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5월 22일 일요일
[부활 제6주일]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요한14,23ㄴ-29)

제1독서<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기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15,1-2.22-29)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22 그때에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화답송시편 67(66),2-3.5.6과 8(◎ 4 참조)
◎ 하느님,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
○ 당신이 민족들을 올바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
○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
제2독서<천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묵시21,10-14.22-23)
10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14,23ㄴ-29)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부활 제6주일(생명주일)제1독서(사도15,1-2.22-29)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8-29)
'성령과 우리는 ~ 결정하였습니다'
'결정하였습니다'로 번역된 '에독센'(edoksen)은 사도행전 15장 22절과 25절에도 그대로 나오는 단어이다. 이것은 '좋게 여겼다'(it seemed good to the holy spirit and to us~)는 기본적인 뜻과 더불어 '결정했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이방인에게 할례가 불필요하다는 결정은 사도들과 원로들뿐만 아니라 성령까지도 뜻을 함께한다는 사실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
특히 여기서 '성령'을 언급하는 것은 이 결정이 단순히 인간의 뜻이 아니라 성령 하느님의 인도로 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지혜의 영이신 제3위 성령 하느님까지도 이방인에게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할례를 요구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뜻을 나타냄으로써 사도들과 원로들이 그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이 어떻게 성령의 뜻을 알았을까 하는 것은 사도행전 15장 6-21절까지 기록된 회의 진행 과정에서 성령께서 나타나 그 뜻을 밝혔다는 진술은 보이지 않지만, 사도행전 저자가 기록하지 않았을 뿐, 사도들과 원로들은 성령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느님께 진지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몇 가지 필수 사항'으로 번역된 '에파낭케스'(epanangkes)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 밖에 쓰이지 않는 단어로 '부득이','불가피한' 등의 의미이다. 이것은 이방인이 지켜야 할 네 가지 기본적인 금기 사항(20절)을 불가피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쓰여진 단어이다.
이것은 이방인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유다인 출신 신자들과의 거리낌 없는 친교와 이방인들 주변에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 교포와 같은 의미로 흩어져 있는 유다인 공동체)를 복음으로 이끌어들이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치였다.
그리고 네 가지 기본적인 금기 사항(20절)은 5월 2일 독서의 말씀에서 이미 설명하였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네 가지 필수 금기 사항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짐'으로 번역된 '바로스'(baros)는 원래 '무게'(weight)를 의미하는 단어였는데, '무거운 것' 즉 '짐'(burden) 또는 무거움 때문에 느끼는 '고통'(suffering)이라는 단어로 발전하였다.
우상의 제물, 피,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심적 부담과 고통이 되지 않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할례를 행하고 모세 율법 전체를 지켜야만 하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요, 고통이라는 사실이 본문에 잘 드러나고 있다.
복음의 진수를 바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구원을 조건으로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과 심적 부담을 주지 않으나 하느님 은총의 복음의 진수와 그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편견과 독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구원을 조건으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큰 부담과 고통을 안겨 주게 되는 것이다.
바오로는 갈라디아 신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가르쳐 주었지만(갈라5,1-4), 콜로새 교회에 이단을 퍼뜨렸던 어떤 자들은 사람이 감당치도 못할 금기 사항을 주장해 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것(콜로2,21)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삼간다'는 것은 이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로 번역된 '유 프락세테'(yu praksete)에서 '프락세테'는 '행하다'(do)는 의미를 지닌 '프랏소'(prasso)의 미래 능동형으로서 '행할 것이다'라는 의미이고, '유'(yu)는 '잘'(well)이라는 의미이다.
즉 '잘 행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것은 곧 제반 신앙 생활을 잘 수행하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어나갈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예수님 믿기 전에 행해 오던 악습을 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2022년 05월 22일 일요일
[부활 제6주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그분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산다면,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와서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상의 존재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께서
이 지상에 현존하시는 하나의 장소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
그런데 오늘 제2독서인 요한 묵시록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로운 도성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에서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분의 어린양께서 친히 그 도성의 성전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복음과 연결시켜 본다면,
참된 성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의 온 존재를 또 하나의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시키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지만 무한한 영광을 그 안에 담아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런 존재가 되는 유일한 전제는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유일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17).
그러므로 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성전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 곧 하느님의 나라가 됩니다.
이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손이 아니라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6주일 복음 (요한14,23-29)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6)
요한 복음 14장 26절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의 역할을 명백히 보여 주시는 중요한 말씀이다.
첫째로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에 해당하는 '판타'(panta; all things)을 가르치실 것이다.
'가르치시고'에 해당하는 '디닥세이'(didaksei; will teach)는 '디다스코'(didasko)의 미래 시제로서, 미래에 성령께서 계속해서 믿는 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실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가르치는 교사로 믿는 이들과 함께 하실 것임을 말씀해 주신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진리의 영이시므로, 우리를 언제든지 하느님의 완전한 뜻 가운데로 인도하실 수 있다(1코린2,10).
성령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그 인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많이 내게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갈라5,22,23).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령의 감화나 감동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그분께서 우리를 일깨워 알게 하시는 것은 물론, 주의와 경고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1테살5,19).
둘째로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계속 기억시키신다.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에 해당되는 '휘폼네세이'(hypomnesei; will remind)는 '휘포밈네스코'(hypomimnesko)의 미래 시제로서 '계속해서 회상시키실 것이다', '계속해서 깨우치실 것이다'라는 뜻을 전달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 이 땅에 남아 있어 구원의 길을 보여줄 것이며,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일이 바로 성령의 활동임을 보여 준다.
