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교회사 외적 예수님과 제자 관련 유물/기록들

2012. 2. 1. 오후 3: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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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교회사 외적 예수님과 제자 관련 유물/기록들

1.먼저 "예수님의 실존성을 규명, 언급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니 행여나 그런 논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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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금까지 이야기 전개도(등장인물 A B C D)

A 왜 탈출기가 이집트 역사에는 나오지 않는가?
B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현재) 예수님의 모습이 성경과 교회사외 일반 역사기록에는 거의 전무하며, 남아있는 기록조차도 신빙성이 없다는 것과 상통할 듯 싶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의미 VS 주변인들에게는 별 일 아니다.
C 무지막지 한 표현이다

B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가령, 그 당시 로마의 역사기록(물)이나 기타 국가 지역에서 기록에서 찾아주시어 무지막지함을 증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성경과 교회사는 분명 제외라고 했습니다.)
D  성경과 교회사 외적 예수님과 제자 관련 유물/기록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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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경과 교회사 외적 증거를 보면 요세푸스, 타키투스,  플리니우스2세, 수에토니우스, 바빌론 탈무드 등등의 저서 편지에서 잠깐씩 나오지만 거의 예수 사후 그리스도 공동체의 활동을 언급하는 내용이고,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거론되는 대표적인 기록이 아마 요세푸스(유대고대사), 바빌론 탈무드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빌론 탈무드에 언급된 예수의 모습은 덮어두고라도 너무 후대의 기록물로 보이는 문제점이 있고,  요세푸스의 저서의 사본도 상당히 후대의 것이라는 것은 덮어두고라도  친저성에 대한 논란은 수백년을 이어져 왔습니다.
'전체가 아니다'는 주장부터 부분 가필,첨삭이다, 사실이다 등등
특히 예수님이 언급된 대목이 첨가되었다는 의혹이 가장 많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옆길로 빠질 수 있으니 한가지만 언급하면  요세푸스의 다른 저서인 유대전쟁사를 보면 그 내용이 거의 그대로 위에 언급된 유대고대사에 실렸는데, 난데없이 없는 내용(예수님 이야기)이 중간에서 어색하게 불쑥 뛰어들고 있는 모슬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이 있지만, 그러한 이유로 요세푸스의 저서의 내용중 일부를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로 간주하기에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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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탈출기가 이집트에 역사기록에 없는 이유로 부터 출발된 제 생각은 "믿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의미 VS 주변인들에게는 별 일 아니다."
그러니 이집트 기록에는 없을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역사 흔적일 것이며  이것은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들도 마찬가지로 믿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보지만 그 주변인들에게는 별 일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
그 역사적 기록물이 거의 전무하거나 있다해도 신빙성(선이든, 악이든지 그리스도교의 후대의 영향으로) 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류 역사상에 실존하셨다는 근거는?
신교선 가브리엘(인천  신부)
  
비신자들이 종종 예수가 역사상 실존 인물인지에 관해 질문해 옵니다. 예수께서 실제로 존재하신 분임은 틀림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근거가 있는지요. 자세히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끄는 말
 
우리 인류 역사 안에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나 이 점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는 실상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예수께서 당신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참으로 인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신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역사적으로 실존하셨음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를 크게 두 가지 테두리 안에서 살펴보겠다. 
우선 그리스도교 밖의 문헌을 중심으로, 다음으로 그리스도교 문헌, 즉 신약 성서 안에 나타난 예수에 관한 역사적 근거를 종합해 보고자 한다.
 
 
‘예수’란 이름의 어원
 그리스어 예수스(Ιησους)는 히브리말 여수아[jesua : 바빌론 유배 이전엔 여호수아(jehosua)로 불렀으며 야훼께서 구원이시다란 뜻에서 유래한다.]를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며, 이스라엘인들이 매우 즐겨 부르던 이름이다.(구약 성서 1마카 2,55; 2역대 31,15; 에즈 2,6. 3,9; 느헤 8,7; 집회 49,12; 즈가 3,1; 신약 성서 사도 7,45; 히브 4,8; 루가 3,29; 콜로 4,11; 마태 1,21 등에 나타난다.)
 
