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무너져 버릴 사치의 세력(묵시18:1-4)

2021. 4. 26. 오전 9: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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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무너져 버릴 사치의 세력


(묵시18:1-4)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큰 권세를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 오고 있었고 그의 영광스러운 광채 때문에 땅이 환해졌습니다. 2 그는 힘찬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너졌다대바빌론이 무너졌다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3 모든 백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놀아났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4 또 하늘로부터 이와 같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내 백성아그 여자를 버리고 나오너라너희는 그 여자의 죄에 휩쓸리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

 

우리는 계속해서 음녀 바벨론의 멸망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이 일 후에’ ‘메타 타우타라는 단어로 시작 이 됩니다이 단어는 장면이 바뀔 때 쓰이는 단어라고 했지요

17장에서 음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설명을 한 요한은 똑같은 내용을 이제 다른 환상으로 보고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디즈니랜드의 입체 영화관을 떠올리시라고 했지요요한묵시록은 같은 내용을 점진적이며 반복적으로때로는 다른 관점에서 기록을 하고 있는 책입니다. 2절을 보면 그게 더 확실해 집니다.


그는 힘찬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너졌다대바빌론이 무너졌다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이 말은 전에 어디서 보았던 구절입니다.

(묵시14:8) 8 또 둘째 천사가 뒤따라 와서 '무너졌다큰 바빌론 도성이 무너졌다자기 음행 때문에 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바빌론이 무너졌다!' 하고 외쳤습니다.


계속 무너지지요한번 무너진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무너집니다요한묵시록에는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계속해서 하느님을 대적하며 하느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반복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18장에는 그 바벨론의 멸망이 앞에서보다 좀 더 처참하고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그럼 한절씩 보겠습니다먼저 2절로 가겠습니다.


(묵시18:2) 2 그는 힘찬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너졌다대바빌론이 무너졌다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요한은 구약의 여러 곳에 나타난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구절들을 인용해서 그 마귀의 세력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파멸을 하게 될 것 인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사13:19-22) 19 나라들 가운데서도 진주같은 바빌론갈대아 사람들의 자랑과 영광인 바빌론이 하느님의 손에 망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라. 20 영원히 무인지경이 되어 대를 이어 그 곳에서 살 사람이 없으리라아랍 사람들도 천막을 치러 오지 않고 목자들도 풀을 뜯기러 양떼를 몰고 오는 일이 없으리라. 21 들짐승들이 딩굴고 사람 살던 집에서 부엉이가 우글거리며 타조들이 깃들이고 들귀신들이 춤추는 곳이 되리라. 22 이리가 텅 빈 저택에서 부르면 화려하던 궁궐에서 승냥이의 소리가 메아리쳐 오리라그 때가 다가온다그 날은 결코 연기되지 않는다.'


(예레50:39-40) 39 그리하여 바빌론은 삵괭이와 여우의 굴이 되고 타조가 깃들이는 곳이 되리라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 폐허가 되리라. 40 나 야훼가 선언한다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천벌을 받아 뒤엎혔듯이 바빌론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 폐허가 되리라.


둘 다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역시 이스라엘의 대적인 에돔의 멸망에 관한 예언도 오늘의 본문과 아주 흡사합니다.

 

(이사34:8-15) 8 야훼께서 원한을 푸실 날시온의 원수를 갚아 주실 때가 온 것이다에돔의 모든 개울은 역청이 되어 흐르고 에돔의 모든 먼지는 유황이 되며 그 땅은 타오르는 역청 바다가 된다. 10 밤에도 낮에도 꺼지지 않아 그 연기는 끝없이 치솟는다영원히 잿더미로 남아 아무도 그리로 지나가지 아니하리라. 11 사다새나 고슴도치가 드나들고 부엉이나 까마귀가 깃들이는 곳이 되리라야훼께서 측량줄을 대고 허물으시며 다림줄을 드리우고 무너뜨리시리라. 12 북슬북슬한 염소귀신이나 사는 곳귀족들은 얼씬도 못하는 곳이 되리라다시는 임금을 세우지 못하는 곳고관들을 볼 수 없는 곳이 되리라. 13 궁궐마다 딸기덩굴만 무성하고 요새마다 쐐기풀과 가시덤불만 얽혀 자라나고 승냥이가 득실거리며타조가 노니는 곳이 되리라. 14 들귀신과 물귀신이 만나는 곳털이 북슬북슬한 염소귀신이 제 또래를 부르고 도깨비가 안식처를 찾아 서성거리는 곳이 되리라. 15 독사가 자리를 잡아 알을 낳고 그 알을 까서 새끼들을 우글거리게 하는 곳더러운 새들이 끼리끼리 모여 드는 곳이 되리라.


