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땅에서 올라온 짐승
(묵시13:9-15)
9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으십시오. 10 '잡혀 갈 사람은 잡혀 갈 것이며 칼을 맞아 죽을 사람은 칼을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11 이번에는 또 다른 짐승 하나가 땅에서 올라 오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어린 양처럼 두 뿔이 있었으며 용처럼 말을 했습니다. 12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이 가진 모든 권세를 그 첫째 짐승을 대신하여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땅과 땅 위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치명상에서 회복된 그 첫째 짐승에게 절하게 하였습니다. 13 또 그 짐승은 여러 가지 큰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 앞에서 하늘로부터 땅에 불을 내리게도 하였습니다. 14 그리고 그 첫째 짐승을 대신해서 행하도록 허락받은 기적을 가지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또 땅 위에 사는 사람들더러 칼을 맞고도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15 그리고 둘째 짐승이 권한을 받아서 첫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그 우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도 하고 또 그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죽이게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관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로마나 바벨론, 바사, 헬라처럼 하느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정치적, 물리적인 힘으로 대적하는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마귀의 세력들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그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유형적인 조직이나 세력, 인물로 나타 날 뿐 아니라 무형적인 것들, 정신과 철학과 이념과 유행과 시대정신으로 오기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그 세력의 정치적이며 물리적인 힘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세력은 ‘핍박과 미혹’이라는 무기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아닌, 매력적인 이 세상의 힘을 추구하게 하고 결국은 허망한 신기루를 좇다가 죽어가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세력인 것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그 세력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어린양의 피, 그리고 우리가 전하는 말 예수 그리스도였지 요? 우리는 이 땅의 힘을 가지고 우리를 누르며 우리에게 ‘너희도 억울하면 이런 힘을 키워’라고 미혹하며 핍박하는 그 짐승의 세력 에게 사랑과 용서와 인내와 섬김과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지는 것 같고 핍박당하는 것 같고 죽임을 당하는 모습 같지만 그게 바로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의 승리의 비결이었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비결임을 성경은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우리에게 강조하 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핍박과 미혹에 당하지 않고 이 땅의 힘과 보물을 추구하는 대신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하늘의 보물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요한묵시록 21장,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보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 에서 그 보물을 닦고 닦아서 순전한 빛을 발해야 한다는 것까지 지난번에 공부했습니다. 그게 8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9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어라’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가 앞서 공부한 일곱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구절입니다. 귀가 없는 사람도 있나요? 그 말씀은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이 요한묵시록의 말씀들은 하느님께서 귀를 열어주시지 않으면 절 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만 들려집니다.
그러면서 10절에서 요한은 다시 한 번 지금까지 공부한 ‘성도들의 고난과 핍박의 사실성과 확실성’에 관해 도장을 찍습니다. 10절을 함께 보지요.
(묵시13:10) 10 '잡혀 갈 사람은 잡혀 갈 것이며 칼을 맞아 죽을 사람은 칼을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성도들의 고난과 핍박의 사실성과 확실성’에 관한 이야기인가? 이 말씀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레15:2-3) 2 '어디로 가야 하느냐?' 고 묻거든 '야훼의 말씀이다' 하고 이렇게 일러 주어라. '어디로 가든지 염병으로 죽을 자는 염병에 걸리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고 굶어 죽을 자는 굶고 사로잡혀 갈 자는 사로잡히리라. 3 나는 네 가지 재앙을 내려서 이 백성을 벌하겠다. 내 말이니 잘 들어라. 나는 이 백성을 칼에 맞아 죽게 하고 개들을 시켜 끌어가게 하고 공중의 새들을 시켜 쪼아 먹게 하고 야수들을 시켜 먹어 없애게 하겠다.
이 예레미야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패역함 앞에서, 반드시 그들을 벌하시겠다는 하느님의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신 구절입니다.
(예레43:11) 11 느부갓네살이 와서 에집트를 치면, 염병으로 죽을 자는 염병에 걸리고 사로잡혀 갈 자는 사로잡히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을 것이다.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이집트가 바벨론에게 정복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언하신 것이니까 반드시 이루어지겠죠? 그리고 이루어졌고요. 요한은 이러한 구절들을 인용해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환난과 핍박의 필연성과 사실성과 확실성” 그리고 그 환난의 무게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러한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짐승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환난과 핍박의 최종 결정권자는 하느님도 막을 수 없는 사탄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허락 하에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10절은 지금 성도들에게 ‘너희는 분명히 이 세상에서 사로잡히게 되고 칼에 죽게 될 것이다’ ‘그만큼 고난을 당하게 된다.’라고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핍박이 올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10절 후반부가 어떻게 끝나죠?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무슨 말입니까? ‘참아라, 믿음으로 이겨라’가 해답입니다. ‘너희가 사로잡히게 되고 칼에 맞아 죽게 될 때 내가 막아 줄께’가 아닙니다. ‘참아라, 믿음으로 이겨내라’입니다.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날까? 그럼요. 실제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사로잡히기도 하고, 칼을 맞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히브11:36- 38)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으로 얻어맞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37 또 돌에 맞아 죽고 톱질을 당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돌아 다녔으며 가난과 고난과 학대를 겪기도 했습니다. 38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로 헤매며 다녔습니다.
