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 (마르7,24-30 ;마태15,21-28)
24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마르코7장24절-30절 :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
예수님은 주로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나 드문 일이기는 했지만 가끔은 이방지역으로 가신 때도 있고, 이방인을 상대하신 때도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 폐쇄적이었던 본토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주로 이스라엘 땅에서 활동하셨다는 사실을 내세워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이방인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개방적이었던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몇 차례 이방인들을 고쳐주신 기적들, 즉 게라사의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일(5,1-20),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딸을 고쳐주신 일(7,24-30), 백인대장의 종을 고쳐주신 일(마태 8,5-13) 등을 예로 들면서 이방인 전도를 옹호했습니다.
24절..<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그곳을 떠나' 라는 말에서 '그곳'은 아마도 '겐네사렛'일 것입니다(6,53). '티로'는 갈릴래아 지방 북쪽의 지중해변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어떤 집'이 누구의 집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티로에 가신 이유는 군중을 피해 조용히 계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교육이나 또는 휴식 등의 이유로 사람들을 피해 조용히 계시려고 이방지역의 어떤 집에서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아무도 모르게 계시려고 했으나) 그곳에서도 예수님의 소문이 퍼졌고, 그래서 조용히 계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25절..<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예수님의 소문'이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일 것입니다. 그런 소문을 듣고 '더러운 영(악령)이 들린 딸을 둔' 어떤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 여자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행동이고, 동시에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25절과 26절에서는 '부인'이라고 번역하고, 27절에서부터 30절까지는 그 여자' 라고 번역했는데, 이렇게 번역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계속 '부인'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계속 '그 여자' 라고 일관성 있게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26절..<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여기서 '이교도' 라는 말은 그 여자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며, 하느님을 안 믿는 다른 종교 사람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시리아 페니키아'는 티로 주변 지역입니다. 그 여자가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라는 말도 이방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데,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교양 있는 상류층 여자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종교와 문화가 전혀 다른 그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는 뜻입니다. 그 여자의 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그 여자는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고 있습니다.
27절..<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자녀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또는 아브라함의 자녀들, 또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뜻합니다. 여기서 '배불리 먹는다.' 라는 말은 '구원을 받는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라는 말은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강아지'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라고 부르면서 멸시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하느님도 모르고 하느님을 섬기지도 않는 것을 멸시하는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개' 라는 표현은 들에서 떠돌아다니는 '들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강아지' 라는 표현은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사는 애완견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로서 뜻에는 차이가 없지만 멸시의 말투는 많이 완화된 것입니다.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여인과 함께 가실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하시면서 여인의 청을 거절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완전한 거절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으로 해석합니다. (몰라서 시험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수준의 믿음을 갖도록 시련을 주셨다는 뜻에서의 시험입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순서를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자녀들을 먹이고, 그 다음에 강아지를 먹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구원은(또는 복음 선포는) '먼저' 유대인들에게 주어져야 하고, 그 다음에야 이방인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민족 차별이 아니라 구원사업의 순서를 말한 것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예수님의 개인적인 사명을 나타낸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10장 6절에도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복음을 듣는 특권을 가졌던 이스라엘은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스스로 구원의 길에서 탈락했습니다. 그 다음에 복음을 듣게 된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특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한정된 것일 뿐입니다.
(그래도 상대방을 향해서 직접 '강아지' 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좀 너무한다 싶은 느낌이 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개', 또는 '강아지' 라는 표현은 하느님을 안 믿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께서도 여인의 믿음이 많이 부족하거나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딸의 치유만을 바라고 있음을 꿰뚫어보시고 그런 표현을 사용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즉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말씀은, '너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느냐?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으로도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복음 7장 6절에서도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라.'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강아지’ 라는 표현은 여인으로 하여금 올바른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한 충격 요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8절..<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지금 그 여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선생님'이라고 번역했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원문은 '키리에' - '주님'입니다.) 그 여자 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냉정하게 거절하는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 여자가 예수님의 자비를 믿지 않았다면, 또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여자는 '강아지'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고, 예수님의 태도와 답변에 실망해서 그냥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매달립니다.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라는 말은 그 여자가 자기는 아직 강아지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즉 자기가 하느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또는 자기는 아직 이교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 여자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는 말은 '내가 아직 강아지 수준의 이교도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하느님 은총의 부스러기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또는 '아직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 사업의 순서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방인들도 은총의 부스러기 정도는 미리 얻어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강아지들이 '상 아래에' 있다는 표현과 자식들이 빵을 먹다가 부스러기를 '떨어뜨린다.' 라는 표현에는 별로 중요한 뜻은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특권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이방인에게도 은총이 베풀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그 여자가 바라는 것은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누렸던 특권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의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28절은 그 여자의 믿음, 겸손, 끈기를 나타냅니다. 기도는 바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하고, 거절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9절..<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그 여자는 이교도였으니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아직은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떻든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 그리고 겸손한 자세는 훌륭한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간청을 들어주십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라는 말은 그 여자의 믿음과 겸손을 인정하신다는 뜻의 말입니다.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간청을 들어주셔서 마귀를 쫓아냈으니 이제 돌아가도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어떻게 마귀를 쫓아내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치유는 '원격치유'입니다. 즉 직접 가시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치유의 기적을 행하신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예수님을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방인 여자와 같은 '믿음과 끈기와 겸손'입니다.
