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묵시17,17-18)

2021. 4. 26. 오전 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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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성서


(73)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묵시17,17-18)


(묵시17,17-18)

17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당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망을 심어 주셨고 뜻을 모아 그들의 왕권을 그 짐승에게 넘겨 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18 네가 본 그 여자는 세상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도시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17장의 음녀, 바빌론의 심판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음녀 바벨론은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왕의 옷인 붉은 옷을 입고 그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세상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어서 결국 죽음으로 끌고 들어가려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17장을 공부하면서 우리 신자들은 그 음녀와 짐승의 공격을 잘 분별해서 술 취함으로 대표되는 방탕한 삶을 피하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경주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확인해 가고 있습니다. 그 음녀의 세력은 교묘하게 세상 전체를 힘의 논리로 취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 속에서 성도들이 어린양의 연약한 모습으로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신자의 삶을 어린양의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은 하느님의 허락 하에,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 목적이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의 성숙, 양육에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가 치르는 영적 전쟁의 내용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하느님의 주권 속에서 하느님의 백성들만을 위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도 우주도 심지어 대적들까지도 하느님의 백성들의 거룩을 만들어 내는 훈련소요 훈련 교관으로 쓰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그 모든 것들 이 전부 하느님의 주권 아래 일어나고 있는 것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묵시17:17) 17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당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망을 심어 주셨고 뜻을 모아 그들의 왕권을 그 짐승에게 넘겨 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대적들의 공격을 포함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실 때까지 하느님의 뜻을 행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이 뭡니까? ‘거룩이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슬픈 일, 기쁜 일, 행복한 일, 고단한 일이 모든 일들이 전부 하느님의 뜻인 거룩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우리에게 바로 그 본보기로 주어진 것입니다.

요셉의 삶을 한번 떠 올려 보세요.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가장 사랑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채 색 옷을 입혔다고 나옵니다. 그 형제들이 들에서 양을 치고 농사를 지을 때 요셉은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그 형제들의 잘 못을 고자질이나 하던 아주 철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꿈을 꿉니다. 요셉이 들에서 그 형제들과 함께 곡식 단을 묶는데 형제들 의 곡식 단이 자기의 곡식 단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지요. 그리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는 그 걸 형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얄미웠겠습니까? 하느님은 그 요셉에게 손을 대시기 시작하십니다. 형들 이 그 요셉을 죽이려고 모의를 하다가 팔아 버리지요. 그 형들은 어땠는지 한 번 보세요.

 

(창세37:20) 20 저 녀석을 죽여 아무 구덩이에나 처넣고는 들짐승이 잡아 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보자.'

 

정말 철없는 동생에 악독한 형들이지요? 하느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는지가 창세기 후반부를 전부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요셉의 이야기를 성도가 비전을 갖고 꿈을 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에 초점을 두고 보시면 절대 안 됩니다.

이 요셉의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어떻게 거룩하게 만들어 가실 것인가를 교회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열 두 족장들의 삶을 통해 미리 preview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삼아 형들과 부모를 기아에서 건진 것은 하느님께서 그의 삶 속에서 거룩을 만들어 가시는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것이지 그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느님은 우리 자신을 목적으로 두고 계시지 우리에게 어떤 일을 시키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선교나 전도나 심지어 순교까지도 우리의 거룩이 빚어져 가는 과정에서 도구로 혹은 열매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교회가 이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이용해서 나의 소원을 이루어 내는 만사형통의 무당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경에 분명 형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형통은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형통이라 하지 않습니다. 나의 거룩을 완성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나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것을 형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39:1-3,20-23) 1 요셉은 에집트로 끌려 내려 갔다. 그를 끌고 내려 온 이스마엘 사람에게서 파라오의 한 신하인 경호대장 에집트 사람 보디발이 그를 샀다. 2 그러나 요셉은 야훼께서 돌보아 주셨으므로 앞길이 열려 에집트 사람 주인집의 한 식구처럼 되었다. 3 주인은 야훼께서 그를 돌보아 주시는 것을 알았다. 그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야훼께서 잘 되게 해 주셨던 것이다. 20 그래서 요셉의 주인은 그를 잡아 감옥에 넣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어 두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 있을 때에도 21 야훼께서는 요셉을 돌보시었다. 그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쏟으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해 주셨다. 22 그리하여 간수장은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요셉의 손에 맡겨 무슨 일이고 마음대로 하게 하였다. 23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겨 놓고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았다. 야훼께서 그를 돌보시어 그가 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잘 되게 해 주셨던 것이다.

여기 분명히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런데 그 성경에는 만사형통이라는 말 앞에 항상 야훼가 그와 함께 하신다는 말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만사형통의 상황을 한번 보세요. 요셉이 자기 친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서 남의 노예가 되었을 때, 야훼가 그와 함께 하셨다고 나오고 그 일을 형통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모함을 당해서 억울하게 감옥에 갔을 때, 그 때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나오고 야훼께서 요셉의 만사를 형통케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만사형통의 교리로 보자면 야훼가 함께 하시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일들이 일어나질 말았어야지요.

