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4일 주일
[연중 제27주일]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마태 21,33-43)
제1독서<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의 집안이다.>(이사5,1-7)
1 내 친구를 위하여 나는 노래하리라, 내 애인이 자기 포도밭을 두고 부른 노래를. 내 친구에게는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이 하나 있었네.
2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확도 만들었네. 그러고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네.
3 자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 다오!
4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5 이제 내가 내 포도밭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울타리를 걷어치워 뜯어 먹히게 하고 담을 허물어 짓밟히게 하리라.
6 그것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어 가지치기도 못 하고 김매기도 못 하게 하여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올라오게 하리라. 또 구름에게 명령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7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라네.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화답송 시편 80(79),9와 12.13-14.15-16.19-20(◎ 이사 5,7ㄱㄴ 참조)
◎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라네.
○ 당신이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하나를 뽑아 오시어, 민족들을 몰아내고 심으셨나이다. 그 줄기들은 바다까지, 그 햇순들은 강까지 뻗었나이다. ◎
○ 어찌하여 당신은 그 울타리를 허물어, 지나가는 사람마다 따 먹게 하셨나이까? 숲에서 나온 멧돼지가 파헤치고, 들짐승이 짓밟아 버리나이다. ◎
○ 만군의 하느님,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저희를 살려 주소서. 당신 이름을 부르오리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제2독서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필리 4,6-9)
형제 여러분, 6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7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8 끝으로,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9 그리고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복음 <주인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마태 21,33-43)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연중 제27주일 제1독서 (이사야 5,1-7)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4ㄷ)
이사야가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예언 활동을 펼쳤는데, 첫째 시기가 요탐의 치세(기원전 740~735) 동안이다.
요탐의 치세 때에 남부 유다는 풍요로움과 가난을 동시에 겪었다. 그만큼 사회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대목이 이사야서 2~5장이다.
제1이사야(1~39장)중 첫째 예언(2~12장)은 남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징벌하시기 위해 여러 민족을 끌어들이신다. 그러나 징벌의 도구로 선정한 민족들이 이 사실을 잊고 만용을 부리자, 하느님께서 그들도 응징하신다.
징벌을 받은 이스라엘에는 남은 자들 소수가 하느님께 충성을 보일텐데, 이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이 모든 위업, 곧 이스라엘의 징벌과 이민족들의 심판과 남은 자들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메시아 왕국이라는 종말론적 희망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독서는 죄지은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 위해 잘못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주님의 포도밭에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들포도가 맺었다는 비유로서 하느님께서 그토록 사랑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빗나간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지적한다.
"자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 다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5,3~4)
이사야서 5장 4절(ㄷ)의 말씀은 이미 5장 2절에도 나온 바 있다.
이 구절은 포도 확(술틀)을 만들면서 주인이 내심 바라고 있는 자연스런 희망을 말해준다.
'좋은 포도'에 해당하는 '아나빔'(anabim)은 '예나브'(yenab)의 복수형으로서 잘 익은 포도 열매를 의미한다.
이사야서 5장 2절에서 '좋은 포도 나무'에 해당하는 단어는 단수형이고, '좋은 포도'에 해당하는 단어는 복수형으로 나오는데, 전자는 이스라엘 집안 그 자체를 가리키며, 후자는 그들이 삶을 통해 맺는 갖가지 아름다운 삶의 열매들을 가리킨다.
이사야서 5장 7절에서 이것은 공정과 정의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주님께 이스라엘 집안은 '좋은 포도나무'로서 그 자체로 기쁨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 익은 열매, 즉 그가 바라시는 착한 행실들로 열매를 맺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이사야서 5장 4절(ㄷ)에서 '바랐는데'에 해당하는 '와에카우'(waeqau)의 원형 '카와'(qawa)는 바라보면서 참을성있게 기다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동사이다(욥기6,19;7,2).
특히 이사야서 5장 2절과 4절(ㄷ)에서는 강조형으로 사용되어 오랜 세월을 두고 당신께서 몸소 선택하신 이스라엘 집안이 선한 삶의 열매를 맺기를 희망하고 또 고대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사야서 5장 4절(ㄷ)의 후반부는 '좋은 포도나무'인 이스라엘 집안이 실제로 맺은 삶의 열매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들포도'에 해당하는 '뻬우쉼'(beushim; wild grapes)은 겉모양으로는 포도 열매 같지만, 실제로는 크기가 작고 딱딱한 야생 포도로서 쓰고 신 맛이 나며, 심지어 이들 중에 어떤 것은 약하지만 독을 품고 있는 해로운 것이다.