지금은 문명이 발달하고 지성이 발달해서 그 핍박의 양상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 뿐이지 지금도 똑같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사로잡고 칼로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왜 그들의 공격을 안 말려 주실까요? 왜 안 말려 주시고 지켜보시면서 ‘인내해라, 믿음을 가져라 ’그러십니까? 우리가 기대하는 하느님은 ‘내가 너희들이 병 걸리면 무조건 다 낫게 해줄게, 너희 사업이 어렵니? 내가 일으켜 줄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은 어디서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잘 못 배운 것입니다. 하느님은 견디라고 하십니다. 참으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스테파노가 돌에 맞아 죽을 때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우편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 보셨습니다. 분명 스테파노가 돌에 맞기 전에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느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안 말려 주시고 돌에 맞아 죽게 놔두십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나무 톱에 켜 죽을 때 주님이 안 말려 주시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서 문둥병이 걸려 죽어갈 때 왜 하느님께서 그 문둥병을 고쳐 주지 않으시고 그냥 죽게 놔두셨습니까? 왜 사자 굴에서 죽어 가는 수많은 초대 교회 성도들을 다니엘처럼 구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왜 착한 여러분의 병을 안 고쳐 주시고 그냥 놔두십니까? 우리에게 진짜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진짜 좋은 게 뭡니까?
여러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형식상 모세가 앞장을 섰지만 모세는 하느님의 현현인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그저 좇아갔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앞장서서 끌고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도착한 곳이 어디입니까? 홍해입니다.
그 홍해는 폭이 32km나 되는 큰 바다입니다. 32km면 50마일이 훨씬 넘습니다. 앞은 그렇게 넓은 망망대해입니다. 그리고 그 들은 믹돌 사이에 진을 쳤다고 했습니다. ‘믹돌’이라는 것은 깎아지른 절벽을 말하는 것입니다. 병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절 대 그런 곳에 진을 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몰살을 당하게 되는 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기껏 이스라엘을 이끌어다가 그런 진퇴양난의 곳에다가 쳐 박으십니다. ‘하느님이 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지요?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가나안에 넣으시기까지 그 광야에서 도대체 우리를 이끌어낸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며, 왜 우리는 그 하느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광야를 통해 가르치고 싶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얼바인까지 걸어서 가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걸릴 것 같으세요? 족히 한나절은 넘을 겁니다. 지금 그만큼 넓은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길이 생긴 것입니다. 시편 78편에 보면 양쪽으로 물이 섰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천연 aquarium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먼 거리가 다 질퍽한 개펄처럼 되어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린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3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 길을 갈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개펄에서 한번 걸어보셨어요? 푹푹 빠져서 힘있는 장정들도 100미터 200미터 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 보면 그 바다 밑이 마른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바다 밑을 50마일씩 걸어서 건너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바다를 마른땅을 밟으며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느님은 바다도 꼼짝 못하게 주관하시는 분이구나’고 하느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다를 건너서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입니다. 왜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계속 이렇게 어렵습니까? 이스라엘이 배가 고팠습니다. 그 때 하느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비처럼 뿌려 주셨습니다. 그 하늘에서 쏟아지는 식량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생각했습니다. ‘아, 하느님은 하늘도 주관하시는 분이구나’
또 구름기둥을 좇아갑니다. 가다보니 이번에는 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또 원망합니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명하십니다. 시편78편에 보면 반석에서 물이 강같이 흘러 나왔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300만 명이면 웬만한 직할시정도의 규모입니다. 그 300만 명의 식수와 용수를 대기 위해서는 작은 시내도 부족합니다. 강이 흘러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 목마름 속에서 땅에 강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때 이 땅도 하느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 인생을 통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 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바로 그 크신 하느님 앞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느님을 떠난 자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닫고 하느님께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이요, 가장 큰 선물인 것입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에게는 홍해가 열리고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강같이 흘러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쪼개지심으로 죽어야 할 자들이 그 예수 안에서 죽고 다시 새롭게 살아나게 되는 구속의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애굽 쪽에서 보면 옛 사람들이 다 바다에 빠져서 죽는 것이고 가나안 쪽에서 보면 새로운 사람들이 살아서 올라오는 사건이 바로 홍해 사건입니다.