그리고 역시 이스라엘의 대적인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도 이렇게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스바2:12-15) 12 '에디오피아 사람들아 너희도 내 칼에 맞아 죽으리라.' 13 야훼께서 북녘으로 손을 뻗으시어 아시리아를 멸하시리라니느웨를 쑥밭으로 만드시리니사막처럼 메마른 곳이 되리라. 14 골짜기에 사는 갖가지 짐승떼가 그 복판에서 쉬고 남은 돌기둥 위에서는 갈가마귀나 올빼미가 밤을 지새우며 송백 재목은 삭아 버리고 까마귀들이 창문턱에 모여 앉아 지저귀리라. 15 천하를 호령하는 자리에 앉아 세상에는 저밖에 없다면서 뽐내고 흥청대더니바로 여기가 그 도시렷다그런데 어찌 이 모양이 되었지짐승이나 깃드는 곳이 되다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렇게 혀를 차며 주먹질을 하리라.


보세요이 세상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을 밟고화려하고 당당하게 그들의 권세를 과시했던 대적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 지.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하며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떻게 되었다고요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이 모든 표현들은 천국의 대표적인 상징인 생명 활기 기쁨 같은 것들과 정 반대되는 개념들로 동원이 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고 힘 있어 보이고 활기 차 보이는붉은 옷과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는 바벨론의 실체는 죽음 무기력함 어두움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만이 그렇게 가시적인 현실 뒤에 감추어져 있는 바벨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세상의 힘의 원리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그의 백성들에게 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와라’ 하고 강하게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그 하느님의 애절한 권고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묵시18:4) 4 또 하늘로부터 이와 같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내 백성아그 여자를 버리고 나오너라너희는 그 여자의 죄에 휩쓸리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


여러분이 조금 전에 읽으신 구약에 나타난 바벨론을 비롯한 하느님의 대적들의 멸망을 보시고 또 오늘 본문에서의 바벨론의 멸망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 나는 그러한 멸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안도의 숨을 쉬고 계십니까

혹시 나도 그렇게 귀신들과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그 어둡고 음습한 곳에 가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 앞서십니까여러분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신앙생활은 한번 갔다가 아니면 다시한번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길이 아닙니다.

 사업은 한번 망하면 다시 재기를 할 수 있고 대학은 한번 떨어지면 재수와 삼수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신앙생활은 한번 실패하면 그 길로 영원히 귀신들과 더러운 영들과 함께 이를 갈며 무한대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조금만 더 진지해 지십시오조금 만 더 열심을 부리십시오.

제가 왜 굳이 구약의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멸망하는 장면을 여러 군데 찾아서 읽어드렸는지 아세요제발 이 세상 너머에 있는 다른 세상에 관심을 가지시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힘의 원리에 의해 남을 평가하고 이 세상의 힘으로 나를 치장하고 장식하고 자랑을 삼으려 한다면 여러분도 음녀 바벨론과 똑같은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제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경주하자는 것입니다. 그 음녀 바벨론의 미혹이 얼마나 달콤한지 세상 사람들은 전혀 거부감 없이 그 미혹에 끌려갑니다.


