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성서
(51)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아이 (묵시12:3-6)
(묵시12:3-6)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큰 붉은 용이 나타났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고 머리마다 왕관이 씌워져있었습니다. 4 그 용은 자기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막 해산하려는 그 여자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그 아기를 삼켜 버리려고 그 여자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분이었습니다. 별안간 그 아기는 하느님과 그분의 옥좌가 있는 곳으로 들려 올라 갔고 6 그 여자는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 곳은 하느님께서 천 이백육십 일 동안 그 여자를 먹여 살리시려고 마련해 두신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인과 그 여인이 낳은 아이에 관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 여인은 교회를 상징하는 거였고 그 여인이 낳은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우리는 여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너무 고통스러워서 애써 부르짖는 모습을 통해서, 이 땅에서의 신자들의 삶을 보았고, 그러나 그 고통은 목적이 있는 고통이기에 우리는 힘들지만 기쁨과 기대 속에서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또 다른 표징이 등장합니다.
(묵시12:3)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큰 붉은 용이 나타났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고 머리마다 왕관이 씌워져있었습니다.
붉은 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용은 머리가 일곱 개입니다. 그리고 뿔이 열 개가 있는 용입니다. 그리고 그 일곱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9절에서 해석을 해 줍니다.
(묵시12:9) 그 큰 용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인데, 이제 그 놈은 땅으로 떨어졌고 그 부하들도 함께 떨어졌습니다.
그 머리가 일곱 개 달린 용은 사탄 마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붉은 색은 성경에서 ‘죄’를 나타낼 때 쓰이는 색깔입니다. ‘너 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그러죠? 그러니 붉은 용은 죄의 원흉 사탄, 마귀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마귀, 사단이라 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용, 옛 뱀’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지금 요한은 우리를 창세기부터 진행되어져 오고 있는 구속사의 가운데로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 묵시록을 읽는 독자들, 교회들에게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만든 그 뱀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우리 교회를 괴롭히는 자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 자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괴롭혀 온 자인지를 주지시키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은 한 가지를 일관성 있게 이야기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용이 머리가 일곱 개 달리고 뿔이 열 개가 달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다른 곳에도 등장을 하는데요. 13장1절을 볼까요?
(묵시13:1) 1 또 나는 짐승 하나가 바다에서 올라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뿔이 열 개이고 머리는 일곱이었습니다. 그 뿔에는 각각 관이 하나씩 씌워져 있었으며 그 머리마다 하느님께 모독이 되는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묵시17:7-8) 7 그 때 그 천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놀라느냐? 내가이 여자의 비밀과 이 여자를 태우고 다니는, 머리 일곱에 뿔이 열 개 달린 그 짐승의 비밀을 말해 주마. 8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그것이 장차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 오겠지만 마침내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천지창조 때부터 생명의 책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짐승이 나타나는 보고 놀랄 것이다.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후에야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그 짐승을 보기 때문이다.
척 봐도 이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진 짐승이나 용은 우리 교회와는 적대 세력임을 알 수 있지요? 세대주의자들은 이 열 뿔이 유럽 EC공동체로 봅니다. 유럽 구주 공동체가 10개국이 되면 이제 붉은 용이 그리스도인들을 대대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할 것이고 대 환난이 온 땅을 덮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EC공동체 가입 국가가 10개가 될 때를 예의 주시해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개가 훨씬 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그들이 탈퇴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머지가 탈퇴를 하고 10개국이 남게 되면 환난과 핍박이 시작될 것이라고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핍박이 시작되면 의로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삼년 반 동안 사해 남쪽에 있는 요르단 평야 모압지방, 페트라 요새라는 곳으로 피신을 가게 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미국의 세대주의 단체들이 이 요새를 구입하기 위해서 기금을 조성했고, 통조림과 저장 음식들을 사서 비축했었습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면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서 광야로 날아간다고 나오지요? 독수리를 국가의 상징으로 갖고 있는 나라가 어디입니까? 미국이죠.
