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숫자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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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영적세계(the spiritual order) 삼위일체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상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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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악의 수( number of evil) 7의 절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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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창조세계(the created or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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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불완전(imperfection) 2X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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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완전(perfe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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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전체(total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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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 3x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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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곱반복 |
강조(intensific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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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00 |
하나님 백성의 수 3x4x1000=14,4000 |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 21:11) 종종 이 구절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153이란 숫자에 관심을 가진다. 우선 153은 수학에서 "트리플 큐브 넘버" 라고 부르는 수다. '트리플 큐브 넘버'란 각 자리수를 각각 세제곱에 더한 값이 원래 자신의 수가 나오는 수를 말한다.
1의 세제곱 (1) + 5의 세제곱 (125) + 3의 세제곱 (27)= 153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 숫자의 마술에 걸려 버린다. 100부터 1000사이에 트리플 큐브 넘버는 단 4개만 존재한다. 153, 370, 371, 407,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153 외에도 트리플 큐브 넘버를 장식하는 수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과연 153마리의 물고기를 통해 주님은 이런 것을 말씀하려고 하셨던 것일까? 아니다.
그물에 가득 담긴 153마리의 물고기는 그분의 선물이었다. 제자들은 놀랐다. 크기에 놀랐고 숫자에 놀랐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물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찾아오신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백하게 된다.
그물에 걸린 바다. 주님은 선물을 받기 위해 내미는 그물을 찢으신 일이 한번도 없다. 축복을 받고파 내미는 우리의 밥그릇을 깨뜨려 쪽박을 차게 한 일도 없으시다. 그릇대로 넉넉히 채워주시는 분이다. 오히려 그분은 밥상까지 차려놓고 우리에게 권한다. "와서 먹으라."
차라리 153을 이렇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1. 하루에 한 번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하기
2. 하루에 다섯 가지 이상 감사거리 찾고 잠들기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5)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기뻐진다"는 말이 있다. 특히 나른해지는 오후, 웃음펀치야말로 에너지원이다. 하하하 먼저 자신을 낮추고, 호호호 즐거운 표정으로. 희희희- 좋은 것만 생각하며, 허허허- 마음을 비워, 해해해= 감정의 찌꺼기를 내다 버리는...그게 진짜 웃음이다.기왕 웃을 웃음 크게 웃어보라. 엔돌핀이 팍팍 쏟아진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잡힌 물고기의 수가 백쉰세 마리였다고 적어 놓은 것도 역시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왜 저자는 굳이 그 수를 적어 놓았을까?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잡힌 물고기 수가 백쉰세 마리였으니까 그렇게 적었겠지요!" 그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백쉰셋이라는 수가 정확하게 전해지고 복음서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요한복음을 보면, 저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에만 장소나 시간 혹은 숫자를 밝힙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백쉰셋이라는 수에는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음에 분명합니다.
그 숨겨진 의미가 무엇일까? 지난 2천년 동안 성서학자들이 이 비밀을 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의 히브리 이름 ‘시몬 요나’(바요나 시몬)의 스펠링을 수로 환산하면 153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로마자 알파벳처럼 수 값을 가지고 있는데, 시몬에 해당하는 알파벳의 수 값을 합치면 118이고, 요나에 해당하는 알파벳의 수 값을 합치면 35라는 겁니다. 118 더하기 35는 153입니다.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문제는 별다른 의미나 교훈을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53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도 신기해 보입니다만, 그 의미도 알 수 없고, 이렇게 복잡한 산수를 의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것을 의도했다 한들, 그것을 깨달아 알만한 수학 천재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있었겠습니까?
