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오! 놀라운 하느님의 은혜 (묵시14:12-13)

2021. 4. 24. 오후 12: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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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성서

(58) ! 놀라운 하느님의 은혜 (묵시14:12-13)


(묵시14:12-13)

12 그래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3 나는 또 ''이제부터는 주님을 섬기다가 죽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고 기록하여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옳은 말이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제 곧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천사의 소리가 우리에게는 복된 소리, 福音이 되는 신비에 관해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 그 심판의 날이 되면 우리 하느님 나라는 가시적으로도 완성이 될 것이고 우리는 이제 이 지겨운 육신의 몸을 벗고 영원한 새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 심판의 임박함이 바로 복음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아울러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 매매도 마음대로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들은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고 실상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불쌍한 자들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진짜 쉬는 자, 진짜 자유 한 자들은 바로 우리였습니다.

12절은 그렇게 하느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될 마귀의 세력들과 대조적으로 영원한 쉼을 얻게 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묵시14:12) 12 그래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그렇게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되는 구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고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명이 무엇이며 그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왜 우리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지요? 그리고 우리가 그 하느님의 계명을 지켰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 오늘 잘 정리를 해보자고요.

太初에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그 인간들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왕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인간들에게 단 한 가지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을 하신 것은 단순히 선악과가 저주의 과일이라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는 모든 인간은 만물보다 절대 상위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 모든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느님이라는 존재의 절대 하위에 있을 때에만 그 복이 유효하다고 하는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너는 내 말을 지켜 야 하는 자다라는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모든 생명력을 우리가 바라크’ ‘이 라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인간들은 그 하느님마저 자기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자신들이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게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왕이신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이 앉아버린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렇게 그 하느님이 주시는 복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자들이 그 계명을 버리고 자기들 스스로 왕이 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당연히 그 타락한 자들과 달리 자신의 의도와 계획과 욕심과 야망을 다 누르고 원래대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들은 계명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하느님의 계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께서 직접 주신 계명들을 몇 가지만 보고 넘어가지요. 먼저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직접 새겨주신 십계명을 한번 읽어볼까요?

(출애20:1-17) 1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2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4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7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10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11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12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하지 못한다. 14 간음하지 못한다. 15 도둑질하지 못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여러분, 이 계명 다 지키고 계세요? 분명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가장 기본적인 하느님의 계명인 십계명을 읽었는데 여러분 그 계명도 다 못 지키시지요? 그래도 이 계명들은 이를 악 물고 지키겠노라고 마음을 먹으면 인간이 못할 것도 없는 그런 계명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비록 회칠한 무덤처럼 살긴 했지만 이 계명을 외형적으로 정확하게 지켜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으로 넘어 와서 예수님께서 그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단순히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 뿐 만 아니라 생각까지도 포함한다고 다시 율법을 정의해 주십니다.

(마태5:21-45) 21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 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24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 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 와 예물을 드려라. 25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형리에게 내 주어 감옥에 가둘 것이다. 26 분명히 말해 둔다.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 ''간음하지 말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29 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30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31 '또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고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그리고 주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 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예루살렘은 그 크신 임금님의도성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도 검게 할 수 없다. 37 너희는 그저 '' 할 것은 ''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40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41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라.'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이같이 해야 너희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고 딱 잘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하느님의 계명은 하나라도 어기면 모두 어긴 것이 됩니다.

 

(야고2:10) 10 누구든지 계명을 다 지키다가도 한 조목을 어기면 계명 전체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 13절에서는 하늘나라에서 쉬게 되는 성도들은 그들의 행한 일을 근거로 쉬게 된다고 명시가 되어있습니다.

 

(묵시14:13) 3 나는 또 ''이제부터는 주님을 섬기다가 죽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고 기록하여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옳은 말이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죠? 그럼 지금 당장 우리의 모습을 보자고요. 여러분의 행위가 하느님 마음에 드실 것 같으세요? 저는 자신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천국에 못 가는 건가요 큰일 났지요? 어차피 못 지킬 거 그냥 애시 당초 포기하고 오늘부터 부어라, 마셔라광란의 밤을 보낼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12절을 보세요.

 

(묵시14:12) 12 그래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예수 믿음이 함께 붙어있지요? 그냥 성도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다.’라고 끝났다면 우리는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그 계명을 다 지킬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에 바로 이어서 예수 믿음이 등장합니다. 이게 얼마나 복된 소식인지 모릅니다. 예수 믿음’ ‘텐 피스틴 예수는 소유격입니다.

헬라어의 소유격은 네 가지로 쓰입니다. 단순한 소유격을 나타낼 때도 쓰이지만 주격으로도 쓰이고 원인을 가리킬 때도 소유격을 씁니다. 그리고 목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음’ ‘텐 피스틴 예수예수의 믿음혹은 예수가 가진 믿음혹은 예수를 믿는 믿음’ ‘예수에 대한 믿음이렇게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모두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이 우리 것이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하느님의 계명은 우리 주님께서 이미 모두 지켜내셨고 완성시키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계명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완전한 인간의 신분으로 모두 지켜내셨습니다.

