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정의와 특징
한편 오늘날 현대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임은 물론 첨단과학이 함께하는 사회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유전과학의 개가를 통해 과학이 일상화되고 있음은 물론 심지어 종교를 인간의 뇌신경과학으로 설명하고자하는 시도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극명하게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설명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학의 진전된 성과는 ?인간학(人間學)?을 지향하는 불교의 정체성에 탄력과 가속도를 더욱 붙여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간이 지닌 위대한 인격성인 ?불성(佛性)?의 자각과 삼세인과(三世因果)에 따른 합리적인 사유, 다양한 마음의 구조를 밝혀 중생들을 지혜로운 삶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불교의 근본성격은 오늘날 보다 새롭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불교의 현재적 의미가 실천적이고 분명하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1.불교의 정의
불교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내면적, 정신적 체험에 의거한 종교체계로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보편종교 중의 하나다.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신념의 체계는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보편적인 종교체계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인도에서 출발해 동아시아는 물론 전지구상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불교는 정교한 교리체계와 실천체계로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란 말의 의미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불교는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불(佛)이란 불타(佛陀)의 준말로 붓다(Buddha), 즉 ?깨달은 이? 부처님을 가리킨다. 교(敎)란 교리, 교학 등의 의미로 가르침, 가르침의 내용을 의미한다. 불교란 ?부처님 가르침?이란 의미지만, 다르게 설명되기도 한다. ?부처가 되는 가르침?이란 뜻도 있다. 이 정의는 부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른 정의로, 대승불교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듯 모든 인간들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을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이해하는 입장에서의 정의다. 결국 불교의 언어적 의미는 ?부처님 가르침?, ?부처가 되는 가르침?으로 정의할 수 있다.
2.삼보에 바탕을 둔 ?종교문화현상?
인도라는 지역적 한계 뛰어넘어 부처님 가르침
따르는 보편종교
하지만 이러한 언어적 정의는 불교란 말의 의미를 풀이한 것으로, 오늘날 보이는 종교적.문화적 현상으로서 불교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정의는 불교의 교학적인 용어인 ?법(法)?으로 표현되듯, 우리가 불교란 말을 생각할 때는 보다 근원적인 불교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종교체험에 의거하고, 그 종교체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따르려는 사람들에 의한 문화적 현상이다. 근원적 종교체험을 보여준 부처님과 그 종교체험의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가르침,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종교.문화적 사회현상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며, 종교일반에서 말하는 교주와 교리와 교단을 지칭한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내용으로, 불교 또한 삼보를 근본으로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삼보는 불교의 독특하고 특징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불교의 핵심내용이다. 따라서 이 삼보에 근거해 우리는 불교를 ?삼보에 의거하는 문화적 현상? 또는 ?삼보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인간의 삶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인간의 정신적 내면적 고통을 덜어주고자 한 문화체계가 종교다. 그러나 종교는 발생지역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구성요소상 다양한 차이를 보여준다. 불교라는 종교현상 역시 발생지인 ?인도?라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도는 불교이외에도 다양한 종교가 생겨났으며, 오늘날에는 힌두교가 대표적인 종교가 돼 있다.
불교는 물론 인도라는 지역을 뛰어넘어 전 세계의 보편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편종교라 함은 인간 내면의 보편적 정신체계에 부합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불교의 어떠한 점이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체계에 부합될까. ?삼보?라는 근본적 요소를 통해 불교의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 세계의 모든 불교문화에서 보이는 공통된 삼보의 내용을 ?주지삼보(住持三寶)?라 말하듯, 삼보는 불교의 보편성과 체계성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요소이자 독자성을 보여주는 말이다.
3. 부처님은 누구인가
삶의 굴레 떨쳐낸 ?인류의 스승? / 왕자의 길 버리고
진리 택해 / 불교의 출발점이자
귀결점
부처님은 삼보 중의 첫째로 불교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종교로서 불교의 모든 양상은 부처님과 부처님에 의해 설해진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 불교의 근원에는 부처님이 있다.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친 분이란 뜻으로, 붓다의 우리말이다.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진리에 눈을 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인간들에게 지혜와 자비의 모범을 보인 분, 부처님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인격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보여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다.
부처님, 곧 붓다는 ?깨달은 자?란 의미로, 깨달음의 종교체험이후 붙여진 이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누가 붙여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칭한 말이다. 깨달음의 체험을 통해 더 이상 번뇌와 정신적 고통이 없이 삶의 진리를 확연히 알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를 칭한 이름이다.
깨달음을 얻기 전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즉 고타마(?최고로 훌륭한 소?란 뜻)란 성을 가진 가문으로서 이름은 싯다르타, ?모든 것을 성취한 자?란 뜻이다. 아버지는 당시 소규모 국가인 카필라국의 왕인 슛도다나,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흰 코끼리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가지고 태어난 싯다르타는 탄생이후 아시타라는 당시의 예언자에 의해 붓다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예언에 의하면 싯다르타는 후에 위대한 군주로서 전륜성왕이 되던가, 진리를 깨친 인류의 스승이 되리라는 것이였지만, 아시타는 인류의 스승으로서 붓다가 되리라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왕자로서 태어난 싯다르타는 당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영위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런 왕자로서의 윤택한 삶을 버리고 출가자로서의 길을 택해 힘든 수행의 길에 들어가게 된다.
29세에 출가하여
구도수행을 한 싯다르타는 6년간의 구도수행을 통해 마침내 35세에 진리를 깨쳐 붓다가
된다. 붓다가 된 이후 80세에 열반에 들 때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지혜와 한량없는 자비심을 보이시어 만인의 스승으로 추앙되었다.
그러면 왕자로서의 부족함이 없는 삶을 버리고 진리를 찾는 수행자의 길로 들어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싯다르타의 출가는 당시 인도의 사람들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와 가족보다도 더욱 중요한 진리에 대한 갈망과 열망이 싯다르타를 출가의 길로 이르게 하였지만, 그것은 왕위를 계승해야할 왕자의 신분에서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진리추구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싯다르타로 하여금 그토록 번민케 한 정신적 갈망은 무엇이었을까.
