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그의 이름은 요한’ (루카1,57-66)
제1독서<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라3,1-4.23-24)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 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화답송>시편 25,4-5ㄱㄴ.8-9.10과 14(◎루카21,28)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 주님의 계약과 법규를 지키는 이들에게, 주님의 모든 길은 자애와 진실이라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와 사귀시고, 당신의 계약 그들에게 알려 주신다. ◎
복음<세례자 요한의 탄생>(루카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2023년12월 23일 토요일 제1독서 (말라3,1-4.23-24)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그는 제련사의 불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은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1~2)
'말라기'(malaki)란 이름은 '나의 사자'(使者)라는 뜻으로 말라키서 3장 1절에서 나왔다.
기원전 539년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하까이와 즈카르야의 독려에 힘입어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고(B.C.520~515년), 성전 전례를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백성을 올바로 인도하고 가르쳐야 할 사제들이 스스로 제사와 전례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백성들은 십일조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이방 민족과 통혼하며,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기 주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말라키서 3장 3절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다.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은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오늘 독서의 말씀은 말라기의 네 번째 신탁(2,17~3,5)에 포함된다. 여기서 예언자는 주님의 공정 또는 정의(justitia)를 선포한다.
공정은 정의와 더불어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에 속한다.
그분은 자애로우실 뿐만 아니라 공정하시므로, 이스라엘의 악을 적당히 보아 넘기지 않으신다.
따라서 주님께서 악인들을 좋아하신다고 말하고, 주님께서 어디 계시냐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은 그분께 대한 모독이다.
그분은 대장간의 불이 금과 은에서 쇠똥을 걸러 내듯, 빨래터의 잿물이 옷에서 더러운 때를 빨아내듯,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정화하실 것이다.
주님은 심판과 정화의 날에 앞서 먼저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킬 것이다(3,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그는 제련사의 불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3,1~2참조)
사자를 보내어 주님의 길을 미리 닦아 놓는다는 생각은 이사야서 40장 1~11절과 맥을 같이 한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주님께서 성전에 나타나신다는 것은 그곳이 주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장소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주님께서 심판하실 자들의 목록이 말라키서 3장 5절에 열거된다. 주술사, 간음하는 자(배우자를 배신하는 것과 우상숭배 모두를 뜻함), 거짓 맹세하는 자, 품팔이꾼의 품삯을 떼어 먹는 자,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을 억압하는 자, 주님께 불경하는 자들이다.
말라키서의 마지막 세 구절(3,22~24)은 신탁 여섯 개에 덧붙은 부록 같지만, 엘리야 예언자를 시켜 새 시대를 준비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렙 산(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내린 율법과 계명을 되새기라고 당부하신다(3,22).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불마차를 타고 승천했던 엘리야 예언자(2열왕2,11)를
보내시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말씀이 선포된다(3,23~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24ㄱ)
말라키서 3장 24절에서는 엘리야의 사명을 통하여 주님과 선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될 것을 예언함과 더불어 그의 사명을 거부하는 자에 대하여 경고를 주고 있다.
즉 말라키서 3장 24절은 장차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으로 올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 예고된다(루카1,17).
본문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아보트'(aboth), '아보탐'(abotham)은 모두 복수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이 예언을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관련해서 그의 사명에 적용한 주님의 천사는 루카복음 1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여기서 '부모의 마음'과 '의인들의 생각'을 같은 뜻의 표현으로 보고, '자녀'와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같은 뜻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린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경건한 조상들의 신앙을 불경건한 후손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게 하여 그들의 신앙을 조상들의 신앙처럼 경건하게 만든다는 뜻이 된다.
말라키 예언자 당대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당시의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신앙의 조상들이 주님 대전에 가졌던 경건하고 의로운 신앙의 결핍이었다.
이를 감안할 때 세례자 요한은 부모들, 즉 이스라엘의 경건한 조상들이 가졌던 그 신앙심을 자녀들, 즉 그 후세대들이 회복하여 메시야를 맞을 준비를 갖추도록 하는 사명을 맡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돌리리라'에 해당하는 '웨헤쉬브'(weheshib; and he will turn)는 '그가 회복시킬 것이다'(he will restore)라는 의미인데, 문맥과 구세사의 전개 과정을 볼 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좋다.
