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나를 따라라.” (루가9,51-62)

2022. 6. 25. 오후 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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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일 일요일


[연중 제13주일] 나를 따라라.” (루가9,51-62)

   


1독서<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섰다.>(1열왕19,16.19-21)

야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19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화답송시편 16(15),1-25.7-8.9-10.11(5참조)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저를 타이르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2독서<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갈라5,1.13-18)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가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 (1열왕19,16ㄴ.19-21)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19)


아합의 처 이제벨을 피하여 무기력하게 숨어 있던 엘리야를 찾아오신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세 가지 사명을 부여해 주신다(1열왕19,9-18 ;19,15-16). 그리고 오늘 독서 열왕기 상권 19장 19-21절에서는 엘리야가 세 가지 사명 가운데 엘리사를 제자로 부르는 일을 수행한 사실을 보도한다.

 

엘리야는 하느님께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즉시 호렙산을 떠나 엘리사를 만나러 갔다. 열왕기 상권 17장 19절에 나오는 "엘리야는 ~ 떠나" 에 해당하는 '와이예레크'(waiellek) '만났다'에 해당하는 '와이므차'(waimtsa)에 모두 행동이 즉시 이어짐을 보여주는 '와우'(wau) 계속법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엘리야는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새로이 사명을 부여받은 후, 다시 이전과 같이 하느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한편 엘리야가 엘리사를 찾아갔을 때 엘리사는 열두 쌍의 소를 겨리를 지워 밭을 가는 중이었다. 여기서 '겨릿소를'에 해당하는 '체마딤'(tsemadim ;yoke of oxen) 기본적으로 '두 개를 하나로 묶은 한 쌍'(이사21,7)을 의미하는 '체메르'(tsemer)의 복수형으로, 여기서는 한 멍에를 나란히 멘 한 쌍의 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열 두 겨릿소'는 곧 24마리의 소를 말한다.

그런데 당시 24마리의 소를 이끌고 밭을 갈았다는 것은 엘리사가 상당한 부잣집 자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그에게'로 번역된 '엘라이우'(ellaiu)는 '~에게', '~곁에'라는 뜻의 전치사 '엘'(el)에 3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개신교 성경은 '그의 위에'로 번역하여 마치 엘리야가 그의 겉옷을 엘리사의 몸이나 머리 위로 던진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겉옷'이 그 사람의 직무를 나타내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진 것이었다.


따라서 엘리야가 그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진 행위는 자신의 뒤를 이어 예언자 직무를 대신하고 계승하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엘리사도 엘리야의 행동에 담겨진 그런 의미를 제대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엘리사 역시 그러한 엘리야의 행동에 대하여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1열왕19,20.21절).



 

20220626일 일요일

[연중 제13주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예루살렘 상경기라 불리는 루카 복음 9511928절의 말씀은

구원이 실현되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을 다룹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험난한 여정에서 당신의 협력자를 필요로 하시고 그들을 부르시는데,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이로써 주님께서는 어느 한 곳에 편히 정착하거나 안주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온 지방을 돌아다니시며 만나는 모든 이에게

끊임없이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는 당신의 사명이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또 다른 이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하시니,

그는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륜대사인 부모의 장례마저도 허락하지 않으시며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더욱 시급하고 고귀한 가치인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당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어떤 이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하기를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독서에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에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자신을 따를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2독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된 우리는 이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의 삶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와 모든 순간에,

온 마음으로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특히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자주 성령께 간청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수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교황 주일로,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시며 전 세계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로마에서 공부할 때 교황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한 적이 있는데,

환한 웃음으로 손을 내미시며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셨던 노사제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주님과 함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온 세상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시는 교황님을 위해서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2021념 6월 27일 연중 제 13주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Thirteenth Sunday in Ordinary Time

 


생명의 말씀(2022년 6월 26(다해 연중 제1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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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개봉 영화 중에 <좋은 놈나쁜 놈이상한 놈>이 있습니다.

돈 되는 건 뭐든 노리는 현상금 사냥꾼(정우성), 최고가 아니면 참을 수 없는 마적단 두목(이병헌), 그리고 잡초 같은 생명력의 열차 털이범(송강호).

한 장의 지도를 둘러싼 세 남자의 쫓고 쫓기는 활약을 그린 영화입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오늘 복음에 제목을 붙인다면바로 기대하는 놈미루는 놈후회하는 놈 정도가 될 듯합니다그럼 영화 한 편 감상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구원 사업 완성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려 합니다그런데 이 길에서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인물은 기대하는 놈입니다.

