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죽였다. (마태2,13-18)
제1독서<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1요한1,5-2,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5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화답송>시편124,2-3.4-5.7ㄷㄹ-8(◎7ㄱㄴ) ◎ 사냥꾼의 그물에서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 사람들이 우리에게 맞서 일어났을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우리를 거슬러 저들의 분노가 타올랐을 때, 우리를 산 채로 삼켜 버렸으리라. ◎
○ 물살이 우리를 덮치고, 급류가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거품을 뿜어내는 물살이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
○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
복음<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2,13-18)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제1독서 (1요한1,5-2,2)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6)
앞선 요한1서 1장 5절에서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티끌만한 어둠도 없으신 완전한 빛이시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전혀'로 번역된 '우데미아'(udemia)는 '어떤 종류의 ~도 없다'는 부정의 뜻으로서,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종류의 어둠도 없다는 뜻이다.
특히 사도 요한은 '우크'(uk)와 '우데미아'(udemia)라는 부정어를 같이 사용함으로서 부정의 의미를 보다 강조하고 있다.
즉 빛이신 하느님 안에는 빛이신 하느님의 속성에 어떤 손상이나 흠집을 낼 만한 어떠한 종류의 어둠도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둠'으로 번역된 '스코티아'(scotia)는 사도 요한의 전용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저서에 절대적으로 많이 쓰였다.
즉 신약의16회 용례 중에서 요한의 저서에 14회가 쓰였다. 그중의 12회가 모두 자연적 어둠이 아닌 죄와 불의 등 상징적 의미로 쓰였으며 (요한1,5; 8,12; 12,35.46; 1요한2,9.11), 요한1서 1장 5절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였다.
이것을 통해 사도 요한은 하느님과 친교하는 모든 사람은 친교의 대상이신 하느님의 속성을 바로 알아야 됨을 보여주고 있다.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빛이신 하느님과 친교하려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그 자신도 철저히 거룩함에 머물러야 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A.D.1세기 말 교회에는 빛이신 하느님과 친교한다고 하면서도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살아간다면'으로 번역된 '페리파토멘'(peripatomen)은 '둘레', '근처','주위'를 의미하는 전치사 '페리'(pari)와 '밟다'(루카10,19)란 뜻의 동사 '파테오'(pateo)의 합성어로서 '이리저리 거닐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페리파테오'(peripateo)의 현재 가정법이다.
현재 가정법은 현재의 반대적이고 계속적인 행동을 나타내므로 본문에서 이것은 빛보다도 어둠을 사랑하는 습관적인 방식을 가리킨다.
특히 요한의 편지에서 이 단어는 윤리적인 의미를 포함하며, 한 인간의 개인적인 삶의 스타일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었다(1요한2,6.11; 2요한1,9.6; 3요한1,3.4).
한편,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1요한2,22)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하느님과의 친교는 영적 진리를 깨닫는 지적인 측면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하느님과 친교는 단순히 지적인 깨달음과 동의가 아니라 행위를 동반한 윤리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거룩한 영을 소유한 자들은 어떠한 죄로부터도 자유롭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거룩한 영적 지식을 선물받은 사람은 육체의 죄가 자신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직접 주시는 놀라운 영지(靈知)를 가진 자에게는 더 이상 죄의 원리가 지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본성과 경험은 죄가 하느님과의 영적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가르쳐준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있을 수 없고,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있을 수 없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요한3,20-21)
빛이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구세주로 모신 자는 진리를 실천하는 실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가 모든 허물을 깨끗하게 하므로 인간으로 하여금 더 이상 어둠 가운데 머물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과 친교한다고 고백하는 이가 계속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모순인 것이다.
참된 회심과 죄의 보속은 인간을 더 이상 어둠 속에 살아가도록 놔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안에 머무시는 거룩한 성령께서 속성상 어둠을 싫어하고 어둠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내주(內住)하시는 하느님의 자녀는 진리의 영의 속성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빛과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기 순교자 축일] 사제의 묵상 (서철 바오로 신부)
마태오 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위업을
예수님 안에서 계속하시고 그것을 완성하신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중요한 체험들에 참여하시어 새로운 ‘모세’로 제시됩니다.
파라오가 히브리 사내아이를 죽이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살리시고,
피신시키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에서 예수님을 이집트로 피신시키시고
사람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로 보내 주십니다.
