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2016. 1. 31. 오후 5:52:59

글자
십자가 위 마지막 메시지는 자비와 희망


▲ 골고타 언덕의 ‘주님 무덤 성당’. 리길재 기자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형 죽음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맺은 하느님과의 새로운 계약은 ‘인간의 구원’이다. 구원은 인간의 영과 마음, 육신 모두를 궁극의 원래 자리. 즉 원죄 이전의 하느님과 하나 된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구원은 예수님의 피로 맺는 새 계약인 ‘성체성사’를 통해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네 복음서가 전하는 주님의 수난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최후를 맞으시기 전 마지막으로 일곱 가지 말씀을 하셨다. 이 ‘가상칠언’(架上七言)은 속죄와 구원으로서의 예수님의 죽음을 웅변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처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십자가형으로 이끈 이들의 용서를 하느님께 청하신다. 그리스도의 자비가 드러나는 말씀이다. 처형장에 있던 로마 백인대장이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고 고백하는 것으로 보아 로마인이던 유다인이던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예수님께서 청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무지에 대한 고백은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주랑에서 한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에서 잘 드러난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사도 3,14-17).

바오로 사도도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선포한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 1,13).

그리스도의 용서는 교회의 삶으로 곧장 받아들여졌다. 스테파노는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라고 기도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주님께서 용서해 달라고 청했던 이유로 무지를 내세우신 것은, 그리고 무지가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보시는 것은, 모든 시대와 모든 이에게 위로의 원천이 된다”고 설명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함께 처형되는 오른편 강도에게 하신 말씀이다. ‘낙원’을 뜻하는 성경 본문의 헬라어 ‘파라데이소스’(παραδεισο)는 원래 ‘페르시아 왕의 정원’을 뜻하는 말로 아름드리나무로 우거진 숲과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선망의 동산이었다. 이 낙원을 구약의 창세기는 ‘에덴동산’(창세 2,10)으로, 바오로 사도는 ‘셋째 하늘’(2코린 12,2)로 표현하는데 이는 새 하늘 새 땅이 열릴 때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묵시 21,2)을 뜻한다.

강도가 예수님께 이끌려 그분과 함께 바로 천국 낙원에 들어간 것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주님은 조롱 한가운데에서도 언제든지 당신께 청하는 것을 들어주시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참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희망과 위안을 준다.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간 오른편 강도에 대해 “그는 예수님의 신비를 알아차렸기에 곧바로 아버지와의 친교를 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마르 15,34).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모두 예수님께 9시께 십자가 위에서 큰 목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으셨다고 한다. 두 복음서는 예수님의 절규를 히브리어와 아람어가 섞인 그대로 전하고 다시 헬라말로 번역한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이 외침은 여느 버림받은 자의 탄신이 아닌 구원을 청하는 참된 메시아의 외침이다. 예수님의 수난사 전체를 관통하는 이 외침은 시편 22편에도 나오는 메시아 수난에 관한 모든 예언을 완성하는 주님의 기도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시편 주해를 통해 이 부르짖음을 ‘새로운 기도’라며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며 동시에 몸으로서 기도하신다”고 풀이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모든 구속 사명을 “다 완성했다” 고백


▲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모든 행위를 성부의 뜻에 따라 행동하시지만 스스로 원해서 따르시는 행동하셨다. 사진은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성당 안에 있는 예수님의 빈 무덤. 리길재 기자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네 복음서는 모두 십자가 아래에서 비통해 하는 여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마리아 막달레나,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등이었다(마르 15,40-41; 마태 27,55-56; 루카 23,49; 요한 19,25).

십자가 위에서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선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라 하시며 어머니 곁에 사랑받는 제자를 남기시고, 동시에 그를 그녀의 아들로 만드셨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인이시여”라고 부른 것은 성모님을 ‘모든 여인의 대표’로 승격시킨 호칭이라고 가르친다. 하와는 인류에게 죄를 남겨준 여인이나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 여인이다.

요한 묵시록은 하늘에 나타나는 여인의 큰 표징(묵시 12,1-6)을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낳는 산고를 겪을 것이며, 이 교회 안에서 성모 마리아의 신비가 역사 안으로 들어와 완성될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목마르다”(요한 19,28)

뙤약볕 아래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께서 힘없이 토해낸 말씀이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초(醋)가 된 신포도주를 해면에 듬뿍 적셔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어주었다. 주님은 갈증을 해소하듯 이 신포도주를 지상의 마지막 음식으로 드셨다.

이 모습은 수난 시편이라 일컬어지는 시편 69장 22절의 “목말라 할 때 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라는 탄식을 떠올리게 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신 포도주를 마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서 5장 ‘포도밭의 노래’를 묵상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포도밭을 위해 온갖 세심한 배려를 다 기울이셨는데 인간은 단지 자신만을 염려해 하느님께 신 포도만 바칠 뿐이다.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하느님께서 죽으시면서까지 인간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 하시는데 인간은 또다시 십자가 아래에서 초가 된 신 포도주를 바쳤다며 탄식하면서 회개와 믿음으로 더이상 이러한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성서학자들은 ‘우슬초’는 정결 예식 때 쓰이는 것으로 수난 이야기에 우슬초 가지(히솝의 채)가 나오는 것은 ‘파스카 전례’(탈출 12,22)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τετελεσται’(테텔레스타이, 우리말 - 다 이루어졌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다 이루어졌다’는 것은 ‘끝났다’가 아니라 ‘완성했다’는 뜻이 더 많이 내포된 말이다. 죽음으로 당신의 모든 구속 사명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이다. 교회는 ‘다 이루어졌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느님 구속 사업의 분수령이며, 구약과 신약을 완전히 구별하는 전환점이며 구원사의 기틀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십자가 수난 전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 겟세마니에서 하느님께 두 가지 청원기도를 하셨다. 하나는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요한 12,27)라는 청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요한 19,28)라는 청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다 이루신 것은 바로 ‘아버지의 영광’이다.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설명은 ‘τετελεσται’에 관한 바오로 사도의 설명(히브리 5,9)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난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대사제의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난을 겪고 순종을 배우심으로써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는 영광을 이루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이 말씀은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 주 진실하신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다”(시편 31,6)라는 시편 노래에서 나온 말이다.