만나는 무엇입니까? ‘내가 바로 하늘의 빵’이라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반석의 물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7장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하실 때 ‘내가 그 반석 위에 먼저 서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그 반석을 칠 때 먼저 맞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느님이십니다. 그 반석의 물은 하느님께서 수난을 당하심으로 그 백성이 목마름에서 해갈이 되는 구속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0장 1절에서 ’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 라고 사도 바오로가 이야기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믹돌 사이 홍해 앞에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해 계십니까? 그런데 홍해가 갈라지지 않지요? 여러분 배고프세요?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좀 체로 면해지지 않으시지요? 목마르십니까? 여러분의 반석에서는 물이 솟아오르지 않지요?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닙니다. 여러분의 홍해는 이미 갈라져 있습니다. 하늘의 만나는 이미 여러분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반석에서는 벌써 물이 강같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보세요. 우리는 영원히 그러한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고난을 받게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 땅을 떠나는 그 순간 그 모든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 예수님 때문에 그 믹돌 사이에서, 신 광야에서, 목마름 속에서 건져 올려진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 환난과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우리를 그 지옥에서 건져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선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고난 과 핍박을 통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너희는 사로잡히게 되고 너희는 칼에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칼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는 칼입니다. 그 사로잡힘은 우리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로잡힘인 것입니다.
(로마8:35) 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분명 우리는 칼을 맞습니다. 환난과 역경과 핍박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내지 못한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그리스도의 사랑 아래서 이유 있는 환난을 당하고 이유 있는 핍박을 당하고 이유 있는 기근을 당하고 이유 있는 칼을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환난과 핍박은 분명 우리에게 유익인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주시는 것이니까요.
(시편139:17-18) 17 하느님, 당신의 생각은 너무 깊어 미칠 길 없고,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길 없습니다. 18 세어 보면 모래보다 많고 다 세었다 생각하면 또 있사옵니다.
이 말씀을 좀더 원어에 가깝게 번역을 하면 ‘하느님, 하느님의 생각은 어찌 그리 깊고 심오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도저히 이해를 하거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심오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힘이 들어,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그 때도 주님은 주무시지 않고 저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하느님은 나를 버리셨나보다‘고 울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하느님은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여러분, 자식을 키워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아니, 자식이 없더라도 여러분의 부모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땅의 육신의 부모들도 자식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이십니까?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리실 수 있는 그 아버지가 누구이십니까? 하느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피를 뒤집어 쓴 자들이었는데 우리의 피를 완전히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혈연적, 법적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요한1:12) 12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여기서 자녀‘테크논’은 혈연적 자녀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갈라3:26) 26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들 ‘휘오스’는 법적인 자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혈연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완벽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질병을 허락하시고, 가난을 허락하시고, 억울한 사기를 당하게 놔두시고, 가정이 깨지는 것을 안 말려 주시고 우리가 세상의 칼을 맞을 때 그냥 두고 보실 때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에게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잘 견뎌내고 잘 참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1절을 보겠습니다.
(묵시13:11) 11 이번에는 또 다른 짐승 하나가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어린 양처럼 두 뿔이 있었으며 용처럼 말을 했습니다.
11절부터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새끼 양 같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parody했었죠? 역시 이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도 어린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짐승은 용처럼 말을 합니다. 그리고 12절을 보시면 그가 무엇을 숭배하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묵시13:12) 12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이 가진 모든 권세를 그 첫째 짐승을 대신하여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땅과 땅 위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치명상에서 회복된 그 첫째 짐승에게 절하게 하였습니다.
그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처음 짐승, 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을 경배하게 하는 자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하느님이 아닌 이 땅의 힘과 보물을 추구하게 만드는 그 세력을 추종하게 만드는 이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정체는 묵시록19장과 20장에 가면 정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묵시19:20) 20 그런데 그 짐승은 잡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잡이로서 기적을 행하여 짐승의 낙인이 찍힌 자들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을 하는 자들을 현혹시킨 그 거짓 예언자도 함께 잡혔습니다.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묵시19:10) 10 그 때 나는 그에게 경배를 드리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이러지 말라. 나도 너나 너의 형제들과 같이 일하는 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 같이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자들이다. 예배는 하느님께 드려라.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야말로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을 경배하게 하는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의 정체가 뭡니까? 바로 거짓 예언자입니다. 거짓 예언자는 가짜 목사들을 포함해서 잘 못된 가르침으로 세상을 미혹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그림을 그려보시면 되겠습니다.
