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ㄴ)

2023. 6. 12. 오전 5: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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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일 월요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


   


1독서<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어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1-7)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6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화답송 시편34(33),2-3.4-5.6-7.8-9(9)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복음<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5,1-12)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제1독서(2코린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3) 

 

코린토 2서 1장 3~7절에는 위로의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 나온다. 이런 내용으로 구성된 본 단락은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찬미, 찬송하리로다')라는 감탄사로 시작된다.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로 번역된 '율로게토스'(eulogetos)의 원형 '율로게오'(eulogeo)는 구약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히브리어 '바룩'(baruk)의 역어이다. 

 

이것은 다니엘 3장 26절과 시편 144장 1절, 시편 41장 14절, 시편 72장 18절, 시편 106장 48절의 찬양문 말미에 나오는 표현으로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표현이다. 이 표현이 등장한 후에는 일반적으로 찬양의 이유들이 열거된다. 

 

사도 바오로 역시 찬양의 이유를 코린토 2서 1장 4~7절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언급하기 전에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2서 1장 3절에서 자신이 찬양하는 하느님을 여러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한다. 

 

첫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이것은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라는 표현이 더 이상 유다교적 송영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구약에 유다인들이 믿었던 하느님, 곧 유다인 조상들의 하느님이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육화(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알려진 것이다(갈라4,4). 

 

에페소서 1장 3절과 베드로 1서 1장 3절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약 성경 곳곳에서 이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초대 교회 당시 예배나 기도에 매우 널리 사용되었음을 암시한다. 

 

둘째,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다. 이 표현은 지혜서 9장 1절에 나오는 '자비의 주님'('퀴리오스 투 엘레우스';kyrios tu elleus)이란 표현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유다교 종교 의식에 사용된 전례적 표현에 속한다. 

 

당시 회당 예배에서 사용되던 기도문은 보통 '오, 우리 아버지, 자비로우시며 너그러우신 아버지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시작했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자비'를 뜻하는 표현으로 유다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엘레오스'(elleos)를 사용하지 않고 '오익티르몬'(oiktirmon)을 사용했는데, 그 의미는 같다. 이것은 히브리어 '라하밈'(rahamim)의 역어이며, 사도 바오로가 즐겨 쓰던 단어이다(로마12,1; 필리2,1). 

 

'라하밈'은 본래 몸 속의 내장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불쌍한 자를 보면 내장까지 뒤틀릴 정도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고 해서 '불쌍히 여김', '동정', '연민', '긍휼'이라는 의미가 여기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오익티르몬'의 아버지라는 표현 삶의 실오라기 한 줄 같은 희망까지 끊어지게 했던 숱한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 사도 바오로가 생생하게 체험했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대한 묘사이다. 

 

세째,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시다. 여기서 '위로의'로 번역된 '파라클레세오스'(parakleseos)의 원형 '파라클레시스'(paraklesis)는 문자적으로 '곁에서 부름받음'이라는 뜻이며, 하느님의 내적 속성인 자비가 외적인 행위로 구체와 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코린토 2서에서 자주 등장한다(2코린 2,8; 5,20; 16,1; 8,4.6.17; 9,5; 10,1; 12,8.18). 이 표현은 특히 이사야서 40장 1절, 51장 3절, 12절, 19절에서도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주로 메시아적 전문 술어로 사용된다.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2서 1장 3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위로와 구원을 총체적인 메시아적 구원에 결부시켜 파악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단순히 환난 가운데서 위로받았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난으로부터 구출받았다는 사실도 나타낸다(2코린1,4~7). 

 

특히 이 '위로'란 표현을 코린토 2서 1장 3~7절에서 10회나 사용함으로써, 사도 바오로 자신이 하느님의 위로를 깊이 체험했으며, 이에 대해 감동과 감격을 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 '파라클레시스'는 성령 하느님의 속성 중 하나이다. 

