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금요일]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냐? (마르12,35-37)

2023. 6. 8. 오후 5: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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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일 금요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냐? (마르12,35-37)

 


1독서<하느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셨지만 내가 이제는 내 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토빗11,5-17)

5 안나는 자리를 잡고서 자기 아들이 돌아올 길을 살펴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토비야가 오는 것을 알아보고 토비야의 아버지에게, “봐요. 당신 아들이 와요. 함께 갔던 사람도 오네요.” 하고 말하였다.

7 토비야가 아버지에게 가까이 이르기 전에 라파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잘 알고 있소. 저분은 꼭 눈을 뜨실 것이오.

8 물고기 쓸개를 저분 눈에 발라 드리시오. 그 약은 눈의 하얀 막이 오그라들다가 벗겨지게 할 것이오. 그러면 그대의 아버지께서 시력을 되찾아 빛을 보게 될 것이오.”

9 안나는 달려가서 아들의 목을 껴안고, “얘야, 내가 너를 다시 보게 되다니! 이제는 죽어도 괜찮다.” 하면서 울었다.

10 토빗도 일어서서 다리를 비틀거리며 마당 문을 나섰다. 토비야가 그에게 마주 갔다.

11 물고기 쓸개를 손에 든 토비야는 아버지를 붙들고 그 눈에 입김을 불고 나서, “아버지, 용기를 내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그 약을 아버지에게 바르고서는 잠시 그대로 두었다.

12·13 이윽고 토비야는 양손으로 아버지의 눈가에서부터 하얀 막을 벗겨 내었다. 그러자 토빗이 아들의 목을 껴안고 14 울면서 얘야, 네가 보이는구나, 내 눈에 빛인 네가!”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위대한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모두 찬미 받으소서. 그분의 위대한 이름 언제나 우리 위에 머무르소서. 그분의 천사들 모두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15 그분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셨지만 내가 이제는 내 아들 토비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쁨에 넘친 토비야는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여행을 잘 마치고 돈을 가져온 것과 라구엘의 딸 사라를 어떻게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그 사라도 오고 있는데 니네베 성문 가까이 왔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16 기쁨에 넘친 토빗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며느리를 맞으러 니네베 성문으로 갔다. 니네베 사람들은 토빗이 오는데 손을 붙잡고 인도해 주는 사람 없이 힘차게 걸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7 그때에 토빗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서 밝혔다. 이어서 자기 아들 토비야의 아내인 사라에게 다가가 그를 축복하며 말하였다. “얘야, 잘 왔다. 얘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빈다. 너의 아버지께서 복을 받으시고 내 아들 토비야도 복을 받고, 그리고 얘야,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축복 속에 기뻐하며 네 집으로 어서 들어가거라. 얘야, 들어가거라.” 그날 니네베에 사는 유다인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화답송 시편146(145),1-2.6-7.8-9.9ㄴㄷ-10ㄱㄴ(1)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한평생,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사는 동안, 나의 하느님 찬송하리라.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복음<어찌하여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마르12,35-37)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제1독서 (토빗11,5-17)

 

여행자들이 니네베 근처에 도착하였을 때(토빗11,1~4), 라파엘은 토비야에게 일행보다 먼저 달려갈 것을 제안하며 쓸개도 가지고 가라고 말한다. 다시 신비의 개(토빗11,4)가 나타난다(토빗6,2).

 

그동안 계속해서 안나는 자기 아들이 돌아올 길을 살펴보고 있었다(토빗11,5~6).

 안나가 이윽고 아들 토비야가 오는 것을 보고 토비야의 아버지에게 "봐요. 당신 아들이 와요. 함께 갔던 사람도 오네요."하고 말한다.

 소경이 된 토빗은 그들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지만, 안나를 통해서 비로소 그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

 

토빗기 11장 7~8절에서 라파엘은 다시 한번 토빗이 꼭 눈을 뜨게 될 것을 확신하며('나는 잘 알고 있소. 저분은 꼭 눈을 뜨실 것이오.')  토비야에게 아버지 눈에 쓸개를 발라 드리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여기서 저자는 물고기 쓸개가 가질 수 있는 마슬적인 어떤 힘보다는 의약품이라는 점을 더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빗기 11장 9~10절에서 가족이 만난다. 안나는 자기 아들 토비야의 목을 껴안는다. 

토빗이 다리를 비틀거리며 마당 문을 나서자 토비야가 물고기 쓸개를 들고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토빗기 11장 11~15ㄱ에서 치유는 의료 절차인 동시에 기적으로 묘사된다.

토비야는 토빗의 눈에 입김을 불고 나서 물고기 쓸개를 바르고 잠시 그대로 두었다가 아버지의 눈가에서 하얀 막을 벗겨 낸다.

