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목요일] 하느님사랑, 이웃사랑 (마르12,28ㄱㄷ-34)

2023. 6. 8. 오전 6: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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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8일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하느님사랑, 이웃사랑 (마르12,28ㄱㄷ-34)

 


1독서<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6,10-11; 7,1.9-17; 8,4-9)

10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이미 엑바타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11 라파엘이 토비야 형제!” 하고 청년을 부르자 그가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라파엘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밤을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대의 친족이오. 그리고 그에게는 사라라는 딸이 있소.”

7,1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나를 곧장 우리 친족 라구엘에게 데려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비야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마당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보고 먼저 인사하였다. 라구엘은 형제들, 기쁨이 충만하기를 비오! 건강히들 잘 오셨소.” 하고 답례한 다음, 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9 라구엘은 양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잡고, 그들을 따뜻이 맞아들였다. 그들이 몸과 손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라구엘이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청년에게 말하였다. “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형제야, 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나도 사라를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줄 권리가 없다. 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얘야, 너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

11 나는 벌써 사라를 우리 동포 일곱 남자에게 차례로 주었지만, 사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그 밤으로 다 죽어 버렸다. 그러니 얘야, 지금은 그냥 먹고 마셔라.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토비야는 말하였다.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라구엘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마. 모세의 책에 있는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사람이다. 하늘에서도 사라는 네 사람이라고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 너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이제부터 너는 사라의 오라비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그리고 얘야, 오늘 밤에 하늘의 주님께서 너희를 잘 보살피시고, 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2 그러고 나서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모세의 책에 쓰인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아내다. 그러니 네가 맡아서 네 아버지께 잘 데려가거라. 하늘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번영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3 라구엘은 다시 사라의 어머니를 불러서 쓸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사라를 토비야에게 아내로 준다는 혼인 계약서를 썼다.

14 그러고 나서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15 라구엘은 자기 아내 아드나를 불러, “여보, 다른 방을 준비해서 사라를 그리로 데려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아드나는 가서 라구엘이 말한 대로 그 방에 잠자리를 차려 놓은 다음, 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라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말하였다.

17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그러고 나서 아드나는 방을 나갔다.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5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8 그들은 아멘, 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9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화답송시편 128(127),1-2.3.4-5(1)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복음<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28ㄱㄷ-34)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연중 제9주간 목요일제1독서 (토빗6,10-11; 7,1.9-17; 8,4-9ㄱ)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토빗7,1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토빗8,7)

 

토비아와 사라의 결혼 이야기(토빗7,9ㄴ-17)는 일련의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먼저 토비아가 아자르야(라파엘)에게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한다. (토빗7,9ㄴ)

 

그러나 라구엘은 일을 천천히 진행시키려하며("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이미 사라를 아내로 맞이했던 일곱 남자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토빗7,10-11ㄱ)

 

토비야가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고 않겠습니다."하고 말하며 막무가내로 곧바로 결혼시켜 줄 것을 주장하자, 

라구엘은 토비야가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라구엘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면에는 후손에 관한 규정(수혼제)에 관한 신명기 25장 5-10절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이 율법의 정신은 가족 안에서 과부와 그 재산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라구엘은 토비아와 사라를 남편과 아내로 선언하면서 "이제부터는 너는 사라의 오라비이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토빗7,11) 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러 그를 토비아에게 넘겨주고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혼인 계약서를 쓴다. (토빗7,12-13)

 

끝으로 토빗기 7장 15-17절에서 라구엘은 아내를 불러 신방을 준비하게 하고, 라구엘의 아내 아드나는 또 한 사람의 남자가 죽어야 할 것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드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딸 사라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사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뿐이다.

 

한편, 토비아와 사라는 한 몸을 이루기전에 일어나 기도한다.(토빗8,4-8)

창조주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미한 뒤에 토비아는 우리 모두의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를 기억하고, 사라를 순수한 마음으로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토비아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것이다.