(묵시18:3) 3 모든 백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놀아났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음녀의 미혹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 음녀가 주는 금잔에 취한 자들은 전부 그 음녀 바벨론과 함께 처참한 말로를 맞게 될 것인데 그들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세요땅의 왕들이 그 음녀와 더불어 음행을하고상인들도 그 음녀의 사치스런 미혹을 쫓아 부를 추구하다가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바로 다음 구절에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하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 강론대에서 어떤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세상 속에서 나오십시오. ‘그래야 지요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오늘 날 교회에는 고지론이 판을 치고 여전히 세상의 힘의 원리가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원로는 인격과 신앙보다는 돈이 많아야 하고 세상 적인 힘을 소유한 사람이 교회에서도 소위 쓸모 있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그게 바로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는 것입니다

제 질문에 답을 해 보세요첫 번째 질문은 아주 쉬 운 질문입니다돈이 많고 신앙이 없는 사람과 돈이 없고 신앙이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교회에 득이 되는 사람입니까당연히 돈 이 없어도 신앙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럼 두 번째 질문을 드리지요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않은신앙이 있는 사람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직업을 가진 신앙이 있는 사람과 누가 더 교회에 득이 되는 사람입니까사람들은 대부분 이왕이면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더 쓸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앉은 사람이 교회에 오면 교회가 갑자기 활기가 있어집니다뭔가 그 사람으로 인해 교회가 유익을 볼 거라는 기대 때문이지요정말 그렇습니까하느님이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가실 때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더 선호하시나요?


(요한6:28-29) 28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이 땅에서 하느님께서 우리 성도를 통하여 이루시는 일은 단 한가지입니다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우리를 통하여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예수를 잘 믿게 되는 것그것이 완성이 되면마지막 하느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되면 새로운 신천지가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는 데에는 부자와 명예를 소유한 사람들도 귀하게 쓰이겠지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게 쓰여 집니다예를 들어 이런 것이지요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올라앉은 사람들이 남들에게 행복하고 기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동원하지 않아도 그들은 충분히 기쁘고 행복할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가난하고 못 배우고 소외 된 사람들이 전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조건이 없음에도 예수로 인해 만족해하고 즐거워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누군가가 도대체 저들이 저런 상황 속에서도 기쁘고 즐거울 수 있는 그 비밀이 뭘까

저들이 나와 다른 것은 저들이 예수를 믿고 있다 는 사실 하나 뿐인데 그럼 그 예수 그리스도가 저러한 행복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나도 그 예수를 알고 싶다’ 만일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는 지금 그의 가난과 못 배운 것으로 하느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교회는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못 내리고 엉뚱한 것을 하면서 난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자랑들을 합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일부러 가난하게 살고 일부러 무식해 지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우리 성도들만큼은 그러한 세상적인 힘의 논리로 사람과 사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거기서 나오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 음녀가 주는 세상 힘의 논리에 빠져서 하느님마저도 그 세상 힘을 얻어내는 방법으로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동원해서 이 땅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서 쓸모 있는 일을 하라고 이 땅에 남겨진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일이 하느님이 보내신 자예 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입니다여러분이 예수를 잘 믿게 되는 데에 여러분의 가난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여러분이 예수를 잘 믿는 데에 여러분의 질병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여러분이 예수를 잘 믿는 데에 여러분의 사업의 실패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까없습니까그렇다면 여러분은 가난해서 병이 걸려서 사업에 실패해서 하느님의 일에 쓰임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혹 이런 질문이 드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는우리가 보기에 엄청난 일을 하고 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그럼 그러한 대표적인 사람 중에 다윗을 한번 볼까요?

다윗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어린 소년 시절에 물맷돌 다섯 개로 블레셋의 골리앗을 때려죽인 사람입니다그리고 사울이 다윗을 질투해서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하느님이 기름 부으신 왕이라 해서 그의 옷자락만 조금 베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죽인 병사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그 사울의 가족들을 후대해 줍니다그리고 사무엘하 5장에서 비로소 왕이 되고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이 하느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합니다그 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무7:5-13) 5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나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일러라.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던 때부터 지금까지 천막을 치고 옮겨 다녔고집 안에서 살아 본 것이 없다. 7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동안내 백성 이스라엘을 맡겨 보살피게 한 어느 영웅에게 어찌하여 나의 집을 송백으로 지어 주지 않느냐고 말한 것이 있었더냐?' 8 너는 이제 나의 종 다윗에게 만군의 야훼의 말이라 하며 이렇게 일러 주어라. '나는 양떼를 따라 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 내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삼았다. 9 그리고 나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들을 네 앞에서 쳐 없애 버렸다세상에서 이름난 어떤 위인 못지않게 네 이름을 떨치게 해 주리라. 10 또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이 머무를 곳을 정해 주어 그 곳에 뿌리를 박고 전처럼 악한들에게 억압당하는 일이 없이 안심하고 살게 하리라. 11 지난날 내가 위정자들을 시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던 때와는 달리 너희를 모든 원수에게서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하리라나 야훼가 한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2 네가 살 만큼 다 살고 조상들 옆에 누워 잠든 다음네 몸에서 난 자식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터이니 그가 국권을 튼튼히 하고 13 나에게 집을 지어 바쳐 나의 이름을 빛낼 것이며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든든하게 다지리라.