왜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면서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 때 안 말려 주셨을 까요? 왜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면서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해서 도망간 훌륭한 요셉이 모함 을 당해서 그 처참한 감옥에 가는 것을 안 말려 주셨을까요? 하느님께서 그렇게 몰아가시고는 그 걸 만사형통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신 것입니까? 그 채색 옷을 즐겨 입고 형들을 고자질이나 하던 철없는 요셉을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로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것을 성경은 만사형통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7장과 39장의 요셉의 만사형통 사건 사이에 뜬금없이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끼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면서 형통한 길로 끌고 가시는 자의 삶과 자기의 쾌락을 위해 창녀를 찾아가는 것도 서슴지 않는 자들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절대 하느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가 가지고 있는 환락과 즐거움과 화려함은 너무나 달콤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하느님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자꾸 차단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성경은 형통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삶이 얼마나 힘이 든 길이면 성경이 요셉의 삶을 이렇게 묘사를 하겠습니까?

 

(시편105:16-19) 16 그는 또 그 땅에 기근을 불러들이시고 그들의 식량 지팡이를 부러뜨리셨다. 17 그러나 사람 하나를 먼저 보내셨으니 곧, 종으로 팔려 간 요셉이다. 18 요셉은 거기에서 발에 차꼬를 차고 목에는 쇠칼을 쓰고 고생을 하였으나 19 마침내 해몽한 것이 들어 맞아 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신분이 밝혀지자

 

18절을 보면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말이 있지요. 그 구절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보 바르젤입니다. 직역을 하면 그의 혼이 날카로운 철로 관통 당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요셉은 그의 삶 속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요셉을 그 고통스러운 삶 속으로 하느님께서 보내셨다고 나오지요. 19절을 보면 오늘 본문과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요셉에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를 단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만사형통한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비교해 보세요.

 

(묵시17:17) 17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당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망을 심어 주셨고 뜻을 모아 그들의 왕권을 그 짐승에게 넘겨 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음녀와 짐승이 서로 연합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미혹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말씀이 응하게 될 때, 그러니까 성도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신천지가 열리게 될 때까지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답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구원에 세 시제를 잘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리는 신분적 운명적인 면에서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지만, 지금 현재에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완성시켜가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완성시켜 간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답게 성숙되어져 간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때로 마귀 의 공격이, 환난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로마5:1-4)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4 인내를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가 맞다 면(과거 시제죠) 그 사람들은 하느님과 화목한 삶을 현재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시제가 다 포함된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현재에 살아야 하는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는 삶이 어떤 삶인가요? 죄를 멀리하는 삶, 다른 말로 거룩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가 3절에 바로 무엇을 제시합니까? 그렇게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의 삶 속에 무엇이 도구로 쓰여 진다는 것입니까? 바로 환난인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그 유명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을 단련은 희망을 낳는다는 구절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내라고 번역이 된 휘포모네경험이라는 뜻이 포함 된 견딤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환난은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을 경험으로 완성시켜 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론으로 알고 있는 교리가 우리 삶 속에서 경험되어지는 데에 환난 이 동원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사랑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 원수가 필요하지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거룩한 성품을 위해 환난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련이라고 번역이 된 도키메성숙혹은 증거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고난은 여러분이 겪어도 되고 안 겪어 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 된 자들은 성숙하게 양육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성도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그 환난을 통해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그 삶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상황 속 에서도 저렇게 기쁠 수 있을까?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고난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천국의 희망을 더욱 견고하게 해 준다는 것이 바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을 단련은 희망을 낳는다는 구절이 갖고 있는 메시지 인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그러한 고통의 세월을 통해 자기를 판, 형들을 흔쾌히 용서하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싶은 바이지 신앙생활 잘하고 비전을 품으면 언젠가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듯이 너희도 너희의 꿈을 이룰 수 있다.’를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루가21:16-19) 16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잡아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18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너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엄청난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환난을 잘 견뎌내면 너희는 너희의 영혼을 얻게 되는 것이다이렇게 성경은 성도가 가지고 있는 성도됨의 증거를 감격이나 기쁨이나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등으로 제시하지 않고 고난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여러분에게 유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겪으신 혹은 겪고 계신 환난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은 환난을 겪게 되면 그 때서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생각합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그 법정에서 제일 먼저 후회하는 것이 시간이 있을 때 부모님께 좀 더 효도할걸 그랬다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잘 이루어 질 때는 그 것을 즐기느라고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살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성도가 그렇게 음녀의 금잔에 취해서 사는 꼴을 절대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우리를 깨우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구로 쓰이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그렇죠? 맞습니다. 그러나 그게 구원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지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답게 만들어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만드시는 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드시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 야 할 일이 그 죄인들을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게 구원의 끝이라면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면 되지 왜 구태여 지금도 성령을 통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까?

 

(로마5:8-10)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9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잘 보면 구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구원과 그 분의 사심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셔서 무얼 하고 계시지요? 지금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 구원 사역을 계속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계속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지금 구원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건져진 것은 그 완성될 구원으로의 출발일 뿐입니다.

