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는 정말로 누구였는가?

2013. 3. 3. 오후 8:06:53

글자

막달라 마리아는 정말로 누구였는가?

행실이 나쁜 죄인이었나,

창녀였을까?,

간음한 여인?

정말 예수님의 아내였나?

사도 또는 성녀였나?


최근에 대 성공을 거둔 두 작품 -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 (Passion of the Christ)과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 - 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은 두 작품에서 아주 대조적이다.
깁슨의 영화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간음한 여인으로 묘사를 했는데, 이것은 초기 교회시절부터 시작된 마리아에 대한 오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종종 행실이 나쁜 여인 (루가 7, 36-50) 과 간음한 여인 (요한 8, 3-11) 과 혼동을 일으켜 왔다.
브라운의 소설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결혼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한다. 그는 고대 전설과 이삼 세기의 영지주의파의 저서들을 인용해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배우자라고 결론을 내린다.
막달라 마라아를 간음한 여인, 창녀 또는 예수님의 배우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역사적인 증거가 없으며, 신약성서에도 그렇게 암시하는 바가 없다.


그러면, 네 복음서에 제시된 막달아 마리아는 누구인가? 그녀의 이름에 붙은“막달라”라는 호칭은 성서에 나오는 다른 마라아들과 구별된다. 이 것은 아마도 그녀가 “막달라”라는 마을출신임을 나타낼 것이다.
이 마을은 갈릴리 호숫가의 번성하던 마을이었는데, 생선 가공 처리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다. 가장 신빙성 있는 역사적인 증거로는, “막달라”라는 마을이 갈릴리 호수의 서쪽 호숫가, 그리고 예수님의 고향인 나자렛과, 예수님의 공생활의 근거지였고 어업의 중심지였던 가파르나움의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최초의 추종자중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막달라 마라아가 다른 여자들같이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어머니로 묘사 되지 않고, 순전히 그녀의 출생지로만 불렸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렇게 특이하게 불렸다는 것은 그녀가 남편이나 아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 여성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의 그 특이한 상황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다.
마르코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전도하실 때 제자중의 하나였다고 이야기 해준다. 마르코는 또한 예수님이 갈릴리에 있을 때 시중을 들었다는 사실을 더해준다 (마르코 15,41).
루가는 더 나아가 이 여자들이 자신들이 재산을 바쳐 예수와 열두 제자를 도왔다고 전한다(루가 8,3). 최근 까지도 이 여자들이 역할은 주로 예수와 남자 제자들을 위한, 식사 준비와 바느질 빨래 같은 가사 일이었다고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자신들의 재산을 바쳐”라는 말은 여자들이 자신들의 재산과 수입을 직접 예수님과 제자들의 전도여행에 제공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막달아 마리아는 제자라는 신분 외에도, 충성스럽게 주인을 위해 자신의 재정적인 것을 바친 일종의 후원자 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루가 복음에서 예수님과 동행했던 여자들을 묘사할 때는, 악령과 질병에서 치유를 받았다는 언급을 한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는 특히 일곱 마귀가 나가 여자라는 설명을 덧붙인다(루가 8,2).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녀가 아주 희귀한 만성적인 정신이나 육체적인 질환에 시달렸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그녀의 병이 매우 심각하고 계속 재발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성서의 텍스트에는 그녀의 내적인 문제가 성적인 죄의 결과이거나 원인이라고 암시하는 구절은 전혀 없다(마찬가지로 루가 복음의 같은 장의, 마귀 들린 사람의 이야기에서 그의 병이 성적이라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루가 8,26-39)).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에게 일곱 마귀가 있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왜 그녀가 결혼이나 가족과 연관이 없었나 하는 것에 관한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녀가 이 병을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음으로써, 전 생애를 예수님과 그의 임무에 헌신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여자제자들의 헌신을 남자제자들의 것 보다 열등하게 여기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없다.
사실상, 예수님의 수난기간 동안 여자 제자들이 더 큰 용기와 결단을 보여 준 것 같다. 목숨을 구해 도망간 남자 제다들과는 달리, 여자들은 십자가 옆에서 지키고 있었으며, 무덤에 묻히심을 목격했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를, 멀리서 예수님의 무자비한 십자가형과 무덤에 묻히심을 멀리서 보고 있던 여자들 중에서 첫 번째로 언급한다. 요한복음은 그녀를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와 그리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십자가 밑에 놓는다.