마태오 복음 1장 21절에서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요셉에게 명한다 :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여기서 “예수”란 이름이 히브리어 “구원하다, 돕다”라는 동사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 외의 문헌에서 찾아본 예수 
그리스도교 문헌 밖에서 예수에 관한 언급을 찾아보기는 실상 매우 힘들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리스나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어떤 문필가도 팔레스티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그들은 사실 유다인들을 그저 하찮게 여겼을 뿐이다. 기원후 초세기의 유다인 문필가들 또한 아직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어린 그리스도교와 그 설립자(?)를 의도적으로 간과한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전승되어 오는 일련의 증거들(예를 들면 사복음서들과 신약 성서 그리고 그 밖의 디다케 등 초세기의 예수에 관한 그외 문헌들)이 바로 예수의 역사적 실존 문제가 초세기부터 그리스도인 공동체 밖에서도 곧 그를 알았던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의문시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는 근거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스도교 밖의 문헌 증 예수에 대하여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는 라틴어 문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타치투스(Tacitus)는 그리스도인들을 네로 황제가 어떻게 박해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며 또한 플리니우스(Plinius)는 비티니엔(Bithynien)의 사절로서(기원후 l1l~113년) 트라얀(Trajan) 황제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 “그들은 어떤 특정한 날 해뜨기 전에 한데 모여 한 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행위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찬미가들을 부른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저녁 나절에 또 한 번 한데 모여 순수하게 음식을 서로 나눕니다”(Epist. lib. 10. 96) 위 의 두 가지 라틴어 문헌 외에 예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다계 문헌으로는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이 예수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밖의 문헌 중 가장 상세한 자료로 뽑힌다. 그는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비록 세례자 요한이 선한 사람이었으며 친구들에 대하여 의롭게 대하고 하느님께 성실히 살도록 유다인들을 올바른 삶으로 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례를 받도록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게 했던 것이다”(Ant 18,5,2).
 
예수에 대해서도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에서 매우 상세히 전해 주고 있다 : “그 당시에(곧 빌라도 지배 하에) - 우리가 감히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치면 - 한 현자 예수가 등장하였다. 즉 그는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행적들을 이루었고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수많은 유다인들과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했다. 비록 빌라도가 우리 백성의 최고 지도자들의 압력에 의하여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심판했을지라도 이미 그(예수)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그를 충실히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언자들이 그의 운명과 그에 대한 수천 가지 다른 기적적인 사실들을 예언한 바와 같이 삼일째 되는 날 다시 살아나 (사람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스스로를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그리스도의 백성이 존속하고 있다”(Ant l8,3,33).
 
또한 라삐 문헌도 예수와 초대 그리스도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런 라삐 문헌들이 기원후 초세기의 라삐들의 제반 해설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때 여기서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도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사실로 확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교 문헌에 나타난 예수 
예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문헌으로 바오로 서간(서기 50년 이후)을 꼽는다. 사도 바오로 자신은 예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오로 사도는 특히 다음의 서간에서 예수에 관하여 직접 언급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에 대하여 : “그분(예수)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로마 1,3). “그러나 때가 왔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갈라 4,4).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분 :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실 때에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후손들에게’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한 사람이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갈라 3,16).
 
예수의 거룩한 삶에 대하여 :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2고린 5,21)
비록 사도 바오로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생각되지만 그는 자신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사도 9장) 예수에 관하여 전해 받은 갖가지 사건들을, 즉 예수에 관해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음이 다음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성체성사 설정에 관하여 :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1고린 11,23-25).
 
예수의 죽음과 묻히심 그리고 부활과 발현에 대하여 :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1고린 15,3-5).
 
사도 바오로는 또한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 구원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 “이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필립 2,6-11 참조).
 