토비아와 사라는 "아멘, 아멘"(토빗기에서 사라가 하는 유일한 말)으로 기도를 마친다.

 

역시 악귀를 제압하는 유일한 길은 간절한 기도뿐이요,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능력을 끌어내는 길 뿐이다.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복음(마르12,28ㄱㄷ~34)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33)

 

원래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 우베콜 메오데카'(bekol lebobka wubekol naphscheka wubekol meodeka)에서 3번이나 나오는 전치사 '뻬'(be)는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 가지고'란 뜻이다.  

또한 각각의 '뻬'(be)에 붙어 있는 '모든'이란 뜻의 '콜'(kol)은 수단이 될 수 있는 대상의 최상 혹은 최대의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말 위에는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목숨을 다하고 너희 최선의 힘을 가지고'이다.

 

'마음'에 해당하는 '카르디아'(kardia)는 히브리어 '레바브'(lebab)를 번역한 단어인데, 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란 뜻이며, '마음을 다하고'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는 '너의 모든 중심을 다하여'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를 살린 번역이 된다(with all your heart)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知,意,情)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한 사람의)인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이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에서 진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che; soul)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프셰카'(naphsheka)의 원형 '네페쉬'(nepesh)는 일반적으로 '영혼'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뻬콜 나프셰카'(bekol naphscheka) '너의 온 영혼을 다해' (with all your soul)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신명기 본문에는 나오지 않고, 영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인 정신성과 정신력을 의미하기에 '목숨을 다하고'를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마태22,37참조)로 세분하여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마르코 복음 12장 33절에는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가 '생각을 다하고'로 대치되고 있다. 여기서 '생각'에 해당하는 '쉬네시스'(synesis; understanding)는 '지혜', '총명', '깨달은 것', '이해' 등으로 번역된다.전체적인 의미에서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가장 귀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자기 영혼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요한4,24).

 

끝으로 '힘'으로 번역된 '이스퀴스'(ischys; strength)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오데카'(meodeka)의 원형 '메오드'(meod)는  '넘치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단어를 '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with all your strength(might)>'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삶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문은 각각으로도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세 가지 표현을 중복시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태도와 그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매우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을 볼 때,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 가운데 결코 자신의 것이라고 하느님 대전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되, '전심(全心), 전영(全靈), 전력(全力)'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전인격적인 절대적 사랑이어야 함을 강조하며, 십계명의 첫 부분인 1~3계명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으로서 첫째가는 계명인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자연적 결과로서의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을 말하는데, 이것은 십계명의 4~10계명의 요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웃 사랑을 하느님 사랑의 연장선상에 두어 율법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웃'에 해당하는 '플레시온'(plesion; neighbour)은 인종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살거나 혹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까지도 모두 포함한다(루카10,25~37).

 

이제 이 두 가지 계명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구절에서 '번제물'에 해단하는 '홀로카우토마'(holokautoma; whole burnt offerings)는 '전부 불태우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홀로카우토오'(holokautoo)에서 유래된 명사이다. 

그리고 '희생 제물'에 해당하는 '튀시온'(thysion; sacrifices)의 기본형 '튀시아'(thysia)는 '희생 제물' 또는 '제사'를 뜻한다. 여기서 '홀로카우토마'(holokautoma)는 번제를, '튀시아'(thysia)는 번제 이외의 다른 제사들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사무엘 1권 15장 22절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라고 사울을 책망하는 사무엘의 교훈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과 순종이 없는 형식적 제사와 제물은 하느님을 결코 기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0230608일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마르코 복음서에 등장하는 율법 학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적대자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이례적으로 예수님께 호감을 보이는 율법 학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가는 모습도 그러하고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오늘 복음에서 생략된 구절]),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도 그러합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께서 이례적으로 율법 학자에게 보내는 찬사의 말씀도 듣게 됩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많은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불편하게 여기고 적개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분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촌뜨기 나자렛 사람이 감히 전문가들인 자기들 앞에서

율법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이 그들은 영 못마땅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교육을 결코 받았을 리 없는 자가

그토록 중요한 안식일 법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 학자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비범함을 알아본 그는 율법 학자로서 평소 품고 있던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 질문은

당대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논의되던 주제였습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한 셈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율법의 밑바탕에 놓인 핵심을 짚어 주시는 예수님의 대답에

그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수긍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결국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은 우리에게도 많습니다.