이것과는 달리, 신빙성 있어 보이는 제안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가장 탁월한 성서학자 중 하나였던 오리겐(Origen)이 제안한 것인데, 예수님 당시 알려져 있던 물고기의 종류가 모두 백쉰세 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맞는다면, 백쉰셋이라는 수는 ‘모든 종류를 포함함’ 혹은 ‘온전함’(completeness) 혹은 ‘충만함’(fullness)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해석이 제일 사실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백쉰세 마리를 담고 있는 그물은 마땅히 담아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교회 혹은 마땅히 담아야 할 것을 모두 담고 있는 인생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명령하시고 제자들이 그 명령에 순종하기 전까지 그들의 그물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 개인의 인생도 빈 그물이었고, 그들의 공동체도 빈 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 속에 오시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들의 그물은 이 세상의 모든 물고기로 가득 찼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살아갈 때, 이 세상의 모든 민족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믿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 갈 때, 필요한 모든 것으로 그 인생이 채워질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일오삼 볼펜’을 아시는지요? 한국 문구 산업의 개척자인 모나미 볼펜 말입니다. 하얀 몸통에 검은 펜 끝, 단순하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 그 볼펜 말입니다. 이 볼펜에는 예외 없이 153이라는 수가 새겨져 있습니다. 왜 153이라는 수를 여기에 새겨 놓았는지, 추측도 많고, 가설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과 오와 삼을 더하면 아홉 즉 화투판에서 큰돈을 딸 수 있는 갑오 자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가설은 모나미 볼펜의 최초 가격 15원과 출시된 첫 해 1963년의 3자를 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다른 데 있습니다. 모나미 기업의 회장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그분이 요한복음 21장 11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업에 임하면 마치 제자들이 백쉰세 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은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성공하리라는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그분의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그물을 가득 차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작은 가게의 주인인 내 삶을 팔뚝만한 물고기들로 가득 채워주시기 위해서, 사업가로서의 내 삶을 큰 물고기로 가득 채워 주고 싶으셔서, 변호사로서의 내 삶의 그물을 가득 채워 주고 싶으셔서, 비록 큰 기업의 말단 사원이지만 내 삶의 그물을 찢어질듯 가득 채워주고 싶어서 그러십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기도의 골방에서만 찾지 말고,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분은 내 삶의 그물을 가득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백쉰셋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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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제자들은 큰 고기를 '백쉰세 마리'나 잡았습니다. 여기서 유래되어 153의 숫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충만을 상징하는 숫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그물은 요한 복음서를 의미하고, 큰 고기 153마리는 요한복음서에 진리의 말씀이 153개 말씀이 담겨있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 정확히 몇 말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그함마디에 발견된 도마복음서가 114개의 말씀으로 이루어 진 것을 감안하면 백쉰세 말씀은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초기 그리스도교의 심벌은 물고기였습니다. 사찰에 가면 법고나 범종 옆에 나무로 만든 물고기(木魚)를 목격하기도 합니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고 잠을 잔다고 합니다. 언제나 눈을 뜨고 있으므로 깨어있음과 수행을 상징합니다. 복음서에서 물고기는 빵과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영적 양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늘 복음에서도 숯불위에 물고기도 굽고 빵도 굽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어둠을 상징하는 밤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는 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해도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것처럼 어둠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모습을 드러내시자 여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광명의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말씀을 실천하여 큰 고기를 '백쉰세 마리'나 잡았듯이 말씀을 실천하여야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욕심내서 밥을 무한정 먹으면 배가 찢어져서, 배 터져서 죽게 됩니다. 물욕은 화를 부르지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고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결코 탈이 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욕심내도 결코 탈이 없는 것은 오직 영적 양식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욕에 눈이 멀어서 갈기갈기 찢겨져 있습니다. 이를 봉합하는 일을 이제 우리가, 우리 교회가 해야 하고 찢겨진 그물을 다시 꿰매어 온전한 그물을 주님께 바쳐야 참 된 제물이며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는 원 포인트 레슨을 듣고 곧바로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알았던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생전의 모습으로 오셨으면 "누구십니까"이런 표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예수님은 생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변모된 모습으로 오셨지만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제자들은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루카 21,2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약속을 언제나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 주위에는 말씀을 실천하는 존경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계십니다. 제자들이 변모하신 예수님을 알아봤듯이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통해서, 그분들의 말씀을 통해서 바로 그분들이 이시대의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많은 밀알로 부활하셨습니다. 새로운 밀알인 이 시대의 예수님을 만나 뵙기를 늘 그리워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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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원하신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큰 고기를 153마리나 잡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하려면 100마리, 혹은 200마리 그것도 아니면 천 마리라고 하지 왜 하필이면 153마리라고 했겠습니까?
153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상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1부터 17까지를 다 더한 값입니다. 즉 1+2+3+…+16+17=153이죠.
그럼 왜 하필이면 1부터 17까지를 더하겠습니까? 17이라는 숫자는 10+7입니다.
10은 당시에 이방인들이 사용하던 10진법에서 처음 나오는 완전한 숫자이고 7은 이스라엘 종교적으로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10은 이방인을 7은 유다인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물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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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53마리일까?-재미있는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