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666 (계13:16-14:1)

2018. 9. 29. 오전 6:13:09

글자

55) 육백육십육(666)

(묵시13:16-14:1)

16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낙인을 받게 하였습니다. 17 그리고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표시하는 숫자의 낙인이 찍힌 사람 외에는 아무도 물건을 사거나 팔거나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18 바로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영리한 사람은 그 짐승을 가리키는 숫자를 풀이해 보십시오.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그 수는 육백육십육입니다. 1 그리고 나는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사천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까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를 공부했습니다. 용이라고도 하고, 옛 뱀 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는 사탄이 그 죽은 것 같았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서 세상을 핍박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세력을 추종하게 만드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엄청 난 능력과 기적과 이적을 가지고 세상과 성도들까지도 미혹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예언자, 적그리스도, 가짜 교사, 가짜 예언자로 우리 성당 안에 이미 들어와 있음도 확인했지요.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뿔 달린 마귀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는 것이 성경의 경고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666이 등장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666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계시고 또 잘못된 확신 속에서 괜한 두려움에 떨고들 계십니다. 오늘 정신 똑 바로 차리시고 잘 들으세요. 그래서 진짜 우리가 두려워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먼저 16, 17절을 보세요.

(묵시13:16-17) 16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낙인을 받게 하였습니다. 17 그리고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표시하는 숫자의 낙인이 찍힌 사람 외에는 아무도 물건을 사거나 팔거나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모든 자들에게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그런데 그 표는 짐승의 이름이며 그 이름의 수라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성경에서 이 표를 받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군인들과 노예들 그리고 신전 봉사자들에게 표를 찍었습니다. 그 표는 소유보호의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전에서 우상을 섬기던 신전 제사장들 손에 찍힌 표는 그가 그 우상에게 속해 있다는 의미였고, 노예의 손이나 이마에 찍혔던 표는 그 노예가 어떤 주인의 소유였는가를 말해주는 표였습니다. 요한은 당시 사람들이 척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의 개념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표를 받은 자들은 그 표를 준 자의 소유라는 당시 사람들의 심상을 가져다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들도 어떤 표를 받습니다.

(묵시14:1) 1 그리고 나는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사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역시 144,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아닌,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받습니다. 왜 하나님 의 백성들이 받는 표나 짐승의 표를 이름이라고 할까요? 성경에서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바로 그 존재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사도 4:12) 12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서 다른 이와 다른 이름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이름하면 그 당사자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 ‘야곱’ ‘속이는 자’ ‘모세’ ‘건져낼 자’ ‘예수’ ‘구원자이렇게 성경에서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그 당사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144,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느님의 이름을 새기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느님께서 하느님 자신을 새겨 넣으셨다는 말이 되지요?

구원받은 여러분 안에 누가 계십니까? 성령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 성령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느님의 이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짐승의 이름이 새겨졌다는 것은 무슨 뜻이 됩니까? 사탄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주인은 사탄입니다. 그들은 모두 그 사탄의 사주를 받고 거기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게 짐승의 이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 보시면 그 짐승의 이름이 모든 자에게 새겨져 있다고 나오죠?

이 땅에 오고 오는 모든 자들에게 그 짐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 모든 자에는 여러분도 들어갑니다. 원래는 구원받은 여러분도 짐승의 표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조금 얼떨떨 하시겠지만 이게 바로 로마서 5장과 고린도 전서 15장의 내용인 것입니다.

(고전15:22) 22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아담과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서 타락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죽어야 합니다. 그 모든 이들은 짐승의 표, 사탄의 이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최초의 살인자인 아담의 장남 가인에게 바로 그 표를 주십니다.

(창세4:15) 15 '그렇게 못하도록 하여 주마. 카인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일곱 갑절로 벌을 내리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야훼께서는 누가 카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를 찍어주셨다.

