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의 뜻을 풀어주세요.

2015. 8. 24. 오전 10: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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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의 뜻을 풀어주세요.: 양기탁(안티모)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가르치시면서 제자들에게 지침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좁은문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5장 부터 7장에 이르기까지 함께 익히고 배워야 합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5,12)


예수님께서는 진복팔단을 가르치시며 하나 하나 풀이해 주십니다. 소금과 빛의 비유 이야기며 의롭게 살아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이웃과의 관계) 혹 손해 보는일이 있더라도 양보하고 남에게 베풀고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골자들이 5장부터 7장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우리에게 풀이해 주고 있어요.

그래서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미태7,12)  라고 하시는데 ()이 누굴까요?

나 아닌 다른사람? 아님니다. 문자로만 보면 그렇지만 영안으로 본다면 남은 바로 '성령'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은 하느님 뜻 안에서 이루어 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좁은문 입니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7,13-14) 


아울러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고히 알고 해야 합니다. '남이 장에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은 아니 됩니다.

예수님은 참 하느님 이십니다. 이를 믿어야 하고요 . 그분께서 내 죄를 사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단 한번에 내 죄를 없애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나는 이제로 부터 영원히 죄인에서 해방되었어요. 이걸마음에 새기고 믿어야 합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히브9,12)


왜 성당 다니십니까? 뭘 믿으세요? 라고 물으면 선뜻 답을 못하더라구요. 우린 그래서는 안됩니다.

다만 내가 세상에서 살아가며 완전한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무한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하여금 가리워진 녀울을 하나 하나 벗어 버리고 완전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세례만 받으면 만사 오케이가 아닙니다. 노력하고 인내하며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영 이십니다. 그러기에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히브11,1)


주께선 나의 피난처(성가59)  의지할곳 주님뿐! 아멘.

행복한 오늘 되세요. 살롬.



<마태복음7:13절-14절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길

13절..<"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여기서 '좁은 문'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 문

    이 좁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좁은 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문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라는 말은 하느님 말씀(복음)을 믿고 받아들

    이고 실천하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그 일이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생명을 얻기 위해선

    해야 할 일입니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과 반대쪽에 있는 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생명을 얻지 못하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문이 넓고 길도 널찍하다는 것은

    그 문으로 들어가는 일이 쉽고 편하고 재미있고 즐겁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

    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길'은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나타냅니다. 동서양 모두 옛날부터 사람의 일생을 나

    그네로 비유하고, 종교를 '길'로 표현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가지 말고 쉽고 편한 길로 가라고 충고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가 그 길을 가지 말라고 예수님을 말린

    것은 좀 더 편한 길로 가시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

    러가라.' 하시면서 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16,23).

 좁은 문, 좁은 길과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의 완전 다른 개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에 앉게 됩니다.

14절..<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이끄는 문'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 등을 모두 뜻합니다.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라는 구절은 표현이 좀 어색하고 이상한데, 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원문대로 직역했습

   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라고 의역했습니다. 생명으로 이끄

    는 문이 좁고 그 길이 험하다는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한 신앙생활이 재미도 없고, 불편하

    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신앙생활은 이기심은 버리고 이타심은 기르면서 본능과 욕망은

   억제해야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그 삶은 어렵고 재미없고 힘든 삶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리석게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로 가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이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그 길로 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과 '멸망으로 이끄는 문' 외에 제3의 문

    도 없습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멸망할 사람은 많고, 구원받을 사람은 적다.'는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누가 구원을 받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미리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

   면 좁게만 보이는 그 문을 향해서, 험하게만 보이는 그 길을 '지금'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어느 쪽 길로 더 많이 가고 있느냐가 선택의 기

    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떤 문을 향하고 있느냐, 그것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생명의 문과 길을 일부러 좁고 험하게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

    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는

   생명의 문과 길이 넓고 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한눈을 팔고 딴 마음을 품으면

    서 그 문이 좁아지고 길이 험해져버렸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을 보면, 하와가 사탄의 유

    혹을 받고 선악과를 바라보자 그 열매가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고, 먹으면 슬기롭

    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다른 열매들이 맛이 없

    었던 것이 아닌데, 선악과가 제일 맛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열매들이 맛이 있다

    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과 길이 실제로 좁고 험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가 자꾸 다른 문과 다른

    길에 끌려서 그 문과 길이 좁고 험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신앙생활에도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그 문과 길이 좁

    고 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기쁨과 행복은 세속이 주는 쾌락과는 많이 다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세속이 주는 쾌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선택할 것인가, 그건 각자의 숙제입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과 길이 좁고 험하다고 불평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길을 기쁨과 행복 속에서 잘 걸어가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송영진모세 신부님의 마태복음 해설에서 발췌했음,



쉽게 표현하면 좁은 문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내 뜻 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중심적인 생각을 따르며 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문은 크고 넓쩍한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살아가겠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요?
내 생각과 내 뜻을 내려 놓기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이지요. 


 예수님께서 몸소 좁은 문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신  뜻을 우리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방식대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넓은 문이고 넓은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좁은 문이고 좁은 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온전히 순명하신 그 길은 ...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은 ...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새싹이 나서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우리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싶다고  하면서도 땅에 떨어지는 것도 싫고 더더욱 썩는 것은 더 싫어하죠.

땅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썩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바로  크고 넓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지고 썩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좁은 문이고 ...
내 뜻대로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크고 넓은 문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 보면 ...
당신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해 보고 내려놓습니다.


이정임글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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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산책/허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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