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한6,1-15)
제1독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물러 나왔다.>(사도5,34-42)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그들에게 말하였다.
35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화답송>시편27,1.4.13-14(◎4ㄱㄹ)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복음<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요한6,1-15)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사도5,34-42)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38-39)
사도행전 5장 33절에서 42절까지는, 사도행전 5장 29-32절에 나오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증언을 들은 최고 의회 의원들이 몹시 분노하여 사도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중재로 석방되는 내용과 사도들의 계속적인 복음 전파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율법 교사'로 번역된 '노모디다스칼로스'는 '율법'을 뜻하는 '노모스'(nomos)와 '선생', '교사'를 뜻하는 '디다스칼로스'(didaskalos)의 합성어이다. 실제 이 용어는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는 율법에 관해 권위있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매우 탁월한 율법 박사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하느님의 상급'이란 이름의 뜻을 지니고 있는 '가말리엘'은 유명한 랍비였던 '힐렐'(Hillel)의 손자로서 당시 샴마이(shammai)학파와 더불어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힐렐 학파의 수장이었다. 또한 그는 사도 바오로의 스승으로 언급되고 있다(사도22,3).
사도행전 5장 34-39절에 나오는 대로 그의 중재는 사도들의 목숨을 건져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가말리엘이 원래 사도들이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하여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중재안을 낸 것은 두 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그의 성품에서 말미암은 것인데, 그는 사도들에게서 특별히 그들을 죽일만큼 율법을 거스른 행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교리적인 측면인데,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사이파인 가말리엘은 당시 최고 의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사두가이파가 부활을 부인하고 있었기에 사도들의 편에 선 것이었다.
사두가이파 역시 법적 근거없이 사도들을 사형에 처할 경우 백성들의 반발이 우려되고 가말리엘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서 사도들은 사형이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바리사이파 사람인 가말리엘을 사용하여 사도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해 내신 것이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38) 에서
'관여하지 말고'라는 뜻의 '아포스테테'(apostete)와 '내버려 두십시오'라는 뜻의 '아페테'(apete)라는 표현을 통해 사도들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아포스테테'는 '떠나다'는 뜻의 동사 '아피스테미'(apistemi)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며 '아페테'는 '버려두다'는 뜻의 동사 '아피에미'(apiemi)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상의 강조는 사도행전 5장 39절의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와 연관이 된다. 사도행전 5장 38절의 두 개의 명령은 사도행전 5장 39절의 '~하지 않도록'이라는 뜻으로서 강한 염려를 가리키는 '메포테'(mepote)로 시작되는 구절에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내버려 둘 것을 강조한 이유는 설사 그들을 벌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며 오히려 일이 잘못되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가말리엘은 사도들의 주장에 비록 동조는 하지않지만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에 대하여는 분명한 신뢰를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歷史)의 주관자는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역사에 대하여 인간은 철저히 순응해야 한다는 신관(神觀)과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39)
'메포테'는 '~하지 않도록'이라는 뜻으로서 사도들을 그냥 보내 주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데오마코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테오마코이'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테오스'(theos)와 '싸우다'는 뜻의 '마코마이'(machomai)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하느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자'를 가리킨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난 일을 가로막는 것은 곧 하느님을 대항해 싸우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메포테'는 '심지어 ~라도'(even)라는 뜻의 부사 '카이'(kai)의 수식을 받는 구조로 사용되어 강조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가말리엘이 최고 의회 의원들에게 말한 내용의 강조점은 혹시라도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그들 스스로 경계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섭리와 역사의 엄정성을 신뢰하는 가말리엘의 현명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부활 제2주간 금요일(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한 파스카 신비를 어떻게 삶에서 실천할지 묵상해 봅니다.
제1독서는 율법 교사이며 바리사이였던 가말리엘이 최고 의회에서 발언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타르수스의 사울, 곧 바오로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성령 강림 뒤 사도들의 활동이 본격화되자, 유다교 지도자들은 술렁거리며 흔들립니다.
이런 배경에서 가말리엘이 연설을 합니다.
