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최후의 전쟁, (묵시19:17-20:3)

2018. 9. 25. 오전 6: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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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최후의 전쟁

(묵시19:17-20:3)

17 나는 또 태양 안에 한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모든 새에게 큰 소리로 ', 다 같이 하느님의 큰 잔치에 오너라. 18 왕들과 장성들과 장사들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사람들과 모든 자유인과 노예와 낮은 자와 높은 자의 살코기를 먹어라' 하고 외쳤습니다. 19 또 나는 그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가 흰 말을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를 대적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0 그런데 그 짐승은 잡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잡이로서 기적을 행하여 짐승의 낙인이 찍힌 자들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을 하는 자들을 현혹시킨 그 거짓 예언자도 함께 잡혔습니다.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21 그리고 남은 자들은 그 흰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20,1 나는 또 한 천사가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2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 공부하신 내용을 잠깐 다시 떠 올려 보시면, 무 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이미 하느님의 백성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침노해 들어 온 것이고, 그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하늘의 왕 노릇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왕 노릇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어서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의 오염된 육체로는 쉽게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징계와 고난을 동원해서 우리가 하늘의 왕 노릇을 잘 할 수 있게끔 만들고 계신 기간이 바로 그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천년 왕국과 7년 대 환난의 기간은 동일한 기간이며,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그 기간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시편 몇 구절을 보면서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시편2:7-8) 7 나를 왕으로 세우시며 선포하신 야훼의 칙령을 들어라.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8 나에게 청하여라. 만방을 너에게 유산으로 주리라.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너의 것이 되리라.

이 구절은 지금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하시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예수님한테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예수님은 나중에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우기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존재하셨던 하느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장자 이셨고 그 장자가 첫 창조의 모든 것들의 머리가 되셔서 만물을 다스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새 창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그 새 창조에 관여하셔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제는 영원히 타락할 수 없는 새 창조를 하시는데 그 새 창조도 예수님을 통해 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그 새 창조 사역을 맡으셨고 그 새 창조의 방법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 창조는 영적으로 완성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새 창조를 영적으로 완성하신 예수님의 부활 때, 하느님은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표현을 쓰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낳았다라는 표현을 존재론 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직능적, 기능적관점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영적으로 새 창조는 완성이 된 것이고 바로 그 때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열방을 유업으로 주셨고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라는 영()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72:7-11) 7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 8 바다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이 강에서 저 땅 끝에 이르기까지 다스리리니, 9 큰 괴수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원수들은 와서 땅바닥을 핥을 것이며 10 다르싯과 섬나라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고 세바와 스바의 왕들이 예물을 바치며 11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십자가에서 마귀를 결박시켜 버리셨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미 예수님의 왕국은 시작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몇 년 후에 천년 왕국이 올까, 7년 대 환난을 지나게 될까? 아니면 그 전에 휴거 하게 될까?’ 이런 것에 관심 가지지 마세요. 오늘 본문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천년 왕국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2절과 3절을 보시면 용, 마귀 사탄이 천년 왕국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 무저갱에 결박당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결박당하는 바로 그 때에 천년 왕국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지금 완전 무장해제 당한 상태이지요. 그 말은 사탄이 이제 하느님의 백성들을 참소 할 근거가 없어져 버렸다는 의미이지요 우리의 죄를 지적해서 하느님 앞에 고자질을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몽땅 가져가 버리셨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를 단죄 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사탄이 무저갱에 갇혔다라는 구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묵시20:2-3) 2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2절의 결박하다‘’에데센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가 마태복음 12장에 나옵니다.

(마태12:29) 29 또 누가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빼앗아 가려면 먼저 그 힘센 사람을 묶어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그 집을 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유대인들이 저가 마귀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낸다.’고 예수님을 중상했을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사탄을 결박하시고 그 사탄의 세간인 귀신들렸던 자들, 다른 말로 죄인들을 늑탈하시러 오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을 미리 상징적으로 표징으로 보여주신 것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일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묵시 속에 완성이 된 것이고, 사단은 예수님의 초림 때 결박당한 것입니다.

