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2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수장은 영국의 총리 처칠입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당시 그의 수첩은 수많은 일정으로 빼곡히 차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일정의 대부분은 폭격 현장을 찾아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칠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정확히 알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집무실에서 탁상공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 찾아가는 그의 태도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하였고, 결국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현장’을 찾아가는 정신은 비단 정치계에서뿐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도 이를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말씀’으로만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 말씀을 전하시고자 당신의 ‘현장’인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곳곳을 돌아다니시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파견하셨습니다.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가만히 자기 자리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보여 주셨듯이 제자들에게도 현장을 찾아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 울타리 안으로 사람들을 이끌도록 하는 것만이 파견의 본질이 아닙니다. 울타리 너머 삶의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 주님께서 몸소 보여 주시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내용입니다.
헛됨에 빠져들지 않게 하소서
반영억라파엘신부
“오늘도 말과 행동 지켜주시고 온갖 악 피하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혀 삼가토록 보살피시어 시비에 말려들지 않게 하시고 우리 눈 조심토록 지켜 주시어 헛됨에 빠져들지 않게 하소서.” 성무일도 아침기도의 찬미가 일부입니다. 온갖 악을 물리쳐 이겨야 하고, 헛됨에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몰라서 잘못을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의지가 약하고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일순간의 기쁨을 맛보기위해 큰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인사하느라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고 하시며 헛됨에 빠지지 않도록 단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넉넉해야 무슨 일을 해도 할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저 ‘하느님나라가 다가 왔다’고 전하길 원하셨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여장을 꾸리고 인사치레를 하는 것에 그리고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이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자신의 안락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소돔이나 띠로, 시돈은 이방인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하느님의 저주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이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경고입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결국 그 지역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스스로 파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헛된 것에 빠지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은총으로 다가오시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나 없이 나를 내신 하느님께서는 나 없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십니다”.
우리도 자칫 그릇된 신심에 빠져 자기가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중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머무르면서 삶은 교도권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주장에 빠지는 그들에게는 겸손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일치가 없고 분열을 조장하고 자기도 모르게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에 따르는 순명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놓여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원하는 대로 받을 것입니다”(집회 15,17). 그러므로 어떤 처지, 상황에서든지 생명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지난 화요일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이신 필로니 추기경님께서 서울대교구를 방문하셨습니다. 교구청의 직원들과 신부님들이 추기경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인류복음화성 직원들보다 서울대교구의 교구청 직원들이 더 많다고 하시면서 서울대교구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추기경님의 모습은 교황님처럼 아주 겸손하셨고, 인자하셨습니다. 교구청 국장 신부들과의 만남에서 추기경님께서는 몇 가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많은 협력자가 있기 때문에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있어서 교회가 풍요로워진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 성사, 은총을 통해서 교회에 많은 선물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그런 선물을 교회 안에서만 나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무상의 선물을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신자 현황을 물어보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하느님의 선물을 나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생각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신앙은 선물이다.’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제게 신앙은 큰 선물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저 역시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신앙은 제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신앙은 제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신앙은 제 인생의 나침판이고, 제 인생의 등대와 같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진리를 무상으로 받았으니, 신앙은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 맞습니다.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들이 있습니다. ‘기도, 희생, 봉사, 나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의 정거장을 지나치곤합니다.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나누겠다고 하면서 지금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성당에서 주어지는 희생과 봉사의 시간들과 나의 여가 시간이 겹쳐지면 내 몸과 마음은 희생과 봉사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여가 시간으로 기울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우리는 모두 주님 포도밭의 일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