 

(출애12:5-11) 5 흠이 없는 일년 된 수컷이면 양이든 염소든 상관없다. 6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십 사일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여서 해질 무렵에 잡도록 하여라. 7 그리고 그 피를 받아, 그것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라고 하여라. 8 그 날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도록 하는데, 9 날로 먹거나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도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도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살라 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나 야훼에게 드리는 과월절이다.

 

하느님께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시고 이스라엘을 구출해 내시던 날 밤, 이스라엘에게 과월절 음식을 먹으라고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그 죽음에서 건져진 날을 축하하는지 보세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야훼의 과월절이니라. ‘이 말은 죽음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어디로 급히 가야 할 목적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하지요? 가나안으로 가야지요. 그런데 그 가나안은 어디를 통과해야 합니까? ’광야를 통과해서 가야합니다. 왜요? 그 광야에서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이 되어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옛 사람 60만이 모두 광야에서 죽고 새 사람 60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그 진리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로마6:1-4) 1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 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3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목적지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광야가, 고난이, 마귀의 공격이 동원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그 광야를 여러분의 두발을 이용해서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그의 서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베전4:12-13) 12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을 시험하려는 것이니 무슨 큰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3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기뻐서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이상하게 여길 일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왜 예수 믿는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하느님은 이런 일을 막아 주시지 않을까? 이상하다이런 일들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고난은 꼭 필요한 것이니까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베전1:6-7) 6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7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필립보서에 가면 성도에게 닥치는 고난이 왜 유익한지 고난의 정확한 정의가 나옵니다.

(필립3:10)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나의 옛 사람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음녀와 짐승까지도 이용하셔서 우리의 거룩을 지어 가는 것입니다.

 

(예레20:7-18) 7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8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 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9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 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10 사람들이 모여서 수군거립니다. '저자야말로 사면초가다. 고발하자, 고발하자.' 저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모두 제가 망하기를 바라 모의합니다. '걸어 넘어뜨리고 잡아 족치자. 앙갚음을 하자' 11 그러나 제 곁에는 힘센 장사처럼 야훼께서 계시기에 저를 박해하다가는 당하지 못하고 나가 떨어질 것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부끄러움으로 머리도 들지 못하고 길이길이 잊지 못할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12 만군의 야훼여, 사람의 뱃속을 아시고 심장을 꿰뚫어 보시는 공정한 감시자여, 저들을 고소하는 이유를 밝히 말씀드렸사오니, 이제 이 백성에게 제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이 눈으로 그것을 보아야겠습니다.' 13 야훼께 노래를 불러 드려라. 야훼를 찬양하여라. 야훼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악당들의 손에서 빼내 주시는 분이시다. 14 저주받을 날, 내가 세상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복과는 거리가 먼 날. 15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한 그자도 천벌을 받아라. 16 야훼께 사정없이 뒤엎인 성읍들처럼 되어라. 아침에 경보를 듣고 대낮에 적이 쳐들어 오는 소리를 들어라. 17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나를 죽이셨던들 어머니 몸이 나의 무덤이 되어 언제까지나 탯속에 있었을 것을! 18 어찌하여 모태에서 나와 고생길에 들어 서 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수모를 받으며 생애를 끝마처야 하는가!

 

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사람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놔두실까요? 왜 하느님은 사도 바울로 같은 위대한 하느님의 종들을 세상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패고 모함하고 감옥에 가두게 놔두실까요? 하느님은 사도 바울로와 예레미야를 통해 하실 일 보다 그들 자신에게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마귀의 공격까지도 선용하셔서 그 분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분의 유일한 뜻인 여러분의 자녀 됨을 완성해 가시는 분입니다. 그 일을 위해 독생자까지 죽이신 분입니다. 그렇게 고집스러운 열심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하느님이 실패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일찍 항복하고 그 거룩의 삶을 열심히 경주해 보자고요. 저 멸망해 버릴 세상이 추구하는 것 쫓다가 함께 멸망하지 마시고 하느님이 하라는 것을 하십시오.

바빙크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이번 토요일에 성령을 하늘로 소환하시면 그 다음날 주일에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아마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다. 그 것은 오늘날의 교회는 하느님이 하라는 것을 중단하고 하느님과 아무 상관없이 자기들 소원이나 빌고 자기들끼리 축제를 벌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안됩니다. 그렇게 멸망할 자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 다니엘서가 전체가 히브리어로 쓰여 있지 않고 2:4-7:28까지는 아람어로 쓰여 있는지 아세요? 다니엘서의 2:4-7:28까지에는 열방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그들의 망하고 흥함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에 관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영어처럼 당시 세계의 통용어였던 아람어로 기록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아 너 희들에게 종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라고 하느님께서 나팔을 부시는 장면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통용어로 그 부분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을 자기의 소원이나 빌고 문제나 해결하는 것으로 오도하는 자들은 모두다 그 멸망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예수 바르게 믿고 천국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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