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린 영원한 속죄의 완전한 제사
(히 10:1-18)
1.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하늘의 대제사장이 되시고 당신의 육체를 제물로 삼아서 단 한번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드리신 이 단 한번 속죄제사는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영원하고도 완전하게 없애주었습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가 1장부터 9장까지,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에 하느님은 말씀하셨는데, 이 모든 말씀은 여기 히브리서 10장에 이르러 총정리가 되어 하느님의 복음으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도대체 로마서나 히브리서는 왜 이렇게 어려우냐?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고 짜증을 냅니다. 소위 영혼을 이끈다는 목회자들조차도 로마서나 히브리서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헤맵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믿어 거듭난 우리들은 이 부분의 말씀을 잘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읽으면서 너무나 큰 구원의 확신과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진리의 복음을 알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은 너무나도 쉽고 분명하고 힘있고 또 능력이 있어서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너무너무 기쁘고 감사가 되는 그런 말씀입니다.
첫 언약의 제사와 새 언약의 제사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18절까지의 본문 말씀은 구약의 속죄 제사와 예수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비교해서 말씀을 합니다. 10장 1절부터 4절까지는 구약 시대에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워주셨던 대속죄일의 제사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라는 말씀은 바로 구약시대의 성막에서 드렸던 대속죄일(大贖罪日)의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제7월 제 10일에 이 대속죄일(大贖罪日)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제 7월 제 10일”(레 16:29, the tenth day of the seventh month)은 태양력의 7월 10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July, 10th라고 그렇게 번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성경의 달력은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시점을 기준해서, 그 달을 “아빕”월(月)이라고 하고 일 년의 첫 달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음력을 사용했는데, 지금 태양력과 비교하면 두 세달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제 7월 제 10일이라고 하면, 태양력으로 10월 정도 되는 겁니다. 이 달은 절기와 축제의 달입니다. 나팔절로부터 시작해서 대속죄일을 지내고 장막절도 이 달에 지냅니다. 그러니 과히 “절기(節期)의 달”이라고 할만 하겠죠. 이제 가을걷이를 소출들 다 곡간에 들여놓고 축제를 여는 겁니다. 이 절기의 달의 절정은 그 달 제10일에 드리는 대속죄의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번 대속죄일에 제사를 드렸고 이제 1년 만에 다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 사함을 받고자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작년 제7월 제10일부터 올해 제7월 제10일까지의 일년 동안 죄가 가득 쌓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에 쌓인 죄로 인해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성막에 다 모인 것입니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레 16:29-30)
매년 한 차례씩 제7월 제10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 혼자 성막 안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도 죄를 지었으니까 백성들을 위해서 속죄제사를 드려주기 전에 수송아지를 제물 삼아 먼저 자기의 죄를 사함 받는 제사를 드립니다. 먼저 자기가 죄 사함을 받아야만 백성들을 대신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받으시는 속죄제사는 1) 흠 없는 제물, 2) 죄를 넘기는 안수, 3) 대속의 피 흘림(죽음)ㅡ이 세가지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흠 없는 제물이 있어야 돼요. 祭物(제물)이라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물건이라는 뜻인데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립니다.
둘째로는 죄가 있는 사람이 반드시 흠 없는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 됩니다. 합법적인 속죄제사에는 반드시 안수가 있어야 합니다.
죄인이 희생제물의 머리에 按手(안수)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수는 “죄를 넘기는 법”입니다. 안수를 통해서 죄가 사람에게서 희생제물로 넘어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법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인간의 죄가 제물에게 넘어갑니다. 만일 안수를 하지 않은 제물을 잡아서 하느님께 드리면,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이 “안수”는 인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받으신 “세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안수의 형식으로 세례를 받아서 세상 죄를 담당하신 <세례의 복음>을 빼먹고 십자가의 피만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 7:23)고 준엄하게 판결하고 꾸짖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이 제물이 피를 흘리고 죽어야 됩니다. 제물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피로써 대가를 지불해야만 죄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죄는 생명의 값을 치르고 죽음으로 대신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 17:1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흠 없는 제물이 인간의 죄를 안수로 넘김 받고, 대신 죽음으로써 죄를 갚아 없게 해주는 구원의 법은 아주 公義(공의)한 법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약의 속죄제사는 하느님의 사랑과 공의가 다 이루어진 제사였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야겠는데, 우리가 죄 덩어리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죄를 짓는 <행악의 種子(종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우리를 그의 공의대로만 심판해버리면 하느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겠죠? 그래서 우리의 죄를 흠 없는 제물 위에 넘겨서 그 제물을 대신 심판하심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도 이루시고 죄에 대한 공의한 심판도 이루신 것이 바로 代贖(대속)의 속죄 제사를 세우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 드렸던 대표적인 속죄제사에는 하루치 속죄제사와 일 년치 속죄제사가 있습니다. 먼저 <하루치 속죄제사는 어떻게 드렸는가?>를 살펴 봅시다.
