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의 교회론에서 예수의 어머니

2012. 10. 6. 오전 9: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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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의 교회론에서 예수의 어머니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요한복음서의 교회론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위상은 돋보여지고 독특한
면이 있다. 마리아는 우선 예수의 공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성실한 여인으로 소개된다. 즉 카나의 혼인잔치(2,1-10)에서부터 십자가상 죽음(19.25-27)에 이르기까지 지상 예수를 동반한 어머니요 한 여인이다.

그러나 예수는 카나 혼인잔치에서도, 십자가상 죽음에서도 어머니 마리아를
'부인'(여인)이라고 부른다(2,4;19,26). 즉 예수는 혈육의 관계를 뛰어넘어서 아버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본 것이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란 말이 시사하듯이 예수 자신은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영광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낸 것이다(17,1 참조)

마리아는 마치 이러한 예수를 이미 알고나 있는 듯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라고 당부까지 한다. 마리아는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를 통해서 계시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자 하는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준 셈이다(마르 3,34-35 참조). 

이러한 마리아를 예수는 십자가상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제자'의 어머니로 선언하고 또한 어머니로 모시도록 그에게 당부한다. 즉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위상도 언급된 것이다(19,26-27). 이로써 마리아는 요한 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보편교회 안에서도 어머니로서의 위상을 굳할 수 있었다고 본다.

출처:가톨릭교리신학원 교재 요한계문헌 103-104쪽 

이정임 ( (2012/01/04)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어제 신천지 이만희씨의 이상한 글을 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 글이 삭제되기 전에 복사해서 옮겨 놓았습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글이 이단들이 쓰는 글인지 식별하고 속아넘어가지 않으시려면 열심히 공부하셔야 합니다. 이단들은 우리들을 유혹해서 데리고 가려고 얼마나 공부하는지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진짜야 자신이 진짜니까 별 노력을 안하지만 가짜야 자신이 진짜처럼 보여야 되니까 얼마나 노력하겠습니까? kr3217)  
 
이정임 ( (2012/01/04) : 신천지는 자신의 처지를 그나마 잘 아는지라 보란듯이 드러내지 못하고 교묘하게 제목을 붙여서 ㅇㅇ의 글을 올리는 처지입니다. 이 작은 사실만 보아도 그들은 빛이 아니고 어둠임을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어둠은 빛을, 악은 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kr3217)  
 
이정임 ( (2012/01/04) : 지구는 독수리 오형제가 지킵니까? 굿뉴스는 누가 지킬 것입니까? 관리자(?) kr3217)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사연은?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 그가 벙어리가 된 사연에 대한 묵상입니다.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즈카르야가 아이를 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말씀인데 그는 왜 자신의 기도에 응답이 왔는데도 믿지 못했을까?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기도가 이렇습니다.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하십니까?
우리도 주님께 무엇을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사실 하느님의 권능을 온전히 신뢰하기보다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경험을 바라보고, 세상의 한계를 바라 봅니다.
 
즈카르야가 고백하듯이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라고 합니다.
주님께 해 달라고 청하고 있으면서 왜 자신을 바라봅니까?
자신의 능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주님께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늙었고 자신의 주변도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왜 바라봅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이러한 못난이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포기하셨다면 그를 벙어리로 만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축복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벙어리가 됨으로써 비로소 많은 것들을 묵상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때는 침묵 중임을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침묵할 수 없을 때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기도란 내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기도란 나를 바라보며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며
내 말을 많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많이 듣는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아마도 즈카르야는 구약성경을 묵상하지 않았을까요?
너무나도 잘 아시는 이사악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와 야곱과 에사오의 출생의 이야기와 요셉과 베냐민의 출생의 이야기와 사무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묵상했을 것이며 더 중요한 출애굽(파스카)사건을 묵상했을 것입니다.
그는 조상들이 만난 하느님을 이제 자신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즈카르야의 노래 참조)
 
이러한 묵상을 통하여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인간의 경험의 한계와 세상의 한계를 바라보던 시선에서 하느님의 권능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루카1,23-24)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7-29 참조)
즈카르야는 아내가 임신한 것을 보고 믿었다면, 성모님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으신 분이십니다.


저는 즈카르야를 묵상하면서 믿음은 기다림을 동반함을 배웠습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믿음은 주님의 약속(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것에서 시작됨을 배웠습니다.
나는 기도하면서 어디를 바라보는 사람입니까?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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