다윗이 하느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언제 너희들 더러 내 성전 지어달라고 했느냐내가 너희를 위해 은혜를 베푸는 하느님이지 너희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게 8절입니다내가 다윗을 주권자로 삼고 다윗의 대적들을 물리쳐 주고 보호해 줄 것이다너희는 그 은혜를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진짜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다’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이 뭡니까바로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 성도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우리 성도들의 본분은 이 땅에서 우리의 힘과 열심을 가지고 하느님께 무슨 일을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열심에 의해 이끌려 열심히 하느님의 은혜를 알아 가는 것이고 그 은혜를 인식하게 되면 감사가 나오게 되고 그 결과 하느님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으로 성숙되어져 가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거기에 대한 증거가 바로 사무엘 하 12장입니다다윗이 그 수많은 신앙의 승리를 경험하고 한 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입니다자기의 충실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녀가 임신을 하자 우리야를 궁지에 몰아서 죽여 버립니다그리고는 그게 죄인지도 모릅니다.


(사무12:1-12) 1 야훼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도 소도 매우 많았지만, 3 가난한 이에게 품삯으로 얻어 기르는 암컷 새끼 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그는 이 새끼 양을 제 자식들과 함께 키우며한 밥그릇에서 같이 먹이고 같은 잔으로 마시고 잘 때는 친딸이나 다를 바 없이 품에 안고 잤습니다. 4 그런데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 왔습니다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소나 양은 잡기가 아까와서그 가난한 집 새끼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5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단에게 소리쳤다. '저런 죽일놈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6 그런 인정머리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그 양 한 마리를 네 배로 갚게 하리라.' 7 그 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사울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8 나는 네 상전의 딸과 아내들까지 네품에 안겨 주었다나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딸들까지 너에게 주었다그래도 모자란다면 어떤 여자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얕보며 내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느냐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죽였다암몬군의 칼을 빌어 그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10 네가 이렇게 나를 얕보고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으니너의 집안에는 칼부림 가실 날이 없으리라.' 11 야훼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네 당대에 재난을 일으킬 터이니 두고 보아라네가 보는 앞에서 네 계집들을 끌어다가 딴 사내의 품에 안겨 주리라밝은 대낮에 네 계집들은 욕을 당하리라. 12 너는 그 일을 쥐도 새도 모르게 했지만나는 이 일을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리라.''


