리스도의 대속그 새 계약을 모르는 눈먼 인도자(引導者), 곧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그 율법자들을 따라가면 둘 다 구렁(지옥)에 빠진다는 말씀이다.

 

2독서(1코린15,56)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계명)로 받아 말하면 죄()만 남는다.

 

1독서(집회27,4.7)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제자는 스승의 뜻정신을 살며그 스승의 뜻정신을 드러내야한다는 말씀이다곧 예수님은 하늘 왕좌(王座)의 자리를 버리신 그 희생(犧牲)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대속(代贖)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제자인 우리들은 그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의 길이 내 죄의 용서(容恕), 곧 구원의 승리진리임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 없어졌음을 믿는 것그래서 죄와 세상 욕망의 자신을 버리고예수님을 머리로 그분의 지체가 되어 따르는 것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예수님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고 박해했기에 제자인 우리 또한 박해(迫害)를 받는다그 박해를 사는 것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요한15,19)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하고 거룩한 피로 내 모든 죄()가 씻겨내가 깨끗하고 거룩해 졌음을 믿는 것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가만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늘 율법(律法)자들에게 위선자(僞善者)라고 하셨다죄인(罪人)들에게 위선자(僞善者)라고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다율법은 죄를 알게 할 뿐생명구원을 주지 못하는데율법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그들의 행위(行爲)와 말을 위선(僞善)이라 하신 것이다곧 율법의 눈으로는 티흠으로는 절대로 없앨 수 없다는 말씀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반드시 맺는다곧 하늘의 용서자유구원을 주는 십자나무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죽음심판을 주는 율법의 나무다.

오늘 독서(牘書)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의 열매인 죽음죄를 삼켜 버리신 그 승리로 죽을 우리에게 하늘의 용서자유구원을 주셨음을 말한다사실 율법은 좋은 것이지만 인간을 그 모든 것을 다 지켜낼 수가 없기에 죽음의 독침(毒針)인 죄()가 된 것이다. (야고2,8-10 참조)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악()하다고 하셨다.(창세8,21 마르7,20-23 로마3,9-18) ()한 것을 담아 선한 마음이 되어 선한 것을 내놓는 것이다곧 하느님의 말씀을 대속(代贖), 그 진리(眞理)로 담으면 하늘의 용서자유생명을 주는 말이 나오지만율법(律法)을 담으면 죽음의 독침인 죄를 주는 말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중에 생선을 쌌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향수(香水)를 쌌던 종이에서는 향()이 난다고,....

 

2독서(1코린15,53-54-58) 53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

썩고죽을 우리가 썩지 않는죽지 않는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반드시 입어야 한다는 말이다.(로마6,9)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죽음아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우리의 죽음죄를 삼키신 그 주님의 승리(勝利)를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는 율법의 의로움에 흔들리지 말고하느님의 칭찬영광을 받는 그리스도의 대속그 새 계약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주님의 일이다그리고 그 진리를 이웃에게 전해 하늘의 용서생명구원을 받게 하는 것주님의 일이다.

하나 더,-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성경(聖經)책의 말씀을 듣는데 얼마나그리고 그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얼마나 쓰는가? ()을 위해곧 육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데그리고 미리 건강 검진하는데교양 지식을 위한 여러 책()들을 읽는데그리고 TV를 보는 등그 육신(肉身)을 위한 시간을 더 쓰지 않는가전부 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 맞다그러나 영()의 건강검진을 위해곧 구원을 위해 성경을 얼마나 보는가 말이다.

()을 위한 시간을 더 하래한다면 그의 영()은 분명 허약(虛弱)해저 병()들었음이다세상의 것을 담아 만족(滿足)한다면 하느님의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루가2,6-7)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구원의 새 계약을 깨달았다는 것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마리아(쓴물)- 세상에 머무르는 우리의 모형(模型)이다율법(律法), 그 옛 계약의 자기열심()로 만족(滿足)해 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요한8,37)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내 말(새 계약)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묵시12,7-8) 7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발붙일자리가 *없었습니다.

(), 율법을 선악의 법으로 행하게 한 뱀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구원을 위해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말씀을 충만히 담게 하소서말씀 안에 머무르며 진리자유를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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