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수(tpwkdygks624) 2012-02-15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마르 8,31-33 ; 루카 9,22)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마태오 16, 21>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시다 (마르 9,30-32 ; 루카 9,43-45)
그들이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마태오 17, 22 - 23>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다 (마르 10,32-34 ; 루카 18,31-34)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부활 논쟁 (마르 12,18-27 ; 루카 20,27-40)
[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 (사도행전 23, 8) ]
그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마태오 22,23 - 32>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루카 20, 27 - 40>
아드님의 권한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요한 5,28 - 29>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 23 - 26>
부활과 생명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처럼 사방을 파먹어 들어갈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히메내오스와 필레토스가 있습니다. 이자들은 진리에서 빗나가,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면서 몇몇 사람의 믿음을 망쳐 놓고 있습니다. <2티모테오 2, 17 -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요한 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요한 5, 24>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행복하고 또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이들에 대해서는 두 번째 죽음이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묵시록 20, 6>
가톨릭교회교리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사도신경>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교리서 298>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창조하실 수 있으시므로,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영혼 생명을 주실 수도 있으며,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로마 4,17)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에게 부활을 통하여 육신 생명을 주실 수도 있다.
(2012/02/15) : [마태오복음서] 그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교리서 298>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창조하실 수 있으시므로,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영혼 생명을 주실 수도 있으며,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로마 4,17)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에게 부활을 통하여 육신 생명을 주실 수도 있다.
(2012/02/15) : [마태오복음서] 그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교리서 349> 제8일.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날이 밝았다. 그날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제7일에는 첫 번째 창조가 완성되었고 제8일에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
[인간; 육체와 영혼으로 하나인 존재] 인간은 하느님께 창조되고 마지막 날에 부활할 자기 육체를 좋게 여기고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교리서 366> 교회는 각 사람의 영혼이 ─ 부모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고, 불멸한다고 가르친다.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
<교리서 537>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서, 당신 세례 안에서 죽음과 부활을 미리 겪으시는 예수님과 성사적으로 비슷하게 된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속죄하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예수님과 함께 물에 잠겼다가 그분과 함께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로마 6,4).
<교리서 54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하느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징표들과 제자들의 파견을 통해서 사람들을 당신께 불러 모으신다. 그분께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당신 파스카의 위대한 신비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실현하실 것이다.
<교리서 556> 공생활 직전에는 세례가, 파스카 직전에는 거룩한 변모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의 세례인 ‘첫 번째 재생의 신비’를 드러냈으며, 거룩한 변모는 우리 자신의 부활인 ‘두 번째 재생의 성사’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에 참여한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필리 3,21)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우리가 미리 맛보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도 한다.
<교리서 560>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이신 메시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통해 완성하시려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낸다.
<교리서 562>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그분을 닮아야 한다.331)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신비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동화되어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마침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
<교리서 571>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신비
<교리서 62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히브 2,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 안에서 당신 아들이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도록”(1코린 15,3) 마련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을 맛보도록’, 곧 죽음의 상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과 부활하신 순간 사이에 그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상태를 경험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상태는 그분께서 묻히시고 저승에 가신 신비이다.
<교리서 366>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
<교리서 445> 예수님의 부활 뒤 ... 영광을 받은 인성의 권능 안에서 드러난다.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4)
<교리서 625>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르심으로써, 부활 이전에 고통당할 수 있는 상태와 부활하신 현재의 영광스러운 상태 사이에 실제적인 연결 고리가 형성된다. 바로 ‘살아 계신’ 분, 곧 그리스도만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묵시 1,18).
<교리서> 하느님(성자)께서는 자연 질서에 따라 죽음이 영혼과 육신을 갈라놓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그러나 스스로 삶과 죽음이 만나는 장소가 되시고자, 부활로써 육신과 영혼을 다시 결합시키셨다. 이는 죽음으로 생기는 자연 분해를 멈추게 하시고, 당신 스스로 분리된 부분들을 위한 결합의 근원이 되심으로써 이루어졌다.