루카복음 9장 57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라고 합니다우리는 그의 속마음을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그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대적할 것이고로마가 항복하고 철수한다면 자신도 지금쯤 예수님 편에 서야 나중에 한자리 차지할 수 있겠다 기대했을지 모릅니다그래서 어디든 따를 것이라며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당신은 집도 절도 없는 분이며제자가 되는 것 역시 현실적 보상을 기대할 수 없음을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이 첫 번째 인물은 기대하는 놈이 됩니다.

 

두 번째 인물은 바로 미루는 놈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청합니다우리는 이 말을 예수님께서 가족의 장례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야박한 모습처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예수님을 따라나서려는 마음을 차일피일 미루고 세상일이 우선인 사람의 모습을 대변합니다따르고 싶지만 핑계를 대며 망설이기에 이 두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미루는 놈이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주인공은 후회하는 놈입니다.

이 사람도 제자가 되려 하지만 그에게는 걸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마치 밭을 가는 농부가 똑바로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쟁기를 쥐고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이 사람 역시 결국 세상 걱정과 후회 속에서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기에 그의 이름은 후회하는 놈이 되고 맙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우리 안에도 놈놈의 마음이 있을까요세속적 보상만 바라는 모습차일피일 미루는 모습그리고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는 마음은 누구나 쉽게 빠지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복음의 세 주인공이 마음을 돌려 예수님 제자가 되었는지아니면 쓸쓸히 떠나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들 세 모습을 통해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며 용기 있게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 보도주간)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 복음 (루카9,51-62)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54)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걸어야 할 인생의 여정의 알고 계셨고, 그 계획을 따를 의지를 가지고 계셨다.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계속해서 당신을 시험하고 비난하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 (루카5,21.30; 6,2.7.11)에 의해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으신다는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의 계획을 따를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루카 복음9장 51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그 얼굴을 고정시켰다'가 된다.

'그는 ~그 얼굴을'에 해당하는 '아우토스 토 프로소폰'(autos to prosopon; he - his face)은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 쪽을 향하고  있는 예수님의 비장한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또한 '마음을 굳히셨다'는 의미로 번역된 '에스테리센'(esterisen;  resolutely set; stedfastly set)의 원형 '스테리조'(sterizo) 어떤 사물을 흔들리지 않도록 확고하게 고정시키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이며, 비유적으로는 마음을 변치 않도록 확고히 하는 것을 가리킨다(루카22,32).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남겨진 길을 위해, 비록 그 길이 당신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좌우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지 않았다. 오로지 당신이 가야 할 길에 꽂혀 있는 표지를 향해 얼굴을 고정시켜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당신의 걸음을 어느 누구도, 어떤 세력도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것은 십자가 이후에 당신에게 이루어질 부활과 영광스런 승천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히브12,2).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이제 유다 지방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신다.

갈릴래아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요르단강 동편으로 상당히 우회해야 하므로 적어도 며칠을 더 걸어야 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한 마을에 숙박하기 위해 제자들 중 몇을 심부름꾼으로 보내셨다.


사마리아인들은 B.C.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북부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사이에 생긴 혼혈족인데, 그들의 기원은 열왕기 하권 17장 24~41절에 나온다.

바빌론 유배 이후에 느헤미야와 즈루빠벨이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도 동참하고 싶어했지만, 종교적 순수성을 내세운 유대인들은 그들의 도움을 냉정하게 거절하여 그때부터 그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경원시하게 되었다.


유대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에서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사마리아인들은 독자적으로 주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가리짐산 위에 자기들만의 성전을 건립했다(요한4,20).

그러나 그 성전마저도 마카베오 시대때 요한 힐카누스(J. Hyrcanus)가 파괴함으로써, 유대인들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반목은 더해 갔다.


루카 복음 9장 53절에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고 나온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과 그 일행을 갈릴래아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종교 순례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던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종교적 피해 의식이 큰 사람들이었기에,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기들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갈릴래아의 유대인들을 싫어했으며 통과시키지도 않았다.

유대 역사가 유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그들은 심지어 자기 지역을 통과하기를 원하는 여행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한다.


한편, 사마리아인들의 배척은 주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옛날 능력의 예언자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1열왕18장)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해서 원수들을 멸망시킬 것을 예수님께 요청했다.


예수님께서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 주신 것(마르3,17)도  이러한 충동적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불과 얼마 전에 타볼산에서 엘리야를 본 적이 있는(루카9,28~36) 야고보와 요한은 과거 아합 시대에 바알 예언자들과 카르멜 산에서 싸우던 엘리야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말속에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즉시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예수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고자 하는 그들의 충성심이 담겨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사명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원수를 심판하는, 그것도 불로 무자비하게 태워버리는 것만이 그들을 배척하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속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마태5,43.44),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고 명백히 말씀하셨던 것이다(요한12,47).

