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14일 화요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요한3,7ㄱ.8-15)
제1독서<한마음 한뜻>(사도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화답송>시편93,1ㄱㄴ.1ㄷ-2.5(◎1ㄱ)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
○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
○ 당신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
복음<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요한3,7ㄱ.8-15)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사도4,32~37)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2~35)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2)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는 '하판타 코이나'(hapanta koina)라는 진술은 사도행전에서 두 번 등장한다. 한번은 사도행전 2장 14~40절에 행해진 베드로의 일차 설교 후에 나왔고(사도2,44), 본문에서는 공동체가 함께 공동(합심)기도(사도4,24~30)후에 나왔다.
위의 두 사건은 설교(말씀선포)와 기도라는 차이점은 가지고 있지만, 말씀과 기도를 전후로 하여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사도2,4; 4,31). 자신의 물건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타락하여 이기적인 심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에게 있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단순한 윤리적인 양심이나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의 강요를 통해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을 볼 때에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배제한 무모한 제도였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므로 성령의 철저한 역사하심과 친교하심이 없이는 모든 물건을 서로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재물을 공유(共有)한다는 제도는 하느님 나라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상 교회에서조차 성령이 충만하여 모든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을 때만이 한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뿐이다.
'경천애인'(애주애인)이라는 주님의 계명을 더욱 더 잘 실천하기 위해서 복음 3덕(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는 수도 공동체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모든 교회가 그대로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모델이라고 볼 수는 없고, 실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 그 정신, 즉 인간의 이기심이 극복된 아름다운 정신만큼은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모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3)
'증언하였고'에 해당하는 '아페디둔 토 마르티리온'(apedidun to martirion)에서 '아페디둔'의 원형 '아포디도미'(apodidomi)는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을 갚아버리다', '빚을 갚다'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다(마태18,25; 묵시22,12).
즉 사도행전의 저자에게 있어서 그들의 복음(예수의 부활)전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4~35)
여기서 '팔아서'에 해당하는 '폴룬테스'(poluntes)는 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분사의 현재 능동형이고, '가져다가'에 해당하는 '에페론'(eperon)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행위를 묘사하는 미완료 과거 능동형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초대 교회가 물질과 마음을 서로 나누는 행위가 수석 사제들의 핍박과 위기감 속에서 행해진 기도 뒤에 이루어진 일회적인 행위가 아니라, 초대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와 친교하심을 통해 능동적이며 한시적이나마 상당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행해진 일상생활의 한 단면이었음을 강조한다.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의 뜻은 돈이 놓여진 위치가 아니라 돈을 관리하고 사용될 곳을 결정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느냐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 당시 사도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을 인도했을 뿐 아니라 교회의 행정과 재정까지도 맡아 보았다. 그러다가 후일 신도들의 수가 늘고 업무가 늘어나자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되고, 부제를 선출해서 행정과 재정 또는 자선등의 업무를 맡게하였다.(사도6,1~7).
'필요한 만큼'으로 번역된 '카도티 안 티스 크레이안 에이켄'(kathoti an tis chreian eichen)은 '어떤 사람이 필요를 가지고 있는 것에 따라서'란 뜻이다.
원문으로 볼때 본문은 초대 교회 당시 믿는 사람들 사이에 비록 명문적 규정은 없지만, 꼭 필요한 자에게 어떠한 차별도 없이 필요한 만큼 적절히 분배되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즉 더 많이 가지려는 다툼이나 정분관계에 의한 분배의 정의가 흐트러짐 없이 모든 일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부활 제2주간 화요일(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제1독서는 초대 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묘사합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경험한 사도들은 성령 강림을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은 실천적인 방식으로,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재물을 공유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만의 것으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증언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사회 체제 또는 이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잘 증언하고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복음 정신에 따라 공동 소유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바리사이 니코데모의 대화가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식만 으로는 성령에 관하여 알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성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분, 곧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로소 성령에 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 안에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들이며 증언하는 것,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구체적인 방식으로 복음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세례는 하늘의 생명을 받기 위한 것이다.
(요한3,7ㄱ.8-15)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 어제 묵상을 다시.- 肉의 돈, 명예, 의로움, 지식으로는 알 수없는 靈의 삶이다. 육을 입는 모든 이는 모른다는 것, 성령께서 이끌어 가신다는 말씀이시다. 그 예화로 열처녀의 비유 말씀을 봤다. 기름(성령)을 간직한 슬기로운(영적)처녀나 어리석은 처녀나 모두 졸다가 잠들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성령을 믿는(간직한) 처녀는 그 성령께서 신랑(예수)을 만나게 하시고 그것이 깨어 있음이라 하신다. 성령을 믿고 의탁 하는 삶이 깨어 있음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 구약에 능통한 니고데모가 성령의 역사를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신다.
