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의 시작... 그 종결을 위하여'

2012. 1. 10. 오후 12:53:30

글자
문경준 자유게시판   183772                    2012/01/10


원 제목은 '다툼의 시작... 그 종결을 위하여' 입니다.

그때는 '지금 왜 다투고 있는가'가 중요했더랬지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끝낼까'가 또 중요했더랬지요.
지금은 '처음부터 다투지 않으려면'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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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의 원인을 생각해 봤습니다.
 
구구단이 문제더군요.
그놈의 빌어먹을 구구단이 문제더라구요. 
 
1. 다툼의 원인
처음부터 대화의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매번 그래 왔습니다.
 
한 중학생이 구구단을 외웁니다. 6단입니다. 의기양양하게 동네 형 동생들 앞에서 줄줄 외웁니다.
"육일은 육, 육이 십삼, 육삼 십칠, 육사 이십사, 육오 삼십, 육육이 삼십칠..."
 
대분분의 중학생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은 문제가 있군요.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초딩이 끼어듭니다.
 
"형, 육이는 십삼이 아니고 십이야. 육삼은 십팔이고, 육육도 틀린 것 같아."
 
이건 맞느냐 틀리냐의 문제입니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고 형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구단을 잘 외운다고 초딩이 중학생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구구단은 '일단' 제대로 외워야 합니다.
 
2. 다툼의 시작
그 중학생이 교과서를 다시 뒤져보고 틀린 걸 고치면 모든 게 끝납니다. 그 중학생은 이제 성적이 오를테고요...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지적을 받은 중학생은 자존심이 상합니다.
 
교과서를 다시 열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가 틀린 것을 찾아낸 초딩이 괘씸하기만 합니다.
 
"그래, 너 잘났어, 임마!" "이게 어따 대고 잘난 척이야?" 하고 꿀밤을 한 대 먹입니다.
 
3. 다툼의 발전
근데 이 초딩이 성질이 좀 더럽습니다. 꿀밤 한 대로 물러서질 않는군요.
 
직접 교과서를 펼쳐서 그 중학생에게 보여 줍니다. "왜 때려? 이것 보라구. 육이 십이잖아! 틀린 건 형인데 왜 때리냐구!" 바득바득 대듭니다."
 
중학생은 이제 돌아 버립니다. 이제는 구구단은 이미 관심도 없습니다.
"어쭈구리? 대들어? 넌 임마 싸가지가 없어! 그래서 넌 좀 맞아야 돼!" 그리곤 이번에 뺨따귀 한 대.
 
초딩이 맞고만 있지 않는군요.
"형이면 다야? 그러고도 형이야? 웃기지 말고 공부나 하란 말이야! 씨X..."
 
이렇게 커집니다.
 
4. 다툼에서 몰매로
중학생 형이 흥분하는 걸 지켜본 친구들이 있습니다.
 
일부는 친구가 당하는 걸 보고는 패를 이룹니다.
"어쭈구리? 초딩 놈이 형아를 가르쳐? 이 싸가지 없는...!" 이러면서 몰매를 가합니다.
 
일부는 말립니다.
"왜 그래, 임마. 틀린 건 넌데 왜 애꿎은 동생을 괴롭히는 거야? 가서 공부나 해!"
 
이러다 보니 형들 친구들이 좀 갈리는군요.
 
중학생을 편든 친구들은 이미 자기 친구가 '틀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구단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요.
그래도 이젠 물건너 갔습니다. 구구단은 더이상 안중에도 없습니다.
 
동네방네 소리를 지릅니다. 친구들을 더 모읍니다.
"야, 다들 모여. 초딩놈이 싸가지 없이 형한테 대든다! 조사 불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하는 친구들이 모여듭니다. 문제의 원인은 알아볼 생각도 없습니다.
"어딨어, 그 싸가지? 오늘 너 죽었어, 임마!"
 
이제부터는 꿀밤이나 빰따귀가 아닙니다. 이종격투기에서나 쓰는 무술은 다 동원됩니다. 암바, 파운딩, 가격...
 