30절..<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그 여자는 집에 가서 예수님 말씀대로 마귀가 나가고 딸이 치유되었음을 확인합니다. 믿음의 응답을 얻은 것입니다. 여기서 '침상에' 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을 공동번역 성서는 '자리에' 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은 '침대'나 '침상'으로 번역해야 할 말입니다. 이 말은 그 여자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루카4장16절-30절 :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다>
16절..<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나자렛'은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마을이고 예수님도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이 어렸을 적부터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안식일마다 회당에 갔음을 뜻합니다.
안식일의 회당 예배는 먼저 개인적인 기도를 드리고, 그 다음에는 쉐마(신명기 6,4-9)를 공동으로 고백하고, 공동 기도를 드린 다음 성경 낭독을 하는데, 모세오경과 예언서를 읽었습니다. 성경 낭독이 끝나면 기도가 이어지고, 그 다음에 설교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동 기도를 바칩니다. 성경 낭독과 해석은 미리 선정된 사람이 했는데, 마을의 유력한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유식한 사람이라면 자진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경우에는 성경을 읽고 설교하도록 예배 전에 미리 요청을 받으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셨다는 것은 원래 성경 봉독을 할 때에는 성경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일어서서 봉독했던 관습을 따르신 것입니다.
17절..<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당시 성경은 두루마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펴서' 읽은 것이 아니고 두루마리를 '풀면서'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구절은 이사야서 61장 1절-2절과 58장 6절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절들을 우연히 발견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찾아서 읽으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요구하셨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요구대로 이사야서를 넘겨주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18절..<"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예수님께 내린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리셨다.' 라는 말은 성령이 내린 것은 곧 하느님이 직접 기름을 부은 것과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기름을 붓는 것은 사제나 왕이나 예언자를 축성하는 예식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예언자이며 메시아라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라는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직접 파견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모두 뜻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전하는 '기쁜 소식'이란 물질적인 풍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모든 축복을 뜻하는 말입니다.
'잡혀간 이들, 억압받는 이들'은 원래는 전쟁포로들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죄 속에 있는 사람들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 속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려고 오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해방'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용서와 구원을 뜻합니다. '눈먼 이들'은 영적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뜻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19절..<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주님의 은혜로운 해'는 50년마다 실시되던 '희년'(레위기 25장)을 뜻합니다. 희년에는 땅의 경작이 중지되고, 모든 토지를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게 되고, 빚이 탕감되고, 노예들이 해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메시아 시대를 뜻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은혜로운 해, 즉 메시아 시대를 선포하는 것은 말로만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은총을 베푸는 예수님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0절..<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시중드는 이'는 회당과 성경을 관리하는 일종의 사무원입니다. 예수님이 자리에 앉으신 것은 단순히 회중 가운데 앉은 것이 아니라 선생으로서 가르치기 위해 앉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장면 묘사를 자세하게 하는 것은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시했다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주목했다는 뜻입니다.
21절..<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는 말은 설교를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이라는 말은 구원이 '지금' 실현되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메시아 시대는 지금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라는 말은 청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바로 지금, 성경 말씀이 이미 실현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구원의 은총이 '지금' 사람들에게 베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2절..<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아마도 당시 회당의 관습대로 성경 낭독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했을 것이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지만,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본 후에는 적대적으로 변합니다.(처음에는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못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좋게 말하며' 라는 말의 원문 단어는 '증언하다.' 라는 말인데, 좋은 쪽으로 증언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은총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느님의 은혜로 가득 찬 말씀이었다는 뜻입니다.
'놀라워하였다.' 라는 말에는 긍정과 부정의 뜻이 다 들어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경탄의 뜻이지만, 부정적으로는 멸시와 비웃음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요셉의 아들이 이런 은총의 말씀을 할 수 있다니!' 하고 놀랐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요셉이 목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목수를 천한 직업으로 여겼습니다.
여기서 '그러면서' 라는 말은 '그러면서도' 라고 바꾸는 것이 적절합니다. (지금의 상황은 조선 사회에서 평민 출신인 사람이 양반들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3절..<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예수님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서 행한 기적들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반신반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나자렛에서도 기적을 행하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마을에 대한 시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기적을 통해 입증해보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 기적을 행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믿음을 갖기 위한'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 않습니다.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라는 말은 당시 그 지역의 속담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만 보면 '너나 잘해라.' 라는 뜻으로 보이는데, 예수님은 나자렛 사람들이 '당신이 구세주라면 자기 고향 사람들부터 구원하라.' 라는 뜻으로 그 속담을 사용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은 카파르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뜻합니다.