(에제36,25-28)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진리의 말씀)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잘라내고-할례, 세례),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성령)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 새 계약의 예언이다.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셨기에 그 십자가의 복음, 그 새 계약이 구원의 진리가 되었다. 그래서 그 새 계약으로 받는 용서, 구원을 성령께서 증언하심을 히브리서 10,15절 이하에서 다시 말씀하신 것이다.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우리- 예수님과 우리, 나를 함께 말씀하심이다. 자기 열심을 믿고 의지하는 니고데모, 그 너희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 니고데모의 자기를 버림(否認)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표징)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 일(표징)은 세상의 평화가 아닌 하늘의 평화를 주심이다.
(요한3,31)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 하늘의 존재이신, 하늘이신 분,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이는 예수님 뿐이시라는 것이다. 그 예수님과 한 몸이 되지 못하면 그 누구도 갈 수가 없는 곳이 하느님 나라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우리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해 저주의 뱀으로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다.
(에페3,4-6) 4 그래서 그 부분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하여 깨달은 것을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 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 하심으로 저주의 뱀으로 들어 올려 지신다는 것이다. 들어 올리심(휍소우)- 교수형에 처하다. 영광 속으로 들어가다. 對立의 두 의미이다. 다른 이의 죄로 죽는 것이 영광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의 대속이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니고데모가 가지고 있는 돈, 명예, 자기 의로움, 지식을 구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대속, 곧 피의 새 계약으로 내 죄가 다 씻겨졌음을 믿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진실 된 감사로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사랑, 새 계약, 진리의 말씀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영성체송)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알렐루야(루가24,46.26참조)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알고, 알다.(야다- 눕다) 하느님의 뜻 만을 말씀하시고 행하신 그 예수님을 생명,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여 부부처럼 한 몸이 되는 것, 아는 것이다.
(1요한5,20)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의 신앙의 목적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임을 잊지 않게 해 주시고 예수님과 한 몸의 우리가 되게해 주소서.~아멘!!!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복음(요한3,7ㄱ 8~15)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8)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무지한 니코데모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자연 현상인 바람에 비유하여 설명하셨다.
여기서 '바람'으로 번역된 '프뉴마'(pneuma)는 성경에서 자주 성령이나 영을 지칭하여 나오지만, 여기서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役事)를 설명하고자 비유로 사용된 자연 현상인 바람을 가리킨다.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느끼고 직접 확인도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바람이 불어 나무잎이 흔들리고 소리를 들으면서 바람으로 인해 생기는 결과들을 모든 사람이 명백하게 보기는 하지만, 바람의 정체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불고싶은 데로 분다'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다.
장소에 관한 불변사 '호푸'(hopou; where)은 여기서처럼 직설법 동사와 함께 쓰이면, '~곳으로'(where)라는 뜻이 된다.
바람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데로 분다. 인간의 요청에 의해 세기를 조절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법이 없다.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다스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새로 난 사람들은 성령을 다스리지 못하며, 다만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 만을 깨닫게 된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는 말씀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도 다', '사람은 다'에 해당되는 '파스'(pas; everyone)가 여기서 처럼 관사를 가진 분사와 함께 쓰이면, '~이다', '~은 누구나', '~은 모두'등의 의미가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들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포함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성령의 존재와 역사에 관한 지식은 다분히 체험적임을 보여 준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능력의 형태이거나 고상한 인격과 거룩한 생활의 형태이거나 거듭나고 새로 난 사람만 볼 수 있고, 또 보여지는 것이 가능한 아주 특별한 지식인 것이다.
2026년 04월 14일 화요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오늘 독서가 전하는 초대 교회는 그리 완벽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능력이나 성취가 아니라, 가진 것을 서로 ‘나누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단호히 거부하신 것 가운데 하나도 바로 ‘나눔이 없는 폐쇄성’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문제도 단순히 윤리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배제하며 자기 안에 갇혀 버린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곧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라고(요한 3,3.5 참조) 말씀하시며, 종교적 행위를 더 하고 윤리적으로 조금 더 나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기준을 하느님 쪽으로 옮겨 놓기를 요청하십니다.
이것이 파스카, 곧 옛 사람을 떠나 새 사람으로 건너가는 부활의 삶입니다.
익숙한 세상의 논리에 매이지 않고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선택하는 삶입니다.