오늘 복음에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하느님은 은혜로우신 분'이라는 뜻)의 탄생 예고가 나온다. 구약의 엘리야가 바로 세례자 요한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 성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고, 회개를 통해 주님을 잘 맞이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57~66)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 즈카르야는 글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59~61.63)
루카 복음 1장 59절의 '할례식에'로 번역된 '페리테메인'(peritemein; to circumcise)의 원형 '페리템노'(peritemno)는 원래 '둘레를 자르다', '칼자국을 내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할례 시행을 나타내는 단어로 굳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남자 성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할례 행위를 통해 그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된 백성임을 인정받았고(1사무17,26), 또한 하느님과의 계약의 표징으로서 그의 백성됨을 인정받았다(창세17,11).
또한 이 할례는 출생 후 8일째 되는 날에 시행했는데, 그 이유는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가 7일 동안 부정했듯이(레위12,2) 그 아이도 부정한 것으로 여겨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통해 7일간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하느님의 계약에 힘입어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할례를 행하는 생후 8일째는 현대 의학에서 인간이 가장 고통을 적게 느끼고, 또한 후유증이 거의 없는 때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 당시 자녀의 할례는 원래 가장에 의해서 시행되는데, 친척들과 이웃들이 함께 참석하여 공개적 의식으로 치러졌다.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친척들과 이웃들은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라고 짓고자 고집한다.
여기서 '부르려 하였다'로 번역된 '에칼룬'(ekaloun; they called; they were going to name)은 '부르다','이름짓다' 등의 뜻을 가진 '칼레오'(kaleo)의 미완료 과거형으로 이름을 짓고자 했던 자들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 준다.
즉 행동의 반복이나 계속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형이 사용된 것은 그들이 그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라고 부르고자 계속 고집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고집은 그 당시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짓던 이스라엘의 사회 풍습과 이름을 중요시했던 유대인들의 사상적 배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여기서 '안됩니다'에 해당하는 '우키'(ouchi; no!)는 부정사 '우'(ou)의 강조형으로서 '결코 ~아니다'라는 강렬한 부정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단어는 뒤에 '그러나' 등의 뜻을 가진 '알라'(alla)와 연결되어 더욱 더 강한 반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엘리사벳은 천사의 예언(루카1,13)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에 따라 자식의 이름을 짓는 사회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가 아닌 '요한'으로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엘리사벳의 이러한 담대함은 바로 하느님의 계약을 확신하는 믿음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편, '요한'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인의 이름으로는 흔했는데, '주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의 히브리어 '요하난'(yohanan)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요한'이라는 이름은 늙어서 수태할 수 없었던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게 부어주신 하느님의 은혜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세우시는 큰 은혜가 동시에 잘 표현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여기서 '글쓰는 판'에 해당하는 '피나키디온'(pinakidion; a writing tablet)은 글을 쓰는 판으로서(이사8,1) 고대 아시리아나 바빌론에서는 구운 점토판을 많이 사용하였고,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돌판(탈출24,12)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의 서판은 표면에 밀랍(wax)을 얇게 칠한 작은 나무판으로서 그곳에 철필로 글을 쓰곤 하였다.
여기서 서판에 '그 이름은 요한'이라고 쓴 즈카르야의 모습은 1장 22절에서 천사의 예언을 믿지 못했던 이전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데, 이것은 이름을 짓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표현하는 믿음의 행동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즈카르야가 주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쓴 이후에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바로 그 현장에서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는 기적들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느님의 은혜는 불신의 허울을 벗고 그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그 순간에 기적처럼 쏟아 부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열리고, 풀려'로 번역된 '아네욱테'(aneuchthe; was opened and loosed)는 '닫혀진 것을 열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노이고'(anoigo)의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즈카르야의 입과 혀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순식간에 정상으로 회복되어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 표현은 완전히 봉해졌던 입이 열렸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그 기능이 정지되었던 혀가 말하는 기능을 회복했다는 시적인 표현이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말하는 기능이 회복된 즈카르야가 최초로 내뱉은 말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언어들이었다.
여기서 '찬미하였다'로 번역된 '율로곤'(eulogon; and praised; praising)은 '찬양하다', '축복하다' 등의 의미의 '율로게오'(eulogeo)의 현재 분사형이므로 '말하는 것'과 '찬미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 일임을 나타내준다.
또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로 번역된 '엘랄레이'(elalei; he began to speak)는 '소리내다', '말하다' 등의 뜻을 가진 '랄레오'(laleo)의 미완료형으로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말이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즈카르야는 자신에게 내려온 천사의 저주가 풀려지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자유롭게 된 그 입과 혀를 가지고 가장 먼저 하느님을 계속하여 찬미했던 것이다.
