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금요일]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11,11-25)

2023. 6. 2. 오전 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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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2일 금요일


[연중 제8주간 금요일]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11,11-25)

 


1독서<우리의 선조들은 자비로워 그 이름이 대대로 살아 있다.>(집회44,1.9-13)

1 훌륭한 사람들과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9 어떤 이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으며 그 뒤를 이은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10 그러나 저 사람들은 자비로워 그들의 의로운 행적이 잊히지 않았다.

11 그들의 재산은 자손과 함께 머물고 그들의 유산은 후손과 함께 머물리라.

12 그들의 자손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고 그들 때문에 그 자녀들도 그러하리라.

13 그들의 자손은 영원히 존속하고 그들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화답송시편 149,1ㄴㄷ-2.3-4.5-69(4)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복음<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마르11,11-25)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16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연중 제8주간 금요일 제1독서(집회44,1.9~13)

 

"어떤 이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으며, 그 뒤를 이은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9)

 

집회서의 일곱 개의 논제가 '주님을 경외함', '우정', '영예와 부끄러움', '여자', '신정론', '죽음', '지혜'인데, 오늘 독서의 말씀은 집회서 38장 16~23절에서 다루는 '죽음'의 논제에 뒤따르는 '이름'에 관한 말씀이다.

 

벤 시라에게 '이름'은 '어떤 사람이 남겨 놓는 평판이나 기억'으로서 가장 중요한 불멸성의 한 양식이다(44,1~13).

 

죽음은 번성하게 산 사람에게도 환영이고, 비참하게 산 사람에게도 환영이다.

하지만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주님의 판결'이다.

 

'지존하신 분의 율법을 저버린 자들'인 '죄인들'은 자기들의 '혐오 거리가 된 자녀들'(집회41,5~10)을 통해 영원한 치욕으로 고통받는다.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치욕이 늘 함께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의 태도를 삶으로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고 유덕한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41,1~13).

그런 이름은 인간의 몸보다 더 오래 남고 황금덩이 천 개보다 오래 남으며, 행복한 삶은 그 날수가 정해져 있지만,

좋은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그래서 집회서 44장 16절부터 50장까지 역대 선조들과 훌륭한 사람들을 칭송한다.

 



 

 

 연중 제8주간 금요일 복음(마르11,11~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여기서 '기도하며 청하는'에 해당하는 '프로슈케스테 카이 아이테이스테'(proseucheste kai aiteisthe)의 두 동사는 모두 현재 시제이고, 기본형은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와 '아이테오'(aiteo)이다.

 

희랍어의 현재 시제는 계속이나 반복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기도하고 계속 청하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고 (루카18,1~8), 온갖 기도와 간구를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것을 위해 깨어 간구하기를 항상 힘쓸 것을(에페6,18), 즉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1테살5,17).

 

그런데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나타내는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이고, '아이테오'(aiteo)는 주로 어떤 구체적인 것을 요구하거나 간청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기서 이러한 구분으로 쓰였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기도로 청하는' 중언법적인 강조로 보아야 한다.

 

한편, '믿어라'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테'(pisteuete)는 '피스튜오'(pisteuo)의 명령법 현재로 '계속해서 믿어라'를 뜻한다.

그리고 '받은'에 해당하는 '엘라베테'(elabete; have received)는 '취하다', '가지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람바노'(lambano)의 직설법 부정(不定) 과거형이다. 

이것은 '이미 받았음'을 뜻한다. 즉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이미 받았음'을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믿고, 아무 근심 걱정없이 오로지 감사함으로 계속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필리4,6).

 

이같은 사실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에 해당하는 '에스타이'(estai; will be)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에스타이'(estai)는 '되다', '~이다'라는 뜻의 '에이미'(eimi) 동사의 미래형으로 '될 것이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현재 시점이다. 그리고 그 간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 시점이다. 그러나 받은 것은 확실함을 나타내는 부정(不定) 과거 시점이다. 

이것은 기도하며 청한 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 안에서 이미 받은 것으로 믿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루카18,1~8; 야고1,6; 마태7,11참조).

 



   

20230602일 금요일

[연중 제8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를 꽤 당혹스럽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시고

거기에서 허기를 채울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그러나 아무 열매도 없다는 사실에 곧바로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무화과가 열리는 철도 아니었는데, 아무리 시장하셨다고 하여도 너무 매정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요?

사실 이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장면과

그 저주가 이루어지는 장면 사이에 의도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야기를 끼워 넣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두 이야기를 연결 지어 생각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게 됩니다.

당대의 성전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제구실을 못 하는 지경에 놓여 있었는데,

그 이해 당사자들과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이

그곳을 기도의 집이 아니라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더 이상 구원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곧 구원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9)

이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게 된 우리 자신이,

곧 우리의 몸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새로운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새로운 성전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혹시 환전상들과 물건을 사고파는 자들이 새 성전의 뜰에도 여전히 넘쳐 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온갖 세속적인 생각들이 우리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요?

새 성전이 된 우리는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여야 합니다.

혹시 열매가 열렸을까 다가오시는 분께 실망을 안겨 드리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8주간 금요일]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예수님께서 십자나무에서 다 갚으셨다.

 

(마르11,11-25)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 성전을 둘러보신 결과 이미 날이 저문(빛이 없음)상태를 빛이신 예수님께서 나가심으로 보여주신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 빛이 저문 성전이란- 하느님의 뜻, 일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이며, 그래서 성전이신 예수께서 시장하심을 표현하신 것이다.