여기에 보면 타락한 인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카인이 하느님으로부터 표를 받습니다. 카인은 분명 저주받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무슨 표를 주신 것일까요? 저주의 표를 주신 것입니다. 이 표는 카인뿐만 아니라 아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죄인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저주의 표입니다. 그 표를 받은 모든 자들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한 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그 표를 주시고 세상이 너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세상과 카인이 한 편이라는 표가 주어졌기 때문에 카인은 세상으로부터 적대시 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의 이름,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은 바로 하느님을 대적하여 하느님께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되는 그 사단과 그 사단 의 세력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담 안에서 이 저주받은 땅에 태어나는 모든 자들은 전부 그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어떤 한 무리를 하느님께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들이 받아야 할 그 짐승의 표를 그 예수에게 새겨버렸습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는 그 짐승의 표를 받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안에 들어있던 자들을 하느님께서 이제 예수로 보아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쓰시고 그들을 보시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에는 이제 짐승의 표를 받은 죄인들은 없어지고 예수의 이름을 받은 자들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크리스티 아노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느님의 이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에페1:3-13)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6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8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9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10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11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하느님의 이름, 예수의 이름, 하느님의 표를 받은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구별된 사람들을 구별된 자들’‘성도라고 부르시며 그들을 이 땅에서 사망으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예제9:3-6) 3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광이 자리잡고 계시던 거룹에서 떠올라 성전 문턱으로 나오시어 모시옷을 입고 필묵통을 허리에 찬 그 사람을 부르시며 4 말씀하셨다. '너는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발칙한 짓을 역겨워하여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주어라.' 5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내가 듣는 데서 이렇게 이르셨다. '너희는 저 사람 뒤를 따라 도시 안을 돌아다니며 마구 쳐라. 가엾게 여기지도 말고 불쌍히 보지도 말아라. 6 노인도, 장정도, 처녀도, 어린이도, 부인도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라. 우선 나의 성소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성전 앞에 있는 장로들부터 치기 시작하였다.

전부 죽어야 하는데 그 하느님의 표를 받은 사람들만 살아나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셔서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로 딸로 삼아주십니다.

(묵시22:3) 3 이제 그 도성에는 저주받을 일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어린 양의 옥좌가 그 도성 안에 있고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4 그 얼굴을 뵈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보세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게 될 하느님의 백성들을 가리켜 그 이마에 어린양과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진 자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제 아셨죠? 그럼 그 짐승의 표, 짐승의 이름이 왜 666인가? 성경에서 찾아보자고요.

6이라는 숫자는 창세기에서 등장한 숫자입니다. 하느님이 천지를 6일 동안 창조하셨죠? 그러나 그 6일 동안의 창조는 7일 째의 안식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7일 째 하느님께서 안식을 하셨다는 것은 완성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6이라는 숫자는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 아직 부족한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시대에서는 완성과 안식의 숫자 7과 삼위 일체 하느님의 3을 이용해서 하느님을 표기할 때 777로 표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3장을 공부하면서 보았지만, 용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정확하게 무엇을 parody하고 있었습니까? 성부하느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하느님, 삼위 일체 하느님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그대로 흉내는 내되 하느님의 능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짜 세력을 가리켜 666이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의 재앙과 나팔 재앙을 공부했지요? 그 인의 재앙, 나팔 재앙에서 여섯 번째 까지는 전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전부 저주와 심판의 내용이었지요? 그렇지만 일곱 번째에서는 항상 완성된 하느님 나라의 환상으로 끝이 나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 입니다. 요한묵시록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6이라는 숫자와 7이라는 숫자가 일관성 있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666은 이렇게 요한묵시록 전체에 깔려있는 일관된 상징을 배경으로 한 숫자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몇 개의 부류로 나누어져 있습니까?

(묵시13:16) 16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낙인을 받게 하였습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6이라는 숫자에 맞춰서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을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신상의 높이가 60규빗이고 폭이 6규빗 이었습니다. 짐승의 세력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를 상징하던 그 신상이 왜 60규빗, 6규빗인지 아시겠지요? 좀 더 확실한 근거를 대 드리지요.

(왕상10:14-20.26) 14 일 년간 솔로몬이 수입한 금은 육백 육십 육 달란트나 되었다. 15 관세 수입금과 외국과의 무역에서 벌어들인 이익금과 아라비아 여러 왕과 국내의 지방장관들에게서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고 그렇게 되었다. 16 솔로몬왕은 금을 입힌 대형 방패를 이백 개 만들었는데 방패 하나에 금 육백 세겔이 들었다.17 또 금을 입힌 소형 방패를 삼백 개 만들었는데 방패 하나에 금이 삼 미나 들었다. 왕은 이 방패들을 레바논 수풀궁에 보관하였다. 18 왕은 또 상아로 대형 옥좌를 만들고 순금을 입혔다. 19 그 옥좌에는 계단이 여섯개 있었고 옥좌 뒤에는 송아지의 머리가 붙어 있었으며 옥좌 양편에는 팔걸이가 있었고 양팔걸이 옆에는 사자 두 마리가 세워져 있었다. 20 여섯 계단 양쪽에는 사자가 세워져 있었는데 한 쪽에 여섯 마리씩, 모두 열두 마리가 서 있었다. 이와 같은 옥좌는 일찌기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지 못한 것이었다. 26 솔로몬이 병거와 말을 사 모으다 보니 병거가 천 사백 대, 군마는 만이천 마리가 되었다. 그는 이 병력의 일부는 병거주둔성에 배치하고 일부는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 배치하였다.