이러한 열매는 그냥 먹을 수 없음은 물론, 포도초나 포도주도 만들 수 없는 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사야서 5장 7절에서 이것은 피흘림(포학)과 울부짖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집안이 주님 대전에서 맺은 삶의 열매는 주님께 전혀 기쁨을 드리지 못했으며, 오히려 땅만 버리는 무익하고 악한 것들 뿐이었다.
이러한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이사야서 1장 2절에서 4장 1절까지 이미 구체적으로 묘사되엇다.
이러한 삶의 열매들은 남부 유다의 전반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만, 주로 지도층 인사들, 상류층 인사들이 저지르는 죄악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사야서 5장 4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님께서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라면서 오래 기다리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뭔가 이루어질 일을 참을성있게 고대하면서 희망하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인 '카와'(qawa)를 사용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얼마나 큰 기대감을 가지고 오랜 세월에 걸쳐 그들이 공정과 정의를 맺기를 기다리셨는지를 나타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단어가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러한 기다림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즉 주님의 인내가 이제 끝났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분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속성을 지니신 주님의 인내가 끝났다는 것은 그 인내의 대상이 이제 심판만이 남아 있다는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사야서 5장 5절과 6절에서 이러한 심판에 대한 선언이 시작되고 있다.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 포도밭에 심어주신 좋은 포도 나무였는데, 아직도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좋은 나무인가?
나의 포도 나무에 달린 열매는 질좋은 포도인가, 쓸데없고 악표양인 들포도인가?
연중 제27주일 복음(마태21,33~4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자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35~39)
'소작인들'로 번역된 '게오르고이'(georgoi; tenants; husbandmen)는 '게오르고스'(georgos)의 복수 주격으로서, 농토를 일정 기간 차용하여 일정한 비율의 세를 내고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을 가리킨다.
여기 포도원의 소작인들은 이처럼 주인과 계약을 마친 일꾼으로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 혹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마르12,12; 루카20,19).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는 이 소작인들이 행한 악행이 세 가지로 묘사된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된 동사들이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핍박받은 종들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언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매질하고'로 번역된 '에데이란'(edeiran; beat)은 '데로'(dero)의 부정 과거형인데, 구약 성경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희생 제물의 가죽을 벗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레위1,6; 2역대 29,34; 35,11).
말하자면, '데로'(dero)는 맞지 않아도 될 매를 맞는 희생적 고난의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이다.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서도 종들이 소작인들에게 맞는 것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동물들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는 것과 같은 희생을 말한다.
그리고 '죽이고'로 번역된 '아페크테이난'(apekteinan; killed)는 '아포크테이노'(apokteino)의 부정 과거형이다.
'아포크테이노'(apokteino)는 '죽이다'는 의미의 동사 '크테이노'(kteino) 앞에 강조하기 위해 '아포'(apo)라는 전치사가 결합되어 처절한 죽음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겪게 될 순교적 죽음을 의미한다.
또한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로 번역된 '엘리토볼레산'(elithobolesan; stoned)은 '리토볼레오'(lithoboleo)의 부정과거형으로서 '돌을 사람이나 짐승에게 던지다'는 뜻이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는 의로운 박해를 받는 예언자나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루카23,37; 사도7,58.59).
여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들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을 사악한 방법으로 계속 박해하는 것으로 묘사된 소작인들은 바로 그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제 마태오 복음 21장 36절에는 주인이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내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팔린'(palin; again)은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음을 가리킨다.
주인의 종들을 잔인하게 죽은 소작인들을 즉각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자비로운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더 주고 있다.
'많은'으로 번역된 '플레이오나스'(pleionas; more than)는 '플레이온'(pleion)의 형용사 비교급으로서, 보다 많은 수의 종들이 파견되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주인으로 비유되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비유되고 있는 소작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인내하시면서, 그들이 뉘우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또 한번의 기회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큰 사랑을 가지고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러나 완고하고 사악한 소작인들은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주인의 사랑과 인내를 저버리고, 처음처럼 주인이 보낸 종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아들은 존중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주인의 아들을 보내게 된다.
마태오 복음 21장 37절에서 '마침내'로 번역된 '휘스테론'(hysteron; last of all)은 어떤 일의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수단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주인의 비참한 심정을 가리킨다.