하루치 속죄제사
레위기 4장 27-31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야훼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어떤 평민이 하루 동안 너무 엄청스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밤새 끙끙거리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기 집 뒤뜰로 갑니다. 그는 가축 우리에서 흠 없는 염소 새끼를 한 마리 골라서 그 놈을 끌고 성막의 제사장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에게 제사를 드려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래? 그럼 그 염소에 손을 얹어!” 하고 명합니다. 그러면 그 죄인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한 채로 자기 죄를 고(告)합니다. 안수(按手)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안수를 하면 그 사람의 죄가 희생제물에게 넘어갑니다.
자, 이제는 그 염소가 죄를 짊어졌습니다. 제사장은 그 사람에게 칼을 주고 목을 따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이제 그는 염소의 목을 따서 그 피를 제사장에게 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제사장이 속죄의 제사의 마무리를 합니다. 제사장은 먼저 그 피를 번제단 뿔에도 바르고, 남은 피는 번제단 밑의 땅에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그 염소의 기름은 번제단 위에서 불 살라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죄인이 사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평민의 하루치 제사였습니다. 이렇게 하루 동안 지은 죄를 사함 받을수 있었지만, 이렇게 해 봤자 그 다음날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죄인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일년 동안 지은 죄를 한번에 사함 받는 제사를 세워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대속죄일의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대속죄일의 제사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제사도 드리고 나서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죄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이런 불완전한 제사를 세워주셨습니까? 그것은 이런 대속의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 줄 깨닫게 하려고 그렇게 희생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우리들이 이렇게 반복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도록, 단번에 영원하게 우리의 죄를 없애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사모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 구약의 율법에 속한 제사를 통해서 “앞으로 너희들의 죄를 영원토록 없애줄 그런 제사를 드리므로 너희를 온전히 죄에서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도 믿음의 사람들은 이 희생제사를 드리면서 장차 육신을 입고 오셔서 단번 만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실 하나님의 완전한 제사를 믿고 또 기다렸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드렸던 대속죄일의 속죄제사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먼저 흠 없는 수송아지를 끌고 와서 자기가 자기 권속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물론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반드시 안수를 해서 자기와 자기 식구들의 죄를 넘겼습니다. 그 다음에 그 수송아지를 잡아서 이 피를 들고서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성막의 지성소(至聖所)에는 속죄소(贖罪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덮고 있는 금뚜껑, 그것이 속죄소입니다. 그 속죄소는 천사가 마주보며 양쪽에서 날개를 펴서 덮고 있는 형상인데, 순금 한 달란트로 쳐서 만들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손가락으로 희생제물의 피를 찍어서 그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고 그 앞에 동편에도 일곱 번 뿌립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을 뜻하는 숫자>이고 “완전하다”는 뜻을 함유합니다. 그래서 <일곱 번 뿌린 피>는 “내 죄가 완전히 사함 받았다” ‘내 죄가 다 갚아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막에 있는 모든 기구들에도 피를 발라서 성결하게 합니다.
둘째로, 수송아지로 자기와 자기 식구를 위한 속죄제사를 드린 후에, 대제사장은 이제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백성들을 위해서는 흠 없는 수 염소 두 마리를 준비해놓았다가 제비를 뽑습니다. 먼저 뽑힌 놈으로는 앞서 수송아지로 드렸던 제사와 똑 같은 방법으로 제사를 드립니다.
물론 대제사장은 흠 없는 수 염소의 머리에 반드시 안수를 해야겠죠?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안수하는 것이기에, 이 안수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희생의 제물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왜 두 마리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까?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예레 17:1)라고 기록된 대로, 사람의 죄는 두 곳에 기록됩니다. 죄를 지으면 그 죄는 각자의 마음에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죄가 기록되는 다른 한 곳은, 위에 제시한 말씀에서 “단 뿔”인데, 이것은 하느님의 보좌 앞에 있는 심판책(행위록책)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은 놋으로 만들었는데, 놋이나 뿔은 다 <심판>을 상징합니다.
