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진노의 일곱 금 대접(묵시15:5-8)

2018. 9. 28. 오후 2: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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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진노의 일곱 금 대접

(묵시15:5-8)

5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성전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성전은 증거의 천막이었습니다. 6 그 성전으로부터는 재난을 하나씩 손에 든 일곱 천사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눈부신 모시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7 그 때에 네 생물 중 하나가 그 일곱 천사에게 금대접을 하나씩 주었는데, 거기에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8 그 성전은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일곱 천사의 일곱 가지 재난이 다 끝나기까지는 아무도 그 성전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에 당도했습니다. 161절부터 드디어 마지막 대접 재앙이 시작됩니다. 그 대접 재앙 안에 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아마겟돈 전쟁을 비롯해서 무시무시한 일곱 재앙이 등장합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음 주에 자세하게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부분은 그 16장의 대접 재앙으로 넘어가기 전에 15장 말미에 등장하는 대접 재앙의 서론 부분입니다.

우리가 이제 한절 한절 보겠지만 서론 부분에서는 대접 재앙이 세상에 부어지게 되는 이유와 근거, 그리고 그 대접 재앙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대해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5절을 보시면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 이 일 후에 ' 라는 구절들은 요한묵시록에서 장면이 바뀔 때 등장하는 구절이지요. 이제 유리 바닷가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그리던 장면에서 하늘의 증거 장막의 성전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거 장막의 성전'은 동격 소유격입니다. 그러니까 증거 장막과 하늘의 성전은 같은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증거 장막이라는 단어를 구약의 어디에선가 보셨을 겁니다.

(민수17:22-23) 22 모세는 그 가지들을 증거의 장막 안 야훼 앞에 놓아두었다. 23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에 들어 가 보니 레위 가문을 대표한 아론의 가지에 싹이 돋고 꽃이 피었으며 감복숭아 열매가 이미 익어 있었다.

성경에서는 성막, 그 중에서도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성소를 가리켜 증거의 장막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 곳을 증거의 장막이라고 부릅니까?

(출애25:16,21-22) 16 내가 너에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어라. 21 그 속죄판은 궤위에 얹고, 궤 속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거판을 넣어라. 22 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 속죄판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거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너에게 명할 모든 일들을 일러 주리라.

하느님은 십계명 돌 판을 증거 판이라고 부르시고 그 증거 판이 들어 있는 법궤를 증거 궤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증거 궤가 들어 있는 성 막을 증거 장막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니까 증거 장막은 십계명 돌 판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십계명 돌 판은 하느님의 율법이며 하느님께서 직접 쓰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은 하느님의 속성을 우리 수준에 맞게 낮추어 보여 주신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은 참이신 하느님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십계명 돌 판은 거룩과 공의, 사랑과 용서 같은 하느님의 속성과 하느님 자신을 증거 하는 돌 판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 판이 들어 있는 법궤도 역시 하느님의 공의와 은혜와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상자이지요. 법궤의 위에 흠없는 제물의 피가 뿌려짐으로써 죄인들이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공의와 심판과 사랑과 은혜가 동시에 드러나는 하느님을 증거 하는 궤입니다. 그 법궤가 들어 있는 성막과 성소 역시 하느님의 심판과 용서, 즉 하느님의 임재와 거룩이 증거 되는 곳입니다. 하느님의 공의와 심판, 사랑과 용서가 동시에 나타난 곳이 어디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장 막,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요한 2:19-21) 19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20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21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느님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성전, 증거 장막은 하느님의 속성과 임재와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될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임재가 증거 되는 그 성막과 성전, 그리고 그 안의 모든 것들은 거룩하게 구별되어 취급되어져야 했습니다.

(민수1:50-53) 50 네가 레위인들에게 맡길 일은 증거판을 모신 성막과 거기에 있는 모든 기구와 부속품들을 보살피는 일이다. 그들은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여야 하고, 성막에 봉직하며 그 둘레에 진을 치고 살아야 한다. 51 성막을 이동할 때 그것을 거두어 내릴 사람도 레위인들이요, 성막을 칠 때 그것을 세울 사람도 레위인들이다. 여느 사람이 나섰다가는 죽으리라. 52 이스라엘 백성은 각기 자기 진지, 자기 부대의 깃발 아래 머물러 있고, 53 증거판을 모신 성막 둘레에는 레위인들만이 진을 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스라엘 백성 회중에 주의 진노가 내리지 않는다. 레위인들은 증거판을 모신 성막을 보살피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증거 장막, 성소는 아무나 범접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성전이 열렸다라는 말은 이제 하느님은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고 하느님의 공의로 거룩하지 못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곱 대접의 서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일곱 대접 심판은 바로 그 하느님의 공의와 거룩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심판과 구원이 완성되어지는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증거 장막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의 공로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존재하고 있고 이미 열려있습니다.

