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아마겟돈 전쟁 (묵시16:12-16)

2018. 9. 27. 오후 3: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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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아마겟돈 전쟁

(묵시16:12-16)

12 여섯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유프라테스라는 큰 강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말라 버려서 해 돋는 곳으로부터 오는 왕들의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13 나는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악령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그것들은 악마들의 영으로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을 위해서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려고 나간 자들입니다. 15 그 때에 '잘 들어라.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6 그 세 악령은 히브리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마지막 일곱 재앙인 대접재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대접재앙은 인의 재앙이나 나팔재앙과는 달리 영적인 면에서 해석을 하는 것이 요한묵시록 전체의 이해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섯 번째 대접재앙까지를 공부하면서 그 재앙의 내용보다는 그 재앙들이 갖고 있는 영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서 해석을 했습니다. 이 대접 재앙이 갖고 있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메시지가 뭐였습니까?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대접이 쏟아지게 되지만 그 대접이 눈이 멀어 여전히 암흑 속에 살고 있는 세상에게는 진노의 대접이요 하느님의 은혜로 눈을 뜬 우리에게는 은혜의 대접으로 선용이 된다는 진리였습니다. 그래서 흑암 속에 사는 자들은 대접이 쏟아져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지만 눈을 뜬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대접이 그들이 회개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하느님의 은혜의 손길이 된다는 것까지를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이 대접 재앙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아마겟돈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너무나 잘 아는 단어입니다.

오죽하면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 이름이 아마겟돈입니다. 물론 거기는 아마 곗돈이라고 패러디를 해 놓았지만 그만큼 이 아마겟돈이 오해되고 있고 오용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좀 씁쓸합니다. 오늘 그 아마겟돈 전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확인하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여섯 번째 대접에서 그렇게 여전히 눈먼 자들이 얼마만큼 우매한 짓을 하게 되는지 더 확실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럼 차근차근 한 절 한 절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을 보세요.

묵시16:12 여섯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유프라테스라는 큰 강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말라 버려서 해 돋는 곳으로부터 오는 왕들의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여섯 번째 대접이 큰 강 유브라데스에 쏟아지니까 강물이 말라버립니다. 이 구절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서 이 유브라데스 강이 어떤 지정학적 위치를 갖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창세15:18) 18 그 날 야훼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개울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는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준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그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가 바로 유브라데스 강입니다. 그 유브라데스 강 너머에서 걸핏하면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결국 이스라엘을 망하게 만든 두 나라가 있지요? 바벨론과 앗수르입니다. 바벨론은 요한묵시록에도 계속해서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나라로 등장하지요?

북 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했고 남 유대는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그렇게 그 큰 강 유브라데스는 이스라엘과 대적들과의 경계와 전선(戰線)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유브라데스 강이 마르고 동방으로부터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 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그 대적들과의 전쟁이 있을 것임이 예고되는 장면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 한 구절을 가지고 전쟁을 추론해 낼 수 있는가? 구약 성경에는 여러 곳에 강이 마르고 물이 마른다.’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예레 50:37-40) 37 칼이 떨어지면 외인부대도 여인들처럼 당황하리라. 칼이 떨어지면 바빌론의 보물창고들은 털리리라. 38 칼이 떨어지면 샘터는 말라 버리리라. 바빌론은 우상들의 천지, 험상궂은 우상들을 섬기다가 미쳐 버리리라. 39 그리하여 바빌론은 삵괭이와 여우의 굴이 되고 타조가 깃들이는 곳이 되리라.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 폐허가 되리라. 40 나 야훼가 선언한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천벌을 받아 뒤엎혔듯이 바빌론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 폐허가 되리라.

(예레 51:36-37) 36 '그렇다면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 이제 너의 송사를 받아 들여 너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바빌론의 샘구멍을 막아 물줄기들을 말려 버리리라. 37 바빌론은 여우의 소굴이 되리니, 그 참혹한 형상을 보고 사람들이 빈정거리리라. 바빌론은 사람의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 폐허가 되리니,

하느님께서 악의 상징인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그들의 멸망을 강과 물과 바다를 말리운다라는 말로 표현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 강과 물과 바다를 말리운다라는 구절이 단순히 전쟁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장면으로 가보지요. 위에 언급한 구절들 말고 또 바다와 강이 말랐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사건 이스라엘이 절대 잊지 못할 그 사건이 뭡니까? 홍해 와 요단강이 말라서 마른땅이 된 사건이지요.