그 기적들의 소문은 이미 갈릴래아 지역에 널리 퍼졌고, 나자렛 사람들도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루카는 앞의 14절과 15절에서 다른 지역에서의 활동을 간단하게 요약했습니다. 그래서 카파르나움에서 행하신 일은 14절과 15절의 활동에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는 활동을 시작하시고 나서 한참 뒤에 나자렛으로 가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24절..<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은 엄숙하게 선언을 할 때의 관용구입니다. '진실로'의 원문 단어는 '아멘'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 말을 빼버렸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라는 말도 당시의 속담이었을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주로 한 일은 회개를 촉구하는 하느님 말씀을 전한 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을 보면 축복의 말씀보다는 심판과 멸망을 경고하는 말씀이 더 많이 나오는데,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특히 고향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더 불편해하고 불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낯선 사람의 예언은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요나 예언자가 심판의 예언을 한 곳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니네베였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예언을 듣고 즉시 회개합니다.)
25절-27절..(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은 앞의 24절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와 같은 관용구입니다.
엘리야와 사렙타 마을의 과부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17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엘리사와 나아만의 이야기는 열왕기 하권 5장에 나옵니다.
25절의 '하늘이 닫혀' 라는 말과 26절의 '파견'이라는 말은 그 일들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기간이 '삼 년 육 개월 동안'이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열왕기 상권에는 '삼 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삼 년 육 개월'은 박해와 불행과 재난을 상징하는 기간입니다. (3년 반은 7년을 반으로 쪼갠 것입니다. 7년은 은총과 축복의 기간을 상징하고, 그것을 반으로 쪼갠 기간은 불행과 재난의 기간을 상징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엘리야와 사렙타의 과부, 엘리사와 나아만의 이야기를 예로 든 것은 고향 나자렛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은, 복음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로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 이스라엘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했지만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 이스라엘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특권을 스스로 잃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8절..<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의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이방인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는 예수님 말씀을 알아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분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특권 의식과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9절..<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들고일어나' 라는 말은 사람들의 적대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고을 밖 벼랑으로 끌고 갑니다. 그들은 그 절벽 밑으로 예수님을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자렛은 산 위에 있는 마을이 아니라 계곡의 기슭에, 즉 산 아래에 있는 마을입니다. (루카는 구전이나 다른 자료를 수집해서 복음서를 기록했는데 직접 현장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나자렛 마을의 남서쪽에는 실제로 절벽이 있다고 합니다.)
('고을이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라는 번역은 아주 어색합니다. 그냥 '있었는데' 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30절..<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아직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의 폭력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을 떠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손에서 벗어난 것이 기적적인 탈출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라는 말은 사람들이 침범하기 어려운 위엄을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기적을 행하신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하다 (열왕기상 17장)
1 길앗의 티스베에 사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엘리야와 까마귀
2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3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4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 5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6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7 그러다가 얼마 뒤에는 시내의 물이 말라 버렸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에게 기적을 베풀다
8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9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그곳에 머물러라.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해 놓았다.” 10 그래서 엘리야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11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12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13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16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17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집주인 여자의 아들이 병들게 되었는데, 병이 매우 심해져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8 여자가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시여! 어르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한테 오셔서, 제 죄를 기억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19 엘리야는 여자에게 “아들을 이리 주시오.” 하며, 과부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안고 자기가 머무르는 옥상 방으로 올라가서, 자기 잠자리에 누였다.
20 엘리야는 주님께 이렇게 부르짖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제가 머물고 있는 이 집 과부에게까지 재앙을 내리시어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까?”
21 그리고 그는 아이 위로 세 번 자기 몸을 펼친 다음 주님께 다시 이렇게 부르짖었다. “주 저의 하느님, 이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22 주님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하시자,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
23 엘리야는 그 아이를 안고 옥상 방에서 집 안으로 내려와, 아이 어머니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당신 아들이 살아 있소.” 24 그러자 여자가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르신께서 하느님의 사람이시며, 어르신 입으로 전하신 주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일2;24-25)
세상의 친구는 하느님의 적 (야고보4:1-10)
1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4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5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
6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7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8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9 탄식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10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 (로마12,9-21)
9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10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11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13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15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16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18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 19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0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21 악에 굴복 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4,12-13)
그리스도의 법 (갈라6장)
1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
3 사실 누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4 저마다 자기 행동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는 자랑거리라 하여도 남에게는 자랑거리가 못 될 것입니다.
5 누구나 저마다 자기 짐을 져야 할 것입니다.
6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7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8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9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마태 16, 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