(고전3:16-17) 16 여러분은 자신의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17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제 하느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그 증거 장막의 성전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는 이제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존재함으로 세상이 그들과 우리가 다름을 느껴야 하고 그들이 우리와 다른 자리 곧 심판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하 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구원을, 하느님의 용서를 삶으로 전달해서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 앞으로 돌아오게 해야 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보여주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좀 전에 읽은 민수기에서 그 증거 장막의 성전은 항상 거룩하게 구별되어서 취급되어졌습니다. “이방인이 가까이 오면 죽여라라고 하느님께서 직접 명령하실 정도로 거룩하지 못한 것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런 거룩한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렇게 거룩하게 구별 된 삶을 사셔야 하는 분들입니다.

(묵시12:17) 17 그러자 용은 그 여자에 대하여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를 위해서 증언하는 일에 충성스러운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싸우려고 떠나 가 바닷가에 섰습니다.

보세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가리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 자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이된 우리의 신분이기도 하지만 그 신분을 바르게 인식하고 깨달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는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삶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심판하셔야 하는 분들입니다. 계속해서 6절을 보시면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이 완성되는 마지막 재앙을 들고 나오는 천사들이 바로 그 증거 장막의 성전에서 나옵니다.

(묵시15:6) 6 그 성전으로부터는 재난을 하나씩 손에 든 일곱 천사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눈부신 모시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 재앙을 쏟아 부을 천사들이 바로 그 하느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성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심판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7절을 보세요.

(묵시15:7) 7 그 때에 네 생물 중 하나가 그 일곱 천사에게 금대접을 하나씩 주었는데, 거기에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네 생물에게서 일곱 천사가 하느님의 진노가 담긴 금 대접을 받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금 대접은 성도의 기도가 담겨 있던 그 대접입니다. 58절 한 절만 보고 넘어가지요.

(묵시5:8) 8 그 성전은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일곱 천사의 일곱 가지 재난이 다 끝나기까지는 아무도 그 성전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네 생물과 24원로가 가지고 있는 바로 그 금 대접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 생물이 가지고 있는 금 대접과 동일한 대접입니다. 그런데 그 금 대접 안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오늘 본문과 잘 연결시켜 보세요. 성도들이 하느님 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 하느님께로 올려 집니다.

그 성도들의 기도는 빨리 악이 멸해지고 하느님 나라가 조속하게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성도들이 기도가 담겨있던 그 금 대접을 일곱 천사가 받아서 이제 16장부터 세상에 쏟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임하는 하느님의 심판은 전부 우리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쏟아지게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계신 하느님의 백성들이 지금 가장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악의 심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기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는 비단 내 밖에 있는 악의 세력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의 습관, 더러운 집착, 중독 이러한 것들을 버리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의 완성에 대한 염원도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은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어두움의 찌꺼기들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 구절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금 대접이라고 번역이 된 피알라스는 연회에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 그릇을 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보통 포도주 잔을 마신다.’라는 표현을 하느님의 진노와 심판에 던져진 자들을 가리킬 때 씁니다.

(아모6:6)몸에는 값비싼 향유를 바르고 술은 대접으로 퍼 마시며 요셉 가문이 망하는 것쯤 아랑곳도 하지 않는 것들.

하느님께서 죄에 빠진 이스라엘을 가리켜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여기서 대접’‘미즈라크70인 역에서 피알라스로 번역이 된 단어입니다. 그런데 그 진노의 포도주 잔은 하느님의 진노가 담긴 잔이기도 하지만 사탄의 수하에 있는 죄인의 무리가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마시는 진노의 포도주 잔이기도 합니다.

(묵시14:8-10) 8 또 둘째 천사가 뒤따라 와서 '무너졌다! 큰 바빌론 도성이 무너졌다! 자기 음행 때문에 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바빌론이 무너졌다!' 하고 외쳤습니다. 9 또 세째 천사가 뒤따라 와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고 자기 이마나 손에 낙인을 받는 자는 10 하느님의 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진노의 잔에 부어 넣은 순수한 포도주다. 이런 자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의 구덩이에서 고통을 당하게 불과 유황의 연기가 영원토록 올라 올 것이다

이게 바로 대접재앙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접재앙은 말세의 기간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서 제외된, 짐승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은 마귀를 추종하는 무리들, 하느님의 진노의 손길 아래 놓인 죄인들이 스스로 그들의 악함으로 괴멸되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접재앙의 원형이 이사야서에 나옵니다.

