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학살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성경 예언 1
유태인학살은 이스라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유태인학살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현대사에 와서 유대인이 받은 수난에는 히틀러로 인한 유태인학살이 대표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그 이전에도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로마로 인한 수난도 겪어왔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유대인들이 겪어온 수난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유대인들 스스로가 자처한 저주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겪을 일들을 예언하였고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되짚어가며 유태인학살을 포함한 유대인들의 수난사의 이유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의 피를 흘린 저주
예루살렘이 로마군의 손에 붙여져 멸망당한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복음주의적 교회사가들은 그 첫 번째 이유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보내신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행한 악행에 대한 보응이었다고 본다.

“빌라도가 …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 27:22~26 참조)
이 저주가 그대로 임하여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멸망을 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가 2천여 년 가까이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며 전 세계를 떠돌아다녀야 했다.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곳에서 너와 네 열조의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그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을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실으시고 전에 네게 고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대적에게 노비로 팔려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신 28:64~68)
2차 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하필 유대인이 600만 명씩이나 희생된 역사가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하겠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소리쳤던 그 당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에게 임한 무서운 저주의 결과를 유대인의 역사가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만 흘린 게 아니라 스데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주님의 동생 야고보의 피도 흘렸다.

유태인학살 - 유대인의 수난사
유대인의 수난사를 다 읽어보지 않더라도 가까운 현대사에서 세계 만민이 생생하게 목도한 처절한 수난사의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이다. 그때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은 당시 전체 유대인의 약 60%에 이르는 수였다.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이 묻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언저리에 벌거벗은 채 줄지어 서 있으면 나치의 기관총구가 그들을 향하여 불을 뿜었다. 총에 맞아 그 구덩이로 떨어지면 군인들이 하나하나 확인 사살을 한 후 불도저로 그 위에 흙을 덮었다.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신 28:26)라는 말씀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유럽 여러 곳에 유대인 집단수용소가 설치되었고, 각 곳에서 실려온 이들이 매일 수천에서 만 명에 이르기까지 가스실에서 죽어 나갔다. 또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면 가스실로 끌려갔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매일 만 명의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어 갔다.
시체들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연일 하늘을 덮었고, 시체 소각장의 부족으로 인해 시체들을 광장에 늘어놓고 그 위에 기름을 뿌려 태우기도 했다. 벌거벗긴 후 신체에 부착된 것은 물론 금니까지 다 뽑았다. 시체 기름은 짜서 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또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상상할 수 없이 잔인한 온갖 생체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 4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그렇게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무죄한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흘린 대가가 조상들의 요구대로 후손에게 임한 무서운 저주를 깨닫고 있을까?
이번 포스팅에서는 유태인 학살을 비롯한 유대인 수난사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예언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의를 얻으려 했던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복음을 핍박하면서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 끝날에 대한 성경 예언에 대하여 이어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태인학살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성경예언2 ![]()
유태인학살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성경예언의 첫 번째 포스팅에서는 유태인학살의 원인이 예수를 죽이고 그 대가를 자신에게 돌린 유대인들에게 있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가 된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에도 지난 유태인학살과 예루살렘멸망에 대한 성경예언1에 이어 유태인학살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성경예언2를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유태인학살이라는 사건보다 이스라엘이 겪은 일들이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봅시다. 성경에 쓰여진 여러가지 예언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성경에 예언은 얼마나 많이 쓰여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
오늘 이 시대에도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복음과 참된 하나님의 종들이 전해 주는 말씀과 권고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얼마나 복된지를 알아야 한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이 그렇게 황폐해지고 비참해진 요인들 중 가장 큰 요인은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 때문이었다고 증거한다. 그 당시 예루살렘의 반란군들은 백성을 속이기 위해 거짓 선지자들을 매수하였고, 거짓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을 돌아다니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전으로 올라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성전에 올라가면 여러분은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하며 거짓 희망을 불어넣어 유대인들의 탈주를 막으려는 데 이용하였다고 전해 준다.