 치유는 즉각적이고 결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얘야, 네가 보이는구나, 내 눈에 빛인 네가!"(11,14)

 다시 보게 된 토빗은 자비를 베푸시어 아들 토비야를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을 찬미한다(11,14ㄷ~15)

 

토비야가 여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쳤고, 아내로 맞아들인 사라가 니네베 성문 가까이 왔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토빗은 며느리를 맞으러 니네베 성문으로 간다(11,15ㄴ~18).

 니네베 사람들은 토빗이 손을 붙잡고  인도해 주는 사람 없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토빗은 하느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셨다는 것을 밝히고('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사라를 열렬히 환영하며 그를 집으로 맞아 들인다.('얘야, 잘 왔다.')

 토비야가 자기 아내와 함께 돌아오고, 토빗이  다시 보게 되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니네베에 사는 유다인들도 모두 기뻐한다.

 그들 가운데에는 토빗의 조카인 아키카르와 나답도 있었다(토빗1,22; 14,10 참조). 그들은 모두 이레 동안 토비야의 혼인 잔치를 벌인다

 

 


 

 

 

연중9주간 금요일 복음(마르12,35~37)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36~37)

 

여기서 '성령의 도움으로'에 해당하는 '엔 토 프뉴마티 토 하기오'(en to pneumati to hagio; by the Holy Spirit)에서 '엔'(en; in; by; with)은 장소나 도구를 나타내는 전치사이기에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보통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말로 의역도 되는데,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언적으로 기록한 시편 110장 1절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꼐서 내 주님께'에 해당하는 '퀴리오스 토 퀴리오 무'(kyrios to kyrio mou; The Lord to my Lord)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예흐와 라도니'(yehwa ladoni), 즉 '야훼께서 내 주께'로 되어 있으며, 새 성경에는  '주님께서 내 주군께'로 번역되어 있다.

 

유다인들은 '야훼'라는 이름을 나타내는 4개의 문자를 거룩한 문자로 성별(聖別)하여 함부로 쓰거나 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야훼'로 기록된 부분을 읽을 때는 그 음을 직접 읽지 않고 '아도나이'(adonai), 즉 '주'(主)로 읽었다.

 

이러한 전통에 의해 구약 성경의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LXX)은 시편 110장 1절의 본문을 '주님께서 내 주님께'(주님께서 내 주군께)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새 성경에서 앞의 '주님'은 '야훼 하느님'을, 뒤의 '주님'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1인칭 소유격인 '내'에 해당하는 '무'(mou; my)는 시편 110장의 저자인 다윗을 가리킨다.

 

이처럼 다윗이 자기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불렀다고 하는 것은 다윗 자신도 그리스도의 인간적 계보에 연연하지 않고, 신적(神的) 계보 즉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성(神性)을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마르코 복음 12장 37절의 '다윗 스스로'에 해당하는 '아우토스 다위드'(autos David; David himself)에서 '스스로'로 번역된 '아우토스'(autos)는 마르코 복음 12장 36절과 마찬가지로 '친히', '그 자신이'라는 뜻을 지닌 재귀대명사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스스로' 그리스도, 즉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주님'으로 고백한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하신다.

 

다름아닌 다윗 스스로가 '주님'으로 부른 대상이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반문하시면서, 그리스도의 메시아되심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오해를 날카롭게 꼬집고 계신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메시아적 명칭은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통해 여러 번 불리워졌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지만, 영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만민의 주(主)가 되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에, 이것을 분명히 정리해 주시는 것이다(로마1,3.4; 마태1,1; 요한8,58; 요한1,1참조).

 




 

 

20230609일 금요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우리는 지난 월요일부터 제1독서에서 토빗기를 읽고 있습니다.

토빗기는 유배로 흩어진 유다인들이 이국땅에 살면서도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며

여전히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친족 관계에 있는 두 유다인 집안이 겪게 되는 불행을 차례대로 서술합니다.

니네베에 살던 토빗은 많은 자선과 선행을 베풀던 신실한 유다인이었지만,

살해된 동포를 몰래 묻어 준 일이 드러나서 결국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나중에는 뜨거운 참새 똥이 눈에 떨어져 시력까지 잃어버리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엑바타나에 살던 라구엘의 딸 사라는 혼인만 하면

신랑과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악령이 나타나 그 신랑을 죽이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데,

그런 일이 무려 일곱 차례나 되풀이되면서 여종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토빗과 사라가 저마다 탄식하며 드린 기도는 하느님 앞에 다다르게 되고,

하느님께서는 두 사람을 낫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라파엘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지인에게 맡겨 둔 아버지의 돈을 찾으러 메디아로 떠나는 아들 토비야와

그 여행길의 안내자로 나서게 된 라파엘이 우연히 큰 물고기를 잡고 그 간과 염통과 쓸개를 얻게 된 사건,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친족의 집에 머물며 그곳에서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사건 등이 벌어집니다.

물고기에서 얻은 간과 염통은 사라의 악령을 쫓아내는 도구가 되고,

쓸개는 나중에 아버지 토빗의 시력을 되찾는 약으로 사용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토빗과 사라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어우러져 실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겪는 곤경과 어려움을 못 본 척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자녀들이 바치는 탄식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 반드시 다다릅니다.