다윗은 나단이 그에게 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자기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오히려 나단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에게 분노합니다. 그 놈은 죽여야 한다.’ 나단이 그게 바로 당신이요’ 하고 말해주자 그 때 다윗이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자였구나그럼 지금까지 내 삶 속에 일어났던 그 수많은 신앙의 승리의 순간들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 속에 나왔던 수많은 신앙의 승리들은 하느님께서 은혜로 이끌어 주신 결과이지 자기 안에 있는 힘과 열심의 결과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시편51:1-17) 1 하느님선한이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어지신 분이여내 죄를 없애 주소서. 2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3 내 죄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 더러운 관을 통과해서 나오는 것들처럼 전부가 다 죄라는 것) 4 당신께오로지 당신께만 죄를 얻은 몸당신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이 몸벌을 내리신들 할 말이 있으리이까당신께서 내리신 선고 천번 만번 옳사옵니다. 5 이 몸은 죄 중에 태어났고모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6 그러나 당신은 마음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니 지혜의 심오함을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7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이 몸이 깨끗해지리이다나를 씻어 주소서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소서꺾여진 내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9 당신의 눈을 나의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허물을 없애 주소서. 10 하느님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 주시고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 주소서. 11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 내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소서. 12 그 구원의 기쁨을 나에게 도로 주시고 변치 않는 마음 내 안에 굳혀 주소서. 13 죄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빗나갔던 자들이 당신께로 되돌아 오리이다. 14 하느님내 구원의 하느님죽음의 형벌에서 이 몸을 건져 주소서이 혀로 당신의 정의를 높이 찬양하리이다. 15 나의 주여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이 입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16 당신은 제물을 즐기지 아니하시며번제를 드려도 받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로부터 하느님이 받으실만한 것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원래 제사라는 것이 뭡니까우리의 죄를 위해 어떤 중재자구원자가 없으면 우리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이해하고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 제사인데 우리는 아차하면 우리의 정성과 진심이 우리의 구원에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공로주의입니다공로주의는 누가 더 낳은 열심을 내서 하느님을 감동시키느냐의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이게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17 하느님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뿐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시니(이 말은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제사는 '하느님 저는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절대 단 한 순간도 선하게 존재할 수 없는 죄 덩어리입니다라는 자각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 걸 인식하는게 바로 하느님의 일입니다그렇게 자신을 부인하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걸 우리가 뭐라고 부릅니까그걸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믿음이라 는 것은 내가 얼마나 불가능한 존재이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를 자각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 것입니다상한 마음)


그러니까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결국 무엇입니까믿음입니다하느님 앞에서의 항복입니다뭐 대단한 일 해내는 것 아닙니다그것을 마태복음 5장의 언어로 표현을 하면 마음(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가 되는 것입니다여기서 마음이 가난한 것은 의 조건이 아니라 복 받은 자에게서 나오는 결과요 증상이요 확인’ 인 것입니다

그 말은 하느님은 복을 받은 자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 속에서 나는 하느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 했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만드신 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의 삶 속에 일어나는 죄에 대한 욕구나 마귀의 공격 같은 것 들을 그냥 허락하시는 것입니다구원받은 사람의 삶 속에 실패와 절망과 좌절이 있습니다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러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죄인들의 처참한 실존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울러 신앙의 진보도 함께 병행시켜 요구하십니다그러니까 신자의 삶 속에는 늘 갈등과 자신에 대한 좌절과 실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면서 나에게 구원자가 꼭 필요했었던 이유를 마음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의지하는 자’ 그렇게 마음이 가난한 자로 완성이 되어져 가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일인 것입니다거기에 돈이 필요합니까건강이 필요한가요명예가 필요합니까물론 그런 것이 사용될 때도 있지요그러나 거기에는 때로 가난도 질병도 눈물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음녀는 세상의 힘의 논리를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진짜 해야 할 하느님의 일을 저리로 밀어놓고 자꾸 세상의 힘과 정성과 열심과 진심으로 엉뚱한 일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그 다윗의 시편 51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세요이게 그 다음에 지은 시입니다.


(시편40:1-7) 1 야훼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시고 내 부르짖는 소리 들어 주셨다. 2 죽음의 구렁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진흙 수렁에서 나를 꺼내 주시어 바위 위에 내 발을 세워 주시고 내 걸음 힘차게 해 주셨다. 3 내 입에서 새 노래가 터져 나와 우리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었다사람들은 나를 보고 옷깃을 여미며 야훼를 믿게 되리라. 4 복되어라허수아비 우상에 속지 않고 야훼만 믿는 사람이여. 5 야훼나의 하느님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많이도 하셨사오니 당신과 비길 자 아무도 없사옵니다그 이야기 세상에 알리고 또 알리려 하옵는데이루 다 셀 길이 없사옵니다. 6 짐승이나 곡식의 예물은 당신께서 아니 원하시고 오히려 내 귀를 열어 주셨사오며 번제와 속죄제를 바치라 아니하셨기에 엎드려 아뢰었사옵니다. '제가 대령하였습니다'. 나를 들어 두루마리에 적어 두신 것당신 뜻을 따르라시는 것인 줄 아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음을 알았고 하느님의 은혜와 하느님의 기적이 자신의 삶 속에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은 도저히 불가능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그 때 다윗은 자신에게 구원자가 필요함을 깨달은 것입니다다윗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오실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지요어떻게 그걸 예수 그리스도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히브10:1-7) 1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해마다 계속해서 같은 희생제물을 드려도 그것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2 만일 그렇게 해서 완전해질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사람들이 단번에 깨끗하게 되어 다시는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계속해서 제물을 바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3 그런데 해마다 제물을 바치면서 죄를 되새겨야 하는 것은 황소와 염소의 피로써는 죄를 없앨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6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정확하게 시편40편을 인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이 히브리서 10 7절에서 보시옵소 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는 말을 하신 분이 누구이십니까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실패와 절망과 좌절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은 것입니까내 속에서는 선한 것이 전혀 나올 수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나의 삶 속에는 하느님의 기적 같은 간섭이 필요하며 바로 그 구원자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다윗은 바로 그 내용을 설명하는 모델로 성경에 등장하는 것입니다그러한 다윗이 어떤 결론을 얻는지 보세요.