 

이런 관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파라클레토스'(위로자, 협조자, 변호자, 상담자 등등)로 불렀다(요한14,26).  사도 바오로는 제3위 성령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성부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경험했던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5,1-12)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11~12)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은 10절에 나오는 여덟번 째 행복의 보충 내용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3절~10절까지의 전체 팔복(八福)의 보충 내용으로서의 성격이 있다. 특히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 '의로움 때문에'에 해당하는 '헤네켄 디카이오쉬네스'(heneken dikaiosynes; for righteousness)와 비교할 때, '~때문에', '~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니는 '헤네켄'(heneken; for)은 동일하고, 다만 '의로움'(디카이오쉬네스;dikaiosynes)이 '나'(에무; emou; me)로 바뀌어진 것만 차이가 있다.

 

사실 마태오 복음 5장 6절과 10절에 나오는 '의로움'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쉬네'(dikaiosyne; righteousness)는 윤리적인 의로움인 동시에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종교적인 의로움이다.

 

즉 죄인을 심판하고 멸하시며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인 '공의'(公義)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 '의로움'은 6절보다 종교적인 측면이 더 강한 의로움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느님의 의로움으로서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삶은 바로 '의로움', '의'(義)의 전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며,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다는 뜻과 동일한 것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5장 3~10절까지 나오는 팔복(八福)의 서술에서는 모두 '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토이'(autoi; they)인 3인칭 남성 복수 주격 인칭대명사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5장 11절과 12절에서는 '너희'에 해당하는 '휘마스'(hymas; you)라는 2인칭 복수 대명사가 나온다. 이렇게 인칭이 바뀐 것은 지금까지 말했던 객관적인 진리를 이제는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태오 복음의 일차적 독자였던 초대 교회 시대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현실, 즉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미래에 주어질 하느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결코 좌절하지 말 것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도 들어 있는 것이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유다인들로부터 하느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키는 신성모독자로 취급되어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또한 로마 지배 세력으로부터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반국가사범이란 죄목으로 잔인하게 처형당했으며, 일반 믿지 않는 대중들로부터는 자신들의 믿음 생활 때문에 질시받고 부도덕한 자들로 매도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마태오 복음 5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난을 삼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셨는데, 이러한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 사람들은 실의에 빠져 애통해할 수 밖에 없기에, 이제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두 번 거듭 명령형 사용해서 이러한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을 제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기뻐하고'에 해당하는 '카이레테'(chairete; rejoice)의 원형 '카이로'(chairo)는 '기뻐하다', '안녕하다'는 뜻으로서,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며 행복에 겨운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즐거워하여라'에 해당하는 '아갈리아스테'(agalliasthe; be glad)의 원형 '아갈리아오'(agalliao)는 '영화롭게 하다', '높이다'는 뜻이 있는 '아갈로'(agallo)와 '뛰다', '솟아나다'는 뜻이 있는 '할로마이'(hallomai)의 합성어로서 밖으로 넘쳐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희열을 느끼는 을 뜻한다.

 

특히 이 두 단어가 모두 현재형으로 쓰인 것 지금 극한 고난의 상황에 있어도 그 기쁨이 넘쳐나야 함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박해는 절망과 고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받게 될 영광과 기쁨의 약속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상'으로 번역된 '미스토스'(misthos; reward)는 '품삯', '임금', '보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박해를 이겨낸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이 상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기준이 아닌 당신의 기준에 다라 각자에게  적절한 상을 주신다(마태20,1~16; 루카17,7~10).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에게 '상이 크다'는 약속에서 '크다'에 해당하는 '폴리스'(polys; great)는 크기가 크다(large)는 뜻이 아니라 양이 아주 많은 (much) 것을 뜻한다.

 

이것은 천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상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상의 어떤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갖가지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미래에 종말론적으로 주어질 이 상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믿는 이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추가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해 박해받았던 사실을 회상케 하며, 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자들도 '나 때문에'(마태5,11) 즉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함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하느님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시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듯이, 이제는 제자들이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신 그리스도 당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여 헌신할 것을 촉구하시는 것이다.

 

 

 

  


20230612일 월요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부터 우리는 마태오 복음서에 실린 다섯 설교(57; 10; 13; 18; 2425장 참조)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산상 설교’(57장 참조)를 읽기 시작합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가 무려 세 장에 이르는 긴 분량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공생활 앞부분에 배치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설교가 중요하고 핵심적인 예수님 말씀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고자 산으로 오르시는 장면(5,1 참조),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는 장면(8,1 참조)은 이 설교의 전체적인 틀을 이룹니다.