어둠의 세력의 맨 꼭대기에는 용, 옛뱀, 사탄 마귀가 있습니다. 그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권세와 힘을 주어 세상을 핍박하고 미혹하게 합니다. 그 마귀의 세력을 추종하고 경배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인데 그들이 거짓 예언자들, 즉 다른 종교, 철학,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는 자들, 가짜 신학자들, 가짜 목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종교나 다른 이단 종파 그리고 이 세상의 철학 같은 것은 접어두자고요. 어차피 그런 것들은 틀렸다는 것을 아니까요?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 온 거짓 예언자들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요한묵시록을 공부하면서 확인한 것이 있지요? 하느님을 대적하는 사탄은 항상 하느님이 아닌 다른 좋은 것들을 보여주며 그 것들 속에서 평안과 행복을 찾으라고 미혹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순교의 정신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만을 섬기고 순종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이용해서 이 땅의 힘과 보물을 얻게 해주고 예수를 이용해서 이 땅에서 면류관을 얻게 해 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전부 땅에서 올라 온 짐승들인 것입니다.
(요일4:3-4) 3 예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적대자로부터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자가 오리라는 말을 여러분이 전에 들은 일이 있는데 그자는 벌써 이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사랑하는 자녀인 여러분은 하느님께로부터 왔고 거짓 예언자들을 이겨 냈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은 세상에 와 있는 그 적대자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라 합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다.’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가 정말 하느님이시라면, 그리고 그가 정말 메시아라면 그는 이 땅에 그렇게 초라하게 와서는 안 된다’ 이게 예수를 부인 하는 것입니다. 결국 뭡니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는 힘 있는 자로 왔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자들이 바로 적그리스도들 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벌써 요한의 시대에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2천년 역사동안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올 것이고 아주 강한 놈이 결론을 낼 것입니다. 그 모든 자들과 그들의 사상과 철학과 가르침이 모두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적그리스도가 올까? 그가 누구일까? 이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마세요. 궁금해 하지도 마세요.
그게 왜 알고 싶으세요? 그 적그리스도가 언제 올 것인지 왜 그렇게 궁금하세요? 그 적그리스도가 오면 세상이 끝난다고 하니까, 그 때 바짝 신앙생활 열심히 하려고 그러시는 거죠? 평소에 열심히 하세요.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수업시간에 시험 언제 보냐고 제일 먼저 물어 보죠. 공부 잘하는 애들은 그냥 그 시간에 공부해요. 그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미혹하는지 볼까요?
(묵시13:13-15) 13 또 그 짐승은 여러 가지 큰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 앞에서 하늘로부터 땅에 불을 내리게도 하였습니다. 14 그리고 그 첫째 짐승을 대신해서 행하도록 허락받은 기적을 가지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또 땅 위에 사는 사람들더러 칼을 맞고도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15 그리고 둘째 짐승이 권한을 받아서 첫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그 우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도 하고 또 그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죽이게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큰 이적을 갖고 옵니다. 심지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세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만들게 시키고 그 우상에게 생기를 줍니다. 여기서 생기‘프뉴마는’ 성령, 영혼, 호흡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 흉내를 내는 것입니까? 성령 하느님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이 얼마나 오해되고 있고 곡해되어지고 있습니까? 성령, 그러면 기적이나 치유, 거품 물고 쓰러지는 것, 이런 것만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성령 집회랍시고 사람들 모아 놓고 쓰러뜨리고 거품 물게 하고 통곡하게 만들고 합니까?
정말 성령이 그런 것이나 하는 분이십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역의 진의를 깨닫게 해 주시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 할수 있도록 우리의 가는 길을 조명해 주러 오신 분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해 주시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죄가 뭔지, 의가 뭔지, 심판이 뭔지 설명은 안 해주고 그저 기적 같은 신앙생활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올라 온 짐승들입니다.
여러분에게 한번 여쭤 보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진지하게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한번 읽어보신 분들 마음속으로 손을 좀 들어보세요. 지금 손을 못 드신 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당에 와서 무엇을 믿고 계신 것입니까? 우리가 믿는 대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 이 성경을 한번도 안 읽어보고 지금 내가 무언가를 믿고 있다고 자신 있게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들도 이 앞에 서있는 설교자가 어떤 기적을 일으켜 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까? 예수는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적은 정말 조심하셔 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후2:9-10) 9 그 악한 자는 나타나서 사탄의 힘을빌어 온갖 종류의 거짓된 기적과 표징과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10 그리고 온갖 악랄한 속임수를 다 써서 사람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기적을 좇아다니는 사람들은 멸망하는 자들,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이라고 성경이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르13:22-23) 22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어떻게 해서라도 뽑힌 사람들을 속이려고 여러 가지 기적과 이상한 일들을 할 것이다. 23 이 모든 일에 대하여 내가 이렇게 미리 말해 둔다. 그러니 조심하여라.'
