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예수님의 세례(洗禮) (마르1,7-11)

2024. 1. 5. 오후 5: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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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6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예수님의 세례(洗禮) (마르1,7-11)

   


1독서<성령과 물과 피>(1요한5,5-13)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47,12-13.14-15.19-20ㄱㄴ(12)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복음<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7-11)

세례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2024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5,5-13)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5~6)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5)

 

'누구입니까'로 번역된 '티스 에스틴'(tis estin)에서 의문 대명사 '티스'(tis)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설의법적 표현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승리를 매우 구체적이며 개인적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원리와 수단이기는 하지만(1요한5,4), 삶속에서 실제적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는 주체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호 니콘'(ho nikon)에서 '니콘'(nikon)은 현재분사로서 계속적으로 '쳐부수는 자', '정복하는 자'라는 뜻이다.

 

즉 완성적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계속되는 전투에서 계속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많은 이단들의 속임이 있었는데, 그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나감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그리스도론적인 메시지와 함께 당시에 있었던 이단들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6)

 

사도 요한은 이제 요한1서 5장 6~9절에서 육화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믿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물' 번역된 '휘다토스'(hydatos) '피'로 번역된 '하이마토스'(haimatos)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첫째는 물과 피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둘째는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물과 피로써 수난을 상징한다는 견해이다.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절의 물과 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셋째로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심과 동시에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마지막 생애를 마감하실 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건이라는 견해이다. 이 세번째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께서 물세례(수세; 水洗)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고,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인의 모든 죄를 대속 (代贖)하셨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생활 활동의 시작을 상징하는 물 공생활 활동의 완성을 상징하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행하신 활동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새 성경은 '오신'으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오신 분'(호 엘톤; ho elthon)이다.

 

'엘톤'(elthon)의 원형 '에르코마이'(erchomai)는 기본적으로 '오다'(come), '가다'(go)란 뜻인데, 여기에서는 부정 과거 분사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이미 우리에게로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당시 이단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이 세례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증명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not~but' 용법과 같이 전자를 부정함으로써 후자의 긍정적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우크~알르'(uk~all)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만이 아니라'에서 '만'(only)에 해당하는 '모논'(monon)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물' 단 하나와만 연관시키는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 이단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 잠시동안만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했다고 보는 견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즉 사도 요한은 '단 하나 그것만'이란 매우 강한 배타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이단 사상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또한 '우크'(uk)란 부정어를 사용하여 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특히 후반절의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번역된 '엔 토 휘다티 카이 엔 토 하이마티'(en to hydati kai en to haimati)에서는 '토'(to)란 정관사와 더불어 '~안에' 뜻이 있는 전치사 '엔' '물' '피'란 단어 앞에 개별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물' 아니라 '피'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며, 둘 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됨을 역설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증언하시는 분'으로 번역된 '토 마르튀룬'(to martyrun)의 원형 '마르튀레오'(martyreo)

법적 용어로서 어떤 사실을 공적으로 증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사도22,5; 1코린15,15).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성령의 역사(役事)를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성령께서 친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을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다.

 

'마르튀룬'(martyrun) 현재 분사이므로, 그 증거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요한15,26; 16,13.14).

 

'성령은 진리입니다'로 번역된 '호티 토 프뉴마 에스틴 헤 알레테이아'(hoti to pneuma estin he alletheia)를 직역하면,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because the Spirit is truth)가 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그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며, 그가 진리 자체이시므로 그가 증거하는 내용 역시 진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역시 진리인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내용이다(요한14,17).

 

한편 본문의 시제는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그리스어에서 직설법 현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변치 않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령이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님 활동 당시에도, 초대 교회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변치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2024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복음 (마르1,7-11)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0~11)

 

마르코 복음 1장 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를 받으셨다'에 해당하는 '에밥티스테'(ebaptisthe)의 원형 '밥티조'(baptizo)는 

'물에 담그다'(2열왕5,14)는 뜻 뿐만 아니라 '물로 씻는다'(루카11,38)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세례는 물속에 들어가 씻기우는 의식으로서 죄씻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례를 믿는 이들 역시 모두 다 받는다는 측면에서 신약의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를 상징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3~4)

 

이것을 구약의 제사 제도의 차원에서 보면, 완전한 제물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동참하여 죄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1장 8절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계시되었던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으로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므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 복음 1장 9절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모순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바로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있는 것이다. 즉 그분은 모든 인간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영광의 하느님'이실 뿐만 아니라 죄인인 모든 인간들과 동일시되어 세례를 받으시는 육화(강생)하신 '겸손한 인간',이시라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몸소 세례 의식에 동참하심으로써, 그것으로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예표하시고, 세례가 인간 구원의 절대 필수 조건임을 드러내심과 동시에, 죄씻음의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새로운 의미를 더하셨다.