(루가10:17-18) 17 일흔 두 제자가 기쁨에 넘쳐 돌아 와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지도 복종시켰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18 예수께서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여기도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70명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 그 일을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구원과 다른 말로 하느님 나라의 확장과 사탄의 결박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요한12:31) 31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예수께서 이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쓰인 쫓겨나다’‘에크발로는 오늘 본문의 무저갱에 던지다발로와 같은 어근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꼼짝없이 무저갱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무저갱에 결박이 되었다는 것이 확실해졌지요? 그러니까 사탄이 무저갱에 갇혀있는 천 년 왕국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묵시록의 중간 중간에 사탄이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다는 말이나 땅의 왕들을 미혹해서 군대를 모은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분명 사탄은 철저하게 패배하고 결박당하여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반면(묵시 12:7-12, 17:8, 11, 마태12:25-30, 루가11:14-26, 골로 2:15, 히브 2:14) 또 다른 측면에서는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묵시13:7)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순처럼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 사탄의 이중적 측면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차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사탄의 공격은 우리 성도들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결코 제지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탄에게 성도들을 공격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탄의 발악은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의 거룩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지금 결사적으로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음에도 사탄은 결박당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판관 3:1-4) 1 가나안 전쟁을 겪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을 빠짐없이 시험하기 위하여 야훼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이 있다. 2 그 목적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알아보시려는데 지나지 않았다. 일찌기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시려는 것이었다. 3 다섯 추장이 거느린 불레셋족, 온 가나안족, 시돈족, 바알헤르몬 산에서 하맛 어귀에 이르는 레바논산에 자리잡은 히위족이 그들이다. 4 이들을 남겨 두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려는 것이었다. 야훼께서 모세를 시켜 그 조상들에게 명한 계명을 이스라엘이 순종하는가 않는가 알아보시려는 것이었다.

보세요. 이스라엘의 대적을 남겨두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죽이기 위해 남겨진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영적 성숙을 위해 남겨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203절의 마귀가 천년 후에 잠깐 동안 풀려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성도들을 향한 사탄의 공격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세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201절에서 3절까지는 해결이 됐습니다.

그럼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19장 마지막의 최후의 전쟁을 한번 풀어보자고요. 1917절부터 21절까지에는 두 가지의 환상이 등장합니다. 17절이 내가 보매라는 단어로 시작되고 있고 19절이 또 내가 보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17절과 18절 그리고 19절부터 21절까지의 내용은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시19:17-18) 17 나는 또 태양 안에 한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모든 새에게 큰 소리로 ', 다 같이 하느님의 큰 잔치에 오너라. 18 왕들과 장성들과 장사들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사람들과 모든 자유인과 노예와 낮은 자와 높은 자의 살코기를 먹어라' 하고 외쳤습니다.

한 천사가 공중의 모든 새들에게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자들의 고기와 자유 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그렇게 이야기가 한번 끝나는 것입니다. 새들이 고기를 먹습니다. 그리고 19절부터 또 내가 보매로 시작되는 다른 환상이 나옵니다. 그런데 17절과 18절의 이야기가 거기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9절부터 21절을 잘 보시면 또 새들이 짐승과 거짓예언자, 그리고 나머지들을 다 먹습니다.

(묵시19:19-21) 19 또 나는 그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가 흰 말을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를 대적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0 그런데 그 짐승은 잡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잡이로서 기적을 행하여 짐승의 낙인이 찍힌 자들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을 하는 자들을 현혹시킨 그 거짓 예언자도 함께 잡혔습니다.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21 그리고 남은 자들은 그 흰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여기를 잘 보시면 짐승들 뿐 아니라 나머지까지 다 죽었습니다. 만국이 멸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20장에 가면 또 곡과 마곡의 전쟁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미 19장에서 만국이 다 멸망했는데 203절에서 만국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묵시20:3) 3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19장 후반부의 전쟁은 요한묵시록 전반에 걸쳐 반복되어 기술되어 있던 바로 그 전쟁이 또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대 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역사적인 순서로 역사적인 사건들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 더 확실하게 확인을 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17절 이하의 전쟁은 에제키엘서38장과 39장을 그대로 옮겨다 인용한 것입니다. 요한묵시록 20장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나오지요?