요한 복음사가가 여기서 특히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실 당시는 자신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지만, 성령 강림 이후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밝히 깨달았음을 기억하여, 초대 교회 신도들도 성령의 역사(役事)에 힘입어 말씀의 의미를 밝히 알게 된다는 것을 권고하기 위해서이다.
<성령의 역할을 본받고 살아야>
홍승모 신부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에게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시는 당부와 약속 말씀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부탁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실천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사랑과 실천은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 떨어질 수 없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본 뼈대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는 이 결속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성령 파견에 관한 약속입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 14,26)
세 번째는 주님께서 우리 인생 여정에 늘 함께 한다는 약속의 징표로 평화를 주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27)
우리의 문제는 주님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역량으로 모든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내적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한 주님의 현존은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평화는 매일 일상생활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알아보는 징표입니다. 우리는 성체성사 신비에서 내면 평화를 체험합니다.
이 내적 평화는 매일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미워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체험하도록 이끕니다.
주님은 우리 내면에 평화를 불어 넣으시고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모든 공동체는 주님 평화와 현존을 체험하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 안에서 살아가도록 사명을 부여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가리키는 '파라클리토'는 보호자, 위로자, 협조자라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은 인생에서 하느님의 올바른 길을 찾고 선택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위로하며 조언하는 역할을 하기에 그렇습니다.
성령은 신앙 때문에 겪어야 할 어려움과 번민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지탱하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끊이지 않는 성령 사랑의 불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은총에 안주해 그것만을 자신의 위안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부끄러운 평화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외면한 채, 일시적 안정만 바라는 피상적 치료 구실밖에 못합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실천을 동시에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을 '파라클리토'라고 부르는 데는 단지 성령의 역할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우리가 본받고 살아야 한다는 사명이 내포돼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듯이, 우리는 또 다른 보호자(요한 14,16)가 돼 아픔과 상처, 수치와 분노, 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형제들에게 진정한 내면 평화를 주는 '파라클리토'의 사랑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2코린 1,3-4)
이런 사랑의 역할은 우리의 능동적인 선한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작은 노력을 갖고 사랑을 부어 줄 대상이 어디 있는지 시선을 자신에게서 형제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평화를 구하는 기도'에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한 이유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2022년 05월 22일 [부활 제6주일]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제1독서(사도15,28-29)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초대교회는 아직 어렸기에 이같은 결정을 했었다. ~공부해보자~
(사도10,11-15) 11 이어서 하늘이 열리고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12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13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4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5 그러자 베드로에게 다시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 구약에서 부정하니 먹지 말라하셨던 짐승들이다. (레위20,25) 그것은 인간의 부정(不淨)함, 죄를 모형(模型)함이었다.
(1코린8,1-9) 1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지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압니다. 그러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만 ─
= 인간들이 자신의 뜻, 소원을 위해 만들어낸 신(神)들이다. 그래서 십계명(十誡命)으 첫계명으로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출애20,2-3)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7 그렇지만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8 음식이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다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먹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9 다만 여러분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티모4,1-4) 1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이들은 사람을 속이는 영들과 마귀들의 가르침에 정신이 팔려 믿음을 저버릴 것입니다. 2 양심이 마비된 거짓말쟁이들의 위선 때문입니다. 3 그들은 혼인을 금지하고, 또 믿어서 진리를 알게 된 이들이 감사히 받아 먹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음식들을 끊으라고 요구합니다. 4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다 좋은 것으로, 감사히 받기만 하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히브13,8-9)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9 갖가지 이상한 가르침에 끌려가지 마십시오. 음식에 관한 규정이 아니라 은총으로 마음을 굳세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규정에 따라 살아간 이들은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 ‘사람의 관습(慣習), 규정(規定)과 교리(敎理)의 신앙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의(義), 은혜(恩惠)를 선물로 받는 구원이다.
(로마3,25-27)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새 계약)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 죄(罪)가 있어야, 곧 죄를 알아야 용서(容恕)받아 의롭게 된다. 예수님께서 내 죄의 속죄(贖罪)제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알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님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 은총에 감사로 영광 드리는 것, 그것이 신앙의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죄까지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 곧 하느님의 율법(律法), 계명(誡命)으로 내 모든 죄가 드러났고, 그리스도께서 그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가 ‘거저 하늘의 의로운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7,9-13) 9 전에는 내가 율법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10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이끌어야 하는 계명이 나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1 죄가 계명을 빌미로 나를 속이고 또 그것으로 나를 죽인 것입니다. 12 그러나 율법은 거룩합니다.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13 그렇다면 그 선한 것이 나에게는 죽음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그 선한 것을 통하여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죄가 죄로 드러나게, 죄가 계명을 통하여 철저히 죄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골로2,14-17)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죄)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5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16 그러므로 먹거나 마시는 일로, 또는 축제나 초하룻날이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그런 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 십자가(十字架)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예”가 되기 때문이다. 대속으로 ‘다 이루어졌다’ 하셨지 않은가.
(2코린1,19-20)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20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 합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예, 아멘“을 믿는 것, 그것이 올바로 사는, 올바른 신앙이다. 성령께서 함께 해주셔야 ‘깨닫고, 믿고, 기억 할 수 있음’이다.
복음(요한14,25-26)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아멘)
☨은총의 보호자 천주 성령님!
오늘도 함께 하시며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 “예, 아멘”이 되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