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어린양의 전쟁(II) (묵시17:9,14-18)

2021. 4. 26. 오전 5: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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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성서


(72) 어린양의 전쟁(II) (묵시17:9,14-18)


(묵시17:9,14-18)

9 이제는 지혜로운 이해력이 필요하다.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언덕이며 또 일곱 왕을 가리키기도 한다. 14 그들은 어린 양에게 싸움을 걸겠지만 마침내 모든 군주의 군주이시며 모든 왕의 왕이신 어린 양이 이기실 것이며, 그의 부르심을 받고 뽑혀서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도 함께 승리할 것이다.' 15 그 천사가 나에게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본 물, 곧 그 탕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들과 군중들과 나라들과 언어들이다. 16 그리고 네가 본 열 뿔과 그 짐승은 그 탕녀를 미워하여 벌거벗기고 처참한 지경에 빠뜨릴 것이다. 그리고는 그 탕녀의 살을 뜯어 먹고 마침내 그 탕녀를 불살라 버릴 것이다. 17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망을 심어 주셨고 뜻을 모아 그들의 왕권을 그 짐승에게 넘겨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18 네가 본 그 여자는 세상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도시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번에 짐승과 음녀가 어린양과 싸우는 어린양의 전쟁에 관해 공부를 했습니다.

하느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과 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자나 독수리의 모습으로 전쟁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힘없고 나약 해 보이고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전쟁을 하신다는 것을 살펴보았지요? 져 주고 용서해 주고 인내하고 사랑하며 오해를 감수하고 고독하게 살아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진정 승리의 삶이었던 것처럼 그 곁에서 함께 하는 자들, 곧 부르심 을 입고 빼 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도 역시 같은 모습으로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적은 어떤 특정 한 장소, 특정한 시대, 특정한 인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 철학과 사상과 문화와 시대정신 등으로 깊숙이 침투 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 분별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속을 수 있다는 것도 확인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매력적인 붉은 옷과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온 세상을 미혹하여 몰아가고 있는 용과 음녀와 짐승의 세력을 어떻게 분별하여 그 어린양의 전쟁을 잘 치러내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살아낼 수 있는가? 그 답이 9절에 나와 있습니다.

 

(묵시17:9) 9 이제는 지혜로운 이해력이 필요하다.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언덕이며 또 일곱 왕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 성도들이 악의 세력에게 미혹 당하지 않고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쓰인 '지혜' 헬라어 '쏘피아'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호크마'입니다. '호크마'라는 단어가 여러 곳에 나오는데 그 중 몇 군데만 찾아 드리겠습니다.

 

(잠언2:1-5) 1 아들아, 내 말을 받아 들이고 내 훈계를 간직하여라. 2 지혜로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바른 판단에 마음을 두어라. 3 슬기를 찾아 구하고 바른 판단을 얻고 싶다고 소리쳐 불러라. 4 은을 찾아 헤매듯 그것을 구하고 숨은 보화를 파헤치듯 그것을 찾아라. 5 그래야 눈이 열려 야훼 두려운 줄 알게 되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리라.

 

여기서도 내 아들아 지혜에 귀를 기울여라, 네가 은을 구하는 것처럼 감추인 보석을 찾는 것처럼 열심을 내서 지혜에 귀를 기울여라하고 권고를 하십니다.

(잠언2:16) 16 그제야 너는 탕녀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남의 계집이 꾀는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

 

(잠언3:13-15) 13 지혜를 찾으면 얼마나 행복하랴! 슬기를 얻으면 얼마나 행복하랴! 14 지혜를 얻는 것이 은보다 값있고 황금보다 유익하다. 15 지혜는 붉은 산호보다도 값진 것, 네가 가진 어느 것도 그만큼 값지지는 못하다.