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가 복음, 그리고 요한 복음 등 사복음서들은 예수의 제자들의 증언과 초대 교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들 복음서들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들이 밝혀져 드러난다 : 복음서들은 결코 예수의 생애를 저술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이 예수의 전기식으로 이해되거나 그렇게 읽혀져서도 안되겠다. 또한 그러기에 복음서들 안에 묘사된 예수의 행적이나 말씀들을 연대순으로 확정지으려 해서도 옳지 못하다고 본다.
 
위에서 살펴본 점들로 미루어보아 예수에 관하여 가장 확실히 전해 주는 문헌은 신약 성서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신약 성서 저자들이 - 복음 기자들을 포함하여 - 예수의 생애를 상세히 기록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그의 삶을 연대 순으로 묘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 많은 이들이 그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데 열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특히 요한 복음에서 두드러진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없이 행하셨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0-31).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시도와 나아가 예수의 존재를 신화적인 영역 안에서만 이해하려는 시도는 학문적으로도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오늘날 그런 사도를 하는 이도 없을 것같다.
  
맺는 말
 우리는 예수가 우리 인류 역사 안에 실제로 존재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매우 짧게나마 간추려 보았다. 이러한 간추림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에 관하여 가장 상세히 그리고 깊은 관심을 갖고 전해 주는 문헌은 바로 신약 성서 자체임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네 복음서들과 바오로 서간을 통하여 우리는 그 저자들이 이 지구상에, 보다 정확히 말해 이스라엘에 다윗 후손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강생/ 육화 Incarnatio 교리)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선포하여 회개를 통한 구원을 부르짖다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가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구원자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하고 있음을 본다. 신약 성서에 따르면, 한마디로 “예수”가 곧 “그리스도”이시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의 두 가지 존재 양식을 로마 1장 3-4에서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 “그분은(하느님의 아들) 인성으로 말하면(κατα σαρκα)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κατα πνευμα)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l베드 3,18 참조).
 
인성(人性) :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실존 양식, 다윗 = 인간의 후손 - 역사 내적인 실존 양식의 범주에 속한다. 
신성(神性) : 부활하여 현양된 상태 - 천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영역에 속하다.
 
이들 두 존재 양식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예수 부활 이전이나 이후에도 같은 그리스도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가 “예수” 안에서 “피조물”이 되심을 통해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곧 피조물을 구원하신다(필립 2장 참조).
[경향잡지, 1990년 10월호]


[교회상식 요모조모] 85. 역사적 예수

 ○질문 :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모두 성서에 근거한 것입니다. 로마나 이스라엘 민족이 남긴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있다면 어떻게 기술되었는지요. 우영호(베다 71 수원교구 이천 아미동본당)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110년께 쓴 연대기 에서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은 총독 빌라도가 처형한 사람의 이름에서 나왔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의 터키지역에서 총독으로 재직하던 플리니우스 2세(Plinius Secundus)는 112년께 당시 로마 황제에게 올린 서간에서 이 지역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 해가 뜨기 전에 미사를 드리는데 그때 예수를 신처럼 섬긴다 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바빌론 탈무드에도 예수는 오설을 퍼뜨렸기 때문에 처형되었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역사적 예수에 대한 성서나 교회사 관련 자료 밖의 기록은 이 정도가 거의 전부입니다. 다른 일반 역사 자료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힘든 것은 당시로선 예수님이 큰 중요성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수없이 많았던 종교들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성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복음서에서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전기적 성격의 역사성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라는 한 인간의 일생을 엮은 전기가 아닙니다. 복음서는 연대 등을 기술하려 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역사적 실존 인물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원자로 믿고 선포하던 초대 공동체의 신앙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지만 복음서가 역사서가 아니라고 해서 단순히 꾸민 이야기거나 교훈만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오해해서도 안됩니다. 복음서는 분명히 역사적 나자렛 예수를 중심으로 기록된 구원의 기쁜 소식이요 선포문(요한 20 31)입니다.
[평화신문  200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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