이어서 복음사가는 죄 없는 아기들의 학살로 말미암은 아픔과 비탄을 전합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 31,15).
라마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 유배자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던 출발지로,
라헬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유배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식을 잃은 모든 어머니의 눈물과 통곡을 대변합니다.
이 울부짖음은 하느님을 향한 외침이면서 아직 주어지지 않은 위로에 대한 요청입니다.
‘사실 하느님만이 이에 응답하실 수 있는데,
말을 능가하는 유일한 참된 위로는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만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가져다주며,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 유년기』, 157-158면 참조).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죄한 이의, 한 아이의 죽음, 상처와 아픔 앞에서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도대체 뭘 하셨나?’
하고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묻다가 ‘사랑만이 전능하다고 믿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힘이 아니라 ‘상처받는 사람 곁에서 더 힘들어하시고,
더 아파하시는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문제를 풀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보다 더 아파하시면서 내 곁을 지켜 주시는 아름다운 분을 만났습니다.
그 아름다운 분을 외면한다면 인간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처럼 아름다워지려고 발버둥 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를 줄 수 없다.
(마태2,13-18)
13 동방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하느님께서 야곱과 그의 손자들에게 양식을 찾아 이집트로 들여보내실 때의 일이다. 그것은 이집트의 양식은 종살이 하게 하는 양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배려, 교육, 사랑이셨다. 그러나 야곱은 그 이집트로 가는 것이 두려웠다.
(창세46,3-4) 3 그래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 큰 민족, 하늘의 참 양식을 먹게 될 민족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을 종살이에서 불러내실 때, 참 양식인 어린양의 살을 먹고, 피로 구출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하느님으로) 그들의 그 길을 그대로 걸으시기 위해 이집트로 들어가신 것이다. 이집트는 세상을 뜻한다.
그 세상 양식에 취해 종살이 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늘 이 세상으로 내려와 들어오신 예수님이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살과 피로 구출 되었듯이 말이다. 우리도 그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그 대속의 죽음을 먹고 구원 받는 것이다.
(1요한2,2)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 왜, 두 살 이하 아이들을 죽였을까? 먼저 숫자 둘은 분리를 뜻하는 것으로 선악의 그 인간의 두 마음을 뜻한다. 그 두 마음은 뱀의 유혹을 먹은 아담의 원죄라는 것이다.
(로마서5,12) 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외 창세8,21시편51,7 58,4)
= 그러니 모든 인간은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두 살 이하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무엇이 위로가 될까~ 그 어떤 것도 위로가 수 없다. 죽은 자식이 돌아오지 않는 한 위로는 없다. 성경은, 그 여인이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들이 살아 돌아와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아들들(죽을자들)을 살리시려, 구원자로 위로하려 오신다는 것이다.
(2코린1,3)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독서로~
(1요한1,5-10) 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얼마 전 하느님께서 어둠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다.(이사45,7) 그런데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는 말씀은, 전에 묵상했듯이 ‘어둠과 빛은 하나’라는 것이다. 저녁(밤)을 지나야 아침(빛)이 오듯, 죄(악)를 통해 용서(선)를 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이 악을 품고 대신 죽어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원리, 구원의 진리인 것이다.(요한14,6참조)
그 진리를 아는, 그 진리의 하느님을 안다는 이가 어둠에 멈춰 있다면, 곧 선악의 그 어둠의 법, 그 세상의 법으로 스스로를 단죄하며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는 하느님의 사랑도, 진리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1코린4,3-5)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늘의 진리를 안다면 어둠은 빛으로 가는 통로이기에 어둠에 멈추는 그 삶(어둠)을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편139,12) 12 암흑인 듯 광명인 듯 어둠도 당신께는 어둡지 않고 밤도 낮처럼 빛납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 그 인간의 열심,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가 아니기에 그 자기 의로움에 속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씻겨지지 않는 것이다. 죄는 흠 없는 깨끗한 피로만 씻겨 지기 때문이다.(히브9,22참조)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 죄란, 하느님의 말씀을 거짓되게 하는 것이다. 곧 인간의 뜻으로 계명으로 받는 것이다. 그 죄는 아담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창세2,17)
그래서 어린양의 피, 그리스도의 대속이 꼭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아담처럼 스스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열심을 부렸던 그 자기 의로움의 그 가치를 부인하는 그 죽음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내 생각, 뜻을 죽이는 머리가 잘리는 순교인 것이다.
