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다윗 가문의 요셉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3,55; 1,19 참조). 그는 같은 나자렛에 살고 있던 마리아와 약혼했는데,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하며 고뇌하지만,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로써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이다.
주님께서는, 다윗이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2사무7,4-5ㄴ.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다고 한다. (로마 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것입니다.
요셉은 꿈에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마태 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2사무7,4-5ㄴ.12-14ㄱ.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6)
다윗 왕조와 그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며 그 왕좌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는 사무엘 2권 7장 16절의 선언은 다윗 언약(약속)의 절정이다.
여기서 '굳건해지고'로 번역된 '네으만'(nehman)은 '신실하다', '지탱하다'라는 뜻의 '아만'(aman)동사의 수동형으로서 '진실되다', '지속되다', '확립되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는 '진리'라는 뜻의 '에멘'(emen)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진실로'라는 뜻으로 기도나 찬양 뒤에 쓰이는 '아멘'(amen)이라는 형용사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것을 볼 때 하느님의 언약(약속)안에 있는 왕조와 나라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그 기초를 두고 세워져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너의 집안과 나라'로 번역된 '뻬테카 우마믈라크테카' (betheka umamllaktheka; your house and your kingdom)는 중언법(重言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번역하면 '너의 나라의 집(왕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네 앞에서 영원히'로 번역된 '아드 올람 레파네카'(ad ollam lephaneka; forever before you)는 직역하면 '네 얼굴 앞에서 오랜 시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네 얼굴 앞에서'라는 말은 다윗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에 이어질 다윗의 후손들을 암시하며, '오랜 시간까지'라는 말은 궁극적인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 때까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영원성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 긴 시간은 결국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일이 미래에 일어날 일임에도 불구하고, '굳건해지고'에 해당하는 동사 '네으만'(nehman)이 미완료형이 아니고 완료형이다.
이것은 '확신의 완료형'으로서 그 일이 확실하게 성취될 것을 강조한다.
한편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왕조는 점차 다윗에 대한 언약(약속)에서 멀어져 갔던 것을 볼 수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 언약의 말씀은 성취를 향해 이어져 가기보다는 오히려 상실될 위기를 맞았던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다윗 왕조는 남부 유다의 제20대 임금인 치드키야 시대에 바빌론에 의해 b.c.586년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무엘 2권 7장 16절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남부 유다는 비록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이라고(2사무7,14) 할 수 있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지만, 포로 귀환으로 회복되었을(즈카1,1~4)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메시아 왕국의 영원한 임금이 되셨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처럼 남부 유다의 임금들에게서 희망이 사라지는 것은 오히려 궁극적인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더 기대하는 기초가 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약속의 말씀은 남부 유다 임금들의 실패 가운데서 더 굳건하게 세워졌으며, 결국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
오늘 성 요셉 대축일에 사무엘 2권 7장 4~16절 사이의 말씀을 봉독하고 묵상하는 것은,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천주 성자께서 메시아로 탄생하시기 위한 터전이며 인류 구원사업의 기초를 놓으실 분이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다윗의 자손이신 요셉이 사무엘 2권 7장 4~16절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 위한 통로요 도구로서 간택되었기 때문이다(마태1,20; 루카1,27; 2,4참조).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복음 (마태1,16.18-21.24ㄱ)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의 '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는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은 '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의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의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는 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의 부정사형인데, '데이그마티조'(deigmatizo)는 '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 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를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는 '비밀히'(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는 소원하고 바라는 것, 즉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는 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는 '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의로운 사람
우리는 가끔 화가 났다. 또는 홧 병이 났다는 말을 합니다. 정말 화는 불입니다. 아주 뜨거운 불입니다. 그러나 그 불로는 방을 따뜻하게 덥힐 수도 없고 밥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나무를 태울 수도 쇠를 달굴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속만 태울 뿐입니다. 그러니 병이 날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화를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면 좋겠습니다. 화가 나도 무조건 참는다는 것은 용수철을 눌러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벼르는 것입니다. 무조건 누르지 말고 하늘을 보면서 잘 풀어야 합니다.
오늘 기억하는 요셉은 정말 화를 다스릴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결혼하기 전에 임신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요셉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신명기22장을 보면 간음에 대한 규정을 말하고 있는데 “젊은 여자의 처녀성이 증명되지 않으면, 그 여자를 제 아버지의 집 대문으로 끌어내어, 그 성읍의 남자들이 그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신명22,20-21).고 되어 있습니다.
법대로 사는 요셉이 이러한 규정을 알진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1,19).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결혼을 준비하며 꿈에 부풀었을 텐데 너무도 황당한 사실에 접하게 된 것이니 실망과 좌절감 속에서 마리아에게 망신을 주고 서운함을 되갚아 주어도 시원찮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드러낼 생각을 갖지 않았다니 그러한 마음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돌에 맞아 죽을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를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입니다.
사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결국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까지 내가 하느님과 이웃으로부터 사랑받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1,20).했을 때 곧바로 자기의 생각을 접고 천사가 일러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군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뜻을 따른 겁니다. 깊은 신앙은 어려울 때 드러난다고 했는데 바로 이 순간이 그의 믿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은 철저한 믿음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믿음위에 서 있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셉 성인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마음 상하고 서운함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우리들의 모범이십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그런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로움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다 밝혀내서 드러내 놓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의로움은 사랑과 자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의로웠기 때문에 마리아를 공공연하게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하려고 애섰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코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살았을 뿐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로움을 간직한 성인의 마음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믿는 이에게는 질문이 없고, 믿지 않는 이에게는 대답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은 사랑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화를 다스리시길 바랍니다.
“성 요셉의 침묵과 겸손, 절대적인 신앙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당신의 뜻을 온전히 행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완전히 내맡겨 드린다면 그분은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일을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가경자 알베리오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아버지 품안에서 우리의 구원자로 성장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셨습니다. 혼돈의 시대에 부국강병을 이룬 다윗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에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요셉과 더불어 구세주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 솔로몬이 세울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다윗 왕좌의 약속으로도 해석됩니다. 그래서 화답송의 시편은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 하고 노래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구원된 사람의 전형’으로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시대가 지나가고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를 연 인물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입니다.
요셉 성인은 자신의 후손을 보려고 성모 마리아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길을 요구하십니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천사가 알려 준 기쁜 소식을 받아들여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보호자가 됩니다. 요셉 성인은 마리아에게서 탄생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이로써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다윗의 후손’이 됩니다.
요셉 성인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적 시련과 도전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약혼녀 마리아의 잉태에 대한 배신감,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보호자가 되는 삶, 이집트의 피난살이와 나자렛의 가난한 삶은 그에게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를 던집니다. 그러나 성인은 믿음 안에서 이 모든 난관을 인내하며 극복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