네 복음서는 다 함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안식일이 끝난 후 예수님의 몸을 닦기 위하여 무덤에 갔다고 전한다. 무덤에서 그녀는 하늘나라의 메신저로 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마태 28, 1; 마르; 16,1, 루가 24,1).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장면에서 항상 첫 번째로 불려 졌다는 것은 그녀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 두드러진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증언한다.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성서의 전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이 그녀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보았고, 부활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울고 있는 그녀에게 나타나서 사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라고 임무를 준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 주신 말씀을 전하였다” (요한 20:18).
그녀는 예수님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복음 메시지를 선포하는 최고의 사목적 임무를 수여 받은 것이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는 존경받는 칭호를 부여 받은 것은 바로 이 전승 때문이다. 이 칭호는 초대 교부들이 의해 그녀에게 주어 졌는데, 중세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재 확이 되었으면, 최근에는 요한 바오로 2세를 포함한 현대의 저자들에 의해 부활되었다.

*** 막달라 마리아는 회개한 창녀였나?

우리가 가장 흔히 보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는 주홍색 망토를 걸치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치에 않아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닦거나, 십자가 밑에 앉아 그녀의 죄에 우는 모습으로 묘사가 된다. 수세기에 걸쳐서 크리스천 미술이나 문학에서 묘사 되었듯이, 그녀는 여자의 욕정과 성과 죄의 화신이다. 그녀는 창녀였는데, 예수님을 만나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그녀의 생을 예수님에 바친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의 이런 이미지를 네 복음서에서 찾으려 하면, 우리는 헛고생을 하게 된다. 여제자의 우두머리이며, 예수님의 친구이고 사도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한 막달라 마리아는 교회의 초기 몇 세기의 역사 속에서 회개하는 창녀로 변화 되었다. 그녀가 창녀이며, 간음한 여인이고 죄인이라는 것은 신약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대박을 터뜨린 “다 빈치 코드”에서, 댄 브라운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는 교회의 중상모략의 희생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레고리오 교황이 교회 내에서의 남성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서 막달라 마리아의 신원과 사도로써의 그녀의 중요성을 숨기고 창녀로 선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그 근거를 잃어버린다.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중상모략도 음모도 아니었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된 것은 아마도 마리아를 복음서의 다른 여자들과 혼동한 결과일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복음서에 나오는 일곱 명의 마리아 중의 하나이다. 교회의 초기에는 이 여러 마리아들을 잘 구별하였고, 정교회에서는 항상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아의 마리아를 구별해서 축일을 지내왔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인물이 다른 마리아 그리고 이름 없는 죄인들과 혼합된 것은 6세기 이었다.
기원후 591년에,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강론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바른 죄 많은 여자를 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루가복음에서 죄 많은 여인라고 불리고, 요한복음에서 마리아라고 불린 여자는 일곱 마귀가 나간 여자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복음강론) 교황의 마리아에 대한 신원증명은 복음서에 나타난 이 세 여자에 대한 그 당시의 질문에 답을 시도한 것 같고, 루가복음과 요한복음의 혼동되는 이야기들에 관한 공통된 오해를 반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루가 복음의 7장에서 루가는 예수님과 그 도시에 사는 행실이 나쁜 여자와의 만남을 묘사한다(루가 7:37). 그 여자는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루가 7:38). 손님들이 항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 여자의 사랑을 칭송하고 많은 죄를 용서해 주셨다 (루가 7:47).
이 이야기 바로 이어서,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마귀가 나간 여자로 소개가 된다(루가 8:2). 이 부분이 바로 이 두 여자에 관한 혼동이 시작되는 곳이며, 이 여자의 죄가 성적인 것이라고 오해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녀가 결혼한 여자였다면, 그녀의 죄는 간통으로 불리어 졌을 것이다.
요한복음의 12장에는 예수님이 베다니아에 갔을 때, 마르타와 라자로의 형제인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마리아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머리로 말렸다 (요한 12:3).
수세기 동안 이 이야기기 전달되는 과정에서 베다니아의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로 혼동이 되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또한 루가복음의 행실이 나쁜 여인과 연관이 되어졌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이 세 마리아를 한 사람으로 동일시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한 사람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여러 복음서에 나오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의미가 주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고리오 교황의 강론을 음모라거나 악의에 찬 행위로 해석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잘못된 신원증명은 고정이 되어 버려서, 이 때 이후로 막달라 마리아는 회개한 큰 죄인으로 여겨 져 왔다. 죄인이자 성인인 그녀의 이미지는 그 도를 더해서, 수세기를 걸쳐 많은 사람들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매혹되는 원인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예수님에게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아내였나?