주님께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 결여된 지나친 충성은 주님의 의도와 정반대로 행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9,57-62)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다. 곧 죄인들의 죗값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확실한 진리의 길이다,

그러나 오를 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모르고 따르겠단다. 그저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따르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라 생각한 것이다. 신앙의 목적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의 진리임을 모르는 신앙생활을 한다.

 

(1베드1,9)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모르면서 성당에 다닌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받는 용서를 모르고 그 십자가의 의로움으로 구원, 하늘의 생명을 받는 것을 모르고, 그러니 자기 열심, 자기 의로움으로 복을 얻기 위해 열심을 부린다.

 

58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 가난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그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로 구원의 진리로 믿는이가 없다는 것이다.

 

(콜로1,18)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코린6,15)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탕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신앙의 올바른 목적지부터 ‘찾으라’ 하신다. 헛된 신앙생활를 ‘버리라’ 하시는 것이다.

과녁을 벗어나다- 하마트리아-죄(罪)

 

59ㄱ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 앞절, 그 신앙의 목적지, 과녁을 벗어난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59ㄴ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 아버지의 장사(葬事)를 외면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이를 위한 신앙생활이 아닌 그 죽은 이, 곧 죄인을 살리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신앙을 살라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의 생명(진리)을 갖지 못한 사람을 어둠(죄)으로 죽었다고 한다.(갈라3,22참조) 그 죽은 이를 살리는 것이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 복음이다.

 

(마태4,23)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모두 용서로 살려 주셨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복음,

(이사53,4-5) 4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루가4,18-19.21)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61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 쟁기에 손을 댄 사람~

 

(집회38,25) 25 쟁기를 다루면서 막대기 휘두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황소를 몰면서 *자기 일에 몰두하며 송아지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겠느냐?

= 자기일,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 곧 제사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황소, 송아지는 제물) 하늘의 구원의 지혜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제사는 십자가에서 단 한번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는 자,

(창세19,17.26) 17 그들(천사)은 (화려한 삶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신앙을~ *그 헛된 죽음의 신앙을~ 그리고 *세상이 주는 편안의 삶을 돌아보면 재앙이다. 곧 하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길, 그 생명의 말씀(물) 신앙에서, 제사 그 피의 신앙으로 돌아가면 재앙이다. 그것이 물이 피로 변한 곧, 생명이 죽음이 된 이집트의 첫째 재앙이다.(탈출7,14~)

 

(갈라3,3)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생명)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죽음)으로 마칠 셈입니까?

= 그 죽음의 문화, 죽음의 신앙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돌아보면 인된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죽으셨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아멘.!!!

 






 과거의 애착을 버리고 먼저 자비와 용서를 행함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십니다.”(9,51) 예수님의 인간 구원을 향한 순례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시고, 예루살렘에서 죽으시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이 죽음의 길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에 들르려 했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냉대합니다. 죽음을 통한 생명의 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9,5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십니다(9,55). 

예수님은 역사적, 종교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었던 사마리아인들을 배척하거나 비난하시지 않고 온정을 베푸셨습니다. 오히려 적대 감정을 지니고 그들을 없애버리려 한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의 치유와 해방을 위해 죽기까지 자신 전부를 바치신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에게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9,58)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세 재물이나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님을 상기시켜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공동체의 삶을 보면 ‘장’(長) 자리에 연연하고 직무를 마치고도 ‘장’이란 호칭을 듣기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장'이 가장 많은 곳이 교회인 듯합니다. 또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권력이나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의 힘에 기대려 합니다. 허세도 없고 진실하신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먼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따르겠다(9,59)는 이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9,60) 하십니다.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따르겠다(9,61)는 이에게는“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9,62)고 하십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생명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모르는 죽음의 세계, 인간적인 인연, 자신의 과거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세속에 죽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그분 안에 살아야겠지요. 우리의 부르심은 오직 세상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조건 없이 그리고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며 철저히 주님을 따르는 삶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절대적이며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는 길입니다. 오늘도 나의 일, 현세의 가치를 추구하는 몸짓을 멈추어 하느님께 눈길을 돌리고, 과거의 애착을 끊어버리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사랑과 정의의 길을 먼저 추구하는 행복한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22년 06월 26일 [연중 제13주일]

 

그리스도 안에 나 있다.”

 

복음(루가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때가 되어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 대속(代贖)의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려 올라가신다.

 

(갈라4,4-5) 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에페1,7.10)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유대인이기에 적대(敵對)했지만 성경(聖經)이 얘기하고 싶으신 뜻은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떠나 다른 민족(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구()하며 그들과 하나가 되는 어둠의 삶을 살았기에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시려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맞아들이지 않은 것이다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신다.