또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라고 기록하신 말씀이 바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들이 자기 행위(죄)를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을 밝히 알려줍니다. 의인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있어서 아무 심판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권뿐인데, 지옥에 갈 자들의 죄를 기록한 심판책들은 많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첫 번째 수 염소를 끌고 성막 안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렸던 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심판책에 기록된 백성 전체의 일년 치 죄를 도말(塗抹)하는 제사였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의 뜰을 가리우고 있는 세마포 담장 밖에 모여 있었기에, 이 제사의 과정을 볼 수 없었습니다. 밖에서는 소리만 듣습니다. 염소가 죽는 소리도 들리고 대제사장이 걸어 다닐 때에 딸랑 딸랑하는 금방울 소리만 들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마음에 기록된 죄는 아직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성막 뜰 문(휘장)이 휙 젖혀지면서 대제사장이 백성들 앞에 등장을 합니다. 대제사장의 옷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가슴에는 열 두 보석이 달려있는 흉배를 붙이고 에봇을 입고 금 관을 쓰고 등장을 하면 그가 대제사장인 줄 다 알아봅니다. 그 날은 대제사장 혼자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성막에서 나올 사람은 대제사장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등장하면 백성들이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겠죠? 왜냐하면 자기들이 일년 동안 지은 죄가 마음을 잔뜩 누르고 있는데, 그 죄가 씻겨질 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대제사장이 남겨두었던 수 염소 한 마리를 끌고 백성들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한 상태로, “하느님이여, 이 백성이 지난 일년 동안에도 어마어마하게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다 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어마어마하게 죄를 지었겠죠? 수백만 명이 광야에서 살면서 마음으로 지은 죄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지은 죄까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겠어요. 그 광야에서 살면서 얼마나 도둑질도 많이 했겠어요? 자기 천막에 요만한 대야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저 천막에는 쓸 만한 대야가 반이 넘게 천막 밖으로 빠져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버린 것이 아니거든요? 자기 마음에 그것이 갖고 싶으니까, “이거 버렸나?” 하면서 누가 뭐라고 하면 버린 줄 알았다고 변명할 준비까지 다해서 살짝 빼 들고 옵니다.
사람이 도둑질을 할 때도 변명거리를 다 생각하고 도둑질을 합니다. 그리고 걸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도둑질을 합니다. 나는 전에 영평동에 살 때, 아침마다 귤 밭 사이로 산책을 했습니다. 귤이 노랗게 익을 때 쯤이면, 주위를 살펴보고 손을 쭉 뻗어서 몇 개 따서 주머니에 넣고 먹었습니다. 물론 껍질은 멀리 버렸죠. 물론 제주도에서는 그 정도는 다 눈 감아줍니다만, 난 분명히 귤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얼마나 도둑질을 많이 했겠어요? 또 척박한 환경에서 붙어 살다 보니, 얼마나 싸움질도 많이 했겠어요? <이것이 네 염소네, 내 염소네> 치고, 받고, 싸우기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원래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키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랄까 더 지랄을 합니다. 그러니 싸움이 되는 거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일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죄를 지었는데, 그래서 자기들도 마음에 죄가 있기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대제사장이 남은 한 마리 염소를 그들 앞에 끌고 와서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년 치 죄를 고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여, 이 백성이 하느님을 망령되이 일컬었고 우상을 숭배했으며…간음했으며, 살인했으며, 도적질을 했나이다” 대제사장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기를 마치고 손을 딱 떼면, 하느님이 세운 법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일년 치 죄가 깨끗이 대제사장의 어깨와 팔을 통해서 그 수 염소에게 다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난 일년 동안 지은 죄가 이제 어디 가 있어요? 그 염소에게 다 넘어갔죠? 그리고 그 수 염소는 미리 정한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광야로 갑니다. 백성들의 무리가 복 있는 가운데,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그 염소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집니다. 백성들의 지난 일년 치 모든 죄를 지고 그 염소는 물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집니다.
그리고 염소를 끌고 갔던 사람이 돌아옵니다. 이 사람이 돌아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환호성을 지르는 거죠. “이제는 우리의 죄가 멀리 떠나갔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죄와 상관 없는 자가 되게 해주셨다!” 라고 그들이 기뻐했습니다.
성막에서 드린 속죄제사의 불완전성
그런데 이 제사들, 즉 하루 치 속죄제사나 대속죄일의 제사는 온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사들은 그 제사를 드리고 나서 죄를 지으면 다시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들은 <육체의 예법만 되었다>고 말씀하고 <이 제사로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언제든지” 라는 말은 “항상, 영원토록” 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고 해서 내일도 죄가 없고 모레도 죄가 없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죄가 없는 온전한 제사는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난 일년 동안의 과거의 죄만 해결해 주었을뿐 그 다음 날로 다시 죄인 되었기 때문에 실상은 아무 효력이 없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니 사실은별 볼일 없는 제사 였습니다.