(왕상11:3-4) 3 솔로몬은 무려 칠백 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렸고 그 외에 수청드는 여자가 삼백 명이나 되었다. 왕은 여인들에게 빠져 마음이 흐려졌으므로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4 솔로몬은 늙어 그 여인들의 꾐에 넘어가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되었다. 왕은 선왕 다윗만큼 자기 하느님 야훼께 충성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구절들은 지금 솔로몬의 타락을 지적하는 구절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왕은 은과 금을 많이 가지면 안됩니다. 그리고 말과 병거를 많이 두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두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신명17:16-17) 16 그러나 왕이라고 해도 군마를 많이 기르는 일만은 하지 못한다. 백성을 에집트로 다시 보내어 군마를 많이 얻어 오게 해도 안 된다. 너희가 그리로 되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야훼께서 너희에게 일러두시지 않았느냐? 17 왕은 또 많은 후궁을 거느리지 못한다. 그러면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릴 것이다.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아도 안 된다.

하느님께서 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나라 왕의 세상 적인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에 의존하고 의뢰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당시 왕들이 힘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은과 금, 그리고 말과 마병, 그리고 첩들을 못 갖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느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모두 다 어겼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열왕기상 10장이 바로 그 솔로몬의 타락을 묘사하는 첫 부분인 것입니다. 그 솔로몬의 타락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됩니까? 666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666은 솔로몬이 하느님의 말을 듣지 않고 은과 금과 말과 마병과 첩들로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 죄를 범한 것처럼 하느님이 아닌 이 땅의 힘과 보물을 추구하여 거기서 평안을 얻게 만드는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그 악한 세력과 기관과 방법들 전부를 가리켜 666이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세상 적인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짐승의 표를 받은 분들일지 모르는 것입니다. 섣불리 구원의 확신을 이야기하지 마세요. 마태복음에 나오는 가짜들은 전부 자기들이 진짜인줄 알고 죽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수천년 동안 오로지 인간을 속이는 것만 연구한 엄청난 힘을 소유한 사탄이 여러분의 대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인간들을 미혹해서 자기의 이름을 위해 살도록 부추기는 세력입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그 죄인들의 목적이 뭐였습니까?

(창세11:4) 4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보세요. 그 짐승의 세력은 자기의 배와 자기의 이름을 위해 하느님까지도 이용을 하게 만드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에 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힘 있는 하느님을 잘 달래서 여러분의 명예와 이름을 높이고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성당 안에서 바벨탑을 쌓고 계신 것입니다. 그 분들이 바로 성당 안에 있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777이 아닌 666의 세력이 하느님의 흉내를 비슷하게 내면서 수많은 가짜 교회들을 이 땅에 만들어내고 있고, 또 올바른 교회 안에서도 그런 거짓 가르침을 퍼뜨려서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놈들에게 속아서 그 길이 맞는 줄 알고 끝까지 올곧게 좇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전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게마트리아 계산법을 사용해서 ‘666은 네로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죠? 당시 헬라어 나 히브리어, 라틴어는 숫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알파벳을 숫자로 풀어내는 것을 게마트리아 계산법이라고 합니다. nero가 라틴어로는 neron 이 됩니다. 라틴어의 n50이고 e6이고 r500입니다. 그리고 o60이고 n이 다시 50 그래서 이것을 다 더하면 666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헬라어가 공용어였지 라틴어가 공용어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더 우스운 것은 이 게마트리아 계산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헬라어로 숫자 계산을 해서 안 맞으면 히브리어로 바꾸어서 계산합니다. 그래도 안 맞으면 라틴어로 바꾸어서 계산을 하고 그래도 안 맞으면 영어로 바꿉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원하는 숫자를 만들어 내고 맙니다. 그 사람들에게 가면 어떤 이름도 666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건 억지입니다.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분 유명했던 오멘이라는 영화에서 거기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의 이마에 진짜 666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하도 그런 영화를 많이 봐 가지고 그 666바코드다, 앞으로 나오게 될 전자 신분증이다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마에 하느님의 인을 받으신 분들이지요? 서로 한번 보세요. 누구 이마에 그 하느님의 인이 새겨져 있습니까? 분명 성경이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표가 그 이마에 새겨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여러분 이마에 그 표가 없어요? 그건 상징이란 말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이 이마와 손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이마는 지성과 이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손은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안과 밖이 모두 타락을 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짜 이마와 손목에 그 바코드가 찍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 666이 바코드나 전자 신분증이라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이 요한묵시록을 읽고 어떻게 그렇게 감격의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이 요한묵시록의 최초의 수신자는 초대교회 성도들입니다. 그 분들이 바코드가 뭔지 알았을까요? 그 분들이 무슨 전자 신분증에 대해서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들은 인도자가 이 요한묵시록을 죽 읽어주면 감동과 위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은 미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창세기 11절부터 요한묵시록 2221절까지 전부, 시공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 는 책입니다. 어떤 부분도 우리와 관계없는 부분은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무식한 소설 같은 이야기를 배워 가지고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666바코드다, 전자 신분증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한국 장로교회와 신학교들이 이단으로 규정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에 속고 계십니까? 도대체 그 666이 바코드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어디 소속입니까? 그리스도교인들 맞아요? 여러분, la에도 요한묵시록을 가지고 헌금이나 뜯어내고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종교기관과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여러분이 마켓이나 그리스도교 서점 앞에 가시면 그런 책자나 테잎을 많이 보실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이 정말 그렇게 자신 있으면 공개토론 한번 합시다. 우리 많은 사람들 모아놓고 그 앞에서 성경책 한 권만 갖고, 정말 성경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공개토론 한번 합시다. 무슨 역사책 같은 것 가져오지 말고 성경책만 갖고 오세요. 뒤에서 수군대지 말고 공개적으로 한번 밝혀보자고요.

