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1일 목요일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10,46ㄴ-52)
제1독서<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집회42,15-25)
15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16 찬란한 태양은 만물을 내려다보고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17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에게조차 당신의 온갖 놀라운 업적을 묘사할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 놀라운 업적을 세우시어 만물을 당신 영광 안에 굳게 자리 잡게 하셨다.
18 그분께서는 깊은 바다와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그 술책을 꿰뚫어 보신다. 사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온갖 통찰력을 갖추시고 시대의 표징을 살피신다.
19 그분께서는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을 알려 주시고 숨겨진 일들의 자취를 드러내 보이신다.
20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마디도 숨길 수 없다.
21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언자도 필요 없다.
22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23 이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영원히 지속되며 그분께서 필요하실 때는 만물이 그분께 순종한다.
24 만물은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25 하나는 다른 하나의 좋은 점을 돋보이게 하니 누가 그분의 영광을 보면서 싫증을 느끼겠는가?
화답송시편 33(32),2-3.4-5.6-7.8-9(◎6ㄱ)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셨네.
○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고운 가락을 내며 환성 올려라. ◎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시고, 당신 입김으로 천상 만군 만드셨네. 그분은 둑을 쌓아 바닷물을 모으시고, 깊은 물을 곳간에다 넣으신다. ◎
○ 온 땅이 주님을 경외하고, 온 세상 사람이 그분을 두려워하리라. 그분이 말씀하시자 이루어지고, 그분이 명령하시자 생겨났네. ◎
복음<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10,46ㄴ-52)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집회42,15-25)
"찬란한 태양은 만물을 내려다보고,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16)
집회서에서 '창조와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신학적 주제는 42장 15절에서 43장 33절에 묘사되어 있다.
저자는 하느님의 모든 업적이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분의 모든 업적(22)이 그분의 지혜를 드러낸다(21).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22)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언자도 필요없다.' (21)
이같은 명상의 내용은 자연 현상과 그 질서를 통해 심도 있게 표현되어 있다(집회43,1~26).
맑은 창공(집회43,1), 태양(43,2`5), 달(43,6`8), 별(43,9`10), 무지개(43,11~12), 눈(43,13.18), 번갯불(43,13),
구름(43,14~15ㄱ), 우박(43,15ㄴ), 이슬(43,22), 깊은 바다와 섬들, 바다의 온갖 생물과 용들을 기억하면서 결론에 이른다(집회43,23~35).
집회서 저자는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 데 '모든 피조물은 좋다'고 표현하고 있는 사제계 전승(Priest codex)의 창조 신학(창세1장)에서 그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사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과 완전하심이 들어있는 당신 피조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피조물 자체가 그렇게 나타내 보이지만,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보는 인간 내면의 선하고 아름다운 음이다.
인간이 먼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사랑이신 성령 충만으로 가득차 있을 때, 모든 것이 기적 아닌 것이 없고, 그분의 손길 아닌 것이 없으며, 그분의 영광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복음(마르10,46ㄴ~52)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0)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소경을 불러오라고 명하시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소경을 부르고 있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하였으며,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해 소경 바르티매오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현장감있게 생생하게 기록하여 역동감을 더해 준다.
여기서 '겉옷'에 해당하는'히마티온'(himation; garment; cloak)은 70인역(LXX)에서 '겉옷'과 '의복'의 두 가지 뜻을 모두 나타내는 히브리어 '베게드'(beged)에 대한 역어로 나온다.
이 겉옷은 일교차가 큰 팔레스티나에서는 밤에 이불의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것은 생활 필수품이었으며, 특히 거지 바르티매오에게는 낮에는 거지 행세를 할수 있는 유니폼이었다.
낮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지 노릇을 할 수 있는 유니폼이요,
밤에는 이부자리가 되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요 용기였다.
만일에 그가 예수님께 갔다가 치유받지 못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경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의 소리가 들리는그 방향으로 재빨리 나아가는데 있어서 그 겉옷이 방해물이 되자 그토록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었지만, 미련없이 가차없이 내어 버렸다.
참으로, 단 한번만이라도 예수님을 가까이 대면하고 싶었던 그의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과, 예수님을 만난다면 자신이 반드시 치유받을 수 있으리라는 내적 확신(믿음)과 희망이 이런 행동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오늘의 묵상] 연중 제8주간 목요일
| 벨기에 출신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라는 동화극이 있습니다. 주인공 틸틸과 미틸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실망한 채로 집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두 남매는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집에 있던 새를 다시 보니, 그 새가 바로 파랑새였던 것입니다. 이 남매가 키우던 새가 본디 파랑새가 아니었는데, 긴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파랑새로 바뀌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파랑새였습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이 키우던 새가 파랑새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곧 그들의 여행이 자신들의 새를 ‘다시 보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눈먼 거지를 고쳐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 그는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의 삶과 주위의 사람들에 대하여 제대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자신의 삶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인 부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 속에 기쁨이 전혀 없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부분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눈 먼 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위에 널려 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행운 만을 쫓다 보니, 늘 곁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
2023년 06월 01일 목요일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8,27-10,52 참조)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설득하십니다.
메시아로서 걸어야 할 수난의 길을 여러 차례 예고하시고, 제자들도 그런 메시아를 따라 십자가의 길, 곧 스스로 낮아지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분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논쟁하기도 하고(9,33-34 참조),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옆자리를 탐내기도 합니다(10,35-37 참조).
