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평화 / 세상의 평화 / 하느님 나라
이복선(lbs) ![]() |
7004 | ||||
| 2013-06-28 오후 12:22:53 | 66 | 1 | |||
6969번(성경묻고답하기) 글에서, 처음 질문자가 질문하신 내용인 하느님의 평화와 세속의 평화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답글이나 댓글에서도 비근한 답들이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상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인가?
세상의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인가?
라는 것이 논점인것 같습니다.
마태오 형제님께서는 6969 댓글에서,
"세상의 평화" 즉 "지상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열매(fruit)이라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305항의 첫 문장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는 달리, 남충희 형제님이 지금 주장하고 있듯이, "세상의 평화", 즉, "지상의 평화" 를, 결코 참 평화일 수가 없는, "세상이 주는 평화" (요한 복음서 14,27)와 등가로 동일시하면 안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소형제님은 "세상의 평화" 즉 "지상의 평화" 라고 주장하셨고,
이에 남형제님은 "지상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라면 "세상이 주는 평화"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게 오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소형제님의 '지상의 평화' 즉 '세상의 평화' ] 라는 전제 자체가 잘 못 되었다고 봅니다.
전제가 틀리니 결론이 당연히 모호해지고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소형제님의 주장 "세상의 평화" 즉 "지상의 평화"를 등식으로 표현하자면
'세상의 평화 = 지상의 평화' 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말 성경, 영어 성경, 가톨릭 교리서, 라틴어 교리서를 통해 찾아 보았는데, 영어와 라틴어를 함께 올린 이유는 엇비슷해 보이는 우리 말 어휘들이 원어에서는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
'지상' 과 '세상' 두 가지 어휘가 어떻게 다른지, 또 성경과 교리서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사용되어 있는지 찾아 보고, 그 예를 통해서 구별하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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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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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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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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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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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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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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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land, ground; country,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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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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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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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d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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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e, heavens; world, man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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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세기 1,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1,1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 541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시작하셨다.”267) 그런데 아버지의 뜻은 “인간을 들어 높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는”268)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심으로써 이를 행하신다. 이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 이는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269)
541 “Postquam autem traditus est Ioannes, venit Iesus in Galilaeam praedicans Evangelium Dei et dicens: "Impletum est tempus, et appropinquavit Regnum Dei; paenitemini et credite Evangelio"” (Mc 1,14-15). “Christus ideo, ut voluntatem Patris impleret, Regnum caelorum in terris inauguravit”. Patris autem voluntas est “homines ad participandam vitam divinam elevare”. Id facit homines circa Filium Suum, Iesum Christum, congregans. Haec congregatio est Ecclesia quae in terris “germen et initium” est Regni Dei.
(2) 마태 13,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13,22 The seed sown among thorns is the one who hears the word, but then worldly anxiety and the lure of riches choke the word and it bears no fruit.
(2) 79 이처럼 성부께서 성령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전해 주시는 통교는 교회 안에 현존하며 작용하고 있다. “예전에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부히 머물도록 하신다.”45)
79 Sic communicatio Sui Ipsius, quam Pater per Suum Verbum in Spiritu Sancto effecit, praesens atque activa permanet in Ecclesia: “Deus, qui olim locutus est, sine intermissione cum dilecti Filii Sui Sponsa colloquitur et Spiritus Sanctus, per quem viva vox Evangelii in Ecclesia, et per ipsam in mundo resonat, credentes in omnem veritatem inducit, verbumque Christi in eis abundanter inhabitare facit”.
이것만 보아도 '세상의 평화' = '지상의 평화' 가 성립될 수 없으며,
소형제님의 ['세상의 평화' 즉 '지상의 평화'] 라는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9,6 But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he then said to the paralytic, "Rise, pick up your stretcher, and go home."
위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주겠다고 하시면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 가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 다음 복음 말씀을 보면, 우리 가운데 임재하는 '하느님의 나라' 에 대한 선포가 너무 명징해서 놀라울 정도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
루카 17,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신 놀라운 복음을 온 마음으로 만나 보십시오.
루카 12,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 '하느님의 나라' 를 죄많은 우리 인간에게 기꺼이(joyfully )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처음 질문해 주신 분과 답글과 댓글에 참여해 주신 여러 교우님들의 의견들을 징검다리 삼아 놀라운 복음 말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문경준 ( (2013/06/28) : 아래 60개가 넘는 댓글 다툼은 소순태님의 몰이해 때문에 생긴 것일 뿐입니다. 처음 질문 내용부터 이해가 되지 않으니 무슨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지요. 질문 내용은 남충희님이 언급한 바와 같이 -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 '세속적 평화'를 말하는 것이고 그에 대비한 '하느님의 평화(또는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의 차이점이었던 겁니다. 소순태님이 찾아온 '교리서 속 <지상의 평화>'는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평화로 '지상에 마련된 하느님의 평화'인데 글자가 비슷하다 보니 소순태님이 헷갈렸던 겁니다. 아마 남충희님이 돌아버릴 지경이었을 겁니다. 나름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끼리의 대화는 아니었지요...^^;;;
jeunerhi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