(출애14:21-22) 21 모세가 팔을 바다로 뻗치자, 야훼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붙여 바다를 말리셨다. 바다가 갈라지자 22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여호수3:15-17) 15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르단강에 이르렀다. 마침 추수절이 되어 둑에까지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의 발이 물에 닿자마자 16 위에서 흘러 내려오던 물이 우뚝 일어서서 아담에서 사르단 성곽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둑을 이루는 것이었다. 아라바 호수라고도 하는 사해로 흘러 내리던 물이 다 끊어져 백성들은 예리고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17 야훼의 계약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강 한복판 마른 땅에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 결국 온 겨레가 다 요르단강을 건넜다.

보시다시피 여기서는 단순히 물과 강과 바다가 마른다.’는 구절이 전쟁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들의 손에서 건져내서 그들에게 새 땅을 선물하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 성경에서 강이 마르고 물이 마른다.’는 구절은 거의 대부분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대적들을 모두 심판해서 전멸시키시고 그 분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구해 내시는 사건을 묘사할 때 강이 마르고 물이 마른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에 능통했던 이 요한묵시록이라는 편지의 최초의 수신자들, 핍박 속에 고통 받고 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유브라데스 강이 마른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하느님의 대적들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전쟁을 도모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러한 고난이 닥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쟁은 하느님께서 대적들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전쟁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전능 하신 손길이다라는 것을 유브라데스 강이 마른다.’ 라는 짧은 구절 속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고 요한묵시록을 푼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모두 한 가지 주제를 명확히 그려내기 위해 그물처럼 연결 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을 해석하면서 구약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해석을 하게 되면 대부분 세대주의자들처럼 수수께끼나 비밀코드로 풀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육적 이스라엘과 그의 대적들의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와 그의 대적인 마귀의 세력과의 전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묵시16:13-14) 13 나는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악령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그것들은 악마들의 영으로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을 위해서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려고 나간 자들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요한묵시록에 나타나는 사탄의 삼위일체가 등장합니다. ‘, 짐승, 거짓 예언자그들의 입에서 더러운 세 영이 나와서 온 천하 임금들을 미혹해서 하느님을 대적해서 전쟁을 하자고 부추깁니다. 14절 보시면 그 더러운 영은 악마의 영이라고 명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마겟돈 전쟁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더러운 마귀와 하느님과의 영적 전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4절 후반부에 보시면 그 전쟁은 하느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치러질 전쟁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 말은 마귀의 세력들이 하느님의 보좌를 노리고 세상을 미혹해서 전쟁을 일으키지만 결국 그 전쟁은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하느님, 전능하신 이의 큰 날, 즉 심판의 날을 재촉하는 전쟁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일곱 재앙에서 공부한 내용처럼 세상은 자기들이 꽤 강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하느님을 대적하여 악을 행하며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적까지 행하면서 하느님께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은 결국 그 죄와 악을 완전하게 심판하실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15절을 통해서 이 아마겟돈 전쟁이 영적 전쟁임을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묵시16:15) 15 그 때에 '잘 들어라.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전에 14절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있을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에 15절에서 바로 그 날, 내가 도적같이 임해서 세상을 끝내버릴 그 최후의 날을 대비해서 너희는 그 전쟁 준비를 하라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데 그 전쟁 준비의 내용 이 뭡니까?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무슨 말입니까? 하느님의 백성들아 너희는 그 전쟁에 대비해서 깨어 있어라, 그리고 내가 너희들에게 준 옷을 지켜서 벌거벗지 않도록 주의하라이게 바로 그 아마겟돈 전쟁에 임하는 성도들의 전투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중공군 2억이 이스라엘과 아마겟돈에 모여서 육박전을 치르는 그런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묵시3:2-4) 2 그러므로 깨어나거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완전히 숨지기 전에 힘을 북돋아 주어라. 나는 네가 하는 일이 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 그것을 굳게 지켜라. 그리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나타날지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우리 주님께서 사르디스교회에게 내가 도둑같이 네게 임 할 테니 너희는 깨어있어라,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준 흰옷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오늘 오실 지도 모른다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깨끗하게 정갈하게 온전한 행위를 추구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묵시3:15-17)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16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7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이 풍부하고 부유하고, 크게 부흥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너희가 실상은 가난하고 벌거벗은 자라고 일침을 가하십니다. ‘너희가 예수를 믿고 부자가 되고 부흥한다고 해서 그게 진짜 복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라, 너희는 실상은 벌거벗은 자들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그런 물질주의적, 기복주의적 사고로 그리스도교를 정의해서 정말 너희들이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말고, 정말 너희가 열심을 내야 하는 너희 자신의 하느님 자녀 됨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제발 히에라 폴리스의 뜨거운 온천수나 골로새의 찬 생수처럼 너희 자신을 하느님 앞에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일에 게으르지 말 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 일곱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는 누구에게 주는 메시지였습니까? 바로 말세의 기간 동안에 이 땅에 존재 하게 될 모든 하느님의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아마겟돈 전쟁은 언제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창조하신 그 때부터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가시적인 완성을 이루시기까지의 그 말세의 기간 동안에 우리 교회가 겪을 영적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영적 전쟁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고 결국에는 최후 의 심판의 일격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 모든 영적 전쟁을 가리켜 우리가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전투에 참가하는 성도들에게 다른 무기가 아닌 영적인 무기로 무장을 하라고 권고를 합니다.