처음에 초딩을 두둔하던 형들은 이들이 어떤 친구들인지 잘 압니다.
그렇다고 같이 주먹질을 할 형들이 아닙니다.
애써 말립니다. 그만 좀 하라고...
 
중학생 형들은 계속 때립니다.
중학생 형들은 계속 욕합니다. "이 싸가지~ "
중학생 누나들도 가세해서 꼬집고, 할퀴고, 침까지 뱉습니다. "얜 옛날부터 재수 없었다니까!"
동네 아저씨도 이유도 모른 채 같이 팹니다. 그러면서 이럽니다.
"이런 부모도 몰라보는 후레자식..." ??????????
 
구구단은 어디로 갔는지 신경도 안 씁니다.
누가 틀렸고 맞았는지 신경도 안 씁니다.
그냥 형에게 대든 초딩만 틀린 겁니다.
구구단이 아니라 싸가지가 틀렸다는 겁니다.
이제는 육이는 십이가 아니라 십삼이 맞답니다.
이제는 육육이 삼십육이 아니라 삼십칠이 맞답니다.
 
 
이제는 구구단은 없습니다.
그냥 자존심만 찾으면 됩니다.
내일 시험에서 빵점을 맞아도
저 얄미운 초딩은 어쨌든 작살내야 합니다.
 
 
 
5. 다툼의 종결을 위하여...
구구단만 봅시다.
구구단이 잘 외워졌는지만 봅시다.
구구단을 틀렸으면 어디가 틀렸는지 봅시다.
구구단을 틀렸으면 다음엔 맞게 외우도록 합시다.
 
만약,
 
초딩이 처음부터 '형은 그것도 몰라? 그러고도 중학생이야?"라고 했다면,
그건 맞아도 쌉니다.
 
아무리 구구단을 잘 외고 시를 잘 외워도 그건 싸가지입니다.
그건 맞아도 쌉니다.
 
동네에서 쫓겨나도 쌉니다.

그러나
 
초딩이 처음에 '육이는 십삼이 아니고 십이야."라고만 했다면, 정말 그랬다면 말입니다.
먼저 그 답이 맞는지 틀렸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초딩이 맞으면 그 다음부터는 틀리지 않으면 됩니다.
자존심 상하게 초딩에게 고맙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앞으로 구구단만 잘 외우면 됩니다.
 
그게 중학생이 중학생 다운 겁니다.
감히 초딩이 중학생을 가르치냐고 주먹부터 꺼내는 것은
 
중학생이 아닙니다.
중딩도 아닙니다.
그냥 학교 깡패일 뿐입니다. 
 
 
.................
 
옛날에 맹자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시비지심 [是非之心]
 
 
 
 
요약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본문

是 : 옳을 시
非 : 그를 비
之 : 의 지
心 : 마음 심


다음은
맹자사단설(四端說) 가운데 나오는 말로,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있는 말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이 말은 맹자가 독창적으로 주창한 인성론으로서 '사단설' 또는 '성선설(性善說)'이라고도 한다. 성선설이란 사람의 본성은 '선(善)'이라고 보는 학설이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의지적인 확충작용에 의해 덕성으로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의 마음이 4단(四端)이며, 그것은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의 근원을 이룬다. 맹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왕도정치인데, 이 왕도정치가 가능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곧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보고 그 마음을 확대하여 나가면 '인·의·예·지'라는 4가지 덕을 완성하게 되고, 다시 이 덕행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교화시킴으로써 왕도정치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왕이 먼저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가 있다.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 여기서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여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을 말하는데, 이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마치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굴리는 것과 같이 아주 쉽게 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며 성선설을 입증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제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다 놀라고 불쌍한 마음을 가진다.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함도 아니며,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하여 그러는 까닭도 아니며, 그 원성을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맹자는 사람들은 다 차마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앞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곧, 어린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워 근심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반드시 달려가 구하려고 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근본 마음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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