이상적인 제자의 모습은 이 여정의 마지막 이야기에서야 발견되는데(오늘복음 참조), 그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예수님 곁에 머물던 제자들에게서 드러나지 않고 예리코 성읍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에게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바르티매오의 세 가지 모습에서 참된 제자 상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에 대한 갈망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잠자코 있으라는 주변의 꾸짖음에도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자비를 구하는 바르티매오의 간절함은 결국 예수님의 부르심을 이끌어 냅니다.
둘째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그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향합니다. 여기서 겉옷은 거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겉옷을 벗어 던졌다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바라보려는 원의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마주하였지만 눈으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는 물음에 거지로서 돈 몇 푼을 요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바랐던 것은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었습니다.
시력을 되찾은 바르티매오는 자신의 두 눈에 예수님을 담고 곧장 그분을 따라 길을 나서는 참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자부하는 우리는 간절하게 구원을 바라고 또 그것을 청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의 눈은 온전히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그분을 향하고 있습니까?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에게서 참된 제자의 모습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일 [연중 제8주간 목요일]
容恕, 義, 善, 生命, 救援은 그리스도의 代贖(十字架)을 眞理로 믿는 것.
(마르10,46ㄴ-52)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얼마나 간절했으면, 자신의 거지된 신분을 벗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사람들의 비난도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을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라는 것을 오늘 배워라 하심이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 거지된 신분의 옷을 벗어 던지고, 곧 '예수님이시면 자신이 입고 있던 그 거지 옷이 필요 없게 될 것'임을 알고 거지의 전 재산인 옷을 버리고(否認) 갔다는 것이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 전에는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못 보게 되어 거지가 된 발티매오다. 다른 말로, 말씀으로 전에는 하느님을 알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분의 자녀의 신분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거짓에 속아 알 수 없게 되어 거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마태7,15)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 하느님의 뜻은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대속, 그분 십자가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어 전가 받아 구원에 이르는 것인데 거짓 가르침(사람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가르쳐 사람이 ‘자기 의로움을 보태어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고 착한 모습으로, 곧 양의 옷차림을 하고 가르치니 그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뜻을 아는 눈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은 완전하고 전능하신 사랑이다. 율법(제사와 윤리)은 사람의 죄만 들춰낼 뿐, 심판으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잃어 거지로 만다.(예수께서 그 율법을 완성하시려 오신 것) 율법은 진정한 하늘의 평화, 용서, 사랑을 모르게 한다.
오늘 발티메오는 죄인, 거지가 돼서야 그 같은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눈 먼 자임을 알고 다시 볼 수 있게, 곧 하느님의 듯을 다시 찾을 수 있게, 그래서 그분의 은총, 은혜로 다시 자녀의 신분을 찾게 해 달라고 청(請)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가장 착하게, 의롭게 살았던 율법학자들에게 ~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인간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구원에 필요한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 구원의 계약, 계명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전가 받는 길 뿐이다.(로마3,20-26참조)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 사람의 길을 부인(否認)하고 예수님의 길을 나섰다. 살았다는 것이다. 발티메오가 다시 보고 걷게 된 길, 그 하느님의 뜻을 독서와 시편으로 받자.
독서 (집회42,15.21)
15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말씀으로 이루시며, 하느님께만 선(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온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흙의 사람을 말씀으로 다시 낳으신다. 곧 하늘의 존재로, 새 사람으로 재 창조 하신 다는 것이다.
물론 외아들(獨生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다. 곧 당신의 말씀을 사람의 육에 입혀 보내셔서 죄인들을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씻겨 하늘의 존재로 재 창조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으로 다시 낳으신다.
(요한3,5-6)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말씀)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 진리이시며 말씀이신 예수님 이시다.(요한1,14. 14,6참조)
화답송(시편33,6) 6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그분의 입김으로 그 모든 군대가 만들어졌네.
21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언자도 필요 없다.
=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질서의 하느님, 완전하신 그분 지혜의 말씀을, 인간들의 영원하지 못한 생각을 보태고 뺀, 그 인간의 말로, 지혜로 성경을 보게 되면 눈이 먼 거지 발티메오가 되는 것이다.
(1코린2,6-7)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기에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지혜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통찰하시는 당신의 영, 성령을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보내시어 가르치시고 기도까지 대신하게 하셨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로마8,26)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8,12) 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믿고 따른다는 것은, 현세(세상)의 빛이 사람을 종, 죄니, 거지로 만드는 어둠임을 깨닫고 그 세상의 빛(어둠)을 버리고 따르는 것이다.
하느님의 창조~
(창세1,2)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 어둠인 땅(세상)에 빛이 오심으로 창조가 되는 것이다.
(요한1,5.12)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빛은 생명의 말씀이며 예수님 이시다.(요한1,4),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 말씀을 하느님의 뜻인 대속, 그 진리로 듣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신앙이 아닌 말씀을, 사람의 뜻을 위한 말(도덕과 윤리)로 듣고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 헛된 신앙을 산다면 어둠 속에 사는 눈 먼 이가 된다.
(마태6,23)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 제사를 매일 드리며 윤리적으로 착하게, 의롭게 살았던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느님의 의로움(빛)을 모르고 사람이 스스로 내는 의로움은 어둠이라는 말씀이다.(이사64,5참조)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당신의 가르치심으로,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인 없음의 존재들을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진리로 하늘의 존재가 되게 해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로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