세상 끝날에 임할 징조들
성경의 예언에는 두 개의 사건이 한 곳으로 모이며 하나의 예언이 이중적 성취를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먼저 성취된 사건들은 나중에 성취될 더 큰 일들과 의미를 그림자처럼 조명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구약의 예언 중에 이중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유대인들이 구약의 메시아에 대해서 그렇게 혼동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예를 들어 이사야 61장 2절은 초림과 재림이 이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거기서 은혜의 해는 예수님의 구속의 초림을 말하며 신원의 날은 심판의 재림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멀리서 조망했을 때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예수님의 초림 또는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하게 구분지어 말하고 있으나 또 많은 경우에는 초림과 재림에 관한 내용이 섞여 이중적 관련(double reference)으로 표현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4장이나 누가복음 21장에서는 AD 70년에 닥칠 예루살렘의 멸망(역사적 사실)에 대한 예언과 세상 끝에 지구 위에 임할 멸망의 징조들이 섞여서 이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은 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나타날 징조라고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24:1~3 참조).
누가복음 21장 35절에서도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들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끝날에 임할 징조를 오버랩시켜 하신 말씀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련된 예언은 예루살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임하게 될 종말의 예표와 전조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말씀들이 분명하게, 한꺼번에 이루어져가고 있다. 처처에 큰 지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고 있다. 민족 및 종족 분쟁, 테러, 핵의 위협, 자원의 고갈과 전쟁, 가뭄과 기근, 기상이변,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의 해빙과 해수면의 상승, 심각해져 가는 대기 및 대양 오염,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 문제, 새로운 질병(온역)의 위협, 인본주의적 종교와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 영적 무감각과 타락, 그리스도인의 배도와 타협, 종교 통합, 교통의 발달과 지식의 급증,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 준비, 눈앞에 다가온 666… 등 여러 예언이 우리 눈앞에서 말씀대로 급속히 이루어져 가고 있다.
성경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성경에는 1817개의 예언(for 737 separate subjects)이 8,352 구절에 들어 있으며, 이는 전체 성경 내용의 27%나 된다고 한다. 신약의 총 216장(chapter) 중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내용이 300번 이상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30구절 당 1번 정도의 빈도수로 예수님의 재림과 마지막 때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마 24, 25, 막 13, 눅 21장 등은 장 전체가 재림에 대한 말씀). 신약 중 단지 4권만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인용이 없다. 신약 전체의 1/20 정도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되어 있다.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쓰나미)를 인하여
특히 얼마 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단순히 자연재해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 문제까지 겹쳐 전 세계에 천재와 인재가 맞물린 때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 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눅 21:25)
우리는 바다와 파도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럴 때 민족들이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원어에서 ‘혼란한 중에(ejn ajporiva 엔 아포리아)’는 ‘당혹함,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혼란’을 나타내는 말이다.
‘곤고하리라(sunoch; 쉬노케)’라는 단어는 ‘쉬네코(sunevcw 함께 소유하다, 어려움을 겪다, 억눌리다)’에서 유래한다(고후 2:4의 큰 환난과 같은 단어임). 이는 ‘고뇌, 고민’의 뜻이다(A.T.Robertson). 우리는 쓰나미로 일본 국민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혹해 하고,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보았다.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눅 21:27~28)
지금은 거듭난 성도들이 들림받을 구속(救贖)의 때가 가까웠다. 주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한 사람이라도 복음 안으로 인도해야 할 때인 것이다.

예언의 성취가 증거해 주는 교훈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성취된 사실들을 보면 우리는 이 세상이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세상은 어떤 정치 지도자나 유명인사나 스타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의 고삐를 잡고 이끌어 가시는 주관자가 계시며, 그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시며, 우리 영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세상의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다.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알고 세상의 미래를 아는 사람은 결코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다.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게 된다.
유태인학살과 같은 유대인 수난사는 이번 포스팅에서 마무리 짔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초대교회 당시 로마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당시 로마 황제가 누구인지, 왜 기독교를 탄압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출처] 유태인학살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성경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