세대주의자들은 의로운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국 공군기의 도움을 받아서 페트라 요새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 했습니다. 그럴듯합니까? 헛소리죠. 그럼 초대교회 신자들은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는 EC공동체 이야기를 듣고, 미국 공군기가 실어 나르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감격해서 울었겠습니까?
성경은 전체 교회가 시공을 초월해서 동일 한 메시지로 동일한 감격과 위로를 받도록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한 시대, 어떤 특정한 민족들만을 위해 기록되어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럼 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존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묵시록 17장 7절로 가보겠습니다.
(묵시17:7-12) 7 그 때 그 천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놀라느냐? 내가이 여자의 비밀과 이 여자를 태우고 다니는, 머리 일곱에 뿔이 열 개 달린 그 짐승의 비밀을 말해 주마. 8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그것이 장차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 오겠지만 마침내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천지창조 때부터 생명의 책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짐승이 나타나는 보고 놀랄 것이다.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후에야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그 짐승을 보기 때문이다. 9 이제는 지혜로운 이해력이 필요하다.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언덕이며 또 일곱 왕을 가리키기도 한다. 10 그 중의 다섯은 이미 넘어졌고 여섯째는 아직 살아 있으며 마지막 하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왕이 나타나더라도 잠시 동안밖에는 살지 못할 것이다. 11 또 전에 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바로 그 여덟 번째 왕이다. 그 왕도 그 일곱 왕들과 동류로서 마침내는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12 그리고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이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짐승과 함께 한때 왕노릇할 권세를 받을것이다.
9절에 보면 그 일곱 머리는 일곱 산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일곱 산이 무엇인지 알아야 일곱 머리가 의미하는 바 를 알 수 있지요. 당시 초대교회의 독자들은 이 일곱 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금방 로마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로마는 일곱 개의 산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화폐와 여러 문헌에 이 일곱 산의 지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 고 로마는 (Septimontium, 칠산절)이라는 큰 명절을 해마다 지켰기 때문에 ‘일곱 머리’ ‘일곱 산’하면 금방 로마를 떠 올렸을 것입니다. 로마는 누구입니까?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핍박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일곱 머리는 교회를 핍박하는 어떤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그 일곱 머리가 ‘일곱 산’이면서 ‘일곱 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왕 은 왕국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네 짐승의 환상에서 네 왕을 네 왕국으로 표현을 합니다.
(다니7:17) 17 '이 큰 짐승 네 마리는 세상 나라의 네 임금을 가리키는데
그런데 또 23절을 보면 그 짐승을 임금이 아닌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다니7:23) 23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째 짐승은 네 번째로 일어날 세상나라인데 그 어느 나라와도 달라, 온 천하를 집어 삼키고 짓밟으며 부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왕국, 나라’를 ‘산’으로 표기를 하기도 합니다.
(시편30:7) 7 나를 어여삐 여기시고 산 위에 든든히 세워 주시던 야훼께서 얼굴을 돌리셨을 때에는 두렵기만 하였사옵니다.
다윗이 하느님께서 자기의 왕국을 세우신 것을 가리켜 ‘야훼께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다.’ 라고 기록을 합니다.
(예레51:25) 25 온 세상을 짓부수던 멧부리야, 이제 내가 너를 멸하리라. 나 야훼가 선언한다. 팔을 뻗어 너를 움켜 잡고 바위 꼭대기에서 내려 굴리며 산에 불을 지르리라.