‘너희는 기적이 있는 곳에는 가지 말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사탄도 거짓 예언자들을 통해서 병도 고치고 기적도 일으킬 수 있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것이 하느님이 하신 일이고 어떤 것이 사탄이 하는 일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까? 이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하느님께서 지금도 기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 가고 계시다면 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기적이 있는 곳에는 가지 말라’하시고 ‘이런 건 내가 하는 기적이고 저런 건 사탄이 일으키는 기적이다’고 구별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기적이 있는 곳에는 가지 말라‘라고 말씀하시고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신 것은 이제 하느님은 기적으로 일을 안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믿음‘이라는 것이 선물로 주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라는 선물이 주어지게 되면 보이지 않는 것이, 도저히 이성으로 이해 될 수 없는 것들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기적이 없어도 전혀 요동 없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소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는 것들은 전부 성경에 기록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에게 기적이 필요합니까? 기적이 필요하다는 것은 난 아직 믿음이 없어서,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기적은 절대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부자와 나자로 이야기를 아시지요? 부자와 나자로가 죽어서 나자로는 천국에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가 너무 괴로워서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합니다.
(루가16:27-31) 27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 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3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모세와 예언자, 즉 성경 말씀을 통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는 자들은 아무리 기적이 일어나도, 죽은 조상이 무덤을 열고 살아 나와도 절대 믿지 못 한다’ 이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기적론’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기적을 일으킨 사람과 그 기적 자체를 숭배하지 절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로 가지 않습니다. 선교사가 안수해서 여러분의 사업을 기적처럼 회생시켜주면 여러분은 안수 기도를 해 준 선교사를 숭배하지 절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거짓 예언자들이 이 세상 권세 잡은 자의 세력을 추종하도록, 힘과 이 땅의 보물을 추종하도록 강단에서 기적을 동원하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분별해 내셔야 합니다. 다른 것은 보지 마세요. 누가 얼마나 큰 교회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베스트셀러를 썼는지 그런 것으로 진위를 가리려 하지 마세요. 사탄은 언제나 광명한 천사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직 성경에 근거해서 성경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을 단호하게 배격하십시오. 모든 설교자가 다 하느님이 세운 종이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분명 이렇게 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을 추종하게 만드는 땅에서 올라 온 짐승, 거짓예언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세요.
(마태7:21-23)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고 말할 것이다.'
가짜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중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기적들 쫓아다니지 마시고 여러분들은 “내 병을 고쳐 주시지 않아도, 내 사업이 회복되지 않아도, 내 자식이 기적처럼 좋은 대학에 붙지 못해도” 여전히 그 하느님만으로 평안하고 그 하느님만으로 행복한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오. 절대 평안은 이 땅의 것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평안은 오직 하늘로부터만 내려오는 것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평화는 어디서부터 내려옵니까? 여러분의 금고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건강에서 나옵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으 로 평화를 가장한 ‘편안’을 추구하게 하는 거짓예언자들의 속임수에 속지 마시고 하늘의 평화를 배우십시오, 하늘의 평화를 추구하십 시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요? 그 분이 어떤 평화를 이루어 내셨지요? 도대체 어떤 평화를 이루어 내셨기에 노벨 평화상을 받으신 것입니까? 한반도의 평화는 오히려 김정일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과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 다음 해에 로빈 수상은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암살당해 죽었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평화입니까?
이 땅의 모든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은 전부 가짜입니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평화를 이루어냈습니까? 이 세상이 정말 평화스럽습니까? 평화는, 평안은 오직 하늘로부터만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 평안을 세상에 선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인들뿐인 것입니다’ ‘복 있는 자여, 그대의 이름은 평화케 하는 자이니라’ 이게 바로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평안을 얻으려고 하십니까? 오직 예수 안에만 평화가 있습니다.
짐승이 지금 여러분을 사로잡아 끌고 가고 있습니까? 짐승이 지금 칼로 여러분을 마구 후려치고 있나요? 그들은 이 땅의 것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들려고 하지만 우리는 저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하늘의 평안 속에서 빙긋이 웃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힘내십시오. 이 세상은 끝이 아닙니다. 영원의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힘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