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루카9,23-26)

2020. 9. 20. 오전 5: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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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20일 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1독서<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지혜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126(125),1-2ㄱㄴ.2ㄷㄹ-3.4-5.6(5)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2독서<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1-39)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9,23-26)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제1독서(지혜3,1-9)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는 떠니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1~4) 


지혜서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고, 칠십인역(LXX; Septuaginta; 희랍어로 쓰여진 성경)에만 나오므로, 제2경전(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한다. 제 2경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어(희랍어; 헬라어)로 저작된 책은 지혜서와 마카베오 하권뿐이다. 


지혜서의 저작 연대는 BC 50-3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 유다교 사상가 필론에 의하면, A.D.1세기 초에 이집트에는 100만명이 넘는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한다.


좀 과장된 숫자이겠지만, 이집트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유다 백성들; 각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다 교포들이 사는 곳을 말함)유다인들이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것이 분명하다. 지혜서는 철학,윤리,신학,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된 갖가지 주제들을 다룬 소품 모음집이다. 


저자의 집필 목적은 이집트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 헬레니즘 문화가 압도하는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와 그 부근에 살면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유다교의 정통교리를 다른 문화에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킬 것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토착화(Inculturation)작업의 일환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혜서 저자는 유다교 전통을 거의 모르는 그리스인들과, 저자 자신처럼 히브리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헬레니즘에 익숙한 유다인들 에게, 그리스 문화와 사상과 비교하여 유다교 관습과 사상이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헬레니즘에서 기원한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적 인생관에 맞서, 유다교의 전통적 믿음과 교리를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워 준다.  


지혜서는 크게 세 부분, 종말의 숙고(1-5장), 지혜의 찬가(6-9장), 역사의 숙고(10-19장)로 나눈다. 첫째, 종말의 숙고(1-5장)에서 저자는 하느님의 전지하심을 강조한다.


둘째, 지혜의 찬가(6-9장)에서 임금과 권력자들에게 하는 권고, 7장 22-23절에 나오는 지혜의 정신에 담긴 정신의 특성 21가지(완전을 뜻하는 7의 3배수=매우 완전한 숫자), 지혜를 청하는 기도(9장)등이 나온다. 마지막 세째 부분(10-19장)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10장에서는 원조들과 성조들의 이야기, 10장 15절-11장 20절에는 이집트 탈출 사건,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높이 기리는 찬미가(11,26-구원의 보편주의), 가나안 정복,자연,우상,동물 숭배의 어리석음(13-15장),  이집트 탈출 사건과 광야에서의 시련(16-19장)을 두서없이 열거한다.


지혜서에는 특히 두 가지 신학적 주제가 돋보이는데,<의인들의 불사 불멸>과 <지혜의 의인화>이다. 


지혜서의 저자는 전통적 인과응보와 상선벌악의 원리를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의롭게 살고도 현세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 의인들은 비록 장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더라도, 하느님 마음에 들어 죽은 다음에 하느님 곁에서 평화를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지혜서 저자가 희망하는 것은 죽은 의인의 부활이 아니라 의로운 영혼의 불사불멸이다.


한편, 지혜서에 묘사된 <인격적 지혜> 사람 안에 들어와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의 <은총>개념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신 요한 복음의 <육화된 말씀>과도 상통한다. <인격적 지혜>를 성령이나 성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성급한 시도이지만, 어쨌든 지혜서에서 신약성경의 삼위일체 신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던지는 질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하느님께서 전지하시고 전선하시고 전능하신데, 왜 이 세상에 악이 범람하는가? 전선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왜 악을 허락(허용)하시는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참으로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이 너무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당하고, 불의의 사고나 불치병으로 일찍 주고, 끊임없이 나쁘고 못된 짓을 하며, 천상천하(天上天下)유아독존(唯我獨存)처럼 살아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이 너무나 현세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잘되는 것을 보면, 神은 과연 계시는가? 도대체 神의 공의, 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던지면서 불신앙과 회의를 품게 된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소위 신정론(神正論)이라 일컬었다. 일찌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다 더 큰 善을 위해서, 보다 더 큰 惡을 예방하기 위해서" 전지하시고 전선하신 하느님께서 惡을 허락하신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고찰할 것을 설파했다. 


오늘 지혜서 3장의 말씀은 여기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상선벌악(償善罰惡)의 원리를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영원(eternity)에 비교하면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점에 지나지 않고, 잠깐 지나가는 이승의 삶을 마치면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때에는 종말론적 자리바꿈(자리 전도)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공의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지상에서 비뚤어진 부분을 바로 세워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고, 당신의 말씀과 계명에 충실한 이들에게 당신이 약속하신 상급을 반드시 주시고, 의로운 영혼은 반드시 불사불멸이 있음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선행에는 상급을 내려 주시고, 악행에는 벌을 주시는 공의(公義)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불의하고 죄짓고 자신이 신이 되어 안하무인(眼下無人; overbearance) 으로 이승에서 맘대로 산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영원한 심판과 지옥벌로 갚아 주시어, 당신의 의를 바로 세우시며, 당신의 생명의 말씀이 진실되다는 것을 입증하시고, 당신이 천상 천하의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임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잠깐 살다가 육신 생명을 마치지만, 불의와 불법, 거짓과 오류, 무지와 폭력에 맞서서 하느님의 진리와 의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순교를 통해 그 목숨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되돌려 드린 순교자들처럼,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불의와 절망과 억울한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천국의 영원한 복락과 내세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성으로는 견딜 수 없는 지독한 고문과 박해와 죽음 속에서도, 내세의 영원한 복락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산 자에게 약속된 선물과, 하느님을 지복지관(至福直觀)하며 영원히 찬양할 수 있는 축복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7장 55절 나오는 초대 교회 첫 순교자이신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장면처럼,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 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당신을 위한 고난의 순간에까지 항상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  우리 형제들은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그자를 이겨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묵시록12,10~11참조)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묵시록21,3ㄹ~4)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복음(루카9,23-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26)


루카 복음 9장 24절과 25절이 앞의 9장 23절과 한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루카 복음 9장 26절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과 내용적으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의 대상은 예수님 당신을 따르지 않는 무리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부끄럽게 여기면'에 해당하는 '에파이스퀸테'(epaischinthe; is ashamed)의 원형 '에파이스퀴노마이'(epaischynomai)는  '수치스러운', '오욕'을 뜻하는 '아이스퀴네'(aischyne)에 '~에 기초하여'를 뜻하는 '에피'(epi)라는 접두사가 붙은 합성어로서 수치스러움과 모욕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매우 강조하는 단어이다.


이것을 예수님을 따르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움과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단순히 감정적으로 부끄럽게 여긴다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매우 강도 높게 부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 역시 이러한 사람을 마지막 때에 수치스럽게 여겨 부인할 것임을 말한다. 원문에는 '그를'에 해당하는 '투톤'(touton; him)이라는 말을 종속절의 맨 앞 부분에 둠으로써 그 의미가 강조된다.


따라서 원문의 구조를 따라 번역하면,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바로 그 사람'을 사람의 아들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가 된다.


원문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이러한 어투의 뉘앙스는 당신 자신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들에 대한 아주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거부하는 이들을 예수님께서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의 주재자로 다시 오실 때(마태24,30.31) 그들이 아끼고 지키려는 자신의 안정과 위치에 대해 공의로운 심판으로 단죄하시겠다는 단호한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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