“만일 사도들의 활동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면 그들을 없앨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연스럽게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기존 종교 형식을 뛰어넘어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가능성을 열어 놓고 유연성을 갖춘 합리적이며 겸손한 태도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복음서들에서 중심 자리를 차지하는데, 주님의 갈릴래아 공생활의 정점이자 종결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부분,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라는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로마 제국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하느님의 종이시기에 군중의 기대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일상에서 위기와 어려움에 부딪히며 살다 보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메시아’ 또는 ‘하느님’의 모습에 사로잡혀, 자칫 모든 불행이 하루아침에 없어질듯이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에서 파스카 신비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어쩌면 멀리 돌아가는 길, 곧 십자가를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영광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부활 제2주간 금요일]
하늘의 빵으로 배를 채웁시다.
(요한6,1-15)
1 그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은 어디? 마태오, 마르코 복음은 외딴 곳, 루가는 황량한 곳으로 소개한다. 모두 에레모스(광야)를 뜻한다. 광야에서 하느님의 일을 예수님께서 다시 하려 하신다.
(신명8,2-3)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40년(인생) 광야의 삶에서 ‘사람이 빵 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만나를 말씀으로 먹어야 했음을 깨닫지 못해 말씀으로 살지 못해, 간직하지 못해 실패했다. 그래서 모두 죽었다.(요한6,49) 그런데 여전히 말씀이 아닌 빵 만으로 살아 죽어야 할 하느님의 백성을 다시 살리시려 예수님께서 가시는 것이다.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 표징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뜻을 위한 사람의 눈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 예수님께서 하실 일은 첫 파스카의 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곧 죽어야 할 죄인들이 어린 숫양의 희생으로 살아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 예수님은 필립보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물으셨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와 함께 그 문제의 해결에 나서고 계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필립보에게 ‘자기와 주님이 함께 있다.’ 라는 그 사실을 각인 시키시는데도 필립보는 자신의 생각으로 걱정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필립보는 예수님의 시험에서 탈락한 것이다. 아니 필립보가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대표로 시험을 받은 것이고, 모든 이가 탈락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5절을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물으셨다. ‘세상이냐? 하늘이냐?’를 물으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으시지 않으셨다.
‘어떻게 살 것인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말씀 속에는 이미 너희의 배를 채울 ‘빵을 살 능력이 나에게 있다.’라는 것을 전제하고 물으신 것이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토막)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자신의 생각, 세상의 논리로는 소용이 없다, *보리- 간음한 여인의 제물로 부정한 음식이며(민수기5,15) 다섯 또한 구약의 모세 오경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고기 둘도 선 악을 뜻하는 것으로 그 모두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심판을 뜻한다.(사도13,38 로마3,20참조)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草)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시편23,1-3) 1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3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 예수님께서 목자로 부정한 음식들을 당신이 드시고(죽고), 영혼의 생기로 바꾸어 생명의 빵으로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요한10,11)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 성찬례의 모형이다.
(루가22,19-20)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진정한 하늘의 생명(배부름)을 하느님 당신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해 ‘당신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빵을 찢듯 찢으신다.’가 오병이어의 기적인 것이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12) 광주리가 가득 찼다.
= 부정한 다섯(5)이 하느님의 백성, 아들(12)이 되었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 빵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곧 ‘사람이 빵 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이들이 자신들의 입맛(뜻)에 맞는 빵(가르침)만을 원했기에 예수님께서 피해 가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뜻, 욕망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인 우리의 영의 구원을 이루시려 오신 분이심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전에 배운 요한복음을 정리하자면~
1장에서 천지창조의 모습을 다시 보여 주셨다. 첫째날- 빛이 시고, 둘째날- 물 세례를 받으시고 셋째날-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 주시고 사흘 동안 제자를 모으시고 넷째, 다섯째, 여섯째날 체험, 사건들로 채우시고 사흘 후~ 2장 일곱째 날- 가나의 혼인잔치로 물 포도주(새 계약)를 만드시는 사건이 있었다.
그 혼인 잔치는 -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것이다, 를 보여주신 것이고, 3장에서 니고데모를 등장 시켜 구원은 인간 측의 어떤 자격이나, 열심, 노력 같은 것으로 절대 주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4장에서 니고데모와 반대되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추한 죄인을 예수님께서 찾아 가셔서 구원을 주신다. 5장에서는 38년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자를 예수님이 찾아가셔서 일으키시는 사건으로 ‘구원은 이런거다’하고 다시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 구원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오늘 6장에서 예수님의 살이 십자가에서 찢기고 피를 쏟으심으로 구원은 일어나는 것임을 보여 주신 것이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표징은 구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사건인 것이다. 하늘의 빵(생명)을 이 땅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말씀(뜻)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것이다. ‘사람이 빵 망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보호자 성령님! 하늘의 빵, 생명의 말씀으로 하늘의 아들, 열둘이 되게 하소서.~아멘!!!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6,1-15)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1)
군중들이 식사를 할 준비가 끝내자, 이제 음식을 제공하실 예수님께서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간단히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한 아이로부터 가지고 온 그 빵을 손에 드셨다.
