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9-루카12,8-12-
성령을 거스른 죄는?
오늘복음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씀 하신다.
유리한 곳에서나 불리한 곳에서나 어디서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증언하는 사람만이 그분의 구원을 받아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농부의 남루한 옷을 입고 서울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찾아갔을 때 아들이 친구들에게 아버지라고 소개하기가 챙피하다고 외면한다면, 그 아버지가 그를 더 이상 자기 아들로 인정하고 싶겠는가?
또 주님은“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것도 보통 죄가 아닐 터인데 그러한 죄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신다. 무슨 뜻일까?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였다가도 후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다스도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그가 최후의 순간에라도 뉘우치고 예수님께 돌아와 용서를 청하였으면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죄를 예수님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살하고 말았다. 그것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불신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에 대해 불신하는 것을 가장 혐오하신다. 대데레사 성녀는 “아무리 큰 죄라도 하느님의 자비에 비하면 화롯불에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 하셨듯이 인간의 죄가 아무리 커도 하느님의 자비의 불을 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스의 죄는 스승 예수님을 배반한 죄보다, 하느님 자비심에 대한 불신의 죄가 더 큰 것이다.
그런데 성령을 거스른 죄는 어떤 죄인가?
그것은 성령의 성화작용인 회개의 은총을 거부하고 회개하기를 거절하는 완고한 태도를 말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으므로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할 때는 하느님도 그를 강요하여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이 구원을 거절하신다기 보다 본인 자신이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므로 인간이 원치 않는다면 그에게 억지로 구원을 안겨주시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며 죄를 뉘우치고 자비를 청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미리내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 홈 페이지에서 퍼옴
(본문 : 마태복음 12 : 31 - 33)
1. 성경에 기록된 무서운 세 가지 죄
성경은 세 가지 죄에 대하여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할 수 없는 죄'라고 했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없다"고 했습니다(히6:4-6).
이 말씀의 뜻은 은혜의 체험이 많은 사람이 그 은혜를 고의적으로 저버리고 계속적으로 타락하는 자리에 있으면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의미의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의 경우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고 했습니다(요일5:16-17).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자에게는 구하라 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죄를 범해도 나중에 회개만 하면 될 것으로 여기지만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음 세 번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령 훼방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 동안 죄를 멀리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성령을 훼방하는 죄보다 무서운 죄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이런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지극히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령 훼방 죄란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성령 훼방죄'에 관한 이 말씀이 왜 나왔는가에 대해 그 동기부터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된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신 일에 많은 사람이 놀라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분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뒤쫓으며 고소거리를 찾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그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 능력을 행한다'고 비방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이 같은 고의적인 비방과 모함에 대하여 성령 훼방죄를 언급하시고 이 죄에 대한 두려운 사실을 경종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낱말에 대한 원어의 뜻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훼방이란 말은 '브라스폐미아'로 비방한다, 중상한다, 모욕한다 또는 명예를 훼손한다는 뜻으로 성령을 비방하고 모욕하고 명예 훼손을 하되 끝까지 비방하는 일을 말합니다. 다음에 성령을 거역한다고 하신 거역이란 말은 '카타'로 정면으로 맞서 적대시하고 원수시하여 계속하여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1) 바리새인들의 비방은 알면서도 고의적인 행동에서 나왔습니다. 성령 훼방죄에는 고의성이 따릅니다. 고의성이란 알고도 고의적으로 계속적으로 비방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대적했습니다. 이처럼 잘못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계속적으로 비방하고 대적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무슨 구원의 소망이 있을 것입니까? 예수님의 능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이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그런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알았으며 이로 인하여 그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그들이 기다려 온 메시야인 줄로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유독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권능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악의적으로 모함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목적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진리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비방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소망이 있을 것입니까? 결국은 멸망만이 있을 것입니다.
(2) 바리새인들의 고의적인 비방은 무지와 시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천한 목수의 아들이 율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도전해 오는 일에 대하여 시기했던 것입니다.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르며 그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며 그를 메시야로 인정하는 일에 그들은 견딜 수 없는 시기심이 발동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놀라운 이적을 행하는 일에 그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투기심이 솟구쳤습니다.
이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 그들의 마음에는 시기의 불길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던 것은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기심과 질투심에서 온 악의적인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 까지도 바리새인들의 이같은 시기심을 간파하고 예수를 무죄 방면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27:17).
(3) 그들은 교만하므로 마음이 강퍅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므로 자신들의 지식이 가장 숭고한 것으로 알았고 그들의 외식적인 생활이 가장 율법적인 생활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진리를 배우려고도 알려고도 아니합니다. 그들의 교만은 예수님까지도 율법으로 정죄했으며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마음이 계속적으로 교만하면 양심이 화인 맞아 옳은 일도 부인하게 되며 성령의 감화도 거역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진리를 증거하셨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수도 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아무 것으로도 핑계 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22-24).
3.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인자를 거역한다는 말은 인간 예수를 말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예수님을 하나의 인간이나 인간 중에 훌륭한 성현쯤으로 여깁니다. 그런 분을 비방하고 거역하는 일은 불신자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인 줄 알면서도 이 같은 일을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고 비방하고 고의로 대적하고 귀신의 왕이 행하는 일로 모욕한다면 그런 일은 용납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일이야말로 성령 훼방죄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일을 행한 자에게 사하심이 없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사하심이란 말은 '아피에미'로 통감한다, 용서한다, 취소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성령으로 중생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죄의 사하심은 회개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 회개 또한 하나님의 은사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강퍅하게 하실 자를 강퍅하게 하시고 회개케 하실 자를 회개시키십니다.
결론 : 죄의 사하심은 회개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 회개야말로 하나님의 은사요 선물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하여 고의적으로 성령이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훼방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항상 진리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