그러면, 왜 하느님은 그런 <별 볼일 없는 제사>를 세워 주셨느냐? 여기 히브리서 10장 3절에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면, 이런 제사를 통해서 우리들이 “아, 정말 나는 죄 덩어리로구나!” 하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속죄제사를 세워 주셨다는 겁니다.
매년 한 번씩 대속죄일이 돌아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진짜 죄 덩어리인 것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겠죠.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괴로워하면서 신음하면서 이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대속죄일의 제사도 율법에 속한 제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들만 율법이 아니라, “이 계명들을 어겼을 때 이렇게 제사를 드려라” 하신 것도 율법입니다. 즉, 계명과 제사법이 다 율법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로마 3:20). 그래서 이런 희생의 제사를 드릴 때 마다 자신들이 죄 덩어리임을 기억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4절에,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하셨습니다. 이 황소와 염소의 피로 드린 제사가 바로 대속죄일의 제사였는데, 이 염소와 황소의 피로 드린 제사는 능히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임하셔서 이제는 불완전한 제사가 아닌 완전하고도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셨다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예수께서 드리신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의 제사
히브리서 10장 5절-7절을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느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느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여기서 “세상에 임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육신을 입고 세상에 임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막의 불완전한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셨기에,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 하느님이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리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이….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하신 부분에서, “하느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지칭하고 “나”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한 몸을 예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이신 성자(聖子) 하느님이 이땅에 오시도록 한 몸, 즉 한 육체를 어떻게 예비했습니까? 처녀 마리아의 몸에 준비를 했습니다. 하느님은 처녀 마리아의 태 속에 한 몸을 예비하셔서 예수님이 그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막에서 드렸던 모든 속죄제, 번제, 감사제와 같은 제사들을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였을 뿐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서 율법에 속한 제사들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막의 제사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완전하고도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실 것에 대한 그림자였고 예고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느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히 10:7) 여기서 “내가”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께 말씀 드리기를,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습니다. 두루마리 책은 구약 성경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은 가죽을 펴서 만든 양피지 (羊皮紙) 기록되었습니다. 그 양피지를 둘둘 말아서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했습니다. 따라서 두루마리 책은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그 구약의 두루마리 책에, 장차 구원자 메시아가 오셔서 어떻게 우리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것인지를 다 예언해놓으셨는데, 그 두루마리 책에 기록한 것 같이, “(예수님은)하느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모든 인생들을 죄에서 깨끗하게 구원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뜻을 이루려고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영광과 그 권세를 포기하시고,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예비된 한 몸을 입고, 비천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친히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목적이고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10장 8절부터 9절을 보겠습니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느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첫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려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첫 것은 성막에서 드렸던 속죄제사입니다. 성막에서 드렸던 속죄제사는 대표적으로 하루치 제사와 일년 치 제사였는데, 그 첫째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끝났습니다. 둘째 것이 이미 왔기 때문에 폐해진 거에요.
둘째 것은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서 드려주신 영원한 속죄제사 이게 둘째 것입니다. 예고편이라고 있죠? 저녁에 드라마 보고 나면, 다음 회에서는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해서 예고편까지 다 봐야 TV를 끕니다. 예고편을 보면, 내일은 대략 어떻게 스토리가 전개되겠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본편을 봤어요. 그러면 다시 어제 본 예고편은 다시 안 봅니다. 어제의 예고편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고편은 그냥 예고편일 뿐입니다. 본방(本放)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가 궁금해서 예고편으로 살짝 맛보게 하고, 본방을 더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예고편입니다.
구약의 하루치 제사나 일년 치 제사는 “장차 노는 좋은 일의 그림자”(히 10:1)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림자라는 말이 바로 “예고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너무 미련하고 깨닫는 것이 둔하므로 하나님이 구약의 속죄 제사를 먼저 주셔서 장차 하느님이 단번에 영원하고 완전하신 제사를 드려주실 것을 깨닫게 하고 기다리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자,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여기서 “이 뜻이” 무엇이라고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죠? 하느님 뜻은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모든 죄에서 깨끗이 건져주어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만들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해서 영원토록 하느님과 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느님 뜻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전 2:4). 즉,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게 하느님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간들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하느님이 없다”고 하고, 혹자는 “하느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물과 피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셨다”고 전해 줘도 복음을 무시하고 믿지 않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따라 마귀가 속여놓은 거짓된 길을 따라 가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하느님은 안타까우신 거에요. 피조물인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어서 세례를 받게 하고 대속의 죽음을 죽게 했는데 그 사랑을 외면하는 인간들을 볼 때에 하느님은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쫓아서 처녀의 몸에 예비된 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의 육체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늘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 이 땅에 있는 장막에 들어가지 않고 하늘의 장막에 들어가셔서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둘째 제사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는 다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각자의 마음에서만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미 다 이루어 놓았는데, 사람들이 믿지 않아서 각자의 마음에서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셨는가?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려서 영원한 속죄를 이뤄 주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에서도 하느님이 열납하시는 속죄제사가 되려면, 1) 흠 없는 제물이 있어야 되었고 2) 반드시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되었고 3) 그 제물이 피 흘려서 대속의 죽음을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듯이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오신 하느님이기에 죄가 전혀 없는, 흠 없는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합격제물입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짊어질 어린 양으로 오셨는데, 그 예수님이 흠이 있는 분입니까, 없는 분입니까? 흠이 없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기 때문에 죄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느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라고 말씀을 합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란 근본 죄가 없는 분이란 말입니다. 하느님이 어떻게 죄가 있겠어요? 다만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하느님이 육신만 입고 오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이 아니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오신 하느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었습니다. 흠 없는 제물입니다. 제물로서 합격이죠? 합격입니다.