하느님께서 바벨론을 가리켜 멸망의 산, 불탄 산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일곱 머리는 일곱 산이고 일곱 왕이다’라는 구절은 로마처럼, 그리고 구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대적인 애굽, 아시리아, 바빌론, 메대, 페르시아, 헬라처럼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의 권세, 사탄 마귀의 세력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일곱 머리가 정확하게 어떤 나라들이냐, 혹은 어떤 왕들이냐’를 밝히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호기심입니다. 성경은 7이라는 완전수와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머리를 동 원해서 그 사탄 마귀가 세상의 왕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곱 머리가 전부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면류관이라고 번역이 된 ‘디아데마타’는 ‘왕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열 뿔이라는 상징을 동원해서 그 마귀가 엄청난 권세를 갖고 교회를 괴롭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뿔은 권세, 능력이라고 설명해 드렸지요? 열 뿔은? 엄청난 권세를 말합니다. 그렇게 그 세력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13절에서 그가 하늘 별 1/3 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것으로 한 번 더 강조해 줍니다.
그런데 그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 아이가 태어나면 삼켜 버리려고 지키고 서 있습니다. 그 붉은 용은 아는 것입니다. 이 철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하느님 나라가 완성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영원한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된다는 것 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우리 생각나는 몇 가지만 짚어보죠.
(1)사탄은 카인으로 하여금 아벨을 죽이게 합니다. 아벨의 라인으로 이 아이가 태어나야 하는데 아벨의 후사를 막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셋을 주십니다.
(2)파라오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강간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막아 주십니다.
(3)똑같이 아비멜렉을 통해서 이사악의 아내 리브가를 똑같은 방식으로 강간하려 합니다. 역시 하느님께서 막아 주셨습니다.
(4)야곱의 아들인 유다의 아들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며느리 다말을 통해 후사를 이으십니다.
(5)애굽 왕 바로로 하여금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전부 죽이게 합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목숨을 걸고 남자아이들을 살려 내게 하십니다.
(6)나오미의 남편과 아들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보아즈와 룻을 통해 후사를 이으십니다.
(7)사울을 통해 다윗을 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지키십니다.
(8)에스델서에 보면 페르시아의 하만을 통해 전체 유대인을 학살하려는 음모가 나옵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 던 에스델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살아납니다.
(9)그리고 헤로데 왕으로 하여금 아기 예수를 죽이게 합니다. 그러나 천사가 나타나 도우십니다.
이렇게 사탄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하느님의 언약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 분은 하느님의 모든 계획을 완성하시고 하느님 우편의 보좌에 앉으셔서 철장으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그 하느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느님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내셨습니다.
(묵시12:5) 5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분이었습니다. 별안간 그 아기는 하느님과 그분의 옥좌가 있는 곳으로 들려 올라 갔고
라는 구절이 있지요? 여기서 ‘올려갔고’ ‘하르파조’라는 단어는 ‘바울로가 낙원에 이끌려 올라갔을 때’도 사용되었고 데살로니카전서 에서 ‘교회가 휴거 되는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쓰였습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한 것은 지금 문맥의 진행이 사단의 공격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하느님 언약의 완성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지키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르파조’ ‘하느님께서 끌어 올리셨다’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인이 아이를 낳자마자 올라가죠? 낳자마자 부활하신 것은 아니잖아요. 여기서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는 말은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아이를 낳으면 기뻐할 것’이라고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리켜 ‘이를 낳는다.’고 표현하셨지요? ‘희가 지금 은 근심하고 있지만, 내가 부활하게 되면 너희의 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낳았다 는 것은 바로 그 분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까지를 전부 포함한 말입니다.
(사도13:32-35) 32 우리도 하느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기쁜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하러 왔습니다.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다시 살리셔서 자녀된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제이 편에도,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34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다시는 썩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서에, '내가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축복을 너희에게 주리라' 고 하신 말씀과 35 또 다른 시편에서, '주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를 썩지 않게 하시리라' 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가셨고 거기서 왕의 철장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왕의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데 왜 그 분의 백성인 우리들의 삶이 이 모양이에요?