'손에 들고'에 해당하는 '엘라벤'(elaben)은 '람바노'(lambano)의 부정(不定) 과거 시제로서 예수님께서 거리낌없이 즉시 취하신 행동을 나타낸다.
여기서 '빵을'에 해당하는 '투스 아르투스'(tous artous; the loaves)는 복수형으로서 안드레아가 가져온 보리 빵 다섯 개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손에 들고 나서 감사를 드리셨다.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로 번역된 '유카리스테사스'(eucharisteras; when he had given thanks)는 '유카리스테오'(euchariste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로서 기본적인 뜻은 '감사한 마음을 가진 것' 혹은 '감사를 돌린 것'이다.
이것은 식사 전에 행하던 통상적인 감사 기도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내용으로 감사 기도를 바쳤는지 알 수 없지만, 유다인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되는 내용의 것이었다고 보면 된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의 가장이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감사 기도를 바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군중 앞에서 행동하셨는데, 눈으로 보이게 차려진 음식은 다섯 개의 빵이었고, 식사를 기다리는 이들은 오천명의 몇 배가 되는 군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충분한 식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처럼, 통상적인 감사 기도를 바쳤다. 그 결과 그 날에 빵과 물고기가 부족하게 되기는커녕, 도리어 남아서 열두 광주리나 되는 조각들을 거두기에 이르렀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은 원하는 대로 배불리 음식을 먹었으며, 그 맛 역시 원래의 오병이어 보다 훨씬 더 나았으리라는 것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경험으로 봐서 (요한2,10) 추측해본다.
특히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원하는 대로 주셨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을 풍성하게 주시어 결코 주리지 않게 하실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요한6,35).
[부활 제2주간 목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예수님께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6,7) 하고 대답합니다.
그때 곁에 있던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6,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빵과 물고기를 가진 아이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는 모습 때문입니다.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진 이를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여관 주인에게 돈을 건네며 부족하면 돌아와서 갚을 테니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한 착한 사마리아인처럼(루카 10장 참조) 말입니다.
아울러 이 빵 또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와 성체성사로 드러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능력이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주려 한다면 늘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내주기 시작한다면, 나의 시간과 사랑, 관심과 돌봄의 손길을 건네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웃음과 행복의 꽃이 피어나겠지요.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요한 6,13)라고 전합니다.
이는 십자가와 성체성사로 드러나는 예수님과 우리 모두의 부활을, 그 충만한 삶의 신비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독서 (사도5,27-42)
27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예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예수)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 ‘나무에 매달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저주받은 자로 죽였다는 것이다.(신명21,22-23참조) 그러나 세상 창조 이전 하느님의 구원계획(계약) 이었다.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 대속, 그 십자가로 거저 받은 의로움이다. 믿음으로...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진리)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 회개했다고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오로에게~
(사도26,17-18) 17 나는 너를 *이 백성과 *다른 민족들에게서 구해 주겠다. 이제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낸다.
= 율법과 인본주의룰 말씀 하신다. 그들이 진리를 못 보는 눈 먼, 어둠인 것이다.
18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와 죄를 용서받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이들과 함께 상속 재산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순종은 믿음의 결과다. 곧 세상과 짝한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34 그때에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 사도 바오로가 자신의 세상 큰 ‘스팩’틀이 버려야 할 것이라며 가말리엘이 자신의 스승이라 한 것을 보면 큰 인물인 것 같다.(사도22,3)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ㄱ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 오늘 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구원의 진리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곧 하느님의 일은 참이며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죄인들의 구원은, 세상 창조 이전 하느님께서 계획하신대로 당신 외 아드님을 십자나무에 죽이시면서까지 이루신 일이다. 구원은 사람의 생각, 지혜에서 나온 우리의 종교행위 등, 착하게, 의롭게 살아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페2,7-8 로마10,1-4참조)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나무가 구원의 새롭고 살아있는 길, 새 계약, 진리임을 믿어, 받는 것이다.