여기서 산은 하느님의 계시가 일어나는 거룩한 장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구약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였듯이, 예수님께서도 산 위에서 군중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는데, 그것은 구약의 율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율법, 곧 하늘나라가 다가오는 것을 준비하는 종말론적 가르침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설교의 시작으로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선포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같은 형식으로 구성된 여덟 개의 행복 선언(“행복하여라” + 행복의 주체 + 행복의 이유), 그리고 조금 다른 형식을 보이는 마지막 선언까지 모두 아홉 가지의 행복을 전합니다.

이 단락의 핵심은 참 행복이 하느님의 구원, 곧 하늘나라에 참여하는 행복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의 주체들은 역설적으로 행복하여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며,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며,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 사람들, 곧 세속의 관점에서 무언가 결핍되고 불행하여 보이는 이들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고, 땅을 차지하며, 하느님을 뵙고, 그분의 자녀라 불리며 하늘나라의 주인이 되리라고 예수님께서는 장엄하게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어디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하늘나라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이 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실현되기를 갈망하는 가운데,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늘 자기 마음을 정화하며, 분열이 아닌 일치와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한다면,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늘나라를 소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주님은 나의 빛나의 구원나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127,1)

 

(마태5,1-12)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 직역하면 그 산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주셨던 시나이 산에서의 그 말씀(계명)을 다시 주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13,16)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 사람의 눈과 귀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뜻으로 알아듣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알아듣는 것이 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령께 의탁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가난- 풋토코스(해결 방법이 없는 가난) 페네스(해결방법이 있는 형제적 가난) 여기서는 풋토코스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분의 뜻을 깨닫고 나의 구원에 나의 그 무엇도 보탤 수 없음을, 곧 땅의 모든 행위가 가치 없음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하늘나라를 받아 들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슬퍼하는- 판테오(파스카)라는 뜻으로 현재형이다. *위로- 파라칼레오(초청을 받다) 그러니까 파스카로 청을 받아 그 파스카의 어린 숫양의 죽음으로 내가 죽어야, 슬퍼야 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곧 앞에서 묵상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구원에 보탤 수 없음을 아는 그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버리고, 죽이는 그 슬퍼함으로 속죄 제물인 어린양(예수)을 계속적으로 먹어야 복이라는 말씀이다.

 

(요한6,53-54)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 요즘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 새 계약이라 배웠음을 기억해야한다.

 

행복하여라온유한 사람들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사람의 것(온유)은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온유하심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온유의 어린양,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그 온유를 담은 온유한 사람(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유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2코린10.1) 1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겸손하고 떨어져 있을 때에는 대담하다고들 하는 나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직접 권고합니다.

 

행복하여라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 땅(사람)의 의로움이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알고 하늘의 의로움을 갈망하는 사람은,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구원의 의로움인 십자가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흡족해진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행복하여라자비로운 사람들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마음이 가난해서 곧 자신을 비워(버림, 부인) 자비의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유다1,21)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행복하여라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예레17,9)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히브10,14.22)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행복하여라평화를 이루는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하늘의 평화를 내가 먼저 받아 이웃에게 전해주는 그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땅의 평화는 순간적이며 영원하지 못함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받아들이고 전한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 욕심, 탐욕, 그 죄악 때문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며 하늘의 평화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 세상의 것으로 평화를 바라며 만족하려는 그 사람들의 생각, 욕망을 부수시고 하늘의 참 평화를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10 행복하여라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땅, 세상, 인간들, 그 스스로의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 능력이 없고, 하늘의 의로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가 주는 의로움만이 구원의 힘, 진리이니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야 구원될 수 있다고 말하면, 전하면 박해와 핍박을 받는데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너희는 행복하다!

= 사람들의 모욕, 박해와 사악한 말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을 만족시키는 말을 했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독서(2코린1,3-5)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 우리의 환난, 그 안에는 하느님의 위로가 들어 있음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행복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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