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2011. 11. 9. 오후 4:03:38

글자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조명연신부
 
 
 
용서에 관해서 잘 알려진 이야기 한 가지를 떠올려 봅니다.
한 청년이 살인을 범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청년의 아버지는 주지사를 찾아가 간절히 애원했지요.
“제 아들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뿐입니다. 부디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십시오.”
주지사는 몇 날 며칠을 찾아와 간곡히 부탁하는 아버지를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충분히 사면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사면을 결정하고, 사면장을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감옥에 갇혀 있는 청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던졌지요.
“여보게, 만약 자네가 사면을 받아 자유로운 몸이 된다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청년은 매우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두 사람을 죽일 것입니다. 내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와 내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그 증인을 죽일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지사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 있는 사면장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 결정을 통해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죄의 굴레 속에 헤매고 있는 우리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우리 곁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용서하시기 위해 다가오시는 주님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분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만을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앞선 청년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오히려 더 큰 복수를 하겠다고 말한다면 주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지요.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내가 용서받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내가 용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면장을 들고 오신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복수와 증오의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용서와 사랑을 간직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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