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승리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해방을 받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판관들의 통치하에 살게 되었을 때에 되어진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판관기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특별하신 사랑과 은총을 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으니 그들은 먹거나 입거나 자나깨나 하느님만 영화롭게 해야 했으며 하느님의 계명을 범하는 일을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저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이웃 이방의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습격하는 전쟁을 일으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곤경에 빠뜨려 하느님을 찾는 신앙을 갖도록 하는 일을 하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습격하여 온 미디안 숫자는 무려 (135,000)명에 달하는데 여기 성경은 날아다니는 메뚜기떼와 같이 많다고 했고 낙타의 수효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위기일발에 놓여 있고 민족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 때에 하느님은 신앙의 사람 기드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시키는 역사를 하시는데 군인을 모집케 되었다.
그래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 본문의 기사입니다. 오늘 이같은 사건을 중심해서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특별히 선발된 군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미디안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모여든 이스라엘 군사가 32,000명 이었습니다. 그중에 겁을 먹고 두려워 떠는 자 22,000명은 돌려보냈습니다. 10,000명 중에서 진실한 정병을 또 추리기 위해서 강으로 나가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중 물먹기를 평안한 자세로 무릎을 끓고 마신자 즉 미디안 군사가 쳐들어 오든 말든 목이 갈하니 우선 물이나 마시고 보자 하는 군사로서의 책임감을 잊어버리고 해이한 마음가진 자 9,700명을 또 돌려보내어 기드온은 정병 300명으로 줄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300명을 특별히 선택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정병들은 자기의 책임이 막중함을 느껴서 무장을 한채 적을 살피며 임전태세로 서서 손으로 물을 움켜 핥아 먹는 자는 책임감이 충실한 정병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수효가 적었으나 하느님이 함께 하는 하느님의 정예로운 군대였습니다.
첫째, 이는 작은 일도 소흘히 여기지 아니했다는 뜻입니다.
물로 혀를 핥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중요한 일 큰 일은 대단한 일에서 시작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실은 평범한 일을 중요시 여기는데 뜻이 있습니다.
둘째, 언제나 방심하지 아니했다는 뜻입니다.
급한 전시에 무릎을 끓고 태평무사하게 물을 마실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급한 전시에는 급히 일을 서둘러야 합니다. 매사에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큰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됨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마태 25:21) 큰일이 따로 있고 작은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꼭같은 것입니다. 작은일은 큰일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작은 일도 큰일 같이 생각하는 자들로써 300명이 선발이 된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 하늘나라의 백성들을 선발하신다면 우리 모두는 선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께서하늘나라백성을 선발에 기준이라고 예상을 한다면
*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는 자들이고(마 5:10)
* 죽도록 충성하는 자이고(계 2:10)
* 하느님과의 동행하는 자이고(창 5:24)
* 주를 위해 순교를 하는 자이며(행 7:54-60)
* 천국을 구하는 자입니다(눅 23:43)
2. 하느님만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만을 의지한다 함은 결코 쉽지는 아니합니다. 더구나 오늘과 같은 물질만능주의와 사상이 팽대하고 있는 현대에서 이 말씀은 시대에 뒤떨어진 처세론이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만 의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사 2:22)는 말씀을 비롯하여 "방패를 의지하지 말라"(시 146:3)고 인간의 유한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느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한 결과 7년간이나 괴롭히던 미디안 아말렉의 연합군을 분쇄하고 승리를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교형자매 들이여, 우리를 멸시하고 자극을 주는 것들이 있어도 하느님만 의지하면 때가 되면 다 승리의 날이 올 것입니다.
3. 적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담대한 신앙의 소유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며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모세는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폭군 파라오왕 앞에 서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놓아달라고 호령하였습니다.
소년 다윗은 신앙의 담력을 가지고 거인 골리앗, 블레셋 장군과 대결하여 그를 패배시켰습니다.
여기서 "에스텔"은 담대한 신앙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로 위기일발의 이스라엘민족을 "하만"의 계략에서 구원시켰습니다.
"세례 요한"의 담대함이 "헤롯왕"의 불의를 책망하였고
초대교회 "스테파노" 는 담대함으로 예수님를 증거하다 순교했습니다.
이 담대한 배후에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우들이여 이들과 같이 담대하게 신앙에 정조를 지키며 생애의 보람된 일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수에 대한 관념이 너무나 분명하고 또한 민감합니다. 본문에 기술된 여호와 하나님의 명하심은 무기가 많아야 한다는 당위적인 결론을 무시한 처사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32,000명을 300명으로 줄이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실로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더구나 적군은 연합군으로서 메뚜기 때처럼 평지를 덮고 낙타는 바닷가의 모래알 처럼 수없이 많은 강적이고 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계속되는 하느님의 명령에 일언반구의 반대없이 하느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였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염려에 조금도 사로잡힘 없이 순간 순간 하느님의 명령에만 충실하였던 것입니다.
실상 우리 교우들에게는 그 때 하느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불합리하다고 함은 인간의 이성을 중심한 판단일 뿐 하느님의 결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못하니까 하느님도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불신이요 범죄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본질적인 차원이 다르며 그분은 인간을 지으신 분이요 또한 섭리하시고 유지 보존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극심한 도전과 반응의 소용돌이 속에서 승리의 삶을 지속하려면 언제나 창조주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명령은 반드시 순종하여야 만 하며 또한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우리도 기드온의 말씀에 순종심을 배워서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써 세상의 닥치는 일들에서 승리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5. 이들은 전력을 다하는 전투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군을 이끌고 미디안군의 진을 쳐들어가 승리하였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잘 싸워 이겼습니다. 기드온은 그를 쫓는 모든 백성들과 일찍이 일어나서 이동을 하며 서둘렀습니다.