카필라국의 네 성문을 지나며 노인과 병자, 시체, 수행자를 보았다는 소위 ?사문유관(四門遊觀)?의 가르침에 의하면, 싯다르타의 번민은 인간이 가진 한계, 그로 인한 정신적 번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늙어가고, 병들고, 죽어가는 인간의 한없이 나약한 삶의 현실에서, 인간에게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확실한 열반의 진리, 그 진리를 위해 싯다르타는 과감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행자의 길로 나섰던 것이다. 인간의 삶 속에 정신적 굴레, 속박으로 작용하는 모든 번뇌와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방법이 진리에 대한 탐구이며, 삶의 근본이치를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사회관습인 출가수행의 방식에 따라 싯다르타는 출가하고, 진리의 이치를 깨달았던 것이다.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삶의 굴레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진리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그 이치를 온전히 깨달아 만인의 스승으로서 귀감이 된 분, 그 부처님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진리를 향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4.불교 이전의 인도사상
베다. 우파니샤드 중심으로 ?백가쟁명?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체험을 이룬 부처님과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 이뤄진 종교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 사이에는 가르침 즉 법(法)이라는 매개가 있다. 법을 듣고 번뇌를 없애고 정신적 즐거움을 얻은 제자들이 부처님을 흠모하며 따르면서 생겨난 것이 불교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성립하던 당시의 인도에는 어떤 종교전통이 있었을까. 왜 하필 불교가 성립하던 당시에 자이나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가 생겨났을까.
인도에는 불교 성립이전 이미 고유한 종교철학전통이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문교(婆羅門敎)라 부르는 전통이 그것. 바라문교는 사제계급인 바라문을 중심으로 한, 인도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종교문화체계다. 바라문교의 근본 성전은 베다며, 베다는 인도문화의 기반을 닦은 아리안족의 종교성전이기도 하다. 아리안족에 의해 성립된 독특한 인도문화가 바라문,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의 사성(四姓) 계급에 의거한 사회조직으로, 바라문은 인도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종교의례 담당자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베다문헌을 통해 인도 고대의 종교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아리안족 전통계승
바라문교
그 밖의 다양한 견해
표출돼
베다에 보이는 종교적 의례는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초인격체인 신(神)에게 기원하는 것이었다. 신에게 기원할 때는 다양한 희생공물이 바쳐졌다. 살아있는 것을 죽여 바치는 희생제는 후에 불살생(不殺生)의 윤리가 대두함에 따라 꽃이나 향 등으로 바뀐다.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의례가 발달됨에 따라 의식일반은 물론 신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의문 등이 생겨 인도고유의 철학전통으로 형성된다.
종교의례를 담당하는 바라문계급은 정신적 지도자일 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도 폭넓은 철학적 사유를 했다. 베다문헌에 보이는 우주의 근원으로서 철학적인 신들에 대한 논의는 이미 고대 인도에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근원 등에 대한 고민이 폭넓게 이뤄졌음을 암시한다. 베다의 철학적 전통이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이 우파니샤드다.
?베다의 본질을 이룬다?는 뜻에서 베단타라고도 불리는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철학적 전통이 집대성된 것으로, 이 문헌의 최초 성립은 불교이전으로 간주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다양한 철학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파니샤드에는 우주와 자연의 근원으로서 브라만(梵天)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설명이 있으며, 인간 내면의 궁극적 본질로서 아트만(自我)에 대한 논의와 규명도 있다. 인간은 윤회(輪廻)를 계속하는 존재이며, 윤회에서 해탈하기 위해 아트만을 알아 불사(不死)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우파니샤드는 강조하고 있다. 불교문헌에서 보이는 해탈, 윤회, 업 등의 기본 개념은 이미 우파니샤드에서 성립됐다 할 수 있다.
우파니샤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던 바라문 계급은 인도사회에서 안정적인 지도계급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바라문계급의 철학전통이 많은 종교사상가들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바라문교에서 말하는 브라만이나 아트만과 같은 궁극적 실재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그것을 부정하는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도 기존의 바라문 사상을 부정.비판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정진하던 시대는 바라문 전통뿐만 아니라 다양한 철학적 견해가 난무하는 시대로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가히 알기 어려운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5.불교와 육사외도
사상의 혼란 시대…진리 찾는 사문 등장
불교는 인도의 종교철학 전통 위에 성립된 종교다. 불교 탄생 당시 인도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의거한 사상적 전통이 확고하게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전통이 긍정적으로 수용되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불교는 베다에 근거하는 전통적인 사상에 대한 논란과 새로운 철학이 생겨나는 와중에 성립되고 발전했다.
기존 브라만 전통에 의문
제기
산자야 등 6인의 사상가 두각
부처님이 출가해 수행.정진할 당시 인도에는 새로운 철학적 전통이 성립되고 있었다. 기존의 베다나 우파니샤드에서 강조되는 철학전통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을 표방하려는 새로운 종교사상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 사상가들은 사문(沙門)이라 불리는 자들로, 기존의 철학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표방했다. 이들은 아트만에 대한 지식이나 윤회로부터의 해탈 등에 대해 우파니샤드와는 다른 사상을 전개했다. 초기불교경전에 따르면 당시 새롭게 자신의 주장을 표명하는 자들은 362종의 견해 혹은 62종의 견해가 있었다한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 사문이 육사외도(六師外道)였다.
육사외도란 ?내도(內道. 불교)?와 다른 종교철학체계를 전개한 대표적 6인을 말한다. 자신의 독특한 종교체험을 통해 당시 종교집단의 지도자이기도 하였던 이들은 초기불교경전에 자주 등장한다. 푸라나 카사파, 파쿠타 카차야나, 막칼리 고살라, 아지타 케사캄발린, 산자야 베라티풋타, 니간타 나타풋타 등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니간타를 제외한 5인의 사상적인 공통점은 대체로 유물론적 입장과 아트만에 대한 부정, 도덕윤리를 부정하는 입장에 서있다는 것. 이것은 아트만과 윤회사상에 의거하는 전통적 철학사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기존의 사상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산자야 벨라티풋타는 진리는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일종의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했다고 전하는데, 후일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리불(舍利弗)과 목련(目連)도 처음에는 산자야의 제자였다. 자이나교의 개조인 니간타는 불살생과 무소유를 강조하고, 해탈에 장애가 되는 업(業)의 유입을 막기 위한 철저한 고행주의를 강조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은 종교로 오늘날까지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가 성립하던
당시, 육사외도를 포함한
다양한 철학적 견해가 난무했다. 이는 우파니샤드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철학전통이 권위를 상실하고, 새로운 종교전통이
갈구되었음을 의미한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당시의 다양한 철학적 견해를 ?존우화작인론(尊祐化作因論)?
