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에 담긴 영성 - 사도 성 베드로
(14세기. 터키 이스탄불. 코라 구세주 수도원 성당. 모자이크)
초대 교황 베드로의 이름을 되찾아 줍시다.
문경준(jeunerhino) / 2012-01-14 오후 1:50:42 -**-자유게시판183936
지금은 게시판을 잠깐 떠나 계시는 권태하 선생님의 글 중에는 과거 청장년기를 보내신 '인도네시아'에 대한 글이 많이 있다. 몇 년 전에도 '짜이짜이 부족의 한글 도입'을 계기로 다시 인도네시아에 다녀오실 정도로 애정이 깊으신 분이다.
그 분의 글 중에서 한 조선인 독립영웅(조선명 : 양칠성[梁七星])의 일본식 이름(야냐카와 시치세이[梁川七星)을 끈질긴 추적 끝에 제 이름을 찾아 주셨다는, 그로 인해 대한민국 신한국인상(賞)을 수상하셨다는 얘기는 지금도 선하다.
만약 우리가, 헬라 문화 속에서 헬라식 이름으로 바뀐 한 유다인의 이름을 찾아 준다면, 아니 찾으려고 이쪽 저쪽을 찾아 헤맨다면 과연 칭찬을 들을까, 욕을 들을까?
지금까지도 횡행하는 '종교다원주의' 또는 '자의적 성경해석'이라는 철퇴를 맞고 다시 이곳을 떠나게 되는 불상사나 벌어지지 않을까 겁부터 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그 원래 이름을 찾아 주자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베드로다. 예수님의 직제자이자 우리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의 초대 교황이신 베드로 사도의 원래 이름을 찾아 주자고 하는 것이다. 베드로라는 외국 이름(우리나라로 치면 일본식 이름)을 바로 예수님이 불렀을, 또 예수님 당대에서부터 로마에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불렸을 자기 이름, 즉 케파로 바꾸자는 것이다. 아니, 바꾸는 게 아니라 되찾아 주자는 것이다.
1. 베르로를 케파로 ‘다시’ 바꿔야 하는 이유 - 그 하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고 알고 있다. 교회도 그렇게 가르치고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과연 그랬을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시몬(또는 시메온)이라는 이름의 첫 제자에게 예수님이 새로 지어 주신 이름은 '케파'이다. 베드로는 그 번역일 뿐이고... 그 뜻이 '바위'라는... 그게 다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시몬에게 새 이름을 주시는 얘기는 두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마태오복음서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복음서이다. 여기서부터 풀어보자.
먼저, 예수님은 당시 유다지방에서 쓰는 '아람어'를 쓰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리스어(정확히는 헬라어)를 배우거나 쓰셨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요한복음에서도 입증하듯이 베드로는 '번역어'이다. 마태오복음의 저자가 외국에 사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복음서를 기술하면서 케파를 베드로로 번역했던 것. 이게 바로 내가 베드로의 원 이름을 되찾아 주자는 첫번째 이유이다.
내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문헌이 있다. 바로 교황청이 인정한다는 영문성경 NIB이다. 해당 구절의 주석을 보자. 마태오복음 16장 18절에 대한 주석이다. 영어 번역은 생략한다.
13 [18]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the Aramaic word kepa - meaning rock and transliterated into Greek as Kephas is the name by which Peter is called in the Pauline letters (⇒ 1 Cor 1:12; ⇒ 3:22; ⇒ 9:5; ⇒ 15:4; ⇒ Gal 1:18; ⇒ 2:9, ⇒ 11, ⇒ 14) except in ⇒ Gal 2:7-8 ("Peter"). It is translated as Petros ("Peter") in ⇒ John 1:42. The presumed original Aramaic of Jesus' statement would have been, in English, "You are the Rock (Kepa) and upon this rock (kepa) I will build my church." The Greek text probably means the same, for the difference in gender between the masculine noun petros, the disciple's new name, and the feminine noun petra (rock) may be due simply to the unsuitability of using a feminine noun as the proper name of a male. Although the two words were generally used with slightly different nuances, they were also used interchangeably with the same meaning, "rock." Church: this word (Greek ekklesia) occurs in the gospels only here and in ⇒ Matthew 18:17 (twice). There are several possibilities for an Aramaic original. Jesus' church means the community that he will gather and that, like a building, will have Peter as its solid foundation. That function of Peter consists in his being witness to Jesus as the Messiah, the Son of the living God. The gates of the netherworld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the netherworld (Greek Hades, the abode of the dead) is conceived of as a walled city whose gates will not close in upon the church of Jesus, i.e., it will not be overcome by the power of death.