그러나 그분의 도움과 보살핌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대로 전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얽히고 설켜

뜻밖의 위로와 치유로 작용하는 체험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9주간 금요일]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느님!

(마르12,35-40)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 병행복음으로 보면 마태오복음은 바리사이들, 루가복음은 사람들이라 전한다. 그러니 성전 안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는 말씀이다.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내 오른쪽에 앉아라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시편110,1)’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시라는 말씀이다.

 

그 부분을 (로마1,3-4)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피조물), 그의 육을 통해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늘의 영이신 그리스도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성자 하느님이신 당신께서 어떻게 피조물의 자손,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피조물들과 하나(한몸)가 되시기에 육을 통해(입은)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다윗은 주님께서 육의 자손일 뿐, 영의 후손이 아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곧 피조물의 인성의 아들이지 신성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성령의 귀로 알아들어라)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하신 것은 하느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자 한 것이다.

 

(2사무7,10)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나탄이 다윗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우리가 심겨 져야할 그 자리, 그 한곳이 그리스도이시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곧 십자나무의 대속, 예수그리스도 이시다. 그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불안 해 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불의한 자들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곧 뱀의 말(선악)을 먹은 사람들, 그들의 선악의 논리, 그 심판이 주는 죄와 죄의식, 그 모든 불의에 괴롭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죽음, 피, 그 구원의 새 계약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 더러운 양심까지 다 씻겨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더 이상 논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히브6,16-19)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심을 말씀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우윗 시대의 육의 구원, 곧 육적 영화를 위한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죄인들을 구하려 오신 것이다. 우리의 소원, 뜻을 들어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죽으러 오신분이 아니다.

*이 모든 말씀을 기쁘게 받아 드렸는지, 오늘 본문(37절)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고 전한다. 순간적, 일시적 기쁨이다. 병행 마태복음은 그들은 한마다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못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본문 다음 구절에서 율법학자(사람)들의 그 선악의 그릇된 가르침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요한16,8-9)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그래서 대신 심판을 십자가로 받으신 그 주님을 진리로 믿지 않는 것이 죄, 불의이다. 그런데 선악의 논리, 그 인간들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준다면 하늘의 용서, 자유, 구원이 없는 그 헛된 신앙으로, 과부위 삶을 살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38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 긴 겉옷,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의 옷이시다.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 윗자리-권위의식이다. 하느님의 뜻, 말씀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래서 구원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 그분의 뜻을 깨닫지(낳지) 못한 것이 과부, 고아이다. (그래서 성경에 과부, 고아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한 곳, 십자가. 그 새 계약이다.

 

(예레31,31-32)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히브8,13)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율법- 제사, 윤리)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 새 계약- 대속(피), 그리스도이시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그 한가지 일만 말씀하셨다. 교회 에서도 그 새 계약, 그 한가지만을 전해야(말해야)한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 성령께서 보이는 문자, 그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낳아) 하신다.(요한14,26) 성령께서 제사와 윤리, 그 법의 신앙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을 구원릐 진리, 구원의 새 계약으로 증언하시며 가르치신다. 그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하늘의 용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이 모든 말슴을 받지 못한 것이 과부이다. 그 과부들에게 새 계약을 주지 못하고 계속 제사와 윤리로 열심한 신앙을 살게하는 것이 과부를 등쳐먹는 것이다. (내일 복음과 연결됩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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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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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ㄴ)23.06.12조회 59[연중 제9주간 토요일] 과부의 헌금 (마르12,38-44)23.06.09조회 57[연중 제9주간 금요일]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냐? (마르12,35-37)23.06.08조회 67[연중 제9주간 목요일] 하느님사랑, 이웃사랑 (마르12,28ㄱㄷ-34)23.06.08조회 58[연중 제9주간 수요일] 산 이들의 하느님 (마르12,18-27)23.06.07조회 64[연중 제9주간 화요일] 황제의 것, 하느님의 것. (마르12,13-17)23.06.06조회 50[연중 제9주간 월요일] 포도밭 주인 (마르12,1-12)23.06.05조회 61[연중 제8주간 토요일] 무슨 권한(權限)으로 (마르11,27-33)23.06.03조회 68[연중 제8주간 금요일]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11,11-25)23.06.02조회 48[연중 제8주간 목요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10,46ㄴ-52)23.06.01조회 50[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1,39-56)23.05.31조회 47[연중 제8주간 화요일]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마르10,28-31)23.05.31조회 55[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다 이루어졌다.” (요한19,25-34)23.05.30조회 45[부활 제7주간 토요일] 너는 나를 따라라 (요한21,20-25)23.05.27조회 56[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나를 따라라.” (요한21,15-19)23.05.26조회 50[부활 제7주간 목요일] 하나가 되게 (요한17,20-26)23.05.26조회 73[부활 제7주간 수요일] 하나가 되게 (요한17,11ㄷ-19)23.05.25조회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