1절에 "기드온과 그를 쫓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첫째, 시간을 아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일군들은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죄입니다. 왜 시간을 아껴야 하는가? 세월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에페 5:16) 악한 세상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망할 세상에서 망할 짓을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준비에 착실하였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일어났다는 것은 준비를 위하여 서둘렀다는 뜻이 됩니다. 준비를 잘해두면 당황하지 않습니다. 유비무환이란 말이 있듯이 미리 준비해두어야 후회하지 않는 법입니다. 믿음의 등을 준비해 두어야 재림의 준비를 기쁨으로 맞을수가 있습니다.(마태25:7)
우리는 범사에 준비를 잘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준비를 착실히 잘해야 주님 재림시에 주를 맞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디도 1:12)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여 게으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받는 자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고 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고 했습니다.
셋째,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만사에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아야 하지만 하느님의 일군들은 더욱 그러 해야 합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망신하고 맙니다(잠 18:9). 한달란트 받은 자가 책망을 받고 쫓겨난 것은 다른 잘못 때문이 아니라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고 했습니다. 성도들이여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가 되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6. 지도자의 명령에 움직이었고
기드온은 먼저 군대의 편대를 우익 좌익 본부 등 100명씩 3대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큰 부대인 것처럼 위장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3백명 전원에게 특이한 무기를 소지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나팔과 빈 항아리와 횃불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사실 무기라고 할 수 없는 빈약한 장비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빈약한 무기를 들고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군사들에게 기드온은 나만보고 나의 하는대로 하라고 단호하고 확신에 찬 작전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작전명령 역시 하느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300용사들로 하여금 더욱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했습니다. 기드온은 본부대를 자기의 지휘하여 선발대로 삼고 선발대가 먼저 나팔을 불 때 좌 우익의 군대도 따라서 나팔을 불고 동시에 모든 군사가 여호와를 위하여라 기드온을 위하여라 함성을 지르도록 명령했습니다.
이 함성은 기드온의 군대가 가진 무기를 보잘것 없었으나 그들이 여호와와 기드온을 신뢰하고서 전투에 임하였음을 증거하는 강력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승리를 약속해 주셨으므로 "여호와를 위해서" 싸웠으며 또 하느님께서 기드온을 사역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에 "기드온을 위하여" 싸우는 믿음으로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7. 성도들도 영전을 승리를 해야 합니다.
(딤후 4:7-8) "내가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영접을 하고서 그후 저의 생애를 영전을 승리를 했습니다. 이는 다 예수를 영접한 자들이 걸어가야 할 일이며 주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싸울 영전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만 이같은 길을 걸어간 것은 아닙니다.
* 에녹은 300년동안을 영정에서 승리를 하였고
* 노아는 120년 동안이요
* 요셉은 수많은 일들이 방해를 했지만 신앙으로 극복을 했고
* 욥은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이 있었지만 그 모든 시험을 이길 것입니다.
*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짐을 당해도 영전으로써 승리를 한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천국은 힘쓰는자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에서 승리자가 됩시다.
결 론
7년간이나 미디안인으로부터 고통을 받던일을 덜어준 기드온의 용사들 같이 이 시대에 도움과 보람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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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싸움에 필요한 精兵(정병), 믿음의 사람을 뽑으시는데 그 방법을 알려주신다.
[삿 7:4-7]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말것이니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싸움은 인간이 하는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왕벌 곧 천군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군대 천군과 함께 할 자들은 믿음의 사람이다. (가나안 정북은 누가 하는가?)
신약이나 구약이나 하나님앞에 택함 받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준다.늘 긴장되어 있는 상태, 곧 성령의 의식으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듣고, 보고, 말하고, 행하려 하는지 아는 상태여야 한다.
이 글을 읽는 것조차 이렇게 읽고 이렇게 느끼며 생각하는구나를 성령의 의식으로 보고 있어야 한다.
마귀와 싸워야 하는 전장임을 알지 못하는 현대의 교인들. 마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대적인 마음, 상대적인 차별의식을 통해서 역사해옴을 알아야한다.
사사기에 기록된 기드온 300명의 용사들의 싸움은기록으로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된 게릴라 戰이 된다.
그 구분은 이러하다.
무릎을 꿇고 혀로 물을 핥아 먹는 자와 손으로 물을 움켜 떠서 입에 먹는자들을 각각 따로 세우니 손으로 물을 떠서 먹는자가 삼백명이었더라. 이 성구는 교인이라면은 많이 들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아는 말씀이리라.
위 말씀은 전장에 임하는 자의 정신이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하는 것에 대한 상태를 말한다.
사람의 행동은 의식이나 정신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정신과 생각이 한가지 일에 집중되어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행동과 잡다한 정신상태에서 나오는 행동은 다르다.
이 일은 애급에서 출애급하는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먹을때와 같다.
이 일은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사람의 의식상태가 항상 깨어 있어야함을 말한다.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하여야 늘깨어 있는 생활을 할수있는 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터임을 알아야한다.
나사못처럼 풀린 정신과 의식의 상태를 가지고는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