신앙인은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그러나 세상의 기준과 다르게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람의 아들”(3,13)이라 부르신 것은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당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 안에서, 신앙과 삶, 하늘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집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세상과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그저 보여 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다양한 생각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현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간직한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서 “영에서 태어난 이”(3,8)답게 살아가도록 다짐합시다.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주님의 사람임을 잊지(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복음(요한3,5-15)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물과 성령’을 직역하면 ‘물 즉 성령이다’(요한7,37-39 보충)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 영(靈 하늘 빛)이 없는 육(땅, 어둠)은 육(肉)일 뿐이라는 말씀이다.
(요한1,5. 8,12) 1,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8,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 우리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그 ‘아노뗀’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다시’ 그리고 ‘위로부터’다. ‘다시’는 반복을 뜻하는 ‘파란’이 아니다. ‘아노뗀’은 반드시 같은 원천과 형식을 갖춘 반복, ‘다시’다
그 우리의 원천을 보자~
(창세2,7)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르하흐-영)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반드시 하느님의 숨, 호흡,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이다. 사람(아담)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뱀의 거짓 말(가르침)을 먹고 타락한 그 죄인들이 ‘다시 위로부터 태어나’야 함이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 세상은 물론 영(靈)으로 다시 태어넌 이도 바람이 부는 것처럼 성령의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오고 가는지 모르지만, 바람(태풍)이 지나간 자리의 흔적이 남듯 거듭난 자리에는 거듭남의 흔적이 남는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뒤 11절에 ‘거듭남’을 보고 말한다고 하신 것이다.
그 흔적을 보면,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행한 너는 죄(罪)를 알뿐 하늘의 안식을 얻을 수 없음으로 위(하늘의 물, 성령)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이며,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는 자신의 뜻(의)을 위한 그 율법 행위는 육을 위한 어둠(땅, 세상)의 일임을 알기에 하느님의 숨으로 하늘에서와 하늘로 다시 돌아갈 것을 깨닫고 하늘의 생명을 원하며 육(肉)에 매이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 숨어있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요한3,1-2) 1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표징을 보고 찾아왔다. 성경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표징으로 봤고, 최고의 힘을 소유한 그의 영적상태가 밤이 였다.’고 밝히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도, 그에 따른 겸손도, 또한 최고의회(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으로 신앙의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ㅐ ‘다 그만두고 하늘의 것, 곧 성령으로 다시 턔어났니?. 거듭났니?’ 물으시는 것이다. 그의 모든 것이 무용지물임을 밝히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은총, 은혜의 선물인 물, 즉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선한 행위를 열심히 했고, 아무리 열심히 종교행위를 한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니코데모를 통해 주지시키고 계신 것이다.(로마3,20 10,1-3 참조)
성령을 통해서만 하늘아래 모든 것이 헛된 허무임을,(고헬1,1-14) 또한 하느님의 뜻, 지혜를 올바로 깨닫고 올바른 기도, 올바른 신앙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1코린2,4-10 참조)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우리, 예수님을 진리로 받아들인, 믿는 이들이다.
(요한1,12)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 앞에서 확인했듯,(요한1,5 8,12) 세상의 모든 것이 어둠(허무)임을 말씀 하셨고, 사람은 믿지 않았다. 하늘이 빛, 생명임을 말씀하셨고,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믿지 않았다.
13 하늘(빛)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빛)로 올라간 이가 없다.
=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께서만 하늘로 올라가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아나 베베켄 어스톤우라노‘의 뜻은 ”하늘에 계신“이라는 뜻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사람이 니고데모가 가진 모든 것이 어둠임을 깨닫고 참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 들어가는 생명, 빛의 하느님 나라다. 그것을 깨닫고 믿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님의 이끄심 없이는 절대 니고데모가 가진 땅(세상)의 것이 어둠(허무)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말씀 하신다. 곧 하느님의 말씀이 보잘 것 없다며 진저리가 난다고 투덜거렸던, 그래서 뱀의 먹이 먼지로(창세3,14), 뱀에 물려 영원한 죽음에 갇힐 이들을 위해 다시 살리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대속의 구리 뱀’을 구원의 기둥(계약)으로 세우셨던(민수21,4-9) 그 구리 뱀으로 당신이 달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하느님의 계약의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 이시기 때문이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아멘!)
잊지 말자~
(지혜16,10-12) 10 그러나 독사의 이빨도 당신의 자녀들은 꺾지 못하였으니 당신의 자비가 도우러 내려와 그들을 고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11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들은 이빨에 물렸다가 곧바로 구원되었습니다. 깊은 망각에 빠지지 말고 당신의 선행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을 낫게 해 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 (~아멘!)
☨천주의 성령님!
말씀 안에 늘 머무르는 삶을, 신앙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다시 영으로 태어나 주님의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거듭난 사람의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빛)가 아버지의 뜻(생명)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