(에페1,7.10)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에페4,15)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래서 하늘에는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그 머리(뜻)가 잘린 순교자만 있는 것입니다.
(묵시4,10-11)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 자기 부인, 곧 자신의 생각, 뜻(머리)의 죽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 자신의 머리에는 금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머리이신 주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이들만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가 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하고 찬양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그것이 구원의 최종 목적인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이다.
☨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것을 인간의 뜻으로 말하고 듣는 그 모든 죄에서 구하여 주소서~아멘.!!!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하느님의 길(道)!
독서(1요한1,5-2,2)
사랑하는 여러분, 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 빛= 생명, 있음, 선(善), 진리. 어둠= 죽음, 없음, 악(惡), 불의(율법)를 뜻한다. 곧 빛은 하늘나라의 속성을 , 어둠은 땅(어둠)의 속성을 뜻한다. 또한 빛은 영원한 실체며, 어둠은 사라질 그림자이다.
영원한 빛이신 하느님은 땅(어둠)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신다.
(2코린4,6)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 어둠에서 첫 창조(創造)를 하셨듯이, 어둠인 우리에게 빛(하늘, 있음)을 넣어 빛으로 새 창조(創造)를 이루신다.
(에페5,8)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하늘, 있음)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갈라3,21-26) 21 그렇다면 율법이 하느님의 약속과 반대된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율법을 우리가 받았다면, 분명 의로움도 율법을 통하여 왔을 것입니다. 22ㄱ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 인간의 의(義), 열심(熱心)인 율법(律法)은 믿음과 상관없이 죄(罪)를 알게 할 뿐이다.
22ㄴ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 인간(人間)의 어둠인 죄(罪)를 알라고~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로마4,14-15) 14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상속자라면, 믿음은 의미가 없어지고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로마3,20.23-24)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을 진리(眞理)로 이웃과 나누는 것,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親交)를 나누는 것이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세상, 율법)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하늘대속, 진리)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 죄(罪)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도(使徒)가 말하는 죄는, 인간의 의(義), 열심(熱心)인 율법(律法)으로 구원(救援)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眞理)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분의 십자가(十字架)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큰 죄(罪)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속성(屬性), 어둠, 속셈인 죄(罪)를 드러내신다.(히브4,12이하 참조) 어둠, 죄, 죽음에서 구해 내시어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죄를 지었을 때, 우리의 모든 죄(罪)를 대속하신 ‘십자가(十字架)의 예수님께로 가서 죄(罪)를 없애라’ 는 말이다. 거저 의롭게 해주신 은총, 은혜, 진리의 주님께 피신(避身)하라는 것이다.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의 대속(代贖), 그분의 죽음으로 더러운 나의 모든 죄(罪)가 씻겨 깨끗해 졌음을 믿는다면, 죄(罪)를 짓지 않으려 노력(努力)할 것이다. 정말로 믿는다면.....
그래도 우리는 수시(隨時)로 넘어진다. 죄(罪)에 떨어진다. 그것이 우리 인간(肉)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의 죄의식에 떨어지지 말고, 죄(罪)의 때에 그 ‘죄의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죽으신 주님께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사도(使徒) 바오로처럼(로마7,15-8,4 참조) 하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값은 영원(永遠)한 용서(容恕)이기 때문이다.
(히브10,14) 14 한 번의 (십자가)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믿음으로 얻는 용서(容恕), 구원(救援)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느님의 길, 진리로 저희 모두를 이끄시는 천주의 성령님!
사랑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마태 2,13-18)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죠? 그리고는 헤로데의 칼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신을 하세요. 성경은 그 사건이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라는 구약의 예언 성취라고 합니다. 그 사건은 예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의 삶을 그대로 사실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임과 동시에 율법주의와 유대주의로 자신들의 힘과 가치를 숭앙하는 이스라엘 자체를 힘의 세상인 이집트로 선언해 버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 가셨는데 성경은 하느님의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고 그런단 말예요. 졸지에 유대주의의 이스라엘이 이집트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걸 부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베들레헴 지역의 두 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이 모두 도륙을 당하는 일이 발생해요.