어떤가? 내 주장도 일리가 있지 않나?
2. 베드로를 케파로 ‘다시’ 바꿔야 하는 이유 – 그 둘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를 ‘베드로’라고 부른 적이 없다. 최소한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 속에서는 그렇다(다 뒤진 것은 아니니 한두 개는 나올지도 모르겠다. 쩝). 바오로 사도는 항상 ‘케파’라고 불렀으며, 자신의 편지에서도 그렇게 썼다. 베드로의 이름은 바로 ‘케파’였다. 예수님께서 바꿔 주셨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불렀던 이름, 바로 ‘케파’였다. 이 이름을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바꿔 부르면 안된다.
케파가 베드로로 둔갑한 이유는 성경이 기록될 당시 – 특히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그리스도교인 사회에는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바위’를 뜻하는 이름 ‘케파’를 헬라어(또는 그리스어)로 바꿨다. 물론 그 이름이 가지는 뜻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복음서보다 일찍 기록되었다는 바오로 서신은 ‘케파’이다.
당시에 베드로는 ‘케파’로 불렸지, 절대 ‘베드로’라고 불리지 않았다([최소한]않았을 것이다). 왜냐고? 그게 그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살아 생전에 말이다.
3. 베드로를 케파로 ‘다시’ 바꿔야 하는 이유 – 그 셋
케파는 바로 ‘바위’라는 뜻이다.
혹자는 같은 뜻이니 그냥 쓰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다르다.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와, 그 의미를 갖고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은 다르다. 그 이름은 ‘고유명사’다. 주인 이외에 아무도 바꾸면 안되는…
예를 들어볼까?
아인쉬타인이라는 이름은 ‘EinStein’으로 우리말로 하면 ‘하나의 돌멩이’이고, 영어로 하면 ‘A(또는 One) Stone’이다. 그리고… 성경식으로 하면 바로 ‘베드로’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아인쉬타인을 ‘돌멩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스톤’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다. 아무리 신앙심이 강해도 ‘베드로’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아인쉬타인은 세계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어도 ‘아인쉬타인’일 뿐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아인쉬타인'이지 '일석'이나 '베드로'가 아니다.
구약의 영웅 이사악의 이름 뜻은 ‘웃음’이란다. 그 의미 때문에 이사악을 ‘웃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강대국 미국이 사용하는 언어라도 이사악은 ‘이사악’이다.
4. 베드로를 케파로 ‘다시’ 바꿔야 하는 이유 – 그 넷 : 세계 평화를 위하여…
초대교회 이후 줄곧, 유다인들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을 못 박도록 로마를 압박한, 그래서 나중에 자신들이 스스로 저주를 뒤집어 쓰겠다고 선언한 유다인들이다.
로마제국 또한 유다인들을 경멸했다.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후에도 그랬다.
그런 로마가, 그런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들의 웃어른, 즉 초대 교황의 ‘유다식 이름’을 달가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아니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이다. 그래서 ‘케파’는 자연스레 ‘베드로’로 굳어져 갔다.
마치 일제강점기의 ‘양칠성’이 ‘야나카와 시치세이’가 되어 권태하 선생님의 노고를 기다려 왔듯이…이제 이스라엘의 저주는 풀렸다.
지금은 유다인이라고 해서 경멸에 찬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못 박을 당시의 유다인관(觀)’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도 없다.
지금 이스라엘은 세계의 폭약 창고이다. 세계 유수의 종교 –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다교 –가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성지로 여기고 종주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세계 강대국이 자신의 안방인 양 군침을 흘리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베드로라는 ‘극히 강대국적’이고, ‘극히 서양적’이며, ‘극히 왜곡된’ 이름을 버리고, ‘원래의 이름’이자, ‘그리스도가 지어 준 이름’인 ‘케파’를 살려냄으로써 세계 평화에 ‘아주 작지만 소중한’ 일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도 꿔 본다.
이 생각은 벌써 수 년째 해보는 것이다.
몇 번 이런 얘기를 꺼내 봤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이유야 여럿 있었겠지만, 벌써 길어졌다.
나는 지금 다시 꺼내 보는 것이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절대…
부탁하건대 절대 종교적 다원주의니, 자의적 해석이니, 뉴 에이지니 같은 허망한 얘기는 꺼내지 말아달라.
부탁하건대 절대 종교적 다원주의니, 자의적 해석이니, 뉴 에이지니 같은 허망한 얘기는 꺼내지 말아달라.
난 그런 것 모른다. 관심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