(묵시20:7-9) 7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은 자기가 갇혔던 감옥에서 8 풀려 나와서 온 땅에 널려 있는 나라들 곧 곡과 마곡을 찾아 가 현혹시키고 그들을 불러 모아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들의 수효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9 그들은 온 세상에 나타나서 성도들의 진지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성을 둘러쌌습니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 전쟁이 에제키엘서 38장에 이미 예언되어 있습니다.

(에제38:2-3,22-23) 2 '너 사람아, 너는 마곡땅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메섹과 두발의 맹주인 곡에게 그를 쳐서 이르는 나의 말을 전하여라. 3 '주 야훼가 말한다. 메섹과 두발의 맹주 곡아, 내가 너에게로 가리라. 22 또 내가 염병과 유혈로 그를 벌하리라. 또 그와 그의 부대와 동맹군 위에 폭우와 함께 돌 같은 우박을 쏟고 유황불을 퍼부으리라. 23 내가 이렇게 뭇 민족이 보는 데서 나의 위엄을 떨치고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어 나를 알리면 사람들은 그제야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에제 39:6) 6 나는 마곡에 불을 보내고, 안심하고 해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불을 보낼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요한 묵시록 20장의 그 곡과 마곡의 전쟁과 단어들까지 똑같지요? 3917절로 가면 그 곡과 마곡의 전쟁에 오늘 본문 19장의 새들이 등장합니다.

(에제 39:17-20) 17 너 사람아, 주 야훼가 말한다. 날개치는 모든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일러 주어라. '모여 오너라. 내가 이스라엘의 산에 제물을 잡아 큰 잔치를 벌여 놓았으니, 너희는 사방에서 몰려 와 제물인 고기를 먹고 피를 마셔라. 18 용사들의 살을 먹고 세상 수령들의 피를 마셔라. 이들의 살은 수양이나 새끼양이나 수염소나 바산의 살진 송아지의 살코기 못지않다. 19 내가 잡아서 차려 놓은 이 제물의 기름을 배부르게 먹고, 피를 취하도록 마셔라. 20 너희는 내가 차려 놓은 잔치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그 밖의 모든 군인들의 살코기를 배불리 먹어라.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에제키엘서의 곡과 마곡의 전쟁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인데 오히려 39장의 내용을 19장에 38장의 내용을 20장에다가 옮겨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917절 이하를 역사적인 순서로 해석을 하는 것은 구약의 말씀과 요한묵시록의 문학적 구성을 전혀 무시한 해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묵시록 1917절 이하에 나오는 전쟁과 묵시록 207절 이하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같은 전쟁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장면인 것입니다. 19장에서는 짐승의 멸망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20장에서는 사탄의 멸망이라는 관점에서 그 마지막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전쟁은 16장에서도 이미 등장한 전쟁입니다.

(묵시16:12-16) 12 여섯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유프라테스라는 큰 강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말라 버려서 해 돋는 곳으로부터 오는 왕들의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13 나는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악령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그것들은 악마들의 영으로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을 위해서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려고 나간 자들입니다. 15 그 때에 '잘 들어라.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6 그 세 악령은 히브리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바로 아마겟돈 전쟁이지요. 이 아마겟돈 전쟁은 용, 사탄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세 더러운 영이 나와서 세상의 왕들을 모아 야훼의 큰 날, 즉 마지막 심판의 날에 치르게 될 전쟁입니다. 그런데 14절의 전쟁’ ‘폴레몬앞에 이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톤 폴레몬입니다. ‘그 전쟁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마겟돈 전쟁은 앞에서 설명한 어떤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앞서서 등장한 그 전쟁이 뭘까요?

(묵시15:1) 1 나는 또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각각 한가지 재난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재난은 최후의 재난으로서 하느님의 분노의 마지막 표현입니다.

요한이 일곱 대접에 대해 기술하면서 이 일곱 대접 재앙이 마지막 재앙이며 이것으로 세상은 막을 내릴 것임을 먼저 언급합니다. 그리고 1621절에서 진짜 끝이 납니다.

