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수요일]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요한3,16-21)

2026. 4. 13. 오전 9: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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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5일 수요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요한3,16-21)



1독서<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다.>(사도5,17-26)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18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화답송>시편34,2-3.4-5.6-7.8-9(7)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복음<하느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5,17-26)

 

그무렵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17~21)

 

본절부터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사도들에 대한 핍박과 투옥 및 천사들에 의한 구출, 사도들에 대한 대사제의 직접적인 문책, 그리고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중재로 인한 석방 등과 같은 매우 긴박하고도 역동적인 이야기가 5장 끝절까지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의 전파가 결코 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핍박이 복음 전파를 절대 방해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들을 적대시한 자가 바로 대사제이며, 사도들이 당하는 박해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조직적인 박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으로 사두가이파들을 대사제와 함께 있는 동조자로 소개한다.

 이것은 이들이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사제의 역할을 가장 중시하였고, 대사제 측근에 있었던 귀족들이 특히 사두가이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대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당시의 정치 집단인 헤롯왕이나 로마인들과 연합하여 온갖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다.

 

사두가이파들이 대사제를 도와 사도들을 잡아들이는 데 앞장선 것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일어난 역동적인 복음의 역사가 많은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감으로써 그들 특권층이 누리고 있던 기득권이 위협을 받았고, 높아만 가는 인기에 시기가 났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앞장서서 죽인 예수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활을 부인하는 그들의 교리와 상충되었을 뿐 아니라 과거 그들이 범한 죄악상이 드러나며, 더 나아가 민중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반기를 드는 민란까지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두가이파들은 누구보다 앞서 사도들을 잡아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시기심('젤루'; zelu)이 가득 차(epllesthesan; 에플레스테산)'는 진실에 입각하거나 바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시기에 의하여 박해가 발생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득차'에 해당하는 '에플레스테산'의 원형 '플레도'(pledo)는 '충만하다'(사도4,8.31), '채우다'(루카5,7)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써 빈틈을 찾아볼 수 없으며 넘칠 정도로 가득 채우는 상태를 말한다.

 당시 이들은 끓어오르는 시기심으로 인하여 다른 상황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오직 사도들을 박해할 생각으로만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유대 종교를 대표하는 이들이 이성을 잃고 이기심에 따라 분별없이 행동하는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그 당시 유대교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다.

 '공영 감옥'(teresei demosia; 테레세이 데모시아)에서 '데모시오스'(demosios; 공적인)라는 형용사를 첨가하여 굳이 공영 감옥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도들이 비록 단단히 잠긴 옥에 갇혀 공적 기관의 삼엄한 감시와 경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크신 하느님의 역사로 나오게 된 것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19)

 

'데리고 나와'로 번역된 '엑사가곤'(eksagagon)의 기본형 '엑사고'(eksago)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인도하다'는 뜻의 '아고'(ago)가 합성된 형태로서 '(밖으로)인도하여 내다'(요한10,3),'끌어내다', '데리고 나가다'(마르8,23)는 뜻이다.

 이 단어의 의미에는 두 가지 함축적인 사실이 들어있다.

 

첫째로 이 단어는 속박과 고통에서의 '구원'을 가리킨다(요한10,3; 사도7,36). 본문에서는 사도들이 감옥의 속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된 것을 가리킨다.

 둘째로 이 단어의 의미속에는 '강제성'의 개념이 들어 있다(마르15,20). 즉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끌어냄을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이 동사가 이러한 두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사도들의 구출의 목적이 다음 절에 나오듯이 백성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시급한 사명이 사도들에게 있음을 드러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옥에 갇혀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던 사도들을 주님의 천사가 어떻게 쉽게 빼낼 수가 있었을까?

 본절에서는 필리피 감옥의 경우처럼 감옥터가 움직이고 지진이 나는 기적 (사도16,26)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주님의 천사는 초자연적인 영적 능력으로 경비병들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사도들을 이끌고 나왔을 것이다.