?숙명론(宿命論)?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의 셋으로 분류한다. 우주는 창조주와 같은
절대자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 우리의 운명은 이미
다 결정되어있다는 것, 우리의 삶에는
의지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것 등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런 세 가지 견해는
당시의 다양한 견해를 종합적으로 정리.분류한 것. 이들에 대해 부처님은
사람들을 윤회의 고통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불교가 성립되던 시대는 다양한 인간의 사유체계가 표출되던 시대이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의 시대였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등에 대해 정답 없이 다양한 견해만 난무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부처님 또한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해 많은 고뇌를 했음에 틀림없다. 출가동기로 알려진 생.노.병.사 등 삶의 근원적 문제만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싯다르타는 출가수행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갈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에게 정신적 수행을 하도록 하는 요소가 되고 있지만 말이다.
6.부처님의 출가수행
삶의 근본고뇌 해결 위해 떠나다
불교는 삶과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를 느낀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出家).수행(修行)해 정각(正覺)을 얻은 종교적 체험에 의거한 가르침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동기와 출가목적을 성취시킨 수행은 불교도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제는 ?싯다르타 태자가 삶에 대해 느낀 근본적인 고뇌는 반드시 출가를 통해서만 해결되는 것이었을까?라는 점이다. 물론 ?출가?라는 패턴은 인도의 정신적 문화형태를 보여주는 독특한 예에 속한다.
?사문유관(四門遊觀)?에서 볼 수 있듯 집을 떠난 출가자의 모습은 부처님 당시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다. 이들 출가자 가운데 바라문 문화를 비판한 자유사상가들은 ?사문(沙門)?으로 불리며, 상당수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부처님도 사문 중의 한 명으로 바라문 문화를 정면에서 비판했다.
진리를 찾기 위해 출가하는 것은 불교 이전에 성립된 우파니샤드에서도 나타나듯이 인도의 오래된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출가 형태는 오늘날에도 인도인의 삶의 패턴으로 알려진, 4주기의 인생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범행기(梵行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의 4단계 인생관이 그것이다.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교육을 받는 범행기, 세속에 머물며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 세속을 떠나는 연습기에 해당되는 임서기, 세속을 완전히 떠나 진리를 찾는 유행기로 구분된다. 네 단계의 인생은 부처님 당시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인도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네 단계의 삶의 문화적 패턴 속에서 싯다르타 태자 역시 출가의 길을 택해, 삶과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구도출가.고행 등 마음수행
인도의 정신문화 전통 반영
출가를 통해 구도의 길에 오른 싯다르타 태자는 먼저 두 사람을 찾아 스승으로 받들며 삶의 고뇌를 해결코자 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가 그들이다. 이들에게서 배운 가르침이 자신의 고뇌를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알라라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나 웃다카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등은 후일 불교의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는 선정관(禪定觀)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당시의 많은 사상가들이 삶의 궁극적 문제를 인간의 마음을 통찰해 해결하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두 스승을 떠난 싯다르타는 6년간의 고행(苦行)을 행하는데, 고행 역시 인도의 정신문화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인도의 정신수행은 일반적으로 요가라 불린다. 싯다르타 태자도 요가를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요가는 인더스 문명이 성립될 당시의 사람들이 행하던 수행법으로, 역사도 매우 오래됐다. 물론 요가도 마음과 육체의 어느 것을 중심으로 해 수행할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눠진다. 일반적으로는 즈냐나 요가, 하타 요가, 바크티 요가 등으로 구분되는데, 부처님 당시의 요가도 선정이나 고행 등 다양한 수행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싯다르타 태자는 두 스승으로부터 선정의 요가를 배우고, 그것이 자신의 고뇌를 해결해 주지 않음을 확인한 뒤 고행의 요가를 실천했던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 당시 인도의 정신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토대를 구축하고 있었다. 출가나 요가 등의 수행문화는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독특한 정신문화 형태로, 이런 문화적 기반 위에 다양한 사상가가 출현했고, 나아가 부처님 같은 위대한 사상가가 나오게 됐다. 25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심오한 정신문화를 가르치는 불교 역시 인도의 고도(高度)한 정신문화를 토양으로 생겨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7.부처님의 깨달음
인류에게 던지는 지혜와 자비의 메시지
불교는 출가수행을 통해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체험을 증득한 부처님이 창시한 가르침이자 종교다. 깨달음 즉 정각(正覺) 체험은 불교사상의 원천이 되고, 깨달음의 내용은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깨달음이 중요한 것은 초전법륜 이후 부처님이 보여준 일치된 언행(言行)때문이다. 6년 고행이후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얻은 부처님은 감로수와 같은 가르침과 자비로운 심성으로 인간을 고통의 세계에게 건져내고자 했다. 이런 자비행이 있었기에 부처님의 깨달음 체험이 지금도 여전히 소중하게 존중되는데, 이는 부처님 당시 많은 출가 사문들의 언행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일체 꿰뚫는 인과 법칙 ?연기?
불교를 규정하는 사상적 원천
부처님 시대 인도는 다양한 사상이 난무하고 있었다. 출가 수행하여 진리를 찾는 인도 정신문화의 틀이 형성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수행하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소위 깨달음의 종교체험을 했다고 여겨진다. 그런 체험을 했다하더라도 그들의 언행은 일치되지 않았다. 부처님 당시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의 한 사람으로 오늘날까지 인도에 존속하고 있는 자이나교의 개조 마하비라 역시 12년간의 수행을 통해 지나(Jina. 승리자)가 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불교와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불교가 중도(中道)를 주장하는 한편 지나는 고행을 강조한다. 불교가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반면 지나는 자아를 인정한다. 오랜 기간 자신의 종교체험에 의거한 진리를 각자가 설파했다 하더라도, 설해진 가르침의 내용은 각기 달랐다. 하물며 부처님이 비판하는 ?존우화작인설? ?숙명론? ?무인무연론? 등의 가르침도 각기 종교적 체험을 전제로 설해졌다는 점에서는 불교와 비슷하다. 그러나 언행불일치로 인해 지금은 단지 사상사 속에서만 남아있다.