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lotto도 더 잘 맞고 사업도 잘되고 돈도 더 잘 벌까요? 지금 예수님이 철장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다면서요? 그런데 왜 우리의 삶은 이렇게 고단하지요? 그 문제를 푸는 키가 바로 "아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아이라는 단어는 ‘테크논’ ‘아주 어린 아이’라는 뜻입니다. 왜 성경이 지금 철장으로 다스리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계속 ‘남자아이, 아이, 테크논’ 왜 어린아이라고 부를까요? 왜 그분은 지금도 ‘어린 양’이라고 부르죠? 아이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여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아버지 하느님만을 의뢰하며, 의존하며 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증명하거나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쓰지 않으시고 오직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만 순종하고 충성하며 사셨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을 ‘아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하느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라가셔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법도 ‘아이’로서의 다스림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철장, 그 다스리심은 겸손한 다스림, 순종의 다스림, 섬기는 다스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철장으로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여전히 ‘아이’ ‘테크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에 등장하는 왕을 우리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이 세상의 왕으로 그 왕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헛갈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왕, 하늘의 왕은 군림하는 왕, 경쟁하는 왕, 쟁취하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죽여서 백성 을 살리는 섬기는 왕, 사랑의 왕, 용서의 왕, 포용의 왕, 아버지께 순종하는 순종의 왕입니다.
그래서 그 철장으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 노릇하시는 여러분도 역시 섬기는 왕, 사랑의 왕, 용서의 왕, 순종의 왕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용서하고 사랑하고 참아주고 인내하고 순종하는 그런 삶은 힘의 원리를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의 세계관 속에서는 고난으로, 고통으로, 환난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그 삶이 왕 노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예수를 믿었는데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어요?’하고 절규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왕 노릇으로 부름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인내하며, 여전히 용서하면 그게 바로 왕 노릇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마태18:3) 3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테크논’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 어린아이가 어떤 어린아이라고요? 나의 성질대로, 나의 기분대로, 나의 힘을 사용해서 남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사랑하고 용서하고 참아주며 사는 어린아이. 그 예수라는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절대 천국 못 들어간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자꾸 나의 힘을 버리고 어린아이가 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왕 노릇입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서 그렇게 살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이게 어린아이요 우리의 왕 노릇입니다. ‘나를 자꾸 비우고 내 안에 계신 예수가 드러나게 하는 것’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힘을 동원해서, 우리의 꿈과 비전을 바탕으로 건설하려는 하느님 나라는 어쩌면 하느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없는 우리가 만든 가짜 천국일지 모릅니다. 그냥 나의 꿈과 비전과 야망을 쫓아가면서 겉으로는 그게 마치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인 것처럼 우리는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있고 나의 원하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는 곳이 천국입니까? 천국은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행복해 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내가 나의 어깨에 있는 힘을 빼고 다른 이들의 기쁨을 위해 수고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지상 생애를 통해서 바로 그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고 가신 것입니다. 그 예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비전을 따라 이 땅에 지상 낙원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를 자꾸 비우고 어린아이처럼 낮은 자리로 가서 섬길 때 하느님 나라는 완성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참 힘든 삶이죠. 폼 좀 재면서 가게 놔두시면 얼마나 신나요? 그런데 그렇게 가게 놔두시지 않습니다. 천국의 삶의 원리는 나를 죽여서 남을 살리는 삶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 땅에서의 하느님 나라의 확장도 그 원리를 통해서만 이루어 가십니다.
천국에서는 모두가 나를 통해 다른 이가 행복해지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그 연습을 하다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우리 교회가, 그 아이를 낳은 여인이, 1260일 동안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그 여자를 먹여 살리시려고 마련해 두신 곳이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양육과정“입니다.
여기서 양육 받고 우리는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여기는 단지 훈련소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그렇게 훈련병으로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다 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중에 훈련이 너무 고돼서 절로 눈물이 나시는 분들 계시지요? 압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압니다. 그러니까 훈련이 그만큼 고되다는 것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기뻐하세요. 우리는 그 훈련을 통해서 자꾸 우리의 힘을 빼내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 이외에 눈 두고 있었던 것들에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탐욕과 정욕에서 비롯된 모든 세상 적인 꿈과 비전들도 다 접으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을 먼저 성실하게 수행해 나가십시오.