최근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대중의 의견은 반대 방향으로 기수를 돌린 것이 사실이다. 그녀를 창녀로 낙인찍기 보다는, 최근의 이론은 그녀가 예수님이 아내였으며, 그들 자녀들의 엄마였다고 제안을 한다. “다 빈치 코드”는 막달라 마리아가 진정한 성배이며 예수님의 혈통을 잇는 사람이라고 선포를 한다.

호기심 많은 저자들은 복음서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남자와 연관이 안 되어 있고, 예수님의 여제자 중에 항상 처음에 열거되는 사실을 주목해 왔다.
요한복음이 그녀를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예수님이 그를 붙잡지 말라고 종용한 것 (요한 20,17) 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 간의 고유한 사랑이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 복음서의 사실과, 그 당시 유대계 랍비가 결혼을 안했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라는 사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둘이 결혼을 한 것이 아닌 가라는 추측을 낳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이론은 이 삼세기 영지주의 운동에서 쓰던 두 복음서의 텍스트에 심히 의존하고 있다.
빌리보의 복음서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이“동반자”라고 묘사했으면, 또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키스를 하는 것을 불평했다는 이야기기 나온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가 성적이거나, 로맨틱하거나 결혼을 했다는 사실의 증거는 되지 않는다.
마라아의 복음서에서는 막다라 마리아가 예수님으로부터 다른 제자들에게는 주지 않는 특별한 계시를 주었으며, 예수님이 그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했다고 쓰여 있다.

이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신비적이고 상징적이며, 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이복음서들에는 잘 못 된 부분이 많이 있고,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 지지 못한 것을 보면, 왜 이 복음서들이 경전이 되지 못했는지 설명이 된다고 하겠다.
현대 이론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이 신비한 부분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결혼 관계가 아닌 영적이 관계를 제시한다고 할 것이다.

성서 내에서나 성서 외에서나, 크리스천의 역사상 엄청나 분량의 저서가 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예수님이 결혼을 했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아내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없다.
성서에 예수님이 혼자 이었다는 말은 없으나, 예수님이 결혼을 했다면, 복음서 저자들은 어딘 가에는 언급을 했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끊임없는 전도여행과 중대한 임무에 비추어 볼 때 결혼과 가족생활은 생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고 마리아가 아이를 낳아서 메시아의 혈통을 잇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 할 뿐이다. 이론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만, 제시된 증거는 정밀 조사로 그 허구가 들어나며, 성서 어디에도 이런 사실을 제시하는 곳은 없다. 헛된 이론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지위를 선정적으로 만들기 보다는 그녀를 진정한 그녀로써 경의를 표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정말로 누구인가?

막달라 마리아는 위대한 성인이며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마귀에게 매여 있었으며 예수님이 그녀를 치유함으로써 새 생명을 주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다른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한 최초의 증인이 될 정도로, 깊은 감사와 사랑으로 예수님을 따랐다.
최근의 음모 설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이 목적을 위해서 그녀를 중상했다고 주장하지만,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존경은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교회에 의해 숭고한 성인으로 영예를 받아왔으며, 그녀의 축일은 7월 22일로 전 세계 교회에서 기념하고 있다. 그녀를 이름을 딴 교회도 전 세계에 많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아내였다는 허황된 주장이나, 또는 회개한 창녀였다는 추측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의 성경연구가 수세기에 걸친 오해를 풀어 주기를 희망한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가, 적절하게 신원이 밝혀지고 그녀에게 걸 맞는 영예를 받는다면, 그녀는 21세기를 위한 위대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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