(마태복음 2:15~18)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에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6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18 '라마 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 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으세요? 하느님이 분명 요셉에게 그 자리를 피하라고 말씀 하셨죠? 그러면 그때에 다른 어미들에게도 전갈을 보내서 그 자리를 피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요? 왜 다른 얘들은 다 죽게 놔두세요? 예수님만 살짝 들어서 이집트로 보내신단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
하느님은 성경의 독자들에게 뭔가를 교훈하시기 위해서 어린아이들을 다 죽여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하늘에 뜬 별이 동방박사들을 일부러 헤로데에게 데리고 간 거예요. 죽이라고요. 아니 그 별이 미쳤지, 바로 그냥 예수님 태어나신 구유로 갔으면 될걸, 왜 헤로데에게 동방박사들을 데리고 가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게 하냐구요? 죽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라는 호세아의 예언이 인용된 곳에 ‘라헬의 통곡’ 이라는 예레미아의 예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을 주의하여 보셔야 해요.
지금 성경은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그 율법주의 자체를, 힘의 원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그 이집트로 규정을 해 버리시고 그래서 예수님을 거기서 빼내는 거예요. 예수님이 첫 번째 엑소더스를 하고 그 뒤를 따라 하느님의 백성들이 엑소더스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정작 뭐였냐면, 이스라엘의 유대주의, 율법주의였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거기 와서 죽으시는 거예요. 이집트는 바로 교회 안에 그러한 율법주의, 유대주의의 모형으로 등장했던 거지, 이집트가 쳐 죽일 놈들이 아니라니까요. 그게 우리 안에 있는 바로 그 ‘옛 자아’ 그 모습이란 말예요.
그렇게 성경은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율법주의 자체를 힘의 원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집트로 규정해 버리고 그곳에서 사는 모든 자들은 모두 다 죽어야 할 자들임을 어린아이들의 죽음으로 주지시키는 거예요. 다 죽어야 되는 거라는 거예요. 이집트니까.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은 어떤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자의에 의해서 내어 놓기도 전에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거예요. 이걸 원죄라고 해요.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으면 다 죽어야 할 존재예요. 나면서부터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자들이 자라면서는 오죽하겠어요?
그러니까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다는 건...... 거기에 사는 모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할 자들이라는 선언이란 말입니다.
마태오는 그걸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통곡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이 예레미야의 예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대의 멸망과 관계있는 예언이죠? 라마라는 곳은 남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 집결된 곳이에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죠? 여호수아 18장에 보면 나오죠.
그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샐사 부근이에요. 예라미야 예언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했고, 남 유대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라헬이 그 무덤 속에서 자기 자식들이 끌려가는 걸 보고 통곡하는 것으로 묘사를 한 거예요.
라헬의 두 아들이 누구죠? 요셉과 베냐민, 요셉의 큰 아들은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에브라임이죠? 망했잖아요? 남유다는 베냐민. 라마가 또 베냐민의 땅이고, 요셉과 베냐민, 두 아들을 다 잃은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라헬을 이스라엘의 어미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이스라엘 전체가 다 멸망했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모든 인간은 다 죽어야 된다는 뜻이에요. 하느님의 백성으로 택해진 그자들도 원래 다 죽어야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렇게 다 죽어야 되는데, 그래서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는데, 라헬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죠? 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밖에 없어요. 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 이외에 다른 건 절대 위로가 안돼요.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예수가 바로 그 죽은 아들을 살리러 왔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란 말입니다. 한 아기가 와서 죽음에 던져져야 할 하느님의 아이들을 선택하여 살려 내는 거예요. 그걸 구원이라고 해요.
그렇게 예수는 죽어야 할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이지, 이 죄악의 세상에서 그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그런 복을 주어서 인간들의 역사 속에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러 오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태복음 1: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자기 백성, 모든 백성이 아니에요. 자기 백성만. 어디에서? 죄에서. 그게 메시아란 말예요. 그렇게 구약적 이스라엘의 율법주의를 폭로한 성경은 역사적 이집트에서 예수님을 다시 불러 내시죠? 예수님께서 출애굽 이스라엘의 여정을 그대로 밟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집트에서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게 지금 마태복음의 흐름이에요.
세례라는 건, 애굽의 이스라엘이 죽고 가나안의 이스라엘이 새롭게 창조되는 구원의 모형이에요. 그래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의식을 행하는 거죠. 그것도 하느님의 주권과 능력에 의해 성취될 새 창조의 모형이에요.