그 자체로 좋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잘못된 선입견을 거치게 되면 나쁘고 추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다가가려면 먼저 그것을 가로막는 장막을 걷어 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찬사를 얻어 낸 율법 학자처럼,

그 장막을 과감히 걷어 낸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속한 좋고 귀한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사랑(信仰)의 出發點은 하느님이시다.

(마르12,28-34)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들어라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둘째는 이것이다. 병행복음- 마태33,39에도 ‘둘째도 *이와 같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같은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야고2,8-9)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 인간의 사랑을 차별적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먼저 ‘차별이 없으시고 원수(죄인)까지 사랑하신, 그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 죄인들을 위해 당신 외아들 예수를 속죄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 그 사랑을 알아야(받아야)한다. 그랬을 때 우리의 마음, 목숨, 정신, 힘을 다해 하느님을 나의 주님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사랑하는 것이다. 곧 우리 구원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주는 것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한 계명인 것이다. 인간의 지각(知覺)으로 깨달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성령의 이끄심으로 깨달아, 내가 먼저 받고, 그 하늘의 사랑(아가페)을 이웃과 나누는 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시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가장 큰 두 가지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두 나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하느님께서 흙먼지로 손수 빚어 만드시고, 숨과 영을 불어넣어 주신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데, 나에게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을까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출발점,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상-

= 그런데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 흙의 먼지에 불과한 그 없음의 존재가 하느님의 숨을 받아 생명체가 된 것, 소중한 존재 맞다. 그러나 그 생명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 흙, 땅의 존재들을 하늘의 존재, 곧 당신의 영원한 자녀로 재창조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이 흙(어둠)의 세상의 빛(생명)으로 보내신 것이다.

빛, 하늘의 존재 예수께서 어둠인 이 세상에 육을 입고 오심, 그 자체가 신의 죽음의 시작이다. 그 어둠, 그 없음의 존재들을 빛, 있음의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 희생하신, 그것이 십자가의 희생, 대속, 죽음, 사랑인 것이다.

 

(요한1,9-12)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실 속죄 제물로 보내신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피(죽음)로 모든 죄,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씻기게 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히브10,10.22참조) 그 하느님의 뜻, 그분의 약속,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땅의 욕망으로 가득찬 나를 부인하는(비우는)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모르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사랑)의 출발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시작하심을 알아야 한다.(제가 말씀 묵상을 드리는 것이 여러분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 = 제사행위보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기특한 말은 했다. 그러한 율법학자에게 아직 하느님 나라가 들어오지 못했다. 아직 사랑의 계명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죽으러 오신, 곧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그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하러 오신, 그래서 이웃인 율법학자 구원을 위해, 그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 번제물과 희생제사로 죽으러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몰라보고 훌륭한 선생님 정도로 보고 있으니 그가 어찌 깨달았다고, 하느님 나라가 들어 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 하신 말씀은 “너는 아직 하느님 나라 밖에 있다” 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루가4,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마태12,28) 28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오늘 본기도- ‘하느님, 순교자들의 피가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게 하시니 복된 가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의 피로 하느님의 교회를 비옥한 땅이 되게 하시고 이 땅에서 언제나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라는 이 기도보다 저는 하느님예수님의 피가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게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교회를 비옥한 땅이 되게 하시고 이 땅에서 언제나 하늘의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로 기도해 본다.

 

(골로3,1-2) 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게 해 주소서 의탁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저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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