 

한편 마르코 복음 1장 10절에 나오는 '하늘'에 해당하는 '투스 우라누스'(tous ouranous; 

the heaven)는 복수형이므로 직역하면 '그 하늘들'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언급하는 '샤마임'(shamaim)과 동일한 형태로써 하늘이 삼층천 (눈에 보이는 하늘, 물을 담아둔 곳, 천국)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우주관에서 기인한 표현이다.

 

그리고 '갈라지며'에 해당하는 '스키조메노스'(schizomenos; opend)의 원형은 '스키조'(schizo)인데, 마태오나 루카 복음사가는 '열다'라는 뜻의 '아노이고'(anoigo)라고 기록한 반면, 마르코 복음사가는 '찢다'(tear) 또는 '가르다'(split)라는 뜻의 '스키조'(schizo)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수세(水洗)를 통한 천상의 변화를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했다.

 

성경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현상은 주로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를 나타내기 위한 묵시문학적 표현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세례가 의미하는 그의 죽음과 부활은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며,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막혔던 세상과의 친교를 허락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는 것은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며,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합쳐진 세례성사의 완전한 모습과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또한 '성령의 내려오심'에 해당하는 '카타바이논'(katabainon; descending)는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을 위한 '기름부음'이라는 의미가 있다(이사61,1).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성령으로 도유된 자'라는 뜻이며, 구약에서는 왕, 사제, 예언자들에게 '기름부음'을 통해 직책이 주어졌듯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내려오심은 바로 이 삼중직에 대한 공적 인정이며, 위임의 뜻이 있는 것이다.

 

즉 만왕의 왕, 우주의 왕, 영원한 대사제,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시며 참된 예언자시라는 당신의 지상 사명이 이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더 알아야 하는 것은 루카 복음 3장 21절에 따르면, 예수님께 성령이 내려오신 것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부 하느님께 바친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는 하느님 음성의 메아리나 인간의 음성이 아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되심을 성부 하느님께서 확인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직접적인 음성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장 11절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에서 '이다'에 해당하는 '에이'(ei)는 현재 직설법이고, 그러나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의 '내 마음에 들다'에 해당하는 '유도케사' (eudokesa)는 부정 과거 직설법이다.

 

전자의 문장은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정확히 묘사하는 구절로서 하느님과 예수님의 부자 관계가 영속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현재형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후자의 '마음에 들다', '기뻐하다'라고 번역된 '유도케사'(eudokesa)의 원형 유도케오'

(eudokeo)는 '마음에 들다'는 뜻과 더불어 '동의하다', '결정하다'는 뜻도 있다.

 

여기서 이 단어가 부정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성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세우신 사건은 세례를 받으신 당시에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이것은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되어 과거에 결정된 일이었고,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단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공적 절차였을 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20240106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1,4)였습니다.

더 큰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처음 보여 주신 것은, 죄인들의 회개에 동참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반드시 함께 계신다는 신비가 그분의 세례로 드러납니다.

죄인들은 더 이상 단죄와 심판의 대상이자, 한 번 지은 죄가 낙인이 되어 영원히 죄인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더 큰 능력이 처음으로 드러낸 신비입니다.

1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셋째 문장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드님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소유하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도 당신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그들도 당신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은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십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더 큰 능력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성령세례를 받으셨나요? 혹 물세례에 멈춰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세례-죽음의 세례, 성령세례-생명(부활)의 세례>

(마르1,7-11)

7 요한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 하늘 앞에서 땅의 존재가 몸을 굽힐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 예수님께서 세상의 저주의 물에 빠져 죽었기에 하늘이 갈라지고 내리신 성령이라는 것, 죄인들의 죄를 입고 저주의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모습이다.

 

(마태27,50-52) 50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51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 하늘 성전(나라)을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찢어지고, 갈라지고 죽은 이들이 살아난 것, 하느님의 영,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휘장이 예수님의 몸인 것이다.

 

(히브10,20)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 물 세례로 정말 죽었다면 다시 살아날 것이다.

 

(골로2,12)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물 세례는 죽는 것이다. 옛 방식의 옛 사람, 그 자아를 죽이는,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육이 죽은 후 하늘의 영이 내리는 것이 성령세례다. 그 성령께서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 곧 예수님의 피(죽음)로 살아나는 구원의 새 계약의 증인이시라는 것이다.

 

(요한3,3.5)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위로부터, 곧 하느님의 말씀(물)과 그분의 영,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구원을 받는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죄인들,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살리시는 그 피의 새 계약을 세우시어 죄인들을 다시 살리심을 믿었을 때, 새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그 모든 것이 진리임을 증거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히브10,14-18)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예물로 단 한번 드려지심으로)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십자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새 계약)을 넣어 주고 그들의*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성령 세례를 받은 이들이 누리는 용서(赦하심)이다. 그 성령을 모르고 물 세례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죽어있는 것이다.

 

(로마8,1-2. 9-10)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9 그래서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을 모르면,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인, 신앙인이 아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성령께서 나의 생명이시니 하느님께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신다.

 

☨천주의 성령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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