도대체 부처님의 깨달음은 어떤 점에서 중요할까. 부처님의 출가 동기로 경전에 보이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은 인간이 지니는 한계적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인간 육신의 무상이나 한계는 젊은 날 싯다르타 태자의 큰 고뇌였다. 한계적 인간의 삶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모든 것은 절대자의 소관이니 절대자를 믿으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가 과거 전세(前世)의 결과이니 그냥 되는대로 놔두면 되는가, 아니면 과거도 미래도 없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식이면 되는 것인가. 영원불멸하는 아트만을 찾아 그것을 알면 되는 것인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정각의 내용은 다양하게 설명되지만, 근본적인 내용은 연기(緣起)의 도리이다. 깨달음으로 인해 삼명육통(三明六通)이 생겨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은 연기다. 연기는 모든 것이 서로 조건 지워져 생겨난다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모두가 인과 연의 관계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도리다. 인간의 한계적 삶을 제공하는 죽음에 대한 의식도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애착을 원인으로 생겨난다고 연기는 가르친다. 연기의 이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12연기설에 의하면 인간의 고통은 근본적으로 삶의 이치 즉 연기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다. 연기법이야말로 부처님이 인류에게 던지는 지혜와 자비의 메시지인 셈이다.
인류의 정신역사 속에서 부처님처럼 분명하게 모든 것이 서로 관계한다는 연기의 도리를 밝힌 사람은 없었다.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나,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사고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아트만? 같은 절대적 것은 존재치 않는다는 확신과 모든 것은 서로 관계하며, 어떤 것이든 인과(因果)의 법칙을 따른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진리이기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체득하고픈 이상으로 연기(緣起)는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다.
8.연기
원인 규명하여 고통 극복한 정신세계
불교는 연기(緣起)의 도리를 깨달은 부처님에 의거하는 종교다. 부처님은 연기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중생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인간인 각자(覺者)가 됐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과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로 바뀐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기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한 내적 정신세계의 변화, 의식의 질적 전환을 이루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와 같이 질적 변화된 내면의 의식세계에 의거해, 부처님의 모든 언행이 나타나게 됐다. 의식의 질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연기가 12연기설이다.
차연성은 ?연기의 법칙?으로 12연기의 상호관계 표현한 것
12연기설은 인간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과 그 원인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곧 중생으로서 고통 받는 정신적인 현실과 그것의 원인을 알고 극복한 부처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이것은 노병사(老病死) 등의 고통은 그 원인이 12개의 단계로 다음과 같이 깊은 원인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노.병.사 등 → 생(生. 태어남) → 유(有. 생존) → 취(取. 소유욕) → 애(愛. 애욕) → 수(受. 감수작용) → 촉(觸. 접촉작용) → 육입(六入. 여섯감각기관) → 명색(名色. 심신일체) → 식(識. 의식작용) → 행(行. 정신작용) → 무명(無明. 근본번뇌). 곧 노.병.사 등의 인간의 고뇌는 그 원인을 추구해가면 근원적으로 인간의 근본번뇌인 무명에 닿는다.
이것을 불전(佛典)에서는 ?무명에 연하여 행이 있고, 행에 연하여 식이 있고 ……, 생에 연하여 노병사가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노병사의 고뇌가 생겨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이럴 때의 연기를 연기의 순관(順觀)이라고 한다. 근본번뇌인 무명으로부터 고통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는 법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진리를 알아 근본번뇌인 무명이 없어짐으로써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불전에서는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 생이 멸하면 노병사가 멸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명이 사라져 더 이상 고뇌가 없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이럴 때의 연기를 연기의 역관(逆觀)이라 한다. 무명의 소멸을 통해 고통이 소멸하는 관계로 연기를 반대로[逆] 살핀 관찰법이란 것이다.
부처님은 12연기를 순역(順逆)으로 관찰해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의 현실과 고통의 원인이 소멸하는 진리를 체득했다. 그리고 12연기의 순역의 관계를 관찰하며 부처님은 연기의 근본 이치를 게송으로 표현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길 때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은 없고, 이것이 멸할 때 저것은 멸한다.? 이것은 연기의 법칙을 표현한 것으로, 게송은 후대 차연성(此緣性)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것은 12연기 상호의 관계를 표현한 것으로, 12연기가 존재와 생성, 비존재와 소멸에 있어 일정한 원칙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이 시간적인 관계와 공간적인 관계 속에 있듯이, 12연기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차연성은 12연기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삶 속에서 생겨나는 연기의 일반적인 원칙을 나타낸다.
12연기와 차연성 원칙은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의 이치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연기를 깨달아 진리를 체득했다는 것은 우리 인간 내면의 근원적인 번뇌인 무명이 소멸돼 더 이상 정신적 고통을 받지 않는 의식세계를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연성은 연기가 우리 삶의 시간적 공간적 관계 속에서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며, 부처님께서 삼세(三世)의 인과(因果)나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일정한 원칙을 정확히 파악하고 올바로 알게 된 것을 뜻한다. 12연기와 차연성 원칙에 의거한 연기를 기본바탕으로 하는 불교는 지구상 그 어떤 종교보다 인간과 삶에 대해 세밀하고 합리적.이성적으로 설명한다.
9.초전법륜
?불교의 사회성?확인한 역사적 사건
득도 후 최초의 가르침
설파
다섯 비구 첫 제자로 귀의해
불교는 부처님(佛).가르침(法).승가(僧)의 세 가지를 핵심요소로 하는 종교문화현상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종교 일반의 교주.교리.교단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의 온전한 성립으로 종교는 인간사회와 관련을 갖게 된다. 깨달음을 통해 진리를 얻은 부처님이 만약 그 진리를 타인에게 설하지 않았다면, 부처님의 진리는 한사람의 종교체험으로 끝났을 것이고 불교라는 종교는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교라는 종교가 성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건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타인과 공유됨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이 바로 최초로 가르침을 설한 초전법륜(初轉法輪)이다.
