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요한의 증언(證言) (요한1,29-34)

2024. 1. 3. 오전 6: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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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3일 수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요한의 증언(證言) (요한1,29-34)

 


1독서<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1요한2,29-3,6)

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화답송>시편98,1.3ㄷㄹ-4.5-6(3ㄷㄹ)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복음<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1,29-34)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 공현 전 화요일 제1독서(1요한2,29-3,6)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1)

 

 요한은 앞의 요한1서 1장과 2장에서 성도가 하느님과 친교하는 자라는 사실에 촛점을 맞추어 그들이 추구해야 할 신앙과 생활에 대하여 권면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요한1서 3장 1절에서 4장 6절까지에서는 성도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 그들이 지향해야 할 신앙과 생활을 천명한다.

 

먼저 요한1서 3장 1-3절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입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신분을 밝히고 성도가 가져야 할 장래의 소망과 현재의 거룩하고 순결한 삶에 대하여 밝힌다.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의 자녀'로 번역된 '테크나 테우'(tekna theu)에서, '하느님의'로 번역된 '테우'(theu)는 소유격으로서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임을 가리킨다.

 

또한 '자녀'로 번역된 '테크나'(tekna)는 동의어 '휘오스'(hyos)가 법적 의미에서의 자녀란 의미가 강한 것에 비교하여, 혈육의 의미가 강한 단어이다.

 '휘오스'(hyos)가 양자를 나타낼 때 자주 쓰이는 한편, '테크나'(tekna)는 친자를 가리킬 때 자주 쓰인다.

 

바오로는 성도가 사탄의 자녀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로 하느님의 자녀로 그 신분이 바뀐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휘오스'(hyos)란 용어를 주로 사용한(로마8,14.15 ; 갈라4,7) 반면에, 요한은 하느님과 성도간의 친밀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테크나'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속의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소중한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표현 가운데 잘 드러나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떄문입니다'

 

 원문상으로는 주절만 현재 시제일뿐 '호티'(hoti)이하의 종속절은 부정 과거 시제(Aorist)이다.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로 번역한 '호티 우크 에그노 아우톤'(hoti uk egno auton)에서, '에그노'(egno)는 '기노스코'(ginosko)의 부정 과거형으로서,'우크 에그노'(uk egno)는 과거에 '알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이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 공생활을 하실 때에 유대인들이 그를 하느님의 아드님,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어떻게 갈릴래아에서 나오겠느냐고 하면서 갈릴래아 출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고(요한7,41), 산헤드린 최고 의회 예수가 자칭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말하자 그를 신성 모독자로 몰아 처형했다(미태26,63-66).

 

요한이 여기서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여기의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이것은 나아가 본절 상반절과 관련시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분으로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본문의 '그분'(auton)은 분명히 상반절의 '아버지','하느님'을 받는 대명사이다.

 

그런데 요한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한다' 아닌 '알지 못했다'는 부정 과거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세상이 역사적으로 특정한 기간에 그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타내어, 그들이 알지 못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그분은 하느님과 동일한 분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세상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으므로 그에게 속한 그리스도인까지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요한15,19)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과 그리스도인과 세상과의 관계를 설명하셨던 적이 있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2)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으로 번역된 '호모이오이 아우토 에소메타'(homoioi auto esometha ; we shall be like him)에서, '호모이오이'는 '~처럼'(like)이고, '아우토'는 '그분'(him)이며, '에소메타'는 '우리가 될 것이다'(we shall be)이다.

 

이것은 '신을 보면 신처럼 된다'라는 그리스의 신비적 사상과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영광가운데 머무르게 되면, 하느님의 영광과 임재가 나타난다'라는 유대적 사상과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요한은 여기서 위와같은 사상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계시를 근거로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성도가 완전히 영광스런 상태가 되는 시점은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성도들이 완성된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르며, 그리스도를 온전히 보게되는 그 때이다(1코린13,12).

우리가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영광스러움(glorification)이 시작되고 완성된다.

 

영광스럽게 완성된 후의 성도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 타볼산에서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된 모습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마태17,2).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하느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자가 즉각적으로 완전한 자로 변모된다고 가르쳤다.

요한은 이와같은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사상을 의식하면서, 현재에 완전해지는 것은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후에야 완전한 상태로 변모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신적 지식과 경험이 이 세상안에서 사람들을 완전하게 변화시킨다는 교리의 허구상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동시에 고난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장차 이루어질 영광스런 모습을 바라보며 종말론적 희망을 갖게 해준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3,3)

 

 여기서 '희망'으로 번역된 '엘피다'(elpida) 원형 '엘피스'(elpis)는 '바라는 것' 또는 현재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특히 성도들의 현재의 삶 속에서 경험되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약속된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문맥에서 많이 사용되었다(로마4,18 ; 2코린10,15 ; 필리1,20).