첫 창조 때 무대 배경이 어땠죠? 수면 위에 하느님의 영이 운행을 하시고 '빛이 있으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창조가 시작됐잖아요? 예수님의 세례 현장은요? 저주 받을 구약이 빠져 죽을 물이 있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이 계시고 직접 하늘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또 떨어져요. 그리고 그 위에 하느님의 영,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한단 말입니다. 이게 새 창조라는 거예요. 새 창조,
첫 창조에서 모형 되었던, 그리고는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시험을 받으세요. 그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이제 12제자를 모으시죠. 그건 교회입니다.12제자, 하느님의 교회를 대표하는 12제자를 모아서 그들을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도를 전하는 어떤 산으로 끌고 올라가시는 거예요. 그게 산상수훈의 산이란 말입니다.
이건 정확하게 출애굽 이스라엘의 삶을 회복시키고 완성시키며 가는 모습이에요.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살아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너죠? 그걸 사도 바오로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는다고 그래요. 고린도전서 10장 2절에서, 그 홍해에서 이집트군대가 다 빠져 죽죠?
그 이집트 군대는 뭐라고 그랬어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건져내면서 이스라엘을 자주 군대라고 부르시죠? 이집트 군대가 빠져 죽었다라는 건, 애굽화된 이스라엘의 육적 자아의 죽음을 상징하는 거예요.
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성탄 팔일 축제의 넷째 날,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으로 일어난 참상 하나를 기억합니다.
그것은 헤로데 임금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 아기가 커서 자기 왕권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광기 서린 끔찍한 일입니다.
한 아기의 탄생으로 밝게 비추는 빛, 그리고 많은 아기의 죽음으로 드리워진 어두움.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는 이처럼 명과 암이 공존합니다.
구원하러 오신 분의 탄생이 그토록 많은 이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무런 죄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하였던 그 아기들의 희생이 구원 역사에 정말 필요한 일이었는지 묻게 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원의 때가 오자 이 아기들은 자기들 희생의 피로 그 역사에 기꺼이 동참하며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헤로데의 광기는 잠잠하여졌고, 임금은 더 이상 그 아기를 찾아다니지 않게 됩니다.
베들레헴의 죄 없는 아기들이 한 아기의 죽음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덕택으로 살아난 아기는 자라나서 모든 이의 죽음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의 죽음이 우리가 모두 누릴 영원한 생명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니, 교회는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봉헌한 순교자들의 피로 더욱 굳건하여질 수 있었습니다.
꼭 순교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신앙인은 누구나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도록 초대됩니다.
베들레헴의 아기들은 복음을 모르면서도 그 초대에 응하였는데, 복음을 잘 아는 우리야 얼마나 더 깊이 그분의 뜻에 동참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루하루 봉헌하는 우리의 작은 희생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성실(피스티스,믿음)하신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
독서(1요한.1,5-2,2)
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어둠, 절망, 화)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선, 희망, 생명)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인정)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 우리의 죄(罪)를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代贖)하심으로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 빛이 어둠을 드러내듯, 말씀이 죄(罪 거짓)를 드러내신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아멘.
(이사45,7) 7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야훼)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 어둠으로 빛을 깨닫게 하신다. 불행으로 행복을 깨닫게 하신다. 땅의 어둠, 죄로 하늘의 빛, 행복, 용서주심을, 곧 어둠과 빛이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용서(容恕)요 진리(眞理)다. 그래서 세상에 어둠, 불행을 허락하신 것이다.
복음(마태2,13-18)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 이집트는 세상, 어둠을 모형(模型)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ㄱ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 내 안에 헤로데, 곧 ‘내 뜻, 세상의 왕권, 영광을 지키기위한 그 육(肉)의 욕망이 죽을 때까지’가 들어있음이다.
15ㄴ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이스라엘, 세상, 곧 죄인들의 ‘구원의 역사(歷史)’를 말씀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들의 구원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 내 뜻이 무시 당한 그 화(禍)로 이웃의 뜻을 죽이는, 힘들게 한 내 모습이다.