(이사51:17-23) 17 깨어라, 깨어라. 너 야훼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예루살렘아, 일어나거라. 네가 그 어지럽게 하는 술잔을 들이켰구나. 18 제가 낳은 모든 자식들 중에 저를 인도해 줄자가 하나도 없고 제 손으로 길러 낸 자식들 중에 손으로 잡아 주는 자 하나도 없는 신세, 19 네가 이 두 가지 봉변을 당하였건만 누가 있어 너를 동정하더냐? 침략과 파괴, 기근과 전쟁을 겪었지만 누가 있어 너를 위로하더냐? 20 너의 자식들은 야훼의 크신 노여움을 사 네 하느님의 책망을 듣고, 마치 그물에 걸린 노루처럼 거리의 모퉁이마다에 맥없이 쓰러져 있구나. 21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 이 불쌍한 것아. 네가 술도 먹지 아니하고 비틀거리는구나. 22 당신의 백성을 감싸 주시는, 너희 하느님, 너의 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가 네 손에서 어지럽게 하는 그 술잔을 거두리라. 나의 진노의 잔을 거두리니 네가 다시는 마시지 아니하리라. 23 내가 그 잔을 너를 괴롭히던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땅에 엎드려라. 우리가 디디고 지나가겠다.' 너에게 이렇게 기막힌 소리를 하며 너의 등을 땅바닥 밟듯 밟고 길바닥처럼 디디고 지나가던 자들의 손에 그 잔을 넘겨주리라.'

하느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에게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신 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고 하느님의 심판과 멸망으로 떨어질 자들 중에서 어떤 무리, 영적 이스라엘인 하느님의 백성들에게서는 하느님께서 그 진노의 포도주 잔을 거두시고 거기에 선택되지 못한 그 나머지 마귀의 무리에게만 그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게 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 일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무리 대신에 그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셔 버리신 것입니다.

(마태26:39) 39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그 결과 어떤 무리들, 바로 성도들은 그 진노의 잔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었고 나머지는 그 하느님의 진노의 잔을 그들의 인생동안에 그리고 내세에서도 영원히 마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심판 때에 하느님의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게 될 그 사람들이 바로 지금도 그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바로 지금 재앙과 심판과 저주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혹 이런 질문 안 드세요? ‘아니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유롭게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마시고 싶은 거 다 마시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일요일도 편안하게 여행하고 골프 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데 그들이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고 있다는 겁니까?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예배드리느라 놀 시간도 없고 사업에 있어서도 손해를 봐야 하고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 가려서 마셔야 하고 오히려 우리가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분명 이런 질문이 드실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 안 믿고 사실 때를 한번 떠 올려 보세요? 그 때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죠? 죄 짓고 싶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죄를 지었습니다. 술 취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술 취하고 거짓말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거짓말하고 나의 유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을 모함해서라도 지켜내지 않았습니까? 그 때가 정말 행복하셨습니까? 정말 평안하셨습니까?

중국 청도에 가면 예전에 그 청도를 다스리던 독일 총독 관저가 있습니다. 그 독일 총독 관저가 얼마나 근사한지 모택동이 혁명에 성공을 하고 독일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뒤 그 독일 총독 관저는 중국 공산당 간부들만 머물 수 있는 호텔로 용도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 총독 관저에는 총독이 머물던 침실을 비롯해서 직원들의 방과 하인들의 방까지 합쳐서 아주 여러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가장 훌륭한 시설을 갖춘 방은 독일 총독이 쓰던 침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택동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청도를 방문해서 그 곳에 머물게 되었을 때 그들이 전부 어디서 잤는지 아세요? 전부 1층 구석의 하인방에서 쪼그리고 잤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테러범들이 무서워서 일부러 구석방에 숨어서 잔 것입니다. 아무리 경호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테러범들이 1차 공격 지점을 분명 그 총독 침실로 잡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 호화스러운 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하인들 방에서 하룻밤 묵고 얼른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른 곳에 가서는 편히 잘 수 있었을까요? 그게 진노의 포도주 잔인 것입니다.