 

본절에서도 이 '희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시 그를 대면할 때, 그를 따라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변모될 것을 기대하는 희망을 가리킨다.

그러한 희망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주님의 순결하심과 같이 자신을 순결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순결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하그니제이'(hagnizei)의 원형 '하그니죠'(hagnizo)는 '깨끗하게 하다', '정결케 하다', '정결례를 행하다'라는 뜻으로 거룩함과 정결함을 위해 정결례를 행하는 거룩한 행위 뜻한다.

 

즉 종말에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님을 대면할 것을 기대하는 성도는 자신들을 마치 구약의 성별된 자들이 정결례를 행하듯이, 거룩함으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요한은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중요한 삶의 자세 죄로부터 떠나 자신을 순결하게 하는 삶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의 자녀는 죄를 떠나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순결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을 소유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다.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에서 '순결'로 번역된 '하그노스'(hagnos)는 마치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순결한 처녀와 같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서, '정결', '순전', '성결', '깨끗' 이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서 '처럼'(같이)로 번역된 '카토스'(kathos)는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순결함의 모범이 됨을 잘 보여준다.

모든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정결함의 목표와 모델은 바로 무죄하여 한 점의 티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이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영이 이미 신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 완전하게 되었다 주장하며 또한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아 경시하면서 윤리적 삶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방종 생활을 했다.

요한은 이러한 그들의 비윤리적인 종말론적 구원관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화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오늘 복음이 전하는 내용의 정점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 증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 죽음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유다교에서는 파스카 준비일에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에서 성전에서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요한복음은 어린양을 잡는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타를 향하여 가셨다고 말합니다(19,14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에

그의 뼈가 부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19,36 참조).

이 말씀은 이집트에 내린 마지막 재앙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재앙을 피하고자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아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통째로 구워 먹어야 하였으며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표시를 해야 하였습니다.

이를 보신 하느님께서는 이집트를 치실 때 그 집을 지나가십니다.

이 사건에서 파스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파스카의 어린양과 비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세상의 죄를 없애는 것이라고 요약합니다.

그러기에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 사건의 가장 핵심인 십자가 죽음의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 때 어린양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었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은 죄에서 해방될 수 있고 구원될 수 있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

 (1요한 2,29-3,6)

사랑하는 여러분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 하느님이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바룩2,6) 6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우리와 우리 조상들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1요한2, 1-2) 1 나의 자녀 여러분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죄인들을 위해 속죄 제물로 오셔서 그 죄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그 의로움입니다. 그 속죄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을 진리로 믿고 의탁하는 것이 의로움의 실천입니다.(요한 14,6) 인간들의 의로움이라는 것이 개짐, 곧 걸레로(이사64,5) 아무 소용없는 것이라(이사57,12) 하셨으니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 하느님에게서 얻는, 하느님에게서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태 6, 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을 의로움으로 먼저 깨달으라 하심입니다. 어디서? 성경속에서 찾아 깨닫고 믿고 의탁해야지요.

 

(로마4, 22)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 믿음이 우리의 의로움입니다.

 

(요한1, 27)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 세례자 요한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루가7, 28)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 의인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도록 내 죄를 고백하는 것, 구원 신앙입니다. 그 더러운 죄의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의로움입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많은 신학자들이 이 세상에 하느님은 없다 인간들이 자신의 뜻을 위해 만들어낸 조작된 하느님만이 있다고 합니다.(마르코7,7-13참조) 예수님도 또한 그렇습니다.

 

(마태20, 28)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우리의 죗값으로 당신의 목숨을 바치러 오신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 내 뜻, 내 만족을 위한 예수님 섬기기의 그 헛된 신앙을 삽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섬김의 대상이 아닌 대속의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는 그 예수님의 대속으로 깨끗해져 그분처럼 되어 그분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각, 뜻을 보태고 뺀 사람의 규정 교리로 섬기는 그 예수님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순결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도 인간들의 규정 교리로 스스로 의롭다, 깨끗하다 하지 않게 되는......

티끌, 죄의 본질 그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와 그분의 피로 깨끗해지는 그 순결하게 됨입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죄는 곧 불법입니다.

= 불법을 인간들의 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뜻 그분 말씀 안에서 찾읍시다. (마태721~23.28참조)

 

여러분도 알다시피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 예수님은 흠도없고 티도 없는 깨끗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깨끗한 피로 더러운 죄가 씻겨 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로 열심히 씻어 내봐야 더럽습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입니다.

 

(히브9, 14) 14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 그 분 안에~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오셔서 그 죗값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신, 또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 의로우신 예수그리스도(1요한 2,2)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용서받지 못한 그 죄의 상태로 있는, 그 죄인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하늘의 덮으심의 대속, 그 하늘의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로마7,22-25)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의 대속만을 의지 했습니다.