(시편32:1-2) 1 복되어라거역한 죄 용서받고 죄 허물 벗겨진 자, 2 야훼께서 잘못을 묻지 않고 마음에 거짓이 없는 자.


다윗은 모든 것은 은혜로구나하느님이 우리의 삶 속에 기적을 일으켜 주시지 않고 구원자를 보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전부 멸망 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구나.’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골리앗을 때려죽이게 만드셨고 사울을 놓아주게도 만드셨고 밧세바를 범할 때 그냥 놔두신 것입니다그리고 그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메시아의 필요를 알게 되고 그 메시아를 보내주실 하느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골리앗을 때려죽인 용감함의 표상으로사울 왕을 살려 준 자비의 표상으로사울의 가족들을 후대한 친절함의 표상으로성공한 왕의 표상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은 그러한 모든 선한 것들을 하느님의 인도와 간섭 아래에서만 누리고 발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렇게 불가능하고 더럽고 추한 인간들에게 찾아오셔서 독생자의 목숨을 끊어서 은혜를 허락하신 하느님을 인식하게 하시며 결국 그 하느님 앞에 항복하며 감사의 찬송을 하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 전 체의 삶의 표상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것입니다로마서 4장에 가면 다윗이 그 파란 만장한 삶을 살고 난 뒤 얻은 결론이 이렇게 등장합니다.


(로마4:6-8) 6 그래서 다윗도 선행과는 관계없이 하느님께로부터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7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두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8 주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다윗의 시편32편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이게 다윗의 삶의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골리앗을 때려 부수고 자비를 베풀고 성전을 짓는 일을 하기 위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 나는 불가능한 존재이며 내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삶으로 경험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하느님을 더 많이 붙잡게 되고 은혜를 더 많이 사모하게 되는 하느님께 항복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 죄를 많이 짓게 놔두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러분 자신에 대한 실망을 그렇게 많이 하도록 놔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절망과 실망과 실패 속에서 점점 나를 포기하고 하느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나에게 아들의 목숨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되며 그 감사가 나의 삶을 그 분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조금씩 조금씩 바꿔가게 되는 것입니다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거기에 돈이 필요한가요명예가 필요합니까수려한 외모가 필요한가요그런데 왜 성당에 와서 전부 그걸 구하고 있냐는 말입니다. 그건 음녀 바벨론의 미혹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거기서 나오라그리고 진짜 너희가 해야 할 일을 하라’ 여러분 때때로 예수를 믿는 자로서 이런 삶을 살아도 되나?’ 라고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실 때가 있으시지요때때로 내가 이런 죄를 짓고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맞나?’ 하실 정도로 실패하실 때가 있지요그 때 여러분은 절망의 나락 속을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다윗처럼 하느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 제 안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하느님께서 제 안에 선한 것을 창조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절대 선한 것 을 내 놓을 수 없는 자입니다도와주세요.’ 그리고 이런 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구나너무나 감사하다’ 까지 가십시오.

 그리고 그 감사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 가는 그 복된 경험을 해 보십시오그리고 하느님 앞에 자꾸 항복해 가십시오그렇게 된다면 그 더럽고 추악한 죄도 여러분에게 유익인 것입니다그게 우리의 신앙생활이며 하느님의 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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