헤로데의 화(禍)로 죽임당한 그 아이들의 죽음을 순교(殉敎)로 보기 이전에 두 살, 곧 ‘인간들의 두 마음, 그 선악의 구조, 구 두 법을 갖은 사람은 죽는다.’를 깨닫게 하심이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 잃은 자식, 아들이 살아 돌아와야 위로가 된다는 얘기다. 곧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선악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 하셔서 그리스도 예수로, 위로의 아들로 다시 돌아오실 것을 뜻한다. 곧 우리의 위로(慰勞)시다.
(2코린1,3-7)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6 우리(사도)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테살5,23-24)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 성실(誠實 피스티스- 믿음)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 위로다.
(로마15,7.13)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13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아멘)
☨ 은총이신 그리스도의 성령님!
성령이여!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 진리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기쁨, 평화, 믿음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3년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2>
보호자 진리의 성령님께 의탁합니다.
제1독서(1요한1,5-2,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5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 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다. 곧 하느님의 뜻,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곳이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진리(眞理)다. 곧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죄(罪)의 대속(代贖)인 십자가(十字架)의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요한1,4 14,6)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 자신이 어둠임을 깨닫고 그 자신을 버리고(否認) 빛이신 주님 안으로 들어가 빛이 된다. 곧 주님 안에서 죄 없는 새로운 피조물, 새것이 된다.(2코린5,17)
(요한8,12) 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말씀)가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아멘)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히브4,12)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빛, 용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영(靈)의 수술이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어둠, 죄 속에서 살아가는 저희를 위하여 대속, 속죄(贖罪) 제물이 되시어 ‘의롭다’ 변호해 주시는 생명의 빛,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화답송>시편124,1-8(◎7ㄱㄴ) 1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하여라. 야훼께서 우리를 위하지 않으셨던들, 2 사람들이 우리를 거슬러 일어났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지 않으셨던들, 3 우리를 거슬러 저들의 분노가 타올랐을 때 우리를 산 채로 삼켜 버렸으리라.
= 임마누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다.
4 물살이 우리를 뒤덮고 급류가 우리 목 위로 넘쳐흘렀으리라. 5 거품 뿜는 물살이 우리 목 위로 넘쳐흘렀으리라. 6 우리를 저들 이빨의 먹이로 내주지 않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7 우리는 사냥꾼의 그물에서 새처럼 벗어났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아멘) 8 우리의 도우심은 주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 어둠에서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시고 빛이 찾아오셔서(루카2,8-9) 어둠인 저에게 빛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 감사하나이다.♡
복음(마태2,13-18)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하느님이 없는 어둠인 ‘이집트’다. 곧 어둠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불러내시겠다는 구원의 표징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 자식이 살아나 다시 돌아와야 위로(慰勞)가 된다. 곧 하느님의 아들, 아기 예수께서 아들(그리스도)로 돌아와 위로(평화, 안식)가 되신다. 즉 빛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외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이다.
사제께서☞ 헤로데는 동방박사에게 속은 것을 알고 아기 예수님 나이 또래 사내아이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그는 희생된 아이들 중에 아기 예수님이 있다고 확신했지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피신시킨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복음 말씀 역시, 이러한 구원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 때문에 수많은 죄없는 아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이 오히려 죽음을 가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죄많고 당시 정권에 저항하던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죄없는 무수한 아이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두고서 하느님께 믿음으로 다가기기 보다는 이성으로 다가 가려는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어날 수 있게 하시는가?” 라고 질문합니다. 그런데 구원사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비 합리적인 사건의 이면에는 하느님이 아닌 인간들 자신이 만든 역사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악(惡)에서 나온 학살(虐殺)인 것입니다. 헤로데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여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두 살까지의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저질러진 죄없는 아이들의 죽음이 지금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결정적인 생명의 씨앗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적인 어리석음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죄없이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죽어간 어린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초대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참으로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수한 아기들의 죽음이지만 성 쿠옷불트데우스 주교는 이렇게 아기들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어린 것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갔고, 그들의 부모들은 죽어가는 순교자들을 보고 애통(哀慟)해 했습니다. 그리스도 께서는 아무 말못하는 그 아기들을 자신의 합당한 증거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말을 못하면서도 그리스도를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사지를 움직여 힘이 없는 아기에 불과했지만 벌써 승리의 월계관을 얻었습니다.”
☧ 아버지!
죄없이 죽임을 당한 아이들을 위로하시고 저희들에게도 주님을 증거하는 증거자로 쓰이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