 

(히브4, 1)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아멘-*^^*-

 


 

 

주님 공현 전 화요일 복음(요한1,29~34)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29ㄴ)

 

여기서 '없애시는'에 해당하는 '호 아이론'(ho airon; who takes away)에서 '아이론'(airon) '아이로'(airo)의 현재 분사이다.

지속과 반복의 의미를 갖는 현재 시제는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가 십자가 위에서 단 한번에 성취된 것이기는 하지만,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효력이 영원토록 유효함을 드러낸다.

 

희랍어의 '아이로'(airo)는 '지고 간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없이하거나 제거한다'는 의미가 더 적합하다.

즉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속죄의 제물로서의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죄를 완전히 없게 할 수 없어서 성전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드려지던 동물의 희생 제사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구약의 제사들은 아자젤 염소에게 죄를 지어서 광야로  가게 하거나 (레위16,8.21~22), 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는데, 이것은 죄를 없애지 못하고 죄를 기억하게 할 뿐 이었다(히브10,3.4).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을 단 한 번 바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을 얻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10,10)라는 감격적인 말씀은 그분의 속죄가 완전한 것이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례자 요한에 의해 예수님께 붙여진 이 위대한 칭호는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서만 발견되며, 다른 세 복음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도행전 8장 32절과 베드로 1서 1장 19절에 각각 한번씩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 집중되어 있다.

 

'어린양'을 뜻하는 '암노스'(amnos; Lamb)는 신약 성경에서 네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요한1,29.36; 사도8,32; 1베드1,19).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서도 같은 뜻을 가진 '아르니온'(arnion)이 더 많이 발견된다.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께 이 칭호를 사용할 때에는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어린양에 대한 독특한 관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암노스'(amnos)의 히브리어 상응어는 '케베쉬'(kebesh)이다. 이 용어는 '어린양' 뿐만 아니라 '양'(sheep)을 가리켜서 쓰이기는 하는데, 대부분 희생 제물의 문맥에 나타난다(탈출29,38; 레위4,32; 민수15,5).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부를 때에 과월절(유월절; 해방절) 어린양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탈출12,3).

시기적으로 과월절이 멀지 않았고(요한2,13),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바로 그 밤에, 이스라엘의 집을 보호해 준 것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탈출12,11.13)였음을, 유대인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증거는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할 분이시며, 과월절 어린양처럼 자기 희생을 통해 이것을 성취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호 암노스 투 테우'(ho amnos tu theu; the Lamb of God)라는 세례자 요한의 선언은 구원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람이 잡아서 제단에 드리던 양은 그 수가 무수히 많아도 인간의 죄를 완전히 씻어 주지 못했다.

흠없고 티없는 어린양, 곧 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가 있었다.

 



 

20240103일 수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여 주신 희생양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적인 예배에서 죄를 용서받거나 정화되고자 어린양을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쳤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를 없애 주시려고 당신께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기에 이런 선택을 하셨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1독서는 이 사랑을 깊이 있게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버릴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실 정도로 그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무엇일까요? 살인? 간음? 도둑질? 우상 숭배?

십계명에 열거되는 죄들은 모두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죄입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하느님의 용서를 자기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려고 마음먹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없애 주시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가장 절망적일 때, 오늘 말씀이 고백하는 하느님의 사랑에 믿음을 두며, 용기를 내어 고해소로 향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독서(1요한2,29-3,1-6)

29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늘의 의로우신 분을 찾아 믿는 것,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로마3,24) 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큰 사랑으로다. 세상은 알 수도, 믿을 수 없는 사랑이다.

 

3,1ㄱ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 살아가는 우리(나)다.

 

(1요한4,10)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3,1ㄴ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실 그대로 그리스도로 뵙게 된다는 말이다. 곧 표징(標徵)의 예수님이 아닌, 표징의 실체이신 용서, 구원자, 그리스도로 뵙게 된다.

 

(요한12,47)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복음(요한1,29)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 말씀을 흠 있게 하는 선악의 법으로 갖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대속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믿어 그분 안에서 사는 것, 순결(純潔)한 삶이다.

 

(히브10,10.22)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과거 완료(完了)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죄는 곧 불법입니다.

= 죄(하마르티아-과녁을 벗어나다), 인간들의 선악의 법으로 판단된 죄가 아니다. 하느님의 뜻, 의(義)를 벗어난 인간들의 의(義), 욕망을 위해 사는 것이 죄(罪)다. 성령(聖靈)께서 이끌어 주셔야 깨달을 수 있다.

 

(요한16,8-9)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용서를 깨달은 이는 인간들이 정한 법을 더욱 더 잘 지키게 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면, 진리(眞理)로 갖으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가 없음이 된다. 선(善)이 악(惡)을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1코린15,54)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그리스도의 대속, 승리를 믿지 않는 것, ‘하마트리아’, 죄다.

 

(로마8,3)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이 얼마나 큰 사랑이신가!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은 이미 다 이루어졌나이다믿음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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