 

(잠언8:10-17, 22-30) 10 네가 받아야 할 것은 은이 아니라 내 교훈이고 순금이 아니라 지식이다. 11 지혜는 붉은 산호보다도 값진 것,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을 이에 비하랴. 12 나 지혜는 예지와 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 지식을 얻어 뜻을 세우려면 나에게 오라. 13 야훼 두려워하여 그를 섬기면 악을 미워하게 마련, 나는 잘난 체 우쭐대며 악한 길을 가거나 14 나에게는 좋은 계략과 바른 판단력이 있고 예지와 능력이 있다. 15 임금들이 옳게 다스리고 고관들이 바른 명령을 내리려면 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16 내 도움이 있어야 지휘관은 지휘관 노릇을 하고, 고관들은 세상을 바로 다스린다. 17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22 야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한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지으셨다. 23 땅이 생기기 전, 그 옛날에 나는 이미 모습을 갖추었다. 24 깊은 바다가 생기기 전에, 샘에서 물이 솟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5 멧부리가 아직 박히지 않고 언덕이 생겨 나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6 평평한 땅과 땅의 흙을 만드시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7 그가 하늘을 펼치시고 깊은 바다 둘레에 테를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 28 구름을 높이 달아 매시고 땅 속에서 샘을 세차게 솟구치시며 29 물이 바닷가를 넘지 못하게 경계를 그으시고 땅의 터전을 잡으실 때, 30 나는 붙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언제나 그의 앞에서 뛰놀며 날마다 그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 ‘소피아’ ‘호크마가 결국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은 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 분의 삶은 어떠한 삶이며, 왜 그 분이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었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하고 있지 않으면 절대 세상을 이겨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기는커녕 그 음녀가 주는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 더럽고 가증한 것들을 쫓다가 결국 멸망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에페소서 5장에서도 세상이 주는 진노의 금잔에 취해 세월을 방탕하게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시 지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에페5:15-18)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사십시오. 16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17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18 술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보세요. 요한 묵시록의 언어와 에페소서의 언어가 얼마나 비슷합니까? 왜 술에 취합니까? 지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 음녀가 주는 술에 취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경건하게 행동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연히 성경을 통해서 배웁니다. 성경은 온통 그 지혜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가24:27) 27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요한5:39) 39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 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은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시며, 그 분이 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으며 그 분은 어떤 삶을 사셨으며 왜 죽으셨으며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그리고 그 모든 삶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이 되는지에 관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 책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을 얻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그 어린양이 살다 가신 하늘의 삶의 원리로 이 땅을 살아야 한다.’고 초청하시고 그 삶의 내용을 설명해 놓으신 책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느님을 이용해서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기록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죽여서 다른 이를 구원 해 내는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과 삶의 원리를 소개하는 책인 것입니다. 정 반대의 내용이지요.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통해 그 삶을 배우는 것이고 연습하는 것이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어떤 한 무리가 거기서 떨어져 나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구별되어 가는 것을 거룩’(separate)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마귀의 세력에게 속지 않고 진짜 행복하게 기쁘게 살 수 있는지에 관한 삶의 매뉴얼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값비싼 기계를 구입하게 되면 매뉴얼을 잘 읽지요. 그래야 그 기계가 가진 여러 가지 기능을 잘 활용해서 가치 있게 쓸 수 있으니까요.

저희 집사람처럼 매뉴얼을 무시하는 사람은 핸드폰 벨 소리도 못 바꾸고 문자를 어떻게 보내는 지도 모르고 그냥 send 하 고 end 밖에 몰라요. 아직도 집에서 혼자 영화를 못 봐요.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런 하찮은 기계도 매뉴얼을 모르면 효율적인 활용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지금 이 땅에서 어떤 처지 에 놓인 것이며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가장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매뉴얼을 자세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하느님이 원하시는 그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잔소리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말씀하면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부모를 공경해라같은 율법의 차원에서만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하느님의 말씀을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이사28:1,7-11) 1 ! 네가 비참하게 되리라. 에브라임의 주정꾼들이 쓰고 뽐내는 꽃관, 사마리아야! 술부대의 머리에 얹힌 화려한 꽃, 사마리아야, 네가 정녕 시들리라. 7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독주에 취해 헤매는 이자들은 누군가? 독주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자들은 바로 사제와 예언자들이 아닌가? 아주 술독에 빠져 버렸구나. 저렇듯이 독주에 취하여 헤매다니! 비틀거리며 계시를 본다 하고 뒤뚱거리며 재판을 하다니! 8 술상마다 구역질나게 토해 놓고 떠드는구나. 9 '저자가 하느님을 안다고 누구를 가르칠 셈인가? 되지 못하게 계시를 받았다고 누구를 깨우쳐 줄 셈인가? 겨우 젖뗀 아기에게나, 금방 젖꼭지 놓은 아기에게나 해 보시라지! 10 저자가 하는 소리를 좀 들어 보세. '사울라사우, 사울라사우! 카울라카우, 카울라카우! 즈에르삼, 즈에르삼!'' 11 과연, 이제 하느님께서는 더듬거리는 말씨와 다른 나라 말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셔야겠구나.

