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제물로 드려진 예수님 / 히브리서 9:26~28

2015. 8. 27. 오전 10: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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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제물로 드려진 예수님 / 히브리서 9:26~28


구약 레위기서에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제사와 정결하게 하는 법, 절기 의식 등이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랍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으나 여전히 죄를 짓고 나쁜 짓을 할 가능성이 많았어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정해진 제사와 깨끗하게 하는 의식을 통해 깨끗한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나갈 수 있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셨어요.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지고,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히9:22)


하느님께 드려야 할 제사를 살펴보면 다섯 가지(번제, 소제,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가 있는데 그 중 소제 외의 제사는 피를 뿌림으로 드려졌어요. 피를 뿌리는 것은 피속에 생명이 있는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생명을 드린다는 뜻이 있었어요. 하느님께서 정하신 것이랍니다.

다행히 사람의 피를 뿌리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 제사에 따라 또는 그 사람의 형편이나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흠이 없는 것으로 숫소. 암소. 숫염소. 암염소. 숫양. 암양이 드려졌지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도 가능했어요. 이것들을 가져오면 제사장은 짐승을 죽여서 피를 흘리게 하고 이 피를 제단에 뿌리면서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빌었어요. 죄를 짓는 것은 너무 쉽지만 죄를 용서받는 것은 엄격했어요. 죄를 가지고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나 깨끗하게 하는 제사와 의식을 통해서 깨끗이 해야 했었거든요.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는데 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어요. 죄를 가지고 있어서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수 없다는 말씀이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깨끗해지려고 애를 쓴답니다. 여러분들도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싶지요? 하느님 앞에 깨끗한 마음으로 서고 싶지요? 예수님께서 마음이 깨끗해야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깨끗해지려면 제물의 피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지요?


그럼 제물을 준비해서 가지고 온 사람 있나요?


그래요. 우리 중에 한사람도 제물로 짐승을 잡아 온 사람은 없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죄 용서함을 받고 깨끗해지기 위해서 이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히9:11~12).


"이 예수님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바치는 복잡하고 힘들게 짐승을 바치는 제사는 드리지 않고 오직 다시 오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는 당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러면 죽인다는 위협과 핍박으로 방황하며 믿음에서 떠나가는 상황에 누군가가 이름도 드러내지 못한 체 쓰여진 편지랍니다.


그렇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용서를 받고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피 흘려 죽으셔서 제물이 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단번에 죽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어요.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겁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행전 4:12).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는데 죽은 후 영원한 사망의 심판을 받는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되지 말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잘 믿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기쁨으로 감사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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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자신을 드려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 (히브리서 7:23~28)

다른 사제들은 죽음 때문에 직무를 계속할 수가 없어 그 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기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많은 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므로 그분의 제사장직도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언제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재의 기도를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제사장은 거룩하고 흠이 없고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죄인들이 미치지 못하는 하늘에 계시므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제사장들처럼 먼저 자기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고 나서 백성의 죄를 위해 제사드리는 일을 날마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바쳐서 단번에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지만 율법 후에 온 하느님의 약속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직접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하느님께 용서받기 위해서 제물을 가지고 대제사장을 찾았습니다. 속죄제나 화목제등을 위해 대제사장은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할 제사장들이 타락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예를들어 블레셋의 빈번한 침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홉니와 비느하스라를 두 형제 제사장은 야훼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고 수종드는 여인과 간음하고 악행을 저지르다 하느님의 사람으로부터 저주를 받기에 이릅니다. (사무상2,22-25)


과연 이러한 제사장들을 통하여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하느님께서 기뻐 받으셨을까요? 이런 대제사장이 있는 시대의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서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세우셨습니다.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는 예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거침이 없게 하셨습니다.

 

최근에 한국개신교회에 세속적이고 타락한 목사들이 넘쳐납니다.

간음에 폭행, 재물과 권력을 탐하며 회개는 커녕 의기양양한 목회자들이 넘쳐납니다. 게다가 이러한 교회 안에 있는 깨어있는 교인들은 오히려 교회에서 쫓겨나거나 떠나고, 결국 교회안에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과 그러한 자들을 옹호하는 자들만 남게 됩니다. 불법과 불의를 미워하시는 하느님의 뜻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하느님은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예수님 한 분외에는 그 어느분도 세우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폐한 대제사장이 지금 시대에 다시 부활이라도 한 것입니까?

언제부터 목사직분이 하나님께서 기름부은자를 뜻하는 것이되었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인것이 아니었습니까?

 

예수님만 바라봐야합니다.

오직 그 분을 통하여서만 구원에 이르러 하느님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재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거룩하고 흠이 없고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죄인들이 미치지 못하는 하늘에 계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분이십니다.

 

사람과 권위에 묶여 정작 예수님과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것이 아닌지 고민해야합니다.

믿음의 사람, 구원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죄의 반복과 용서가 아니라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복음과 구원과 사랑을 말해야하지만, 내 스스로 그리고 내 입으로 예수님을 말하고 구원을 확신한다 말하는 사람이라면 마치 믿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춰야합니다.

 

하느님...

예수님이 나의  대사장님이시고, 지금도 하느님과 나 사이를 중재하고 계시다면...

아마 지금 이순간도 정말 엄청 바쁘실거에요...

그래도 뻔뻔하게, 나의 삶 그리고 나의 죄조차 예수님께 맡깁니다.

언제나 주님의 임재앞에 살아가는 삶이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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