(에페6:10-18) 10 내가 끝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할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11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12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지금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무리가 공격해 올 때에 그들을 대항하여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16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7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이렇게 아마겟돈 전쟁은 성도가 치러내야 할 영적 전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수긍을 못 하시겠다는 표정이신 것 같은데, 마지막 16절을 보면서 확증을 해 드리겠습니다. 왜 그 전쟁터 이름을 아마겟돈이라 했는지 보자고요.

(묵시16:16) 16 그 세 악령은 히브리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여기서 아마겟돈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마겟돈입니다. 히브리어 하르언덕,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마겟돈므깃도 산, 므깃도 언덕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므깃도라는 곳은 전쟁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므깃도 지역은 이스르엘 평원에 있는 가로 14마일 세로 20마일의 평평한 땅입니다. 전쟁을 치르기에는 아 주 안성맞춤인 곳이지요. 요즘은 전쟁하면 흔히 전략과 전술을 동원한 게릴라 전 같을 것을 쉽게 떠 올리지만 옛 날에는 전쟁을 할 때 넓은 평원에서 양쪽 군대가 모두 정열을 하고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장수들이 먼저 싸우거나 아니면 쌍 방이 일제히 한 곳에서 정정당당하게 격투를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엎드려서 총을 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넓은 평원이 필요하지요? 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므깃도 평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치렀던 전쟁 중에 200회 이 상이 이 므깃도에서 벌어졌습니다.

(판관5:19) 19 왕들이 몰려 와 전투대열을 벌였다. 가나안 왕들이 므기또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수지가 맞지 않는 싸움이었다.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와 가나안 연합군의 군대를 물리치고 부른 노래입니다. 가나안 군대가 보무도 당당히 이스라엘을 치러 왔다가 패배하고 돌아 간 곳이 바로 므깃도입니다. 그리고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유대의 요시야 왕을 죽인 곳도 므깃도입니다. 오죽하면 나폴레옹도 세계지도를 펴 놓고 세계에서 가장 전쟁하기 좋은 곳으로 그 므깃도 평원을 꼽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므깃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지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성도들이 치러야 할 영적전투의 치열함을 설명하면서 유대인들이 쉽게 전쟁을 연상할 수 있는 아마겟돈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그러면 왜 므깃도 평야가 아니라 므깃도 산인가? 성경에서 마지막 심판의 전쟁을 묘사 할 때 그 전쟁이 이스라엘 에서 일어난다는 표현을 씁니다.