 하느님은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 어둡게 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이 (2열왕 6,18) 이를 뒷받침한다.

 사도들을 옥에서 이끌어 낸 주님의 천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사명을 부여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생명'(zoe; 조에)이란, 이 세상에 속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영적 생명을 가리킨다(마태18,19; 마르10,30; 요한3,15).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구원의 생명을 말한다.

 본문의 '이 생명'에서 '이것'을 가리키는 '타우테스'(tautes)는 지금까지 사도들이 계속해서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되는 생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말씀'은 '타 레마타'(ta remata)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말씀'을 가리키는 '토 레마'(to rema)의 복수형으로서 '설교','연설'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조용히 사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 즉 '케뤼그마'(kerygma)를 가리킨다.

 이것은 그들이 말씀을 전하되 대담하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이 말씀 앞에 '모두'로 번역된 '판타'(panta)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파되어야함을 분명히 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혹시라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구원의 말씀들을 단 하나라도 생략하거나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구원의 말씀들이 모든 사람에게 들려져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매일미사 오늘의 묵상(김상우 바오로 신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복음에서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따르면,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구원을 실현하시는 까닭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구원은 성자를 믿는 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십니다.

 

보통 신약 성경 본문들에서 하느님의 심판은 인류 역사의 끝에 일어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성자를 통한 성부의 계시를 인간이 거부할 때 이미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합니다.

성자를 통한 성부의 계시는 악을 저지르는 자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성부에게서 온 빛이신 성자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갈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고 하시며,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를 실천하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다’와 동의어처럼 사용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계시를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변치 않는 사랑의 속성을 갖으신 하느님

 

(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내어 주시어(아포스텔론- 내쫓다. 버리다) 하느님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당신 외아들을 내 쫓으시고 버리셨다는 것이다. 외아들(아하브 아쉐르 야히브) 너무 너무나 사랑하는 유일무이한 외아들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외아들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느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지 않으셨다면 모든 인류는 하나도 빠짐없이 멸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들어 있는 것이다.(본문18절 참조)

멸망(아풀뤼미) 잃다. 없어지다. 파괴되다.

 

(2요한1,8) 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永生)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로마8,32)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이 하느님의 사랑에 감동과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이 아니가?~~

 

(로마5,8-10)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인간의 사랑은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감정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를 넘어서지 못해 일관성이 없어 변질된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속성이시다.

 

(1요한3,16) 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 오늘 독서의 사도들처럼, 형제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목숨 걸고 하느님께만 사랑, 생명, 구원이 있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믿지 않는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완료) 구원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믿지 않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로마10,1-3참조)

외아들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 예수는 야훼와 구원의 합성어란다. 곧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라는 뜻이다.

 

(마태1,21)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 빛(생명)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그 하늘의 생명보다 어둠, 곧 니고데모가 지녔던 밤의 힘(세상의 돈, 명예, 의, 지식)을 더 사랑했다는 것이다. 惡하기 때문에~곧 뱀의 유혹을 먹고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여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빛으로 나가면 선악의 판단으로 이루어놓은 자신의 모든 것이 어둠, 헛 것임을 들킬까봐 나가지 못한다.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열심 했던 그 의로운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 의로운 이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 진리를 실천하는 이, 땅(세상)의 힘이 진리가 아님을 깨닫고 부인하며 하늘의 힘, 곧 하느님의 사랑이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을, 그 길이 생명, 구원의 진리임을 믿고 의탁하는 삶으로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것을 부인 하며, 자신이 쓴물(마리아)임을 고백하며 매일 그 진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가게 된다. 내가 죄인이었을 때, 하느님의 원수 였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3장의 결론이다.

(요한3,36)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 천주의 성령님! 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 듯이 내가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수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3,16-21)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19)

 

요한복음 3장 19절은 요한복음 3장 18절 후반부에서 나온데로,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가 심판을 받는 이유를 다시한번 더 밝혀 강조한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에서 '심판'에 해당하는 '크리시스'(krisis; condemnation; verdict)는 실질적 의미에 있어서 18절에 나오는 '심판하다'에 해당하는 '크리노'(krino)와 거의 동일하다.