 

음녀의 포도주에 취한 (에브라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가 하느님의 말씀을 가리켜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차 라차브, 차브 라차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제에르 샴, 제에르 샴 인데 이 말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아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구를 조롱할 때나 아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칠 때 쓰던 유치한 말이었습니다.

얼렐레 까꿍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서 주정부리는 소리를 그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사야를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하는 잔소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렇게 경홀히 여기고 음녀의 금잔에 취해 있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모두 아시리아와 바빌론에게 멸망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지혜를 경홀히 여기고 음녀의 금잔을 분별하지 못한 자들의 결국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호세4:1-7) 1 이스라엘 백성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야훼께서 이 땅 주민들을 걸어 논고를 펴신다. 2 '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느님을 알아 주는 자 또한 없어 맹세하고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꼬리를 물고 가는 데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3 때문에 땅은 메마르고 주민은 모두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께 야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 간다. 4 그렇다고 서로 탓하지는 말라. 서로 따지지도 말라. 사제야, 내 백성이 다 너희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5 너희 사제라는 것은 대낮에 거꾸러지고 밤에는 예언자도 함께 거꾸러지리라. 이 백성은 너희 때문에 망한다. 6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해서 망한다. 너희 사제라는 것이 나를 알려고 하지 않으니 나도 너희를 사제직에서 몰아 낸다. 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너희 자녀를 마음에 두지 않으리라. 7 이런 사제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나에게 짓는 죄가 많아진다. 그 자랑스런 직책을 부끄럽게도 밥벌이로 만드는 것들,

 

하느님의 말씀, 지혜를 무시하는 자들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은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살육과 학살밖에 나올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방법이 딱 하나 있습니다.

 

(호세6:1-3) 1 '어서 야훼께로 돌아 가자!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2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며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 3 그러니 그리운 야훼님 찾아 나서자. 그의 정의가 환히 빛나 오리라. 어김없이 동터 오는 새벽처럼 그는 오시고 단비가 내리듯 봄비가 촉촉이 뿌리듯 그렇게 오시리라.'

우리가 세상과 함께 멸망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뭐라는 것입니까? 우리가 야훼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야훼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말고 힘써 야훼를 아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지혜이신 하느님을 말씀 을 통해 알게 되면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에페소서로 가보겠습니다.

 

(에페3:14-19) 14 ,15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립니다. 16 넘쳐 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구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17 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 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 감으로써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19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우리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되면 하느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들에게 궁극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이 뭘까요? 하느님은 무엇으로 충만해 계셔요?

세상과 구별된 하느님만의 것, 바로 하느님의 속성, 하느님의 하느님 되심, 거룩, 사랑, 온유, 절제, 인내, 용서 같은 하느님 이 내용으로 가지고 계신 것들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목표 지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요.

우리 聖徒들이 그렇게 하느님의 충만으로 자기 안에 채우며 거룩하게 지어져 가는 길에 걸림돌을 놓는 자들이 바로 음녀요 짐승이고 그 들과 싸워 그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서의 삶을 잘 지켜내는 것을 우리가 어린양의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충만하신 것을 성경은 한 마디로 사랑이라고 부르지요? 쉬운 말로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사랑하는 자로 바뀌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전1:5) 5 내가 그런 일을 금하는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맑은 양심과 순수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잔소리를 해 놓으신 것은 여러분 안에서 참된 사랑이 나오게 하시기 위함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필립1:9-11) 9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참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점점 더 풍성해져서 10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되고 11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지혜를 통해 풍성한 사랑을 소유한 자가 되어져 가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의해 사랑이 풍성한 사람으로 확연하게 변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이지요. 사도 바울로는 자기의 목적과 뜻을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하던 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26:9-12) 9 사실은 저도 한 때는 온갖 힘을 다해서 나자렛 예수를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그 일에 손을 댔었습니다. 저는 대사제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들을 감옥에 처넣고 그들을 처형하는 일에 찬동하였습니다. 11 그리고 회당에 찾아 가서 그들에게 여러 번 벌을 주어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에 달해서 저는 심지어 이방 여러 도시에까지 찾아 가서 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12 '이런 일로 저는 대사제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가지고 다마스커스로 내려 가게 되었습니다.