39ㄴ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 율법(제사와 윤리)자 들에게 받는 모욕이 제자(弟子)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살면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전(傳)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핍박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이다.
(요한15,19)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메시아 예수님~
(이사53,4-6.10-11)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믿어지는가?)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믿는가?)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뜻)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믿어지는가?)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야훼)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정말 믿어지는가?)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 이 메시아 예수님을 믿는가? 말하는가? 그분은 하느님 구원의 뜻, 말씀이다. 곧 날마다 배우고 전해야 할 말씀이다.
<복음 환호송>(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세상의 빵(재물), 명예, 기적 체험을 약속한 사탄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면 사도 바오로처럼 ‘세상의 것을 쓰레기로 여기며’, 그 세상의 힘을 원하는 나를 죽여야 한다. 버려야 한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어야 한다.
복음(요한6,9-11)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 땅의 부정한 양식을 하늘의 양식으로, 곧 예수님 당신의 생명으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6장 결론이~
(요한6,48.63)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풀밭에 앉아 주님께서 주신 빵과 물고기를 생명의 말씀으로 올바로 깨달았다면, 먹었다면, 쉼(안식)으로 아쉬울 것이 없이 어떤 처지에서든 두려워하지 않게 하신다. ~
(시편23,1-4) 1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3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4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 하느님의 지팡이가 이집트(세상)의 노예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을 온갖 재앙에서 구원하셨음을 기억하자.(탈출7-10장) 곧 하느님의 지팡이, 우리가 청(請)해야 할 구원의 담보인 말씀이다.
(탈출4,20) 20 그래서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다 나귀에 태워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다. 모세는 손에 하느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 하느님의 뜻으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서 다.
(창세38,18) 18 그래서 유다가 “너에게 무슨 담보물을 주랴?” 하고 묻자, 그 여자가 “어르신네의 인장과 줄, 그리고 손에 잡고 계신 *지팡이면 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그것들을 주고 그와 한자리에 들었다. 그는 유다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마르6,7-9)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히브11,21) 21 믿음으로써,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아들들에게 하나하나 축복해 주고, “*지팡이 끝에 의지하여 하느님께 경배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지팡이는 ‘부수시는 쇠 지팡이’가 된다.
(묵시19,15) 15 그분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쇠 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리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격렬한 진노의 포도주를 짜는 확을 친히 밟으실 것입니다.
= 요한 묵시록을 읽으면서 무서움, 두려움을 느낀다면, 성경(聖經)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통한 하느님 구원의 진리, 자비, 사랑을 아직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가 아닌 사탄(뱀)의 뜻인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먹었기 때문이다.
(묵시7,3)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묵시9,3-4) 3 그리고 그 연기 속에서 메뚜기들이 나와 땅에 퍼졌습니다. 그 메뚜기들에게 권한이 주어졌는데, 땅의 전갈(뱀, 사탄)들이 가진 권한과 같았습니다. 4 그것들은 땅의 풀과 푸성귀나 나무는 하나도 해치지 말고, 이마에 하느님의 인장이 찍히지 않은 사람들만 해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진리의 성령님!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그 말씀이 구원의 지팡이, 담보가 되게 하소서. 내 뜻, 소원을 고집하며 하느님의 뜻을 대적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지팡이)가 아버지의 뜻(사랑)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나누어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이 기적은 곧바로 성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복음서 6장이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장이라는 사실, 그리고 성찬례 때마다 우리가 듣는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라는 말씀을 함께 묵상할 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우리 삶 안에 구체적으로 현존하시며 당신 자신을 내주시는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것, 값진 것, 화려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예수님께서는 보잘것없고 소박하며 부족해 보이는 것을 풍요롭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나누셨습니다.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라는 계산에 매여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6,9) 하고 낙담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계산을 넘어서는 가치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즐기며, 소박하고 사소한 것들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상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적이며, 참된 행복입니다.
아이의 적은 양식이 나눔과 사랑 안에서 모든 이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었듯이, 우리도 ‘내줄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누어야 할 양식은 눈에 보이는 빵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안의 사랑, 용서, 배려, 위로라는 영적 양식도 나누어야 합니다.
이 사랑을 나눌 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오늘 우리 삶에서도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