 불신자들이 심판받는 보다 구체적인 이유는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자신의 행위가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에서 동사 '엔'(en; were)은 미완료형 이므로, 이 사람들의 과거 전력을 드러낸다.

 즉 희랍어에서 미완료형은 과거에 계속 혹은 반복되는 동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행위가 변함없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형용사 '악한'에 해당하는 '포네라'(ponera; evil)가 서술적인 위치에 있어서 이 사람들의 행위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단어가 마귀의 속성과 관계가 있다.

 이 형용사는 '악한'뿐만 아니라 '못쓰게 된', '나쁜', '가치없는', '타락한' 등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나타내는 복합적 의미로 쓰였다.

 즉 이 단어는 그들이 마귀의 속성과 관련된 악행을 계속하여 저질러 왔으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에서 '빛'에 해당하는 '포스'(phos; light)는 태양과 같은 발광체를 나타내며, '어둠'에 해당하는 '스코토스'(skotos; darkness)는 이 빛이 차단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는데, 성경은 메시아에 의해 선포된 복음이나 구원을 '빛'으로 표현하고(마태4,16; 사도26,18; 에페5,13), 죄와 불신앙의 상태를 '어둠'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마태4,19; 로마2,19; 1티모5,4; 1베드5,13).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원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 타락한 본성의 소유자인 인간이 죄와 불신앙을 더 사랑함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더'로 번역된 '말론'(mallon; rather)은 '더'라는 뜻의 비교급 부사로도 쓰이지만(필리1,12; 마태10,48; 루카18,39), '~대신에 도리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태10,6; 마르5,26; 로마14,13).

그렇다면 요한 복음 3장 19절은 인간이 마땅히 빛을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대신에 도리어 어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것은 인간이 그 행위가 악하므로 빛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어둠만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근본 이유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전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하느님께서는 죄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고 구원하시려고 가장 소중한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먼저 해서 받는 보상이 아니라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멀어지고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어 거저 베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창세 3,8) 숨어 있을 때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하느님 앞에 숨어 있는 우리를 먼저 찾아 주고 품어 주는 은총이고 선물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이 단순한 말이 아님을 보여 주고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힘든 삶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저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거저 베풀며 빛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은 단순한 생각이나 동의에 머물기보다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아직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는 약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위로하며 빛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복음(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하느님은 창조 이전에 계셨던 그리스도, 곧 당신 외 아드님을 세상 모든 죄의 속죄 제물(속죄판)로 구원의 새 계약으로 내 주시어(보내시어) 심판이 아닌 구원, 곧 영원한 생명을 주려 하신다.

보내심과 내어주심, 그 둘의 의미를 보자~

*보내심- 심판이 아닌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위에서 아래로 외아들을 보내심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신(神)을 찾아 가지만 ‘그리스도교는 신(神)이 인간(人間)을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 아드님 선재 사상이다.(에페1,4) 그래서 선재 사상 안에는 하느님의 대권을 위임 받아 ‘하느님의 뜻을 집행하는 분’ 이라는 것이다.

* 내어주심-, 외아들을 내어주시어 ‘아포스텔론’ 은 ‘내 쫒다. 유기시키다(버리다).’라는 뜻이다. 우리(나)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의 외 아드님이 이 땅에 버려진 것이다.