 

(디모전1:13) 13 내가 전에는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모르고 한 일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를 자비롭게 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모독자, 박해자, 학대자로 번역이 된 단어는 원래 독설을 퍼붓는 자, 다른 이를 박해하는 자, 오만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랬던 바울로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고전4:11-16) 11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집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12 그리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우리가 받는 박해를 참아내고 13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인간의 찌꺼기처럼 살고 있습니다. 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내 사랑하는 자녀로 생각하고 교훈 하려는 것입니다. 15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지도해 줄 교사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교인으로 태어나게 한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16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나를 본받으십시오.

 

비방 자요, 박해 자요, 모욕 자였던 사도 바울로가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고 핍박을 당해도 참는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가 자기를 비방할 때 파라칼레오그를 초청하여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사도는 그러한 자기를 본받으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가 다마스코에서 예수를 만난 이 후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게 성경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통해 예수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사도 바울로가 그랬던 것처럼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사랑하는 자로 빚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느님의 충만한 것으로 충만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 나가는 것이 바로 어린양의 전쟁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치러내야 하는 영적 전쟁은 바로 여러분의 거룩의 완성에 대한 것이지 어디 선교지나 기도원에서 치러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이 바로 영적 전쟁의 최전선인 것입니다.

 

(에페1:3-5)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아들을 삼으신 것은 우리를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아들을 삼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 을 삼으신 것은 과거이지만 아들이 된 자들은 현재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빚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12절에 다시 한 번 그 목적지가 제시 됩니다.

 

(에페1:12) 12 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서 건져내어져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의 찬양이라는 것이 뭡니까? 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 즉 하느님의 속성, 거룩, 사랑, 온유, 절제, 인 내, 평화 등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우리를 보며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탄복을 하게 되는 것을 하느님의 영광의 찬양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바로 그 영광의 찬양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에페1:17-22) 17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 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18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 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21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또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결과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성도들이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살아 난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거기까지가 구원입니다.

왜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야 합니까? 그 머리에 붙은 교회가 자라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페4:13-15) 13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14 그 때에는 우리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안간의 간교한 유혹이나 속임수로써 사람들을 잘못에 빠뜨리는 교설의 풍랑에 흔들리거나 이리 저리 밀려 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5 도리어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시기 위해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것까지가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땅에서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랑하는 자로 지어 져 가는 것입니다.

그 길에 음녀와 짐승이 금과 보석과 진주와 금잔을 들고 미혹하며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우리가 치러 내야 할 영적 전쟁, 어린양의 전쟁인 것입니다.

우리는 많이 실패하고 많이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시작된 그 일은 반드시 완성이 될 것입니다. 필립보서에서 공부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완성하실 것을 내가 확신하노라인 것입니다.

거기서 착한 일이라고 번역이 된 에르곤 아가똔‘good work’ 예요. ‘좋은 일, 선한 일, 착한 일그 에르곤 아가똔은 창세기에서 인용이 된 단어지요. 하느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그 좋은 일바로 새 창조를 의미 합니다.

우리 안에 이미 새 창조가 시작되었고 그 창조는 반드시 완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 바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반드시 완성하실 것이라는 구절의 眞義지요.

보세요. 우리는 가야할 여정이 있는 것입니다. 완성을 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싸워야 할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진 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주어진 신앙생활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사랑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의 과제로 삼아야 할 아주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것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단순히 처녀와 총각이 만났을 때 불일 듯 일어나는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얼마 못 가서 금방 식습니다. 그 것은 열정이라고 부르고 진심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것보다 더 깊은 것입니다. 그 열정이 지나간 후에 진짜 농익은 사랑이 익어 가는 것입니다.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주고 품어 주고, 용서 해 주고, 인내해 주는 그런 깊은 단계로 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에서 사랑을 오래 참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상대방을 위해 나의 존재의 목적이 바뀌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고, love is long suffering’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유익을 위해 내가 죽고 참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은 그냥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나의 애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남의 애를 끊나니그렇게 나의 애가 끊어져도 상대방을 위해 참아주며 져 주며 품어주며 용서해 주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천국의 시민으로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하루아침에 우리 안에서 솟구쳐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래서 끊임없는 전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바로 그 전쟁, 어린양의 전쟁을 잘 치러 내기 바랍니다. 그 전쟁을 잘 치러내기 위해서는 지혜, 지혜는 성경, 더욱 더 말씀 공부에 진지해 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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