666이 바코드나 전자 신분증을 말하는 것이라면 왜 18절에서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이 있는 자만이 그 수가 무엇인 지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666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신 하느님의 백성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도 그 바코드만 안 받으면 괜찮은 건가요? 아니면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도 그 바코드를 받게 되면 구원이 취소됩니까? 이건 그리스도교의 가장 기본 적인 교리인 성도의 견인 교리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아닙니까? 666, 짐승의 표라는 것은 그렇게 여러분들 눈에 보이는 어떤 형태나 모양으로 설명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13장의 666과 대조하여 나오는 141절의 144천이 구약의 하느님의 교회 열두 지파와 신약의 교회 열두 사도, 그리고 거기에 허다한 무리를 상징하는 1,000을 곱해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처럼 666도 하느님을 대적하며 하느님을 흉내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악한 세력을 총칭하여 상징하는 숫자인 것입니다.

다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마귀의 세력은 하느님의 삼위일체를 비슷하게 parody하고 있습니다. , 옛 뱀, 마귀, 사탄 에게 그 권세와 힘을 받아 세상을 핍박하고 미혹하는 존재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고 그 힘의 원리를 추구하게 하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세력을 추종하게 하고 따라가게 만드는, 거짓 예언자들과 그들의 가르침과 철학이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며 그들에게 미혹 당하여 하느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느님 말고 이 땅의 힘과 보물 같은 것으로 자신의 행복과 만족의 근거를 삼으려하는 모든 자들을 666,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그 666사람의 수다라고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만사형통이다. 모든 병이 다 낫는다. 삼박자 축복. 자기들의 배와 자기들의 이름을 위한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는 자들 전부 다 666의표를 받은 자들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오히려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하느님의 표를 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손해를 보며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17절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이 땅에서 매매를 하지 못 하더라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상인들의 조합인 길드 조직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길드 조직에 가입을 하면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적으로 매매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똑같이 세상에서 그런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세금 꼬박 꼬박 내고 원리 원칙대로 장사 해보세요. 무슨 이익이 남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매를 못하게 된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오히려 이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환난과 핍박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얻어내는 무당종교가 아닙니다.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명작 중의 하나입니다. 실존 인물인 미국의 의사 헌터 아담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 헌 터 아담스는 불행한 가정환경을 비관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합니다. 거기서 헌터 아담스는 진정한 의사는 단순한 의료행위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터득합니다. 병은 나아도 또 걸리고 결국 사람은 모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단순히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질을 높이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 가는 췌장암 환자에게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과 친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애를 씁니다. 의료행위로 그들의 병을 치료함과 동시에 이 패치 아담스는 그 병 속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인간 치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패치 아담스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죽어갑니다. 그게 바로 목자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병이 낫고 여러분이 잘 살게 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병은 나았는데 여전히 죽음 뒤의 세상이 두렵고, 부자는 되었는데 여전히 참 행복을 알지 못하는 그런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이 목자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병은 여전한데, 여전히 가난한데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 가난 앞에서도 하느만으로 행복한 진짜 치료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목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몇 개입니까? 4패치 아담스에서는 4개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idiot ‘바보라고 합니다. 왜 사람들은 꼭 그 문제만을 바라보느냐는 것입니다. 그 너머를 바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문제가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별로 개의치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를 바라보지 마시고 그 너머의 소망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문제도 이겨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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