부처님은 연기(緣起)의 이법(理法)을 깨달은 뒤, 진리를 발견한 기쁨을 누린다. 깨달음을 얻은 성도지(成道地)인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는 물론 그 주위의 나무아래에서 7주간을 머무르며 진리인 법을 깨달은 희열(喜悅)을 맛보았다. 물론 이 기간동안 기쁨만을 느낀 것은 아니다. 불전(佛典)에서는 ?범천(梵天)의 권청(勸請)?으로 묘사되는 진리 설파에 대한 주저함도 나타난다. 이것은 부처님이 발견한 연기의 진리가 이전의 어떤 가르침보다도 독특하고 새로운 가르침이라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과연 이러한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이 깨달은 진리가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주저와 회의를 극복하는 심적(心的)인 모습이 ?범천의 권청?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진리 설파에 대한 확신이 선 부처님은 6년간의 고행을 함께 한 도반(道伴)인 다섯 비구들에게 최초의 가르침을 설하고자 사르나트의 녹야원(鹿野苑)으로 발길을 옮기셨다. 녹야원에서 설하신 초전법륜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이다. 사성제란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한다. 고성제란 괴로움이라는 거룩한 진리,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거룩한 진리, 멸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거룩한 진리, 도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거룩한 진리이다. 곧 사성제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명확한 현실로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그리고 괴로움의 소멸과 그 소멸에 이르는 방법을 설한 것이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확한 현실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인간의 삶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 그것을 불전에서는 인간 내면의 애욕(愛欲) 혹은 욕망(欲望)이라 표현한다. 따라서 그러한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되면 괴로움은 소멸되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이 소멸되도록 항상 심신(心身)을 올바로 행동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팔정도이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올바른 심신의 행동이다. 올바른 견해, 올바른 생각,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기억, 올바른 정신집중의 여덟이다. 이 여덟 가지의 올바른 길(正道)은 삶에 있어 이상적인 행동으로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의 길로도 표현된다.
최초의 가르침인 초전법륜의 내용은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곧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내면적인 괴로움과 그 소멸의 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섯 비구들이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제자가 됨으로써 타인과 공유됨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회성을 띄게 된 것을 의미하며,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든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초전법륜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타인에게 전달된 것으로, 불교가 종교문화현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10.부처님 가르침의 특징
번뇌 소멸된 열반의 경지로 중생 이끌어
?제행무상?의 원칙에 입각
청중 근기 따라 대기설법
불교의 ?세 가지 보배?(三寶) 중 하나인 법보(法寶)는 부처님 가르침을 말한다. 가르침을 법이라고 표현한 것은 불교의 독특한 것으로 ?법?은 인도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졌다. 법칙.규범.진리.실재.경험 등 여러 뜻을 갖는 ?법?이지만 불교에 들어와 부처님 가르침.교설.교리 등의 의미로 사용됐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을 통해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했던 부처님 가르침이 바로 법이며,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등이 구체적 내용이다. 이런 다양한 가르침을 총체적으로 ?제법?(諸法)으로 부른다.
부처님 가르침으로서 법은 깨달음의 종교적 체험이 구체적 언설(言說)로 표현된 것이다. 연기(緣起)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이 외부의 타인에게 진리를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고 터득케 한 언설이 법인 것이다. 물론 언설은 대하는 사람이나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됐다. 이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한다. 사람의 근기에 따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설법했기 때문이다. 초전법륜 이후 열반에 들 때까지 부처님은 무수한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했고,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그렇다면 부처님 가르침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연기의 진리를 바탕으로 표현된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법인?(法印)으로 표현되는 데, 법인이란 ?법의 표시?라는 의미로 법의 특징을 가리킨다. 곧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을 가리키는 것으로 세 가지 혹은 네 가지의 특징을 보인다. 세 가지란 3법인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열반적정(涅槃寂淨)을 말하며, 여기에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덧붙여 4법인이라 한다.
부처님 가르침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제행무상의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 ?모든 삶이 영원하지 않고 항상 변화 한다?는 철저한 무상의 자각을 기본 가르침으로 한다. 무상의 삶 속에 존재하는 일체의 것에는 실체로 영원히 존재하는 아트만은 없다고 하는 것이 제법무아다. 제법무아는 부처님 당시 인도 사상계의 중요한 철학적인 논점으로, 아트만과 자아(自我)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부처님은 실체적인 아트만을 부정하고 연기적인 원리에 입각해 진리를 말했다.
인간에게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심신(心身)의 절대적인 평안의 경지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 열반적정의 법인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모든 사람들을 열반의 평안한 경지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일체개고의 법인은 우리의 삶이 번뇌와 고통의 삶이라는 부처님의 현실 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이 인간의 고뇌.번뇌를 없애는 것에 주목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부처님 가르침은 인간이 안고 있는 다양한 번뇌를 자각하고, 삶을 올바로 통찰해 보아, 번뇌가 소멸된 열반의 경지로 중생들을 이끄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부처님 가르침은 초전법륜 이래 다양하게 펼쳐졌다. 대기설법으로 적시적지(適時適地)에 설해져, 수많은 제자가 생겨났다. 따라서 부처님 법은 타인과 부처님의 정신세계를 엮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 법이라는 고리를 통해 진리의 세계에 눈뜬 자들이 바로 불교도(佛敎徒)이며, 부처님 삶을 모범으로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집단이 승가(僧家)다. 부처님 가르침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당시 사회규범에 따라 부처님 같은 출가자로 불교에 들어오거나, 재가자로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번뇌 없는 삶을 살고자 마음먹었다. 불교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인 법이 중생들의 번뇌를 없애주고, 중생들을 평안의 열반으로 인도하는 참된 진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11. 무아설(無我說)
?의식작용이 빚어낸 관념은 실체가
없다?
불교의 근본특징 나타내는
교설
인도 전통철학 ?아트만?설 반박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무아설(無我說)이 있다. 자아(自我) 즉 아트만(a-tman)이 없다는 무아설은 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무아설은 후에 삼법인(三法印)의 하나인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으로 정리돼 불교의 근본특징을 나타낸다. 그러나 무아설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교설도 없을 것이다.