엘리사벳이 수태한 지 약 10개월간의 긴 고통과 침묵의 시간을 끝마치고, 하느님을 향해 외치는 찬미는 세상의 그 어떤 찬미보다도 더 감동스러웠을 것이며, 지난 10개월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음에 대한 깊은 회개가 따라왔을 것이고, 예언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서 하느님께서 그 약속에 신실한 분이심을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앞서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를 전한 것처럼,
예수님의 탄생보다 요한의 출생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과연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마련하고자 그분보다 먼저 파견된 인물입니다.
말라키서의 예언처럼 말입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오늘 복음은 이 예언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 때를 이야기합니다.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여기서 쓰인 그리스 말 동사(‘에플레스테’)는 어떤 기간이 채워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예고되거나 약속된 바가 실현되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이 실현되는 때이며,
하느님께서 펼치실 구원 여정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순간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특히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자비와 호의를 베푸신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자비는 주님의 특별한 은혜로 아이를 얻은 엘리사벳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베풀어 주실 주님의 자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 아기는 주님께서 몸소 정하신 이름인 ‘요한’(히브리 말로 ‘여호하난’),
곧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는 뜻의 이름으로 불려야 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커서 이름처럼 하느님 자비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회개의 세례로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신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분의 자비하심으로 결정적인 구원의 때에 이르렀고,
이제 그 구원을 완성하러 오시는 분께서 머지않아 탄생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늘 하느님의 자비에서 비롯됨을 떠올리고 감사드립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2023년 12월 23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
독서(말라3,1-4.23-24)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나)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구원)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 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을 깨끗하고 의로게 하시기 위해 다 태워버리시는 불이십니다.(히브12,29)
(즈카13,8-9) 8 주님의 말씀이다. 온 땅에서 삼분의 이가 잘려 죽고 삼분의 일(믿는 우리)만 살아남으리라.
= 숫자 3은 하늘의 숫자로 완성을 뜻한다. 삼(3)을 둘(2)로 나누면 선악의 둘로 심판이 되어 죽음을 준다. 삼을 하나로 갖으면 완성, 진리인 생명이다.(1요한5,5-8)
9ㄱ 나는 그 삼분의 일을 불 속에 집어넣어 은을 정제하듯 그들을 정제하고 금을 제련하듯 그들을 제련하리라.
=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하느님의 손질, 단련하심이다. (요한15,2)
9ㄴ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리라. 나는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 하고 그들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리라.”
(1베드1,5-7)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대속(代贖)의 십자가, 곧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더러운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겨 흠없이 의로운 하늘의 사람이 된 우리다. 그래서 하늘의 합당한 삶을 사는 연습(練習), 곧 자신을 버리는(루카9,23) 불의 단련인 시련(試鍊), 고난(苦難)의 훈련을 현세에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히브12,5-11) 양다리 신앙이 아닌, 오롯이 하느님만을 아버지로 부르며 의탁하여 진리로 믿는 순수성이다.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세례자 요한이다.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 엘리야 엘(하느님)+ 야(야훼) 야훼 하느님의 뜻은 “내 말을 줄게, 네 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의 말, 문자로 주셨기에, 성경(聖經) 문자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뜻(생명, 빛, 진리)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뜻(욕망)을 위해 살기에 어둠, 죄 속에 두려운 파멸의 날을 맞는다. 곧 세상(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요한1,9-11. 3,19) 그래서 말씀이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진노(震怒)의 파멸을 막으시려 오셨다.
(요한1,14.29-31)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화답송>(시편25,8-9.)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진리)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진리)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복음(루카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 세례자 요한이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 사람의 관습(慣習)에 따라 짓는 이름이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 ‘요한’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 사람의 관습에 따른 이름(존재)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른 하늘의 존재로 말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의 율법, 관습,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곧 율법의 하느님의 진노, 파멸의 길을 피하고 진리, 생명, 빛의 길을 걷게 하려는(요한14,6 로마3,19-25) 엘리야, 세례자 요한이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즈카르야의 노래♪>
(루카1,76-79) 76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어둠인 세상이 약속한, 속이는 평화가 아니라, 주님의 불로 순수한 믿음이 되어 받는 평화(平和)다.
(루카12,49)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 아버지!
저희의 고난이 아버지 만을 찾고 의탁하라는 순수한 믿음을 얻는 하늘의 영광, 생명을 위한 단련인가요? 그래서 기뻐하며 기도속에 감사하라 하셨나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 힘으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탄식의 기도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