 

(로마8,32) 32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하느님께서 죄인인 우리(나)를 위하여 사랑하는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시고 유기(遺棄)시키시고, 내어 주셨다. 사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구절은 성경(聖經)에 없다. 외아들 ‘모노게네스’는 단순히 외아들이 아니라 ‘독특한, 사랑받는, 유일 무이,’한 것을 나타낼 때 쓰인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추악하고 더러운 세상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가장 귀한 것을 주셨다’는 것이다.(로마5,8-10 참조)

 

(로마5,8)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 사랑은 이렇게 하느님에게서 먼저 흘러 나왔다. 곧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 깨닫기 전에는 절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각으로는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며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수시로 변하고, 차별적이며 지속적이지 못하다. 용서 또한 마찬가지다. 용서, 사랑을 흉내 날 뿐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용서, 사랑이시다.(1요한4,16) 이타적이며 차별이 없는 영원한 용서, 사랑이시다. 그 하느님의 용서, 사랑이 외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동안 확인했던 예수님의 이름을 정리해보자.- ‘하느님의 지혜, 힘, 말씀, 속죄 판, 새 계약, 용서, 사랑, 곧 우리 어둠들의 빛, 생명, 구원자, 그리스도시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 어둠? 용서, 구원을 받아야 할 세상의 모든 것이다. 곧 세상의 힘인 재물, 인간들 끼리의 명예, 영광, 의(義)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의(義), 영광, 영원한 보물인 생명의 빛,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믿지) 않는다. 그것이 죄(罪), 악(惡)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빛 앞에서는 자신의 흠, 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 빛이 자신의 흠, 죄를 품고, 덮어 없애시는, 거저 주시는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이는 자신의 흠, 죄를 용서 받으려 빛으로 나간다.

 

(로마4,7-8) 7 “행복하여라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8 행복하여라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

= 하늘에서 빛, 지리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인간들의 속셈을 드러내, 분열 시키러 오셨다. 물론 심판이 아닌 용서, 구원을 위해서 이다.

 

(루가12,51)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가2,34)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마태16,24)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다시, *심판이 아닌 용서 구원을 위해서 다. 그러나 세상의 힘으로 평화를 누리려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사랑하는 이는 그 나머지를 버리지 못해 참 생명,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 곧 그분의 말씀 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인간들 끼리 정한 법의 상식을 가지고 자신의 뜻, 소유권을 위한 종교 행위에 열심을 부리며 만족해 한다.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허무, 헛된 것임을, 참이 아님을 깨달은 이는 참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말씀 안에 진리를 찾고 만나려 말씀 안에 머무르는 신앙을 산다는 것이다. 막연한, 희미한 예감으로는 용서,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골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 내 죄의 용서가 예수님께 ‘십자가(十字架)에 복음’으로 매일매일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제사와 윤리의 신앙으로 열심을 부렸던, 그래서 오히려 신앙이 짐이 되어 참 자유를 몰랐던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곧 내 뜻, 소원을 위해, 내 죄의 용서를 위해 계속 제사(祭祀)드리며 옛 계약, 계명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신앙을 산다면(마르7,7.13) 이미 ‘다 이루어진’ 십자가의 제사, 그 피의 새 계약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보내신, 내 주신, 그 사랑(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자유하고, 그 사랑을 전하라고....

 

진리의 성령님!

늘 말씀 안에 늘 머무르는 삶을신앙을 살게 하소서그리하여 세상()의 어둠을 보게 하시고하늘의 영원한 빛인 진리로 나아가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사랑)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0415일 수요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늘 복음의 이 구절 안에는, 우리의 신앙을 떠받치는 세 가지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다.”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대상은 잘난 사람’, ‘의로운 사람만이 아니라 죄로 흔들리고 방향을 잃은 인간까지 포함한 온 세상입니다.

둘째, “너무나 사랑하셨다.”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조건 없이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광야에서 구리 뱀을 바라보기만 해도 살아났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생명이 열리게 하십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자격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강렬한 구원 의지가 먼저입니다.

셋째, “외아들을 내주셨다.”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온전히 내어놓으십니다.

사람이 되어 오셔서, 그 목숨까지 내주십니다.

이만큼이면 충분한정도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전체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마음 깊이 체험하지 못하면, 신앙은 노력만 남은 의무가 되기 쉽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도 공허함이 남고, 기쁨보다 부담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랑을 증명하려하기보다, 먼저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정말 그 사랑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 사랑의 힘이 삶을 새롭게 하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이러한 성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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