(묵시16:19-21) 19 그리고 큰 도시가 세 조각이 나고 모든 나라의 도시들도 무너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큰 도성 바빌론을 잊지 않으시고 그 도성에게 당신의 분노의 잔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곧 심한 진노의 포도주를 미시게 하신 것입니다. 20 그러자 모든 섬들은 도망을 가고 산들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21 그리고 무게가 오십 근이나 되는 엄청난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우박의 재난이 너무나 심해서 하느님을 저주하였습니다.

역시 에제키엘서의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쓰인 단어들이 그대로 쓰이고 있지요? 그런데 이 부분은 악의 세력을 총칭하는 바벨론이 멸망하는 부분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바로 이 전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겟돈 전쟁 앞에 이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의 멸망이라는 대접 재앙을 17장과 18장에서 다시 풀어서 설명해주지요? 17장과 18장은 음녀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기록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19장에 들어와서 11절 이후에서 다시 그 전쟁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시19:19) 19 또 나는 그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가 흰 말을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를 대적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다른 관점에서 또 207절 이후에서 다시 반복되어 기술되는 것입니다.

(묵시20:8) 8 풀려 나와서 온 땅에 널려 있는 나라들 곧 곡과 마곡을 찾아 가 현혹시키고 그들을 불러 모아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들의 수효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여기도 똑같이 싸움이라고 번역이 된 폴레몬앞에 이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톤 폴레몬앞에서 말한 바로 그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19장의 그 전쟁이 207절 이후의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면 묵시록에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마지막 재앙과 바벨론의 멸망,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모두 같은 전쟁을 반복해서 다른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우셨지요? 지금까지 들으신 것은 다 잊으셔도 됩니다. 그냥 그 전쟁들이 다 같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구나.‘라고 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분명 전쟁은 실재하고 있고 실재했으며 실재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모든 마지막 때의 전쟁들은 마지막에 한번 딱 일어나고 마는 전쟁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존재하는 역사의 모든 현장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분명 결국에는 마지막 결전의 날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끊임없이 작은 전쟁들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쟁의 내용이 뭐냐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 전쟁의 발단이 뭐였지요? 하느님을 섬기던 천사가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에서부터 시작된 전쟁입니다. 그리고 땅으로 쫓겨난 사탄이 역시 에덴동산에 세워진 다스림과 순종의 질서를 깨버리는 것으로 그 전쟁은 계속해서 진행되어지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느님과 마귀와의 전쟁은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자신의 힘을 키워, 하느님과 상관없이 스스로를 책임지겠다는 쪽과 그 걸 절대 묵인하실 수 없다는 하느님과의 전쟁인 것입니다. 쉬운 말로 나는 의 힘으로 만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자들과 너희는 하느님을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야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과의 전쟁이 바로 영적 전쟁의 실체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존하는 자들을 무장해제 시키시는 전쟁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마귀와 마귀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자기 가치 향상입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것이지요. 그게 성경이 말하는 입니다. 하느님은 그 것을 향해 칼을 뽑아 드신 것입니다. 결국 모든 피조물은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하느님의 발 앞에 굴복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귀적 지향이 구원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들 속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하느님의 백성들 속에 남아 있는 마귀적 본능들을 하나하나 깨 가는 전쟁을 성도의 삶 속에서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결국에는 성도 안에 남아 있는 그 더러운 것들을 다 전멸시키시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 모든 더러운 것들을 새가 뜯어먹게 만드실 것이고, 성도들을 정금 같이 단련해 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묵시록을 통해 읽어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은 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그 전쟁에 승리하고 계시며, 결국에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역사 속에서 계속 승리를 하고 계시다는 것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 성도의 인생 속에서 우리가 하느님 말고 힘으로 의지하고 있던 것들이 자꾸 내게서 잘려 나가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바로 그 전쟁 속으로 투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장미 빛 환상으로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공박해 들어오는 불도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십자가 앞에 서게 되면 인간은 그 복음이라는 불도저에 밀려 오징어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를 믿는 그 날부터 복음이라는 불도저에 밀려 매일 매일 오징어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두 부류의 인간이 나옵니다. 