루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결례의 날이 되어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전에 데리고 올라가서 정결 예식을 행하는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유대인들은 나면서부터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아이를 낳은 산모는 부정한 여인이라 하여 반드시 아이를 낳은 후에 아이와 함께 제사장에게 가서 정결 예식을 행해야 합니다. 남자아이는 40, 여자아이는 80일이 지난 후에 어머니와 아기들은 정결 예식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남자아이 중 장남들은 하느님께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법들뿐만 아니라 이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루가복음뿐만이 아니라 4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는 것을 시작으로, 절기 때마다 성전에 올라가셔서 모든 율법을 하나하나 다 지키고 계신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삶 속에서도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도덕법들을 다 지켜내셨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삶을 우리 주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 그냥 거저 다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은혜로 마치 우리가 계명을 다 지켜낸 것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이 하신 사역을 믿음으로 그 모든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예수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이렇게 개판으로 사는데도 하느님은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를 우리의 것으로 여겨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계명을 지킨 자가 되는 것이고 하늘에서 영원한 쉼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하늘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성도들은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지킨다.’는 구절의 의미입니다. 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예수 믿음이 함께 붙어서 나와 있는지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거저먹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을 은혜다, 선물이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매주 당신들 그렇게 살면 가짜라고 소리소리 지르더니 이게 무슨 말인가?’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지요? 오해 말고 잘 들어주세요.

여러분, 정말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 분의 삶을 쫓아 그대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실 필요가 없지요. 우리는 그 하느님의 요구를 다 지켜낼 수 없는 타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단순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는 어떤 인간이며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를 배우고 그래서 나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항복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느님의 성품을 닮으려는 시도들이 나오는 것이지 단순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교가 아닙니다.

그게 그리스도교의 최종 목적이라면 간디나 슈바이처가 최고로 신앙 좋은 사람이 게요?

여러분 제가 그리스도교는 성품의 문제요 인격의 문제라고 말씀드린 것은 그리스도교는 무슨 무당 종교처럼 나보다 힘센 어떤 존재에게 아부를 떨어서 그 힘을 좀 빌려 내 유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로 변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무(本務)’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드린 말씀이지 어떻게 해서든 깨끗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면 알매니안 주의와 뭐가 다릅니까?

그리스도교는 이 땅에서 훌륭한 일을 해내고 엄청난 업적을 쌓고 자신의 인격을 수양해서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사람들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불가능함을 깨닫고 그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느님 앞에 항복하고 내가 나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서 내 인생을 이끌어 가던 삶에서 돌이켜 하느님이 시키시는 대로 사는 게 진짜 행복한 삶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전적으로 그 분께만 순종하는 하느님의 자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항복하고 그 분께 순종하게 된 자들의 삶이 변해 가는 것 을 거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계명이 완성이 되어 이제 우리는 개판으로 살아도 천국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그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하느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었다고 해서 이제 우리는 아무렇게나 불효를 하면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예수 안에서 그 부모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다분히 의무감으로 부모에 대한 효도를 했었다면 이제 예수를 알고 난 후에는 자신의 목숨을 끊어서 나를 사랑하신 그 예수의 사랑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헌금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었으므로 나는 나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그의 서신 서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삶은 바로 그 항복에서 나온 거룩을 말하는 것입니다. 信者의 바른 삶도 바로 그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복음을 그렇게 잘 배우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왜 그 삶 속에서 하느님에게 항복하는 순종의 몸짓이 안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이 복음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는 의미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한 장군이 황후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그 황후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전쟁에서 크게 이긴 황제와 장군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잔치가 흥겹게 무르익을 무렵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불이 모두 꺼져 버렸습니다.

그 때 황제가 애지중지 아끼는 그 황후의 볼에 누군가가 뽀뽀를 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황후는 당황했지만 자기 볼에 뽀뽀를 하고 도망간 그 남자의 갓 끈을 하나 끊어서 꼭 쥐고 있었습니다. 불이 들어오자 그 황후는 황제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 ‘불이 꺼졌을 때 누군가 나의 볼에 뽀뽀를 하고 도망갔습니다. 제가 그 자의 갓 끈을 끊어서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갓 끈이 없는 자를 찾아내어 능지처참(陵遲處斬)을 해 주옵소서

그 때 황제가 급히 엄명을 내렸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장군들은 즉시 갓 끈을 전부 끊어서 버려라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장군들이 즉시 자기가 쓰고 있던 갓 끈을 끊어서 버렸습니다. 이제 범인이 누구인지 찾는 것은 다 틀려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기 위해 장군들과 출정을 했습니다. 황제는 적군의 계략에 빠져 홀홀(忽忽)단신 포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장수가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들어와서 황제를 말에 태우고 탈출을 했습니다. 무사히 탈출을 한 황제가 그 장수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죽을 지도 모르는 그 사지에 홀로 들어와서 목숨을 걸고 나를 구했느냐?’

