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자비와 평화

2012. 4. 14. 오전 9:46:10

글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문을 잠가 놓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빌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던 토마스에게 십자가의 상처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자 토마스는 의심을 버리고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마귀들과 돼지 떼 (마르5:1-20  마태8,28-34 ; 루카8,26-39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44. 죄인이 하느님 자비로 ‘의인’으로 간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갈라 2, 16).
 
“여러분 가운데서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 11).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 30).
 
바오로가 문서상으로 ‘의화론’을 처음으로 언급한 곳은 갈라티아서 2장 15~21절이다. 바오로는 갈라 2, 15~21에서 유다교의 특정한 집단을 상대로 그리스도교 구원의 신앙을 옹호하고 관철시키기 위하여 의화론을 전개한 것이다. 의화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죄적 죽음을 보시고(로마 3, 25; 4, 25; 5, 9) 죄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심으로써 죄인들을 의롭게 하셨다는 것이다(로마 4, 7~8; 8, 33~34). 따라서 ‘의롭게 함’ ‘의롭게 하다’ ‘의롭게 되다’로 표현되는 의화론에 담긴 의미는 죄인이 하느님의 자비로 의인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 교리를 개신교에선 하느님 의로움의 전가설(轉嫁說)을 내세우고 의인론·인의론·칭의론이라 했고, 가톨릭에선 하느님 의로움의 주입설(住入說)을 내세우고 의화론·성의론이라고 했다. 즉, 개신교는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식으로 의화론을 풀이했고, 가톨릭은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의롭게 만드신다는 식으로 풀이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바오로의 의화론을 서로 구분하여 달리 이해하는데 이는 무의미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무죄선언은 창조적인 힘을 지닌 말씀으로 따라서 하느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면 실제로 그는 의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세기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후 가톨릭과 개신교는 상대방의 의화교리를 단죄한 후 한 500년 동안 싸움을 벌여왔다. 그러다가 1999년 10월 31일 오전에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에서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인 카시디(E. I. Cassidy)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의 크라우제(C. Kranse) 회장이 의화교리에 관한 합동선언문에 서명했다. 1518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제국의회에서 교황특사 카예타누스 추기경과 마르틴 루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그 자리에서 500여 년 만에 가톨릭과 루터교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광주대교구 김희중 주교님이 옮긴 합동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의화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역사(役事)라고 확신한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셨다. 의화의 토대와 전제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죽음 그리고 부활이다. 그래서 육화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정의(Righteousness)가 되심을 뜻하며,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여 이 정의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의 어떠한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수락되어,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된다. 곧, 죄인들로서 우리가 얻게 되는 새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선물로 부여하시고 공로로도 취득할 수 없는, 용서하고 새롭게 하는 자비의 덕임을 말해준다”(15~17항)
 
가톨릭과 루터교의 합동선언문이 의화교리에 대한 완전한 일치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두 교회가 처음으로 공식 인준한 문서라는 점에서 앞으로 다른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본보기가 된다 하겠다.
 


 

[성경 속 상징] 111 - 무지개 : 하느님 자비와 평화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무지개는 매우 아름다운 대기 현상이다. 태양광선이 공기 중의 물방울에 의해 반사, 굴절돼 나타나는 일곱 빛깔 원호인데, 태양 반대쪽에 비가 오면 나타난다. 반사 횟수, 물방울 크기와 차이 등으로 무지개 모양과 크기가 결정된다. 무지개 색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각 문화권마다 색 개수가 다르게 인식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표부터 하늘에 걸쳐 반원형 고리로 나타난다.
 
무지개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때문에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을 파면 금은보화가 나온다는 전설, 하늘의 선녀가 깊은 산 맑은 계곡물에서 목욕을 하러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전설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지개에 얽힌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서쪽에 무지개가 뜨면 소를 강가에 매지 마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무지개 현상을 보고 홍수를 예견한 조상들 지혜가 담긴 말이다. 실제로 편서풍지대에 있는 한반도는 날씨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변동하기에 과학적으로도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인들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무지개가 물을 빨아 올려서 생기는 것으로 생각해 가뭄의 원인이 된다고 여겼다.
 
무지개는 성경에서 매우 강렬한 상징적 요소를 가진다. 구약성경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사십 일간 대홍수 뒤에 제단을 만들어 하느님께 희생물을 바친 후 하느님 축복을 받는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과 계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다.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창세 9,12-13).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 이후 하느님 자비와 평화를 상징하게 된다. 에제키엘은 자신의 예언에서 하느님을 묘사하며 무지개를 언급한다.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때 나는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를 들었다"(에제 1,28).
 
무지개는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는 대사제를 포함해 초현세적 영광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전을 비추는 해와 같고 영광의 구름 사이에서 빛나는 무지개와도 같았다"(집회 50,7).
 
요한묵시록에서도 하느님 어좌 둘레에 무지개가 언급된다.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묵시 4,3).
 
무지개는 또 하느님 은총과 자비를 상징한다.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구름에 휩싸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고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묵시 10,1).
 
초대 그리스도교 찬가에서는 성모님을 '하늘의 아름다운 무지개'라 노래했으며,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무지개 다리'라고 칭송했다. 중세시대 성화(聖畵)에서도 무지개는 그리스도와 연관을 가지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다스림을 표현하는 표본이 돼 왔다.
 
[평화신문, 2011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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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산책/허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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