<교리서 626> 죽임을 당하신 “생명의 영도자”께서 바로 “부활하여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죽음으로 분리된 그 영혼과 육신을 계속 지니고 있음은 당연하다.
<교리서 639>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는 신약 성경이 증언하듯이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들을 보여 주는 실제 사건이다.
56년경에 이미 바오로 사도는 ... 다마스쿠스 성문 근처에서 개종한 뒤에 알게 된 부활에 대한 살아 있는 전승을 말하고 있다.
<교리서 640>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의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시체가 무덤 안에 없다는 사실은 달리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빈 무덤은 모든 사람에게 핵심적 징표가 된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인정하는 첫걸음이었다.
<교리서 643> 그리스도의 부활을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것으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며, ...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마르 16,14).
<교리서 644> 부활이 사도들의 신앙의 (또는 경솔한 신앙의) 산물이었다는 가설은 신빙성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다.
[인간; 육체와 영혼으로 하나인 존재] 인간은 하느님께 창조되고 마지막 날에 부활할 자기 육체를 좋게 여기고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교리서 366> 교회는 각 사람의 영혼이 ─ 부모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고, 불멸한다고 가르친다.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
<교리서 537>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서, 당신 세례 안에서 죽음과 부활을 미리 겪으시는 예수님과 성사적으로 비슷하게 된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속죄하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예수님과 함께 물에 잠겼다가 그분과 함께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로마 6,4).
<교리서 54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하느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징표들과 제자들의 파견을 통해서 사람들을 당신께 불러 모으신다. 그분께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당신 파스카의 위대한 신비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실현하실 것이다.
<교리서 556> 공생활 직전에는 세례가, 파스카 직전에는 거룩한 변모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의 세례인 ‘첫 번째 재생의 신비’를 드러냈으며, 거룩한 변모는 우리 자신의 부활인 ‘두 번째 재생의 성사’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에 참여한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필리 3,21)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우리가 미리 맛보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도 한다.
<교리서 560>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이신 메시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통해 완성하시려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낸다.
<교리서 562>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그분을 닮아야 한다.331)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신비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동화되어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마침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
<교리서 571>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신비
<교리서 62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히브 2,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 안에서 당신 아들이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도록”(1코린 15,3) 마련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을 맛보도록’, 곧 죽음의 상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과 부활하신 순간 사이에 그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상태를 경험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상태는 그분께서 묻히시고 저승에 가신 신비이다.
<교리서 366>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
<교리서 445> 예수님의 부활 뒤 ... 영광을 받은 인성의 권능 안에서 드러난다.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4)
<교리서 625>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르심으로써, 부활 이전에 고통당할 수 있는 상태와 부활하신 현재의 영광스러운 상태 사이에 실제적인 연결 고리가 형성된다. 바로 ‘살아 계신’ 분, 곧 그리스도만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묵시 1,18).
<교리서> 하느님(성자)께서는 자연 질서에 따라 죽음이 영혼과 육신을 갈라놓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그러나 스스로 삶과 죽음이 만나는 장소가 되시고자, 부활로써 육신과 영혼을 다시 결합시키셨다. 이는 죽음으로 생기는 자연 분해를 멈추게 하시고, 당신 스스로 분리된 부분들을 위한 결합의 근원이 되심으로써 이루어졌다.
<교리서 626> 죽임을 당하신 “생명의 영도자”께서 바로 “부활하여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죽음으로 분리된 그 영혼과 육신을 계속 지니고 있음은 당연하다.
<교리서 639>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는 신약 성경이 증언하듯이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들을 보여 주는 실제 사건이다.
56년경에 이미 바오로 사도는 ... 다마스쿠스 성문 근처에서 개종한 뒤에 알게 된 부활에 대한 살아 있는 전승을 말하고 있다.
<교리서 640>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의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시체가 무덤 안에 없다는 사실은 달리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빈 무덤은 모든 사람에게 핵심적 징표가 된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인정하는 첫걸음이었다.
<교리서 643> 그리스도의 부활을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것으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며, ...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마르 16,14).
<교리서 644> 부활이 사도들의 신앙의 (또는 경솔한 신앙의) 산물이었다는 가설은 신빙성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