여기서 '존중해 주겠지'로 번역된 '엔트라페손타이'(entrapesontai; they will respect)는 '엔트레포'(entrepo)의 미래형으로서, '엔트레포'(entrepo)는 '~안에'라는 의미가 있는 전치사 '엔'(en)과 '돌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트레포'(trepo)의 합성어로서 '빙 돌다', '방향을 바꾸다'는 뜻을 가진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존경하다'는 뜻과 '부끄러워 하다', '무시하다'는 두 가지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완고하고 사악한 마음이 바뀌어, 예수님께 대해 공경해 줄 것을 바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기대감이 들어 있다.
특히 시제가 미래라는 것은 악한 소작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주인의 심정을 생생하게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21장 38절 이하에서 주인의 아들을 상속자라고 하면서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리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고자 한다.
여기서 '상속자'로 번역된 '클레로노모스'(kleronomos; heir)의 첫번째 의미는 '기업','유산', '유업'(heritage)이다.
구약 성경에서 '유업'의 뜻을 가진 '나할라'(nahalah)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되었다(신명20,16; 21,23).
이스라엘 백성은 각 지파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하느님께서 주신 유업으로 알고, 자기 지파 안에서만 상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기를 통해 가나안 땅의 유업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유업을 희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인들이 메시아가 도래할 때 갖게 될 것으로 믿었던 몫이었다(다니12,13).
이 유업에 대한 희망은 메시아 대망 사상과 연결되어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 때 새로운 유업을 가질 것을 기대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이러한 유업을 희망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업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영적으로 이루어졌다(갈라3,16).
그러나 악한 소작인들로 비유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유업을 차지하는 대신에 그를 맞서서 죽이려고 했다.
그 원인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메시아관이 죄에서 구원을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관이 아니고, 자신들을 현실적인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영적인 유업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크나큰 잘못을 범했던 것이다.
2020년 10월 4일 [연중 제27주일]
<주인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마태 21,33-44)
33ㄱ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앞27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믿음 없음을 보시고)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그래서 다른 비유를 주시는 것이다.
33ㄴ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 하느님 나라다. (43절에서) 이 세상 속에 있는 하느님나라인 것이고 또한 교회의 모습이다.
울타리~ 하느님의 보호망, 경계선. 포도 확, 탑 ~ 하늘가는 길.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 포도밭 주인(주님)의 몫은 그분의 의로운 길, 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 그 십자가의 길이 의로운 길로 믿을 마음이 없는, 그 생각을 바꾸어 믿는 것, 그래서 그 의로운 길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 영광 받으심이 주인의 몫인 것이다.
(이사43,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 셋을 죽였다고 강조 하신다. 3(셋)은 하늘의 숫자로 하느님을 죽인 것이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 자신들의 뜻을 위해 저희들의 말(법)로 죄인으로 만들어 죽이자고 하는 것이다.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 포도밭 밖~ 죄인들이 던져지는 곳, 그래서 속죄제물이 성문 밖에서 태워지는 것이다.
(레위4,21) 21 그리고 그는 그 *황소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앞서 말한 황소를 태우는 것처럼 그것을 태운다. 이것이 회중의 속죄 제물이다.’
= 황소는 하느님을 뜻한다.
(히브13,11-12) 11 대사제는 짐승들의 *피를 속죄 제물로 성소 안에 가져갑니다. 그러나 그 짐승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웁니다.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 아직도 자신들의 믿음없음, 곧 소출이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대답인 것이다.
42 그래서~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 집, 성전(신앙)을 짓는데~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해 필요 없다고 버린 돌, 그 돌, 곧 예수님으로 머릿돌(중심)이라는 것이다.
(요한8,15)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중심)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착하게, 의롭게 살았던 그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구원의 참 의로움,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하느님나라, 성전이시라는 것이다. (*에덴동산- 기쁨의 집, 성전으로 하느님나라를 뜻한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4 그리고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나 으스러질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하늘의 대속, 덮으심 그 진리로 보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가 나오는 돌, 반석인 것이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로 보면 법의 돌이 되어 그 돌에 사람이 맞아 죽는다.
(지혜11,4) 4 목마른 그들이 당신께 간청하자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서 물이, 단단한 돌에서 목마름을 풀어 주는 것이 나왔습니다.
= 바위, 돌이 매를 맞아 부서져 나온 물, 곧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온 생명수인 것이다.
(탈출17,6)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 바위가 매를 맞아 나온 물로 백성이 산다.
(1코린10,4)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요한4,14)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말씀)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생명의 물로 마음 안에서 솟는 샘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