그 때 그 장수가 말했습니다. ‘얼마 전 잔치 때 황후에게 갓 끈을 뜯긴 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데 황제께서는 너그러 운 마음으로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게 은혜를 입은 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은혜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은혜를 베푼 분께 목숨을 바치기는커녕 여전히 이렇게 게으르고 모나고 불성실하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것들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인간들은 얼마든지 자기의 자랑과 드러남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사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로마10:1-3) 1 형제 여러분, 나는 내 동족이 구원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며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2 나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제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성품과 인격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 자랑을 위해서 단순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고 선행을 행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거룩은 단순히 깨끗하고 바른 삶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주위에 깨끗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데 왠지 재수가 없는 사람들 많지요? 왜 그렇죠? 그 사람들의 바른 생활의 의도는 남을 유익하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랑과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하느님의 성품은 하느님을 향한 감사함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기쁨을 위해서 그리고 그 분이 목숨을 끊어가며 사랑하신 나의 지체들을 위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 는 겸손이요 온유요 인내요, 사랑이요, 충성이요, 절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열매들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서만 나올 수 있는 아주 고급 성품이요 인격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그러한 高級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 이 땅에 우리 교회를 던져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성품과 인격은 바로 이 하느님과 나를 아는 지식에서 나온 성품과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놓은 가짜 열매처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그런 성품과 인격이 아니라 나는 하느님이 시키시는 대로 살아야 가장 행복하다라는 것을 깨달은 자가 그 지식을 근거로 행복하게 행하는 성품과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주 실패하고 자주 넘어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난 백점이야라고 뻔뻔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육신이라는 옛 몸의 시험지. 그건 여러분의 시험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백 점짜리들입니다. 다 합격입니다. 전부 빵점짜리들을 예수님께서 대리 시험을 쳐주셔서 전부 백 점짜리로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는 이제 그 은혜에 감사하는 반응이 나와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요구에 턱없이 모자라는 자신의 모습을 매일 매일 발견하면서 진정으로 겸손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남들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여러분의 불가능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화를 참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슬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얼마나 못되고 얼마나 더러우며 얼마나 게으르며 얼마나 추악한지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나를 위해 죽어주신그 천지를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참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빵점짜리 나를 위해 백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찾아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감격하십시오. 그 감격이 우리를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천천히 인도해 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거룩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앎으로 해서 하느님 앞에 항복해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겸손한 거룩, 바로 그것이 여러분이 이 땅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모양인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 분의 생명까지 다 주셨습니다. 이미 우리의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분의 기쁨을 위해 그 분의 말씀대로 살기를 경주하는 것입니다.

 

(베후1:3) 3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경건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누리게 하신 그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보세요. 다 주셨습니다. 이걸 믿으시는 여러분은 무조건 천국 갑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래서 우리는 막 살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내 아들이 자기 몸을 천박하게 막 굴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는 삶을 살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게 그리스도입니다. 엉터리 무당종교에서 얼른 벗어나십시오.

왜 사도 바울로를 그렇게 오래 감옥에 가두십니까? 왜 다마스코에서 그를 구원하시고 십수년 간 아라비아에서, 다르소에서 그냥 썩게 만드실까요? 왜 복음을 전하는 그에게 사탄의 가시라는 간질병을 그냥 주셨을까요? 오히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고 계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왜 모세를 쓰실 때도 가장 정신이 또렷하고 힘이 넘치고 의욕에 넘치는 40세에는 모른 척 하시다가 이제 다 죽어 가는 80이 되어서야 그를 부르실까요? 하느님은 참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시는 것 같지요? 왜 성령과 능력과 지혜가 충만한 스테파노를 살려서 오래 오래 하느님의 일에 쓰시지 않으시고 그냥 돌에 맞아 죽게 만드실까요? 하느님은 아까운 일꾼을 하나 그냥 놓치신 것입니까?

하느님의 목적은 우리를 이용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에게 나는 얼마나 약하고 더럽고 악하고 게으르고 무식한 인간인지를 깨닫고 하느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난 하느님 없으면 절대 살 수 없는 자입니다라는 항복을 받아내심으로 그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하느님의 자녀를 만들어 내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느님은 이렇게 우리 인생의 모든 사건들, 상황들까지도 동원하셔서 우리를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질병과 고통과 부도와 이혼과 굶주림 같은 것들이 동원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성숙되어지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으니까 인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계명을 다 지킨 자들이 되었고 결국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이 모든 고통들은 전부 나에게 유익이야그렇게 참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잘 참아내십시오. 인내하세요. 여러분은 이미 모든 계명을 다 지켜내신 분들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니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신 우리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서 그 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한번 살아보자고요. 안 돼도 괜찮습니다. 하느님께 때로 삿대질할 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실존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우리는 여전히 이런 존재인데 우리 하느님은 어떻게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걸까?’ 하고 또 감격하고 또 실수하고 또 감격하고 그렇게, 그렇게 열심히 가다보 면 곧 끝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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