둘째로는 “반드시 안수할지니”ㅡ제물에 반드시 안수해서 죄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 죄를 넘기는 이 안수는 누가 했느냐?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 안수의 형식으로 례를 베풀 때에 이 세상의 모든 죄가 단번에 예수님에게로 넘어 갔습니다. 세례 요한은 누구입니까? 그는 전인류의 대표자입니다. 세례 요한은 여자의 몸에서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마태 11:11)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또 누가 복음 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은 아비야 반열의 대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론의 후손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도 아론의 후손이고 어머니 엘리사벳도 아론의 후손입니다. 아론이 누굽니까? 첫 번째 대제사장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의 계통을 이어받은 이 땅의 마지막 대제사장이고 또 그는 인류 전체에서 가장 큰 자로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예수님보다 육 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의 사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주님이 들어갈 수 있도록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주님을 대망(待望)하도록 마음을 준비시키는 그 일을 했습니다.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느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가 3:3-6)
요한은 마음이 너무 교만한 자에게는 그 마음을 꺾어서 낮추게 했습니다. 반대로 자기가 너무 너무 부족하고 악해서 “나 같은 자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고 낙담한 자들에게는, “아니다 하느님은 너와 같은 자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어서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이렇게 높아진 마음은 낮추고 절망한 마음은 북돋아서 구원의 주님이 그 마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왕의 길(King’s Way)을 닦아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보낸 종이 세례 요한입니다. 그때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베푼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어요. 진솔하게 회개한 자에게 회개의 표로 요한은 세례를 주었습니다. 참된 회개가 무엇입니까? 하느님 앞에서 악을 행하던 자가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돌아서게 하였고, 그렇게 해서 영혼들을 요단강으로, 예수님의 세례의 현장으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게 가장 중요한 세례 요한의 사역인데, 그는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의 형식으로 세례를 베풀어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단번 만에 예수님에게 다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두 가지 큰 일을 행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이 두 가지 사역을 다 완수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기다리게 했고, 인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세상 죄를 주님께 넘김으로써 모든 의를 이루는 사역을 완수했습니다.
하느님이 대표자로 세운 인류의 대표자이고 마지막 대제사장인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3절부터 17절의 말씀은 이 세례로 인류의 죄가 예수님에게로 다 넘어간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때에, 즉 세례 요한이 사람들의 엘리야의 심령으로 마음이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사역을 힘차게 하고 있을 그때에, 예수님은 고향인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에 이르러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청합니다. 그 순간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느님인 줄 금방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내게로 오시나이까” 라고 급히 마음을 낮추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준엄하게 말씀합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 (마태 3:15)
이에 요한은 순종하고 안수의 형식으로 예수님의 머리에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분명한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입니다. “이제 허락하라”는 말씀은 “세례 요한아, 네가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는 명령입니다. 세례는 어떻게 베풉니까? 세례 받는 자의 머리에 손을 얹어서 물에 푹 잠갔다가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이 세례에는 안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죠? 안수는 무엇입니까? 안수는 죄가 넘기는 하느님의 법입니다. 세례 요한은 인류의 대표자이고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인데 인류의 대표자가 인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서 물에 잠갔다가 물에서 올라오게 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 안수의 세례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죄가 단번 만에 예수님께 다 넘어갔다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우리와 이와 같이 하여”라는 말씀은, “너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나는 그 안수를 받아들여서”라는 말씀이고 그 결과, “이 세상 모든 죄가 나에게 다 넘어오니까 이 세상에는 모든 의가 이루어진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분명히 그 말씀이죠?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첫 언약의 제사를 헛되이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이 세상 모든 죄가 단번 만에 예수님께 넘어간 세례였다>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건만, 사단 마귀의 거짓된 교리에 속아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례의 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자신의 죄가 넘어간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늘 죄가 있는 겁니다. 그들은 아직도 첫 언약 때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둘째 것을 세우신 하느님을 만난 적도 없고 깨달은 적도 없습니다. 첫 언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죄를 짓고는 괴로워하면서 날마다 제사를 드렸죠?