무아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당시 인도 사상에 대한 지식이 요구되며, 지식이 없는 경우 무아설의 이해는 물론 불교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무아설은 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자 부처님의 깊은 철학적 사유와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무아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아 즉 아트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교가 흥기하던 무렵 인도에는 우파니샤드로 대표되는 정통사상이 결실을 맺고 있었다.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을 찾는 철학전통이 우파니샤드에 이르러 인간 내면에서 궁극적 원인을 찾게 됐다. 궁극적 원인으로 인간 내면에서 발견되고 논의된 구체적인 것이 바로 아트만으로, 아트만은 윤회로부터 해탈을 가져오는 핵심 개념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아트만은 영원히 죽지 않으며, 윤회의 근본 주체이고, 또한 인간 내면의 모든 감각기능의 중심이며, 인식작용으로는 알 수 없는 인식 그 자체이자 인식의 초월자이다. 아트만은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인간 인식의 근본 주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기능이 아트만을 인식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우파니샤드에서 아트만은 인간 내면의 통제자, 절대적인 근본원리 등으로 정의되고, 아트만을 아는 것이 윤회로부터 해탈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인간 내면의 근본원리로 아트만이 발견되고, 그것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트만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 바로 무아설이다. 부처님은 인간 내면에서 감각기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등의 절대적인 아트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언했다. 그리고 아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양한 교설로 표현했다. 대표적 가르침이 5온(蘊)과 6입(入)의 무아다.
?5온?이란 신체를 포함한 물질일반과 인간의 정신적 기능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곧 5온으로서 물질[色], 감각기능[受], 표상작용[想], 정신작용[行], 의식[識]의 각각에는 아트만이 없음을 논증한 것이 ?5온 무아?다. 그리고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식[意]의 여섯 감각기능의 6입에도 아트만은 존재치 않는 것을 논증한 것이 ?6입 무아?다. 이것은 감각기능 각각이 아트만에 의해 작용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감각기능은 아트만에 의해 조절.통제되는 것이 아니며,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부처님의 무아설은 인간의식이 상정(想定)하는 내면의 절대적 실체로서 아트만을 부정한 것이지, 의식작용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작용이 끊임없이 실체적인 관념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의 본성을 꿰뚫어 비판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만들어 낸 실체적 관념과 그 실체적 관념을 만들어 내는 의식의 본성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그러한 실체적 관념 대신 연기(緣起)의 이치(理致)에 의거하는 삶임을 확신한 뒤, 우리의 의식을 인(因)과 연(緣)의 관계로서 사유(思惟)하도록 강조했던 것이다.
인류의 정신사(精神史)에서 부처님처럼 인간 의식의 본성이 만들어낸 실체적 개념에 대해 분명히 비판한 사람은 드물다. 궁극적 실체에 대한 사유가 여전히 비일비재한 오늘날, 무아설은 인간의 의식본성에 대한 철저한 사유를 보여줌은 물론 불교가 인간에 대한 깊은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12.무기설(無記說)
?이치에 맞지 않는 질문엔 답하지
않아?
인간사유 뛰어넘는 사변적 문제
신중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응답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무기설(無記說)이라는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옆으로 미루어 놓았다는 의미로, 사치기(捨置記)라고도 한다.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의문에 대해 부처님이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무기설은 무아설(無我說)과 더불어 부처님의 철학적인 사유와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부처님 가르침이 인간의 합리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전개된 것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나아가 인간 사유의 한계를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신중하면서도 합리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무기로써 대답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14무기, 10난무기(難無記)다.
부처님이 무기로써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대표적인 질문은 〈중아함경〉 ?전유경(箭喩經)?에 보이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14무기로 표현되는 14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다. ?(1)세계는 ①상주(常住)인가 ②무상(無常)인가 ③ 상주이며 또 무상인가 ④상주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2)세계는 ⑤한계가 있는가 ⑥한계가 없는가 ⑦한계가 있거나 또는 한계가 없는가 ⑧한계가 있지도 않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닌가. (3)영혼은 신체와 ⑨같은가 ⑩다른가. (4)여래는 사후(死後)에 ⑪존재하는가, ⑫존재하지 않는가 ⑬ 존재하며 또 존재하지 않는가, ⑭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 14가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을 14무기라 하며, ③④와 ⑦⑧의 질문을 제외한 경우에는 10난무기라 한다.
14무기로 표현되는 질문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보여준다. 먼저 (1)은 이 자연 세계가 영원히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로써 시간적인 영속성의 여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2)는 이 세계가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것으로, 공간적인 끝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3)은 영혼과 신체가 같은지 다른지의 문제로서, 인간의 정신적 본질과 신체의 구체적 관계를 묻고 있다. (4)는 부처님의 사후 문제로서, 이것은 인간이 죽은 뒤 윤회(輪廻)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모두 미묘하고 심오한 문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긍정과 부정의 단정적인 답변으로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다.
?전유경?은 이 질문들이 ?이치와 맞지 않고, 법(法)과 맞지 않으며, 범행(梵行)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 질문이 진리를 체득하는 데는 물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마치 독화살에 맞은 자가 화살을 빼내지 않고 독의 종류나 화살의 재료를 문제 삼아 논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는 14무기 같은 질문들이 인간의 구체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해답을 제시했다. 부처님 당시 사람들은 물론 동서양의 종교가들 또한 다양하게 그 해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대답은 과학적 지식과는 전혀 별개의 독단적인 대답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런 미묘한 문제에 대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한 부처님의 태도는 특히 돋보인다. 부처님은 언제나 자신의 가르침이 인간의 사유로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임을 제자들 스스로 확인하도록 가르쳤다. 인간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조심하는 합리적인 자세를 취했다. 신중한 철학적 자세와 합리적인 사유태도를 보여주는 부처님의 무기설은 25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13.불교의 수행
?몸과 마음 닦아 ?걸림 없는 삶? 찾는다?
불교는 부처님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부처님이란 진리를 알고 삶의 도리를 깨우쳐 일반 중생으로부터 깨달은 이, 즉 부처가 된 사람이다. 부처가 되었다는 것은 부처로 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은 물론 싯다르타 태자의 진리에 대한 열정과 깨우침에 대한 열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시일 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6년이라는 고행의 기간은 진리를 알기위해 들인 시간으로서 적은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리에 눈뜨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의가 모두 부처가 되는 수행의 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중생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 부처의 마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우리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않더라도 꾸준한 노력과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부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 이러한 부처의 마음을 얻는 구체적인 수행의 길로서 제시된 것이 계(戒).정(定).혜(慧) 즉 3학(學)의 구조이다.