 

(요한4,34)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 많은 신앙인들이 성전에서 하느님의 듯을 위한 신앙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을 위해 열심한(무성한) 종교행위에 빠졌기에 그것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 신앙인 것이다.

例: 하느님의 덮으심, 그 진리의 말씀을 뱀의 선악의 말로 먹고, 그 결과로 드러난 자신의 부끄러움(죄)을 가리려고 스스로 열심을 부려 옷을 해 입은 아담의 신앙관이다.

 

(창세3,7) 7 선악과를 먹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주시는 용서, 그 진리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람의 말(법)로 부끄러움(죄)을 스스로 가리려고 자신의 열심(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산다. 그것이 잎(행위)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이며 높은 바벨탑이며 멎진 가파르나움(나를 위한 성전)이다.

 

13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무화과는 꽃이 열매인 척하는 위선의 모습이다.(꽃이지 열매가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떠난(무시한) 사람의 열심, 행위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들의 사랑실천은 세상과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추구한다.(인간의 의무이며 도리이다)

성경은 그 사랑 실천과 다른 차원, 곧 구원의 열매를 맺는 사랑을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행함, 실행은 킵(마음에 간직하여 지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듯으로 깨달아 거짓 가르침, 그 유혹에 넘어가 빼앗기지 않고 마음 안에 꼭 지키는 그 행함을 말한다. 그래서 내 안에 간직한 그 하느님의 듯을 이웃에게 전해 주는 것, 이웃사랑, 큰 계명이다.

 

14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 무화과나무의 신앙은 영원한 생명을 자신이 받을 수도, 이웃에게 전해줄 수도 없기에 하신 말씀이다.

 

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 율법은, 하느님께 ‘깨끗하고 흠 없는 제사 제물을 드려라’ 하셨기에 어린양, 비둘기 등을 사고파는 일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들 자신의 뜻(욕망)을 위한 제물 드림, 그 무화과 제사였기에 예수께서 그 모든 것을 둘러 엎으셨던 것이다. 성전은 예수님을 뜻한다. 성전의 빛, 제사, 제물, 등잔대, 등 모든 기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16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 성전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가르지 말라, 무시하지 말라’는 뜻이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나의 열심, 충성의 제물을 드릴테니 나의 소원(뜻)을 들어주세요.’ 그것이 하느님과 거래하는 것이 강도이다. 다른 말로 뇌물을 바치는 것이다.

 

뇌물은 부정한 것~

(시편26,10) 10 그들의 두 손에는 부정이, 그들의 오른손에는 뇌물이 가득합니다.

 

18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 닐(빛)이 저문 성전은 빛이신 예수께서 없으심을 다시 보여 주신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사람들의 얘기,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으로 행위 신앙을 하게하는, 그래서 사람의 선, 의, 열심을 빛으로 보게 하는 성전, 그 교회는 예수님(빛)께서 없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루가11,33) 33 “아무도 등불을 켜서 숨겨 두거나 *함지 속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함지는 그릇으로 사람을 뜻하며 등경은 교회를 뜻한다.

 

(에페1,22-23)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보십시오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 잎만 무성한, 그래서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 맺는, 그 말라버림이다. 곧 하늘의 용서, 평화,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 그리고 그것이 사람 스스로의 열심한(무성한) 행위의 신앙, 성전으로 둘러 엎어져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들, 자신의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 곧 ‘우리의 생명의 빛이신 우리 죄의 대속, 그 속죄 제물로 보내신 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어라’ 하시는 것이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 믿음은 신뢰 이다.(크레도- 마음, 심장을 주다) 곧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믿고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뜻(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말(뜻)로 행해버리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것이 안 된다. 오히려 그 사람의 말이 법이 되어 이웃에게 무거운 짐, 산 같은 신앙이 돼버린다,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그대로 될 것이다.

= 산, 지금까지 묵상한 저주받은 행위의 무화과 신앙, 성전이다. 그 높은 산, 곧 열심한 사람의 선, 의, 그 무성한 행위가 높아 보여, 멋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힘들게, 곧 열매인 하늘의 용서, 자유, 안식을 주지 못하는 무거운 짐의 신앙임을 깨닫게 된다면, 그 산, 짐 같은 신앙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용서, 구원, 생명, 진리로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산이 들려서 바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라 하신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 지금 까지의 묵상을 통해 우리의 소원, 욕망을 위한 기도가 절대 아님을 알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 용서(容恕), 하느님의 용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나와 나의 웬수를 위해, 곧 우리 모두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의 용서를 주는 것, 그 주님의 용서를 적용하여 용서하는 것이 우리의 용서다. 그랬을 때, 우리 도한 하늘 아버지께 그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용서를 받는 것이다.

용서는 사람의 언어가 아니다. 하느님의 언어이다. 그렇다고 육신의 용서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해야 한다. 웬수를 용서하려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얼마나 용서를 못하는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구원을 위한 용서도 완전해야 한다. 99%, 안 된다. 100%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죄의 대속을 100%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주님의 십자가 아래 진심으로 엎드리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최종 목적지이며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하느님 나라의 원리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의 선, 의, 무성한, 열심한 행위로 가게 되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 된다.

 

(루가10,15)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잎만(행위) 무성한 무화고 성전, 바벨탑, 높은 산의 신앙이다.

 

☨ 은총의 천주 성령님! 완전하지 못한 저희 모두를 의탁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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