지금 기독교인들도 죄를 지으면 하느님 앞에 나와서 날마다 무엇을 합니까? “주여,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첫 언약 때의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 죄가 있고 그들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주제에, 우리가 그들에게 온전한 진리의 복음을 전하면, 우리를 이단(異端)이라고 정죄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다른 믿음을 보면 다 이단이라고 정의합니다. 자기들과 다르면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과 다른 것이 이단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의를 이루어 주셨기에,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가 없다”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소위 정통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죄가 있는 것이 당연하고 죄 사함을 받아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구원파”이고 무서운 무리라고 단언합니다.
“구원파”는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는 무리가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다만 구원의 확신을 강조할 뿐, 사실 그들의 가르침은 일반 기독교의 가르침과 대동소이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물과 성령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친히 완성하신 것이며, 사도들이 목숨을 바쳐 전했던 원초적 복음(the Original Gospel)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모든 의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나와 여러분의 모든 죄가 단번 만에 예수님에게로 다 넘어갔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믿든지 안 믿든지 다 넘어갔습니다. 하느님 편에서는, 즉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모든 뜻이 다 이루어 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세상 모든 죄를 다 넘겨 받았고, 그 죄를 십자가로 지고가신 겁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바로 그 이튿날에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 1:29) 라고 증거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이제 세상 죄를 다 짊어졌습니다. 나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 예수님 세례 받을 때에 다 넘어갔습니까, 안 넘어갔습니까? 다 넘어갔습니다. 그 때는 지금부터 약 2000년 전이지만, 하느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은 시간의 차원 밖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창세 때부터 아직까지 태어나지도 않은 저 미래의 마지막 사람의 죄까지도 하느님은 단번에 처리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차원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이 세상 죄가 다 넘어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나 엄청난 일이지, 2000년 후의 일을 미리 아시고 행하시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류에게는 수억만 년이 영원하신 하느님에게는 한 경점(更點)도 안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믿고도 마음에 죄가 있는 자가 이단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세례 받으셨는데, 2000년 후의 우리들의 죄를 어떻게 가져갔겠냐?”고 빡빡 우기는 목사를 본 적이 있어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셔서 자기의 죄를 다 담당했다는 말씀을 끝까지 안 믿겠다는 거에요. 그는 또 “예수를 믿어도 우리에게는 죄가 있는 것이 맞는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습니다. “죄가 있는 것이 맞는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니까 지옥에 가셔야겠습니다” 하고 변론을 끝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죄가 있는 자들이 이단입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디도 3:10-11)
“스스로 정죄한 자”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스스로를 정죄(定罪)하며 자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세례로 담당하신 진리를 믿지 않으려고 용을 씁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셨다는 진리를 믿지 않는 것이 지옥에 가는 죄입니다. 주님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한 16: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지금부터 약 이천 년 전에 세례를 받았지만, 이천 년 후에 태어난 우리들이 지금까지 지은 죄뿐만 아니라 내일 지을 죄, 모레 지을 죄, 우리가 회개한 죄뿐만 아니라 잘못했다고 인정하지도 않은 죄까지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짓는 모든 죄와 허물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단번에 예수님께 다 넘어갔습니다. 그러면 나와 여러분에게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하느님은 전능하십니다. 단번 만에 다 예수님께 넘겨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속죄 제사의 세 번째 조건이 무엇입니까? 죄를 넘겨받은 제물이 대속의 피를 흘려서 죄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당신이 세례로 담당한 모든 죄를 다 갚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창에 찔려서 온 몸의 피를 다 쏟아 주셨습니다. 죄의 대가를 다 치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요한 19:30) 하고 크게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ㅡ 우리들의 죄를 세례로 담당하셔서 그 죄값을 당신이 다 갚아주는 일을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갚아서 흰 눈처럼 깨끗하게 다 없애 줬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주님의 <물과 피의 복음>을 믿는 우리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그냥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느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당신의 외아들을 육체로 보내서 그 예수님 육체 위에 세례로 죄를 넘겨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몸의 피와 물을 다 쏟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치러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값없이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아무 희생이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믿기만 믿으면 되는 거에요. 마음을 다해서 감사함으로 믿으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단번에 드리심”은 딱 한 번 자신을 제물로 드렸다는 말입니다. 단번이라는 말은 두 번째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단 한 번 세례를 받으시고 단 한 번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당신의 몸을 제물로 <단 한번> 드리신 이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은 겁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번다”는 말처럼, 고난과 능욕은 주님이 당해주셨는데, 그 혜택인 거룩함은, 죄 사함은 누가 입었습니까? 그 은혜와 혜택을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우리가 받은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믿었을 뿐인데, 우리가 하느님의 의(義)로 거룩함을 입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진리의 복음을 생명처럼 믿어야 합니다.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짓 밟아서 지옥에 쳐 넣어야 마땅한 자들인데,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해서 이와 같이 온전히 구원했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0장 11절부터 14절의 말씀입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느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구약제사와 예수님의 제사, 즉 첫째 것과 둘째 것을 비교해서 제시함으로써 주님의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우리들이 아주 쉽게 깨닫게 하십니다.