3학.8정도.37보리분법 등
부처님의 마음을 갖는 노력
계는 계율(戒律)로서, 우리의 몸과 행위를 조절, 통제하는 것이다. 정이란 선정(禪定)으로서, 우리 마음의 깊은 정신세계를 통찰하는 것이다. 혜란 지혜(智慧)로서, 인간의 삶을 걸림 없이 살게 하는 자재로운 능력이다. 곧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조절하고, 깊은 정신세계를 통찰하여, 인간이 지닌 위대한 능력인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삼학의 구도로서 최고의 지혜를 얻어 해탈에 이른 사람이 부처님이다. 이 삼학의 근본구도는 초전법륜(初轉法輪)의 8정도(正道)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이 최초로 설하신 초전법륜의 가르침에서, 열반에 이르는 근본 가르침이 8정도이다. 8정도는 ①올바른 견해 ②올바른 생각 ③올바른 말 ④올바른 행위 ⑤올바른 생활 ⑥올바른 노력 ⑦올바른 기억 ⑧ 올바른 정신집중. 이 8정도는 기본적으로 3학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즉 ②에서 ⑤는 계율의 의미로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몸과 행위를 통제 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⑥에서 ⑧은 우리 마음을 통찰하는 것으로, 선정에 해당한다. 그리고 인간의 뛰어난 능력으로서 지혜가 ①이다. 이것은 연기의 이치에 따라 삶을 걸림 없이 보고 아는 구체적인 능력으로서 지혜를 의미한다. 이 3학으로 보여 지는 8정도의 수행구조는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할 수행의 근본구조로서, 열반에 이르는 구체적인 심신(心身)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3학의 구조를 근본으로 하여 우리 인간의 심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가르침이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다.
37보리분법은 보리 즉 깨달음을 일으키는 37항목의 수행단계라는 의미로, 불도(佛道)를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37조도품(助道品)이라고도 한다. 곧 4념처(念處; 몸.감각작용.마음.일체법을 관찰하는 것), 4정근(正勤; 생긴 악을 끊고, 생기지 않은 악을 막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을 나게 하고, 이미 생긴 선을 증대시키는 것), 4신족(神足; 선정을 얻는데 필요한 네가지), 5근(根).5력(力; 깨달음을 얻는 필수적인 다섯가지 요소와 그로부터 생기는 능력; 믿음.노력.기억.선정.지혜), 7각지(覺支; 지혜가 작용하는 일곱가지 단계), 8정도의 37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37조도품 또한 계.정.혜 3학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인간이 몸과 마음을 조절 통제하여 지혜를 일으키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불교의 근본목적은 모든 중생을 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인격성을 얻게 하는데 있다. 곧 부처가 되는 것이 근본목적이다. 그리고 부처가 된다는 것은 부처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중생의 마음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부처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부처의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고, 이러한 수행은 근본적으로 계.정.혜의 구조로 나타난다. 몸과 마음을 닦아 부처님과 같은 온전한 능력의 지혜를 일으켜 삶에 걸림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도가 추구하는 수행의 근본목적인 것이다.
14.승가란 무엇인가
불교의 ?사회적 역할? 상징하는 공동체
불교는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의 삼보(三寶)를 중심으로 한 종교다. 불보와 법보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칭하는 것으로, 부처님 개인과 개인의 종교체험을 의미한다. 불보와 법보가 개인적 성격을 보이는 반면 승보로서 교단인 승가(僧家)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승가는 초전법륜(初轉法輪)으로 다섯 명의 부처님 제자가 생기면서 형성됐다. 승가를 통해 불교는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었고, 인도사회에 하나의 종교문화 현상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세간과 출세간 결합된 문화현상
부처님 다섯 제자 생기면서 형성
다섯 비구가 부처님의 제자가 된 이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귀의(歸依)한다. 귀의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겠다는 큰 서원이다. 서원을 세운 사람들은 때로는 출가해 머리를 깎고 부처님을 따르기도 했고, 세간(世間)에 있으면서 부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실제 출가해 부처님과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을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라 하고, 세간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불교를 외호(外護)하는 재가자를 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라 한다. 비구.비구니는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남.여 불교도이고, 우바새.우바이는 재가생활을 하는 남.여 불교도다.
비구.비구니 모습은 인도의 독특한 출세간의 종교문화를 보여준다. 이것은 진리를 찾아 집을 떠나는 인도의 종교문화형태로, 일반적으로 인생 4주기로 표현되는 인도인의 삶의 형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태어나 배우고[梵行期], 집에서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家住期], 세간을 떠나는 준비를 하며[林捿期], 세간을 완전히 떠나는 것[遊行期]이 인도인의 인생 4주기, 출가는 마지막 유행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세간을 떠나 진리를 찾는 인도인의 삶은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문화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러나 후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불교는 인도와는 다른 독특한 모습으로 전개된다.
교단에 들어온 출가자는 부처님 삶을 모범으로 삼아 생활함은 물론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승가공동체의 삶을 이루었다. 부처님의 제자가 많아짐에 따라 공동체 삶도 복잡해지고 다양하게 되었다. 복잡하고 다양한 공동체의 삶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공동체 규칙.규율이 부처님 열반이후 계율(戒律)로 정리된다. 계율은 공동체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문제를 규정한 것으로,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에 의거해 모든 규정이 성립됐다. 다시 말해 승가의 규칙.규율은 모두 부처님의 말과 행동에 의거해 성립한 것이다.
반면 재가불교도는 기본적으로 세간의 삶을 영위하며 부처님을 따르고,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는 출가자들을 스승으로 받들며, 그들의 생활에 도움 주는 역할을 했다. 재가자는 삼보(三寶)에 대한 귀의를 기본적으로 서원하고, 교단을 외호하는 존재였다. 재가불교도가 존재함으로써, 출가교단인 승가는 경제적인 문제 등에 구애됨이 없이 진리의 길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출가종교문화 풍토가 형성됐다는 것은 출가문화를 존중하고 받드는 재가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도사회가 출가자에 의한 출세간(出世間)문화와 재가자에 의한 세간(世間)문화로 정형화되고, 이 두 문화가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독특한 인도종교문화가 만들어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승가 역시 출세간문화와 세간문화가 함께 결합된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승가는 불교가 시대에 맞는 활동을 전개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또 사회적 역할의 중심체로, 승가는 기본적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근본으로 삼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15.여래 10호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에 대한 호칭
불교는 부처님을 따르는 불교도(佛敎徒)들에 의한 사회현상이다.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 집단인 승가(僧家)가 형성됨으로써 불교는 사회적인 현상체로 등장했다. 승가는 기본적으로 출가의 불교도와 재가의 불교도로 구성되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인도에서 승가는 출가 집단이었다. 재가 불교도는 불교도란 이름으로서 불교의 일원이긴 하였지만, 승가를 외호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 재가의 불교도와 출가의 불교도가 모두 공동의 이념으로 함께 불교도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부처님이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말씀인 법을 따르겠다는 서약이 바로 그것이다.