(예제38:8) 8 내 명령은 당장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이 걸려 전화가 복구되기를 기다려 쳐들어 가거라. 언제까지나 폐허로 남아 있을 것 같던 이스라엘 산악지대에 뭇 민족 가운데서 모여 든 이스라엘이 저희끼리 안심하고 오손도손 살고 있는데,

(예제39:1-5) 1 너 사람아, 곡에게 그를 쳐서 이르는 나의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메섹과 두발의 맹주 곡아, 내가 너에게 가리라. 2 내가 너를 돌려 세우고 강제로 끌어 내리라. 북쪽 끝에서 나와 이스라엘 산악지대로 쳐들어 가게 해 놓고는 3 네 왼손에 든 활을 꺾어 치우고 오른손에 든 화살들을 떨어뜨리리라. 4 너는 네 온 부대와 온 동맹군과 함께 이스라엘 산악지대에서 쓰러질 것이다. 나는 너를 사나운 새들, 온갖 날짐승과 들짐승의 밥이 되게 하리라. 5 나 야훼가 말하였다. 정녕, 너는 벌판에서 쓰러져 죽고 말 것이다.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이렇게 최후의 심판의 전쟁을 상징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이스라엘 산에서 있을 것이라는 성경의 심상을 가져다가 므깃도 산’‘아마겟돈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므깃도 평원에 진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 이름이 갈멜 산입니다. 그 갈멜 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가 하느님의 종 엘리야와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몰살당한 곳이 바로 갈멜 산, 므깃도의 산, 아마겟돈입니다.

(왕상18:40) 40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사로잡으시오.' 엘리야는 백성들이 사로잡아 온 그 예언자들을 키손 개울로 끌고 가 거기에서 죽였다.

엘리야가 거짓 예언자 850명을 갈멜산(므깃도 산)에서 물리치고 기손 시내에 데려다가 전부 목을 쳐버립니다. 이 기손 시내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므깃도 시내라고 불렀습니다.

이 내용을 오늘 본문과 연결을 시켜 보세요. 오늘 본문에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습니까? 용과 짐승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나왔었지요? 그들이 아마겟돈으로 열 왕들을 모아서 전쟁을 준비합니다. 갈멜산, 므깃도 산에서도 엘리야와 거짓 예언자 850명이 싸웁니다. 그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몰살당했지요? 그러니까 너희들을 괴롭히는 그 대적들의 최후도 그렇게 끝 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이미 이 므깃도 산의 전투, 아마겟돈 전쟁은 어떻게 끝이 날 것인지 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당시 구약에 능통했던 초대 교회 교인들은 므깃도의 산’‘아마겟돈이라는 말을 척 들었을 때 바로 이러한 구약의 내용들을 쉽게 떠 올릴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참혹한 전쟁터인 므깃도 평야를 쉽게 떠올렸겠지요? 그리고는 이내 우리는 지금 그 참혹한 영적 전쟁의 한복판인 아마겟돈에 와 있는 것이구나, 그래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단하고 힘들었던 것이구나, 그러나 결국 그 전쟁 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들의 승리로 끝나게 될 전쟁이다. 그러니까 힘을 내자이렇게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면 아마겟돈 전쟁은 세대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언젠가 일어날 세계 3차 대전이나, 2억의 중공군과 아시아 연합군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아니라 말세기간 동안에 교회가 겪어야 할 마귀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을 아마겟돈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전쟁은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들이 크게 겪어야 할 전쟁임과 동시에 그들의 삶 속에서 계속적으로 겪고 있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쟁이 일어나게 될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전편에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살후2:1-4) 1 교우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일과 그분 앞에 우리가 모이게 될 일에 관해서 부탁할 말씀이 있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지성을 잃고 쉽사리 흔들리거나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이나 혹은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가 이런 말을 편지에 써 보냈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3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이 하느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며, 또 멸망할 운명을 지닌 악한 자나 나타날 것입니다. 4 그자는 사람들이 신으로 여기는 것이나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자기 자신을 그보다도 더 높이 올려 놓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잡고 앉아서 자기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마지막 때에 관한 경고입니다. 사이비 가짜들이 나타나서 벌써 종말이 왔다’ ‘주의 날이 왔다라고 거짓말 할 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명 먼저 교회 안에 배도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멸망의 자식, 자기가 하느님처럼 구는 자가 나타나면 진짜 그 때가 주의 날’ ‘마지막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하고 흡사하지요? 마지막 때에 멸망의 자식, 세상 왕들이 연합해서 하느님과 전쟁을 하러 모인다는 내용과 흡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써 예수 님 때에 있었습니다.