아래는 구약 성막의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제사를 비교한 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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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 제사 |
대속죄일의 제사 |
영원한 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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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제물 |
흠 없는 염소(양) |
수송아지와 수염소 |
예수님 자신의 육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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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넘기는 방법 |
죄인이 안수함 |
대제사장이 안수함 |
인류의 대표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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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세례(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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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의 효력 |
개인의 하루치 속죄 |
백성전체의 |
전인류의 영원한 속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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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치 속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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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주관자 |
제사장 |
대제사장 |
예수 그리스도 (하늘의 대제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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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성 |
장차올 좋은 일의 그림자(예고편) |
실체(좋은 일 자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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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섭리 |
성막에서 드렸던 첫째 제사 (폐해짐) |
변역한 둘째 것(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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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완성된 곳 |
땅의 성막 |
하늘 성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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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구약 제사, 즉 첫째 제사는 하루치 제사와 일년 치 제사가 있었습니다. 하루치 제사는 죄를 지은 자가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한 후에, 그 제물을 잡음으로 하루치의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구약의 일년 치 속죄제사는 대제사장이 수염소의 머리에 안수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일년 치 죄를 넘기고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 죽게 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드린 영원한 속죄의 제사는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인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안수로 세례를 베풀어서 인류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넘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가 영원한 죄 사함을 받게 하신 제사입니다. 이렇게 속죄의 범위가 확대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대표원리가 적용됩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해서 백성들의 죄를 넘겼듯이,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인류 전체의 죄를 예수님께 안수해서 단번에 다 넘겼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에서 드렸던 제사는 죄인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하지 못했고, 그저 하루치 죄나 지난 일년간의 죄만 일시적으로 사함 받는 제사였기에, 그들이 죄를 지으면 다시 죄인이 되는 불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드려주신 제사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의 제사였습니다.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이 없을지라도, 주님이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15절부터 18절의 말씀을 보면,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여기 “그날 후로는”이라고 말씀했는데, 그날이 언제일까요? <예수님이 자기를 드려서 영원하고도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신 날 이후로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날 이후로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새 언약을 세우게 됐는데,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새 언약의 복음을 우리의 마음에 두고 우리의 생각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신 것을 믿는 자 마다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가 지키기에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율법은 613개 조항이 있고 너무나 복잡하고 다 알지도 못하고 지키기도 어려웠는데, 이 새 언약은 너무 너무 쉽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이신데 흠 없는 제물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 죄를 다 담당하고 십자가에 가셔서 “다 이루었다” 하고 우리 죄를 없애주셨는데, <예수님이 단번에 드리신 영원하고 완전한 속죄 제사를 믿는 자 마다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죄와는 상관 없는 자가 된다>는 약속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하느님은 이 새 언약을 믿는 자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을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의 새 언약을 믿는 자에게는,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근본 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마음 속에 죄가 버글버글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또 이 죄들이 가만히만 있지 않고 좋은 환경을 만나면 밖으로 기어나옵니다.
