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족보 이야기는 왜 따분할까?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복음에는 두 군데 나온다.
루카복음에는 3장 23-3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7x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오복음에는 1장 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지 42(=14x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 모두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예요, 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3,38),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요, 다윗의 후예인 메시아 이심을 강조한다(1,1).
B.C.1750 년경,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창세12,3; 22,18)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저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시다.
또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B.C.1010-970년경 통일 국가 이스라엘의 2대 임금으로 재위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성군 메시아(희랍어로 'Christus')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예수님이 바로 '다윗의 아들','그리스도'이시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 다른 부인 4명이 등장한다.
ㄱ) 타마르(3절)
ㄴ) 라합(5절)
위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다.
ㄷ) 룻(5절)-모압 출신 여자
ㄹ) 바쎄바(6절)-우리야의 아내-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본디 이방인 동네 히티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마태오 복음사가가 일부러 이런 부인만 골라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네 부인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마르는 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 기상천외하게도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한다.
라합은 예리고의 소문난 창녀로서 살몬과 관계하고,
룻은 보릿가리 옆에서 잠든 보아즈를 유혹하여 결혼하고,
바쎄바는 자신을 범하고 자기 남편을 전사케 한 다윗과 결혼한다.
이렇게 네 여인들은 제각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윤리적,도덕적 관점에서 이 여인들의 불륜을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 율사들은 그런 일들을 달리 풀이 했다.
곧 다윗의 가계,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 가셨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들은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인 셈이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에수님을 잉태하고 낳는다(마태1,18-25).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의 부도덕을 정당화,합리화,미화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수, 허물로 가득찬
인간사(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는 것을 보여 주신다.
말하자면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 조상들의 혈통,족보,계보도
그리 개끗하지도 산뜻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한 구석들이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피가 더러우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러한 부족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의 역사도 내치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로,하느님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번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시고,
신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가 아니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 출산전도 출산시도 출산후도 동정녀(평생)이신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님은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다윗 가문의 후예이시다.
우리도 성모 어머니의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축복 누릴 수 있다.
마니피캇에 나오는 데로, "이제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하신 성모님의 말씀은
우리가 매일 바치는 묵주의 기도의 <성모송>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우리도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상대방을 자꾸 칭찬하고 격려하고 좋은 점만 자꾸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자신에게도 좋게 복으로 돌아오는 피드백을 알고 있다.
무한히 선하시고 완전하시고 지엄하시고 거룩하신 성삼위의 내적 영광은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성삼위 하느님이 지니고 계신 지극히 존귀하심, 엄위하심, 거룩함과 진실함, 권능과 권세 등등을
하느님의 자녀들과 천사들이 자꾸 밖으로 드러내어 기릴 때, 하느님의 외적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통해서 그리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하면서, 찬양과 감사와 흠숭을 드릴때, 하느님께서도 기뻐하시며 축복해 주신다.
이것이 인간에게 축복으로 돌아오는 원리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나부터 주님 대전에 주님 뜻대로 잘 살고 거룩하게 걸으면 된다.
그러면 나를 통해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진다.
창세기의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