신학자들은 주님의 이 말씀은 당신 죽음이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신 것임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한다. 당신의 모든 행위를 성부의 뜻에 따라 행동하시지만 스스로 원해서 따르시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예수님은 사랑 안에서 인식하는 정신, 자유로운 의지,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그 추락을 체험했다. 허무가 클수록, 허무를 극복하는 분은 더욱 위대하다”며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짊어지고 철저히 의식하고 체험하고 고난을 당함으로써 그분은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 이르도록 해방해야 했다”고 웅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복음 이야기]<1 >복음서란 무엇인가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의 집약체, 복음
2014. 01. 05발행 [1247호]
홈 > 평화신문 > 사목영성 > 복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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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리스도' 고백의 집약체, 복음

복음을 잘 이해하려면 예수님 당시 삶의 자리의 시대상과 풍속, 언어, 지리, 사상 등을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성경의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성경을 통해 허약한 신앙을 회복하고 새복음화의 기초를 다져나가려는 한국교회의 사목 방침에 따라 성경을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연중 기획 '복음 이야기'를 연재한다.
▲ 복음서는 서기 70~90년 사이에 구전 복음을 기초로 기록됐다. 사진은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필사본 오트하인리히 성경. 이 성경은 원래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에 있었으나 하이델베르크가 함락된 후 바티칸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현재 뮌헨 바이에른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차윤석 베드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복음는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선포하는 신앙 고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즉 역사적 인물인 나자렛 사람 예수가 믿음의 그리스도 바로 '구세주'라는 고백이다. 복음서의 모든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돼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5-6). 또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 세상에 등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이 고백이 바로 '복음'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복음서 저술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역사의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가 복음 주제
복음은 헬라어(희랍어) '에우안겔리온'에서 나온 말이다.

에우안겔리온(ευανγγελιον)은 본디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대가로 주던 선물을 뜻한다. 오늘날처럼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모든 소식을 인편으로 직접 전달했다. 이들 중 특히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에게는 선물을 줬다.

성경에서 '에우안겔리온'은 과거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앞으로 이뤄질 기쁜 소식에 관해 사용됐다(이사 61,1). 이 에우안겔리온은 장차 메시아가 오시어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켜주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복음서는 하느님 외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생하시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이라 한다. 그래서 첫 복음서의 저자 마르코는 복음서 서두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란 말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서기 70~90년께 헬라어로 저술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를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예수님 말씀과 행적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가르쳐 준다. 따라서 복음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 구성원들을 위해 저술됐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언행이 제자들과 목격자들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것을 '구전 복음'이라 한다. 이 구전 복음이 제자들의 필요로 서기 50년부터 90년 사이에 글로 남겨지기 시작했다. 첫 기록 전승은 서기 50~60년께 예수님의 말씀만을 모아 놓은 '예수 어록(Q)'이 있었다. 그러다 예수님 말씀뿐 아니라 행적과 기적, 비유 등을 모아 70년께 첫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가 저술됐다. 마르코 복음서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에게 유다인 풍습을 설명할 필요가 있어서 저술한 것으로 추정한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루살렘 함락 후 서기 80~90년께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결별이 마무리됐을 때 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헬라어로 작성했다. 루카 복음서도 마태오 복음서와 비슷한 시기에 저술했다.

마르코ㆍ 마태오ㆍ 루카 복음서는 같은 관점에서 쓰였는데 이를 '공관 복음'(synoptica)이라 한다. 라틴말 '시놉티카'는 '함께 바라보다'는 뜻이다. 공관 복음 세 복음서는 내용과 언어, 사건 순서들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마르코 복음서의 구성을 따르면서도 둘의 공통 문헌이나 각자 고유한 자료를 첨가해 자신의 복음서를 저술했다. 서기 90년께 저술한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과 구성뿐 아니라 관점도 다르다.

복음서는 모두 헬라어로 기록됐다. 당시 지중해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였으나 언어와 문화는 헬레니즘화 돼 헬라어가 공식 교양 언어였다. 네 복음서와 신약성경은 382년 로마회의와 397넌 카르타고 회의에서 정경(canon)으로 확정됐다.

네 복음서의 상징
리옹의 이레네오(202년 순교) 성인은 "네 복음서는 교회의 기둥이며 기반이고 생명의 혼"이라고 했다. 이 네 기둥은 사방으로부터 불사불멸의 빛을 발하며 인간에게 생명을 베푼다. 그는 예언자 에제키엘이 환시 속에 본 사람과 사자, 황소와 독수리 얼굴을 한 네 생물(에제 1,10)의 얼굴을 네 복음서 저자와 연관시켜 상징적 형상으로 삼았다. 요한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봄을 상징해 '독수리', 루카는 제사와 사제직과 관련해 '황소', 마태오는 구세주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셨음을 암시해 '사람', 마르코는 용맹하게 예수의 일생을 힘차게 표현해서 '사자'로 표현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가상칠언

작성자

  최영윤(bridge2001)  쪽지

번  호

  3306


작성일

  2016-01-29 오후 4: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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