 

(요한1,11)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예수님은 심판(審判)이 아니라 구원(久遠)하러 오셨기 때문이다모두가 죄인(罪人)으로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리3,18-19)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로마16,17-18) 17 형제 여러분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여러분이 배운 가르침을 거슬러 분열을 일으키고 걸림돌이 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그들을 멀리하십시오. 18 그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배를 섬기는 자들로서달콤하고 비위에 맞는 말로 순박한 이들의 마음을 속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그런 자신(自身)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自己부인(否認)이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십자가(十字架)에 죽으러 가시는 길이다온갖 질병(疾病)을 고치시고 기적(奇蹟)을 일으키셨던 그 능력(能力)의 예수님이 아닌 것이다이 사람은 어떤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인가우리는~~?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부인버림의 길이다.(마태16,324) 곧 내 머리가 잘리고 예수님의 지체(肢體)가 되는 것이다예수님께서 나의 머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그것이 구원(救援)의 완성(完成)이다예수님을 머리로 땅의 죄인(罪人)인 우리가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숨(생명)으로 살아가고 있고다시 되살아나야할 인간들이 세상이 약속한 헛된 희망(希望), 거짓된 평화(平和)에 속아 자신의 뜻욕망을 고집하는 삶으로 자신의 머리 노릇을 하고 있기에예수님께서 우리의 머리로 계실 곳기댈 곳이 없다’ 하신 것이다사람에게 아고 따르겠다는 것이니?’ 물으시는 것이다.

자기 부인버림의 열매삶이란 세상의 죄(), (), 심판이 구원의 그릇됨을(요한16,8), 또 세상의 스팩들을 신뢰(信賴)하지 않는 쓰레기일 뿐임을 인정하고(필리3,4-8), 참 구원(救援)의 진리(眞理)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옴을 뜻한다.(루가9,23)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그러나 그는 주님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죽은 이들을 위한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을 알리라’ 하시는 것이다.

 

(시편115,17) 17 주님을 찬양하는 이들은 죽은 이들도 아니요 침묵의 땅으로 내려간 이들도 아니네.

 

(마태22,32)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아브라함이사악야곱모두 하느님나라에 그리스도의 지체로 영원히 살아 있다는 말씀이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구약의 엘리야는 작별을 허락 했는데 예수님은 왜 합당하지 않다고 하실까?

 

1독서(1열왕19,19-21) 19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어린양의 가죽-창세3,21)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는 하느님을 의미한다어린양은 하느님의 분신인 외아들 그리스도숫자12는 하늘의 완전 수하늘 아들의 숫자다곧 하늘께서 제물(祭物)로 바쳐짐으로 하늘의 아들, 12이 완성될 것을 모형(模型)함이다그러니 그 아들, 12, 그리고 구원의 겉옷인 예수님 앞에서 사람의 일을 먼저 해결(解決하려는(해결해 달라는 사람은이제 하느님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59절과 62절의 사람모두 주님을 따르기 전() *먼저 사람의 일부터 해결(解決)하려했다아니다. 먼저 주님을 따라야(알아야)한다그것이 진정 가족(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을 주시고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따르라’ 하신다? ‘선택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15,16)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열매청함, - 선택된 사람만이 맺을 수 있는 기도의 열매인 것이다곧 자기 부인, ‘버림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됨이다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다성령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의 헛됨을 보고 깨닫게 하심으로다.

  


2독서(갈라5,16-18)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실패자(失敗者)라는 것이다율법(제사와 윤리)의 죄를 성령의 법이 덮으시기 때문이다.

 

(로마8,1-10)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새 계약)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의 관심사(생각)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의로움(믿음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베드1,2) 2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선택하신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룩해져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고또 그분의 피가 뿌려져 정결(거룩)하게 되었습니다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이사43,10-13) 10 주님의 말씀이다너희가 나의 증인이다너희는 내가 선택한 나의 종이다이는 너희가 깨쳐서 나를 믿고 내가 바로 그분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나 이전에 신이 만들어진 일이 없고 나 이후에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11 내가바로 내가 주님(야훼)이다나 말고는 구원해 주는 이가 없다. 12 미리 알려서 구원하고 이를 들려준 것은 나지 너희 가운데에 있는 어떤 낯선 신이 아니다주님의 말씀이다너희는 나의 증인이고 나는 하느님이다. 13 앞으로도 나는 그러하리니 내 손에 든 것을 빼내 갈 자 없으리라내가 하는 일을 누가 돌이킬 수 있겠느냐?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사랑을 알게 하소서한없이 크고 넓으신 아버지의 마음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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