부모가 남긴 재산으로 형제들이 소송을 하고 다투고 갈라지고 하는 것 많이 보시지요? 소송에 이겨서 많은 재산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행복할까요? 진노의 포도주 잔입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인간에게 쾌락을 줄 수 있는 좋은 도구인 것 같지요? 하면 좋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것들에 손을 대는 순간 인 간은 망해 갑니다.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망가뜨리듯이 우리의 죄악은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노의 포도주 잔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 것들을 추구하여 많은 것을 가지게 되고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들이 여러분의 눈에 행복해 보이겠지만 그들은 지금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하느님과 영원한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막아 버리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 것을 진노의 포도주 대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서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최후를 맞게 될 것인지 분간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사49:25-26) 25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적장에게서 포로를 빼낼 수 있다. 폭군에게 사로잡힌 사람도 건져 낼 수 있다. 너와 다투던 자를 내가 몸소 치고 너의 아들들을 내가 몸소 건져 내리라. 26 그리하여 너를 박해하던 자들은 제 살코기를 먹고 제 피를 술처럼 마시고 취하리라. 그 때에 모든 인생은 알리라. 나 야훼가 너의 구원자임을, 너의 원수를 갚는 야곱의 강한 자임을.'

이렇게 죄는 자해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 자신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뒤로 미룬 채 여전히 죄의 습관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을 산다면 그는 그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죄를 멀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행복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 구원의 확신까지도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내 아들아, 내 딸아 거룩하게 살아라.’하고 안타까운 권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경주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있는 것이지 하느님을 위해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우리가 이 원리를 잘 인식하고 있게 되면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원수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달라지 게 됩니다. 나를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나, 억지를 부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자기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나를 희생시키는 그런 사람,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한다면 죽이고 싶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들이 이미 그러한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한 영원한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라는 것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밀을 안, 사도 바오로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12:14,17-21) 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18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9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서에도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20 그러니 '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셈이 될 것입니다.' 21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 내십시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요?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고 우리가 분노한다는 것은 밟는 자가 이기는 것이고 밟히는 자가 지는 것이라는 ,내가 지는 것이 손해라는 세상적 관점을 버리지 못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남을 밟는 자가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고 밟혀주는 자를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성도들은 그들의 원수를 대할 때 진노의 포도 주 잔에 취해 있는 불쌍한 자로 여겨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972년에 독일 뮌헨에서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그 때 팔레스타인 게릴라 11명이 올림픽 선수단 숙소에 침입해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이스라엘 수뇌부가 모여서 복수를 하기로 하고 중앙정보부인 모사드를 시켜서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리더들 11명을 지목해서 한 명 한 명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팔레스타인 리더들을 한 사람 죽이면 팔레스타인은 여객기 하나를 납치해서 200명씩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목을 하나 죽이면 금방 그 후임자가 나타나서 그 자리를 메워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복수전이 끝이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모사드의 리더였던 사람이 회고록에서 이렇게 그 때의 심경을 적었습니다.

이 복수가 과연 끝이 날 것인가? 내가 이 복수를 다 끝내고 나면 과연 이스라엘에 평화가 올 것인가? 이 물고 물리는 복수전에 서 우리 양쪽이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 한 사람 한 사람 목표물이 사라질 때마다 우리 팀 모두는 기쁨보다는 알 수 없는 허탈감에 사로잡혀 갔다. 그리고 그 허탈감과 함께 우리 팀원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갔다. 아마 우리에게 복수를 했던 그 사람들에게도 우리 모사드는 또 다른 복수의 팀을 보냈을 것이다.’

여러분 이게 분노를, 복수심을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녹여 버리지 못하는 자들이 마시고 있는 진노의 포도주 대접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서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때리고 죽이면서 스스로 진노의 잔을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 건 정말 잠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진짜 진노의 포도주 대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그 진노의 싸이클에서 떨어져 나온 거룩한 자들입니다.

복수는 조금 미뤄 두십시오. 미움도 하느님의 진노 뒤로 던져 버리세요. 그리고 그들을 모두 하느님의 진노에 맡겨 버리세요. 여러분은 그 때 비로소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자고요. 하느님, 어서 빨리 제 안에서도 거룩한 투쟁이 일어나게 해 주시고 완성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어서 그 거룩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게 해 주세요.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어서 어서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우리 이 거룩한 기도를 오늘도 그 하늘의 금 대접에 담아서 하느님 앞으로 올려 드리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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