예를 들자면, 땅 속에 지렁이들이 많이 사는데, 해가 쨍쨍할 때에는 지렁이가 땅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가 와서 땅이 물렁해 지고 놀기 좋으면 지렁이들이 많이 기어나옵니다. 이해가 되죠? 죄가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똑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땅 밖으로 기어 나온 지렁이가 없다고 해서, 땅 속에고 지렁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어떤 자의 죄가 확연히 드러나게 해서 죄 사함을 받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18절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근본 가지고 태어난 죄와 지금까지 우리가 저지른 죄, 그리고 앞으로 저지를 죄까지 ㅡ 이 모든 죄와 허물들을 하느님이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자, <하느님이 기억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하느님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도록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없애놓았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것이 존재하면 절대로 기억 못할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셨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도 우리에게서 죄를 절대로 찾아볼 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드려주신 완전하고도 영원한 제사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죄란 죄는 다 없어졌습니다. 단, 딱 한 가지의 죄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을 믿지 않는 죄, 그 죄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죄 사함의 구원을 믿지 않는 그 죄가 지옥에 가는 죄입니다.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습니다
자, 18절 말씀을 읽고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이것을 사하셨은 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아멘!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깨끗이 없애 주셨습니다. “너희 마음에죄가 있지만 없다고 치자” 하는 칭의교리(稱義敎理)는 사단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보통의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에 죄가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십자가의 보혈을 믿기 때문에, “너희가 죄는 있지만 하나님은 너희를 의롭다고 불러 준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소위 칭의교리(稱義敎理)인데, 이 교리는 그들이 마음에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죄가 있으면 분명히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실질적으로 죄와 허물을 다 없애 놓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죄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8절에, “이것을 사하셨은즉” 에서, “이것”은 우리 인류의 죄와 허물을 다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주님이 이미 다 없애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한 진리의 복음을, 이 둘째 제사를 <믿는 자는 다시는 자기의 죄 때문에 제사드릴 것이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앞에 나와서,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거짓된 회개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없애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그냥 감사로 제사드릴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정말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이고 오늘도 이렇게 악을 행하고 죄를 지은 쓰레기만도 못한 자인데, 주님이 이 죄 까지도 세례로 담당해서 다 없애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주님!” 그렇게 감사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멘!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복음이고 물과 성령의 복음입니다.
안타까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첫째로, 그들은 율법 아래도 제대로 서보지 않은 자들이에요. 율법 아래서 먼저 심히 죄인이 되어야만 죄 사함을 받는데, 그들은 그냥 자기가 괜찮은 존재인 줄 알아요. 자기가 <천사과>(天使科)인 줄 알고, 다른 사람보다 깨끗한 줄 알고, 훌륭한 줄 알고, 의로운 줄 알지만, 자기의 마음에 죄가 눈곱만큼만 있어도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그들은 자기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 자인 줄을 정직하고 진실되게 인정하고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을 바라고 주님 앞에 나와야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첫째 제사>도 제대로 못 드린 자들입니다. 첫째 제사는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첫 제사를 제대로 정직하게 드린 자는 율법 아래서 먼저 심히 죄인이 됩니다. 그리고 심히 죄인 되어야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두 번째 제사, 즉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만났을 때 온전한 마음으로 믿게 됩니다.
저도 죄 사함 받기 전에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의롭고 훌륭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율법대로 살아보려고 용을 쓰다가 내가 정말 심히 죄인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가출 소년을 데려다가 양자 삼아서 학교도 보내고 했는데, 그때 내가 심히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전 까지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데리고 살아 보았더니, 내가 얼마나 악한 자인지가 다 드러나더라고요. 마음으로는 그 아이하고 내가 낳은 친 자식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야겠는데, 실제로는 내 마음 속에서 그 아이하고 내 친 자식들하고 엄청난 차별대우를 하는 거에요. 그런 내 실체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악한 지를 깨달았다는 거죠.
냉장고에 아이들 간식을 사다 놓으면,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 아이는 배를 곯았던 아이니까 자기 혼자 다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내 눈에서 불이 나옵니다. “이 놈아, 너 만 입이냐? 네 동생들은 뭘 먹으라고 너만 다 쳐먹고 있냐?” 그렇게 책망을 했습니다. 만약에 내 친자식이 그렇게 허겁지겁 먹었으면, “아이고 그 놈의 새끼, 배가 엄청 고팠나 보구나! 실컷 먹어라. 그까짓 것 또 사다 넣어두면 되지” 하고 마음을 편히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수”란 놈이 먼저 와서 허겁지겁 먹으면, “이놈아, 너만 입이냐, 제발 동생들 것도 남기고 먹어라” 하고 책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내 양심이 찔리는 거에요. “네가 천사표인 줄 가면을 쓰고 사람들에게서는 칭송을 받고 그러면서 그렇게나 편애를 하고 그러냐?” 그때에 진짜로 얼마나 내가 악한지가 다 드러났습니다. 율법 아래에 제대로 서 본 자라야 자기가 얼마나 악하고 쓰레기 만도 못한 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정말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자기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 죄 덩어리이고,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지옥 가야 마땅한 자인지가 드러나야 하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괜찮은 자인 줄 알고 자꾸만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지어서 자기의 수치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죄 사함을 못 받습니다. 그 위선의 가면을 확 벗겨 버리고 자기가 벌거벗고 수치스러운 자인 줄 인정하고, 주님이 단번에 드리신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의 제사를 마음으로 믿어서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신 주님께 나와서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쳤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