(요한17:12) 12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 그 동안에 오직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하느님께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를 가리켜서 멸망의 자식’ ‘휘오스 테스 아폴레이아스라고 하십니다. 데살로니가 후서의 멸망의 자식과 정확하게 같은 단어입니다. 이 내용을 오늘 본문의 내용과 비교해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서 죽여 버리면 자신이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귀의 세력은 자신들의 승리를 장담하며 하느님과의 전쟁을 위해 아마겟돈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귀의 허리를 꺾어 버리셨습니다. 그 십자가가 오히려 마귀를 결박해 버리는 승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최후의 종말에도 마귀의 세력은 하느님의 보좌를 노리고 최후의 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전능하신 하느님의 날에 완전히 멸망해 버릴 것입니다. 거기에 사용된 자가 배도한 자, 가롯 유다였습니다.

최후의 종말에도 배도 자들, 거짓 예언자들, 세상 왕들이 마귀의 세력에게 이용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마귀의 세력과 함께 가롯 유다처럼 나무에 목을 매달아 사망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인생 동안에 겪어야 할 아마겟돈 전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전쟁과 똑같은 양상의 전쟁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승리와 최후의 종말인,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있을 그 승리 사이에 작은 아마겟돈 전쟁들이 우리 성도들의 삶에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성도들에게 그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마치 너희들을 금방이라도 넘어뜨릴 것 같은 대적들이 너희의 인생 속에 나타날 거야, 그 때 겁먹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그리고 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기를 써야 한다.’라고 공격 무기를 설명해 주는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어떤 공격 무기였습니까? 깨어서 회개하고 흰옷을 지키라이게 우리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교회사 2,000년 동안 교회 안에는 끊임없이 가짜 교리를 전파하는 거짓 예언자, 더러운 영들이 속출해 왔고 앞으로도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도하는 멸망의 자식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여전히 꿋꿋이 깨어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의의 흰옷을 지켜내는 참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오직 그들에게만 승리의 면류관 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빈치 코드, 유다 복음, 기복주의, 신비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다들 자기들이 옳은 줄 알고, 자기들이 승리자인 줄 알고 거들먹거립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 스스로 자해하고 있는 것이고 스스로 자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힘내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세상을 용서하느라, 참아주느라, 하느님 의 자녀답게 살아내느라 꼭 지는 것처럼 약해 보여도 여러분이 바로 깨어있는 분이고 회개하는 분이며 흰옷을 지키고 계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승리자입니다.

홍해 바닷가에서 자기들이 승리한 줄 착각 하다가 모두 그 홍해에 빠져 죽어버린 애굽 군사들처럼 우리의 대적들도 지금은 자신들이 이 기는 것처럼 거들먹거리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지옥의 불 못으로 빠져 버릴 것입니다. 결론은 이미 나 있습니다.

(시편 2:1-6.9) 1 어찌하여 나라들이 술렁대는가?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 야훼를 거슬러, 그 기름부은 자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은 들썩거리고 왕족들은 음모를 꾸미며 3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이 멍에를 벗어 버리자!' 한다마는 4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와 웃으시다가 5 드디어 분노를 터뜨려 호통치시고 노기 띤 음성으로 호령하신다. 6 '나의 거룩한 시온산 위에 나의 왕을 내 손으로 세웠노라.' 9 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오늘 본문의 내용이 여기 그대로 다 나와 있지요? 결론까지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된다고요? 그 아마겟돈에서 철장으로 다 부수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도가 맞다 면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이 크고 작은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들 은 이적을 행하며 여러분 앞에서 거들먹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는 영원한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정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지 않습니다. 지금 잠시 여러분이 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게 바로 승리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고 힘을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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