부처님은 불교가 종교의 모습으로 사회적인 현상체로 등장한 이후 불교의 교주(敎主)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곧 불교의 핵심으로서 모든 불교 사상의 근원이고, 또한 승가 생활의 일체에 있어서도 그 구심점이었다. 이렇게 부처님을 중심으로 한 불교는 인도사회에서 그 역량을 증대시키며, 또한 종교적 세력도 넓혀간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한 것을 의미하고 그로 인해 불교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초전법륜(初轉法輪) 이후 45년간에 걸친 부처님의 모든 삶은 불교가 인도사회에서 그 종교적 역량을 증대하는데 기여하였고, 또한 기존의 인도사회에 새로운 정신적 이념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다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교주인 부처님에 대한 이해도 새로워졌다. 즉 부처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부처님에 다양한 호칭이다.
일반적으로 여래(如來) 10호(號) 라고 일컬어지는 부처님의 호칭은 재세 시에 부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이해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여래10호란 여래(如來), 아라한(阿羅漢),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의 열 가지를 가리킨다. 여래란 부처님 재세 시부터 사용된 말로, 진리의 세계[如]로부터 온 사람을 가리킨다. 곧 진리를 깨달은 자를 말한다. 아라한이란 응공(應供)이라 번역되어 세간으로부터 공양을 받을만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 말은 후에 부파불교의 교학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을 가리키게 된다. 정변지란 올바로 완전히 깨달은 자. 명행족이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모두 갖춘 자. 선서란 완전한 행복을 얻은 사람. 세간해란 세간을 모두 잘 알고 있는 사람. 무상사란 더 이상 위없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 조어장부란 인간을 잘 다스리는 사람. 천인사란 신들과 인간의 스승. 불세존이란 깨달은 자 붓다로서 세간의 존경을 받는 사람. 이처럼 부처님은 다양하게 불려졌다.
여래 10호는 진리를 깨달은 위대한 스승으로서 부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곧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위없는 진리를 깨우치고, 지혜와 행동이 원만하고, 세간의 일체 일을 행함에 있어 걸림이 없는 자재(自在)로운 사람,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모습이다. 따라서 부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대부분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맹세하였다. 곧 불교가 사회적인 모습으로 인도 사회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는데 부처님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불교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은
또한 불교에 비판적인 다른 인도종교가 나타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처님이
무아설(無我說)로서 전통적인 바라문교를 비판한 것을 비추어
보면, 불교의 영향력 증대는
자아(自我)를 인정하는 다른 인도종교의 결속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불교의 삼보(三寶),
[불보 : 통도사 사리탑]
[법보 : 해인사 법보전]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이것이 발전하게 된 것은 그가 죽은 후(B.C 544)이며, 기원 전후에 인도 ?스리랑카 등지로 전파되었고, 다시 동남아시아로,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교권(敎圈)이 확대되어 세계적 종교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4세기 이후로는 이슬람교에 밀려 점차 교권을 잠식당하고 오늘날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아직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티베트에서 몽골에 걸친 지역,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 많은 신자가 있으며,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사찰의 기원]
사찰은 부처님을 모시고 스님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닦고 불법을 수행하는 곳이다. 불교는 거룩한 진리를 받들고, 그 진리의 구현자이신 부처님을 받든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들을 받들어 스스로 지혜롭게되고 또 사회를 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사찰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많은 기구와 활동 방안을 가지고있다. 사찰에는 불상과 탑, 그리고 덕이 높으신 스님들이 계실 뿐 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재를 간직한 곳이다. 아울러 사찰은 불교 신자들이 지혜와 용기를 얻는 근원지이고 또한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함께 모으는 장소이기도 하다.
[승보 : 송광사 국사전]
절을 가르키는 말에는 정사(精舍), 가람(伽藍), 아란야, 사찰(寺刹), 암자(庵子), 도량(道場) 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정사' '가람' '아란야'는 인도에서 유래된 말이며 '사찰' '암자' '사(寺)'는 중국에서 연유한 것이다. 불교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절은 마가다국 왕사성(王舍城)의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인도에서는 승려들이 사시는 곳을 비하라(精舍), 차이트야(之提), 승가람(伽藍), 아란야(阿蘭若) 등 4가지로 구별하여 불렀다고 한다.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은 후한 명제 영평10년에 인도에서 두 스님이 백마에 불경을 싣고 낙양에 들어가서 외국 손님을 주관하는 홍노사(鴻爐寺)에 머물게 된 후부터 스님들이 계시는 곳을 사(寺)로 부르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절을 사원이니, 사찰이니, 사암으로 부르게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375년)은 소수림왕 2년(372년)에 전진(前秦)에서 귀화한 순도(順道)스님을 맞아 지은 초문사(肖門寺)이다. 이로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절'이란 순수한 우리말인데 신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될 때는 나라에서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아도(阿道)화상이 지금의 경북 선산군, 그때 일선군(一善郡)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서 몰래 포교하였다. 모례는 본래 우리말인 '털례'를 한자로 적은 말이다 '털례'가 변해서 '털- 덜- 절'로 바뀌었다는 전설과 절(寺)은 절(拜)을 많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삼보사찰]
불교에서 삼보(三寶, 세가지 보물)이라 함은 바로 우주일체진리를 깨우치신 부처님[佛寶], 부처님께서 전하신 진리의 말씀[法寶], 그리고 부처님의 법대로 수행하시는 스님[僧寶]를 말한다. 바로 이 삼보에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는 것이 불교 신앙의 핵심이다. 부처님께 드리는 예불문은 삼보귀의에서 시작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 하여 통도사와 해인사, 송광사를 신앙의 근본이 되는 사찰로 존중하여 왔다.
첫째의 불보(佛寶)사찰 통도사는 신라시대 자장스님에 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적멸보궁이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진신을 모신 사찰이라는 뜻에서 불보사찰이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의 법보(法寶)사찰 해인사는 세계의 문화유산인 고려 목판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셨다는 의미에서 법보사찰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셋째의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는 고려시대 이후 16국사가 배출된 승가의 대표적 사찰로써 우리나라 최고의 승보사찰로 숭앙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