제 설교가 너무 이상적(理想的)입니까? 너무 원론적(原論的)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이게 성경의 요구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하느님의 요구를 너무 외면했고 너무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이상적으로 원론적으로 들리는 것뿐입니다. 이게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못 하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요구를 열심히 수행하려 노력해 본 사람만이 자기가 불가능한 존재라 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자기의 무장을 해제하고 나면 그 때 내 안에 계신 예수가 나를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진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십시오. ‘용서해 보십시오, 사랑해 주십시오, 인내 하십시오, 열심히 섬기십시오.’ 안 되십니까? 그럼 처절하게 자신의 실존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뒤로 숨으세요.
프랑스에 가면 앙벨리드 성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나폴레옹의 대리석 관이 안치되어 있는 곳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나폴레옹의 관을 보기 위해 그 앙벨리드 성당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관 안에는 나폴레옹의 시신이 없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배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뒤 무려 20년이나 뒤에 복권이 되어서 다시 땅 속에서 나와 화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줌의 재가 되어 앙벨리드 성당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나폴레옹의 관 이 놓여있는 앙벨리드 성당의 ‘앙벨리드’가 ‘무효’입니다. 평생을 자기의 꿈을 쫒아 수십만 명의 젊은이의 목숨을 희생시켜가며 세계정복을 꿈꾸던 나폴레옹의 삶은 하느님 앞에서는 ‘무효인 삶’ ‘무가치한 삶’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힘과 지식과 명예를 원 없이 소유했던 사람들의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런 허탈하고 허망한 삶을 위해서 계속 달리시렵니까? 아니면 어린아이같이 약해 보이는 모습일지라도 다른 이들이 나 때문에 행복하고, 나 때문에 기뻐하고, 나 때문에 위로 받는 그런 진짜 왕 노릇을 하시겠습니까?
사도행정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쳐 준 사건이 나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하죠?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가시오' 그 때 그 앉은뱅이가 ’아니, 그거 말고 그냥 금이나 은으로 줘’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소중한 구원을 놓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금이나 은을 주지는 못했지만 어린아이이신 예수의 마음으로 예수의 사랑으로 그 사람을 대해 주었더니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나은 자가 베드로와 요한을 ‘곁에 있다. 붙잡다’라고 나오지요? 거기서 ‘붙잡다’ ‘크라티오’라는 말은 등 뒤에서 꼭 껴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정말 너무 좋아서 너무 감사해서 등 뒤에서 꼭 껴안아 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힘을 축적하고 실력을 쌓아서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유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들에게 다른 것으로 주려고 하지 말고 예수를 주십시오. 예수의 인격과 예수의 삶을 그들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들이 지금 당장은 여러분을 약하고 우습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언젠가 여러분의 등 뒤에서 여러분을 꼭 껴안아 줄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너무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여러분을 등 뒤에서 꼭 껴안아 줄 것입니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처럼 조용히 겸손하게 그러나 열심히 살다가 우리 예수님 만나러 가자고요. 가서 예수님께서 ‘그래 땅에서의 삶이 어땠니?’라고 물어보시면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섬기며 사랑하며 안아주며 살다보니까 참 행복하던데요, 그래서 저의 삶은 참 아름다웠어요’라고 말씀드려야지요. 천상병님의 시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참 아름다웠다고 말씀 드려야지요.’
여러분, 왜 세상 사람들이 우리 信者라는 사람들의 말을 신용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복된 소식을 전해주는데, 행복해 지는 비결을 일러주는데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합니까? 왜 간디처럼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은 미워한다, 그들은 전혀 예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소리를 합니까?
우리는 우리가 지킬 의향도 없고, 믿지도 않는 이야기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요? 너는 그렇게 살 수 있냐고요? 우리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와야 하겠습니까?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인격과 성품에 반해서 정말 가슴에서 우러나와 여러분을 뒤에서 꼭 껴안아 줄 사람들 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게 어린아이의 삶이며 진짜 왕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