한 부류는 이 세상에서의 왕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 아기들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 헤롯으로 대표되는 부류이고 다른 한 부류는 어린 아기 예수 때문에 애굽으로 나사렛으로 아기에 의해 정처 없이 끌려 다니는 요셉과 마리아로 대표되는 부류입니다. 하느님은 헤롯처럼 하느님을 버리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통제하는, 죄인들에게 찾아와서 그들의 죄를 백일하에 낱낱이 드러내고, 결국에는 자신의 소원과 자신의 꿈을 죽이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어린양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자로 만드시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조용하고 평온했던 유대 땅에 예수라는 어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대 살육이 벌어집니다. 하느님은 거짓과 위선으로 위장하고 있는 죄를, 예수를 보내 전부 들춰내시는 것입니다. 잘난 척하지 말고 너희들의 실체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력이며 십자가의 효력인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존경받으며 잘 살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자 그 존경받던 바리새인들이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좀비들처럼 예수님을 못 죽여서 안달을 부립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 것은 너희들이 어떤 존재인지 바로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는 절대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복음 앞에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서게 되면 성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하느님께 항복하게 되는 것이고,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은 더욱 더 악해 져서 심지어 하느님을 죽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죄의 세력들은 하느님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바로 그 전쟁이 여러분 속에서 시작이 되지요. 예수를 믿으면 금방 성자가 될 줄 알았는데 예수 믿기 전보다 죄를 더 많이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 보신 적 없으세요? 그건 여러분이 전보다 더 악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여러분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어 이거 뭐야, 난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하고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감추어져 있는 환부는 절대 수술을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여러분에게서 도려내야 할 부분들을 계속해서 들추어내십니다. 그리고 그 환부를 인식하게 만들어서 치를 떨게 만드시고 그 환부를 도려내시는 전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의 대상이 바로 우리 성도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어차피 사탄의 세력은 다 불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사탄의 세력의 파편들 또한 지옥의 불로 던져 버리시기 위해 하느님은 그 더러운 것들을 십자가로 복음으로, 말씀으로 도려내고 계신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는 그 오염과 부패들을 도려내고 계신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게 되면 정말 은혜롭기만 합니까? 우리가 이 더러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떨어지면 우리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공박해 들어와 그 죄를 들추어내고 그 내 살처럼 달고 살던 죄를 잘라내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대할 때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지나간 뒤에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안식이 어떤 것임을 알기에 기쁨 속에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여러분 안에 있는 오염과 부패를 향해 메스를 들고 덤벼들기 때문에 여러분은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보시면 바오로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처음에는 나를 천사와 같이 예수와 같이 영접했고 나에게 눈이라도 빼 줄 것처럼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날 원수로 대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복음을 전했는데 왜 너희들이 나를 원수로 대하고 있느냐?’ 성도라는 사람들이 처음에 얼마간은 못 들어 본 이야기, 생소한 이야기 해 주니까 우리 교사 참 똑똑하다. 공부 많이 했다하고 잘 듣습니다. 그런데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세월이 자꾸 흐르는데 계속해서 말씀이 자기들을 공격하면 그들이 하나 둘 씩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내가 너희들에게 칼을 주러 왔다고 하셨는지 아시겠어요? 복음은 우리를 도려내는 하느님의 무기입니다. 왜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무기가 말씀의 칼인지 아시겠지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각을 떠버리기 때문입니다.

(요한12:48) 48 그러나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세상 끝날에 그를 단죄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죄를 심판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마지막의 그 심판을 면하기 위해 이 인생동안에 계속해서 그 말씀 앞에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반복해서, 또 점층적이며 점진적인 방법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일어난 일과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살아내야 할 바와 결국에 이 세상이 어떻게 끝이 날 것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지적하고 경고함으로써 우리를 양육하고 우리를 성숙으로 인도하며 우리의 거룩을 완성시켜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에 관심 두지 마시고 오늘도 나를 죽여 남을